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끊임없이 질문하는 작가, 안규철의 평창동 작업실

안규철의 작업실은 물음이 자라나는 장소이자 생각이 형태가 되는 공간이다.

프로필 by 윤정훈 2026.01.23
이른 오후 안규철 작가의 작업실 풍경. 지하지만 햇살이 공간 깊숙이 들어온다. 오른쪽의 검은 캔버스는 ‘외국어로 된 열두 개의 잠언’(2024)을 준비하며 만든 습작. 페르난두 페소아의 시집 <시는 내가 홀로 있는 방식>에서 인용한 ‘바람은 오직 바람에 관해서만 말한다’는 문장이 포르투갈어로 적혀 있다.

이른 오후 안규철 작가의 작업실 풍경. 지하지만 햇살이 공간 깊숙이 들어온다. 오른쪽의 검은 캔버스는 ‘외국어로 된 열두 개의 잠언’(2024)을 준비하며 만든 습작. 페르난두 페소아의 시집 <시는 내가 홀로 있는 방식>에서 인용한 ‘바람은 오직 바람에 관해서만 말한다’는 문장이 포르투갈어로 적혀 있다.


책과 생활 도구, 작품이 자유분방하게 놓인 서가.

책과 생활 도구, 작품이 자유분방하게 놓인 서가.


세 개의 삽날을 용접해 한 덩어리로 만든 ‘세 개의 질문’(2024). 목재에 채색해서 만든 ‘천사-기둥’(2002). 벽에 붙들린 의자는 ‘무명작가를 위한 다섯 개의 질문 II’(1991/2021)의 일부로, 화분 속에서 나무 의자가 자라는 불가능한 상황을 통해 무명 예술가의 꿈과 좌절을 표현했다. ‘두 개의 공’(2024) 일부, ‘추락’(2013) ‘불’(2013)이 나란히 놓인 선반.

평창동 안규철의 작업실에는 서로 다른 것들이 조용히 공존한다. 천장까지 닿은 책장과 정갈한 데스크를 보면 학자의 서재 같지만, 도구로 빽빽한 작업대를 보면 영락없는 목수의 방 같다. 무심코 지나칠 법한 일상의 사물이 예술 작품으로 태어나는가 하면, 전시장에서 관객을 만났던 작품이 생활 도구와 뒤섞인 채 공간 한쪽에 놓여 있다. 아직 완성에 이르지 않아 구태여 ‘작품’이라 부르지 않는 오브제, 전시장에서 공개하지 않은 조형물도 곳곳에 흩어져 있다. 서울 평창동에 터를 잡은 지 올해로 10년. 도시의 소음은 희미하지만 볕은 길게 드는 지하 작업실에서 안규철은 매일같이 스스로를 단련해 왔다. “젊을 땐 교외에 큰 작업실을 가진 사람이 부러웠어요. 돌이켜보면 이렇게 혼자 방해받지 않고 쓸 수 있는 공간이 있다는 것만으로도 감사하더라고요. 후배 작가들이 이런 공간조차 부러워할 수도 있잖아요. 그러니 하루를 허투루 보낼 수 없어요.” 매일 새벽 여섯 시 반에 일어나 책상 앞에 앉아 노트를 펼치는 이유다. 10여 년 전에 펴낸 책에서 일찍이 고백했듯이 안규철의 하루는 언제나 ‘하얀 종이 속으로 들어가는 일’로 시작된다. 글쓰기와 드로잉은 늘 작업의 출발점이었다. 스케치북 절반 크기의 노트에 익숙한 연필로 그날의 생각과 고민을 써 내려가다 보면 어느새 두세 쪽이 채워진다. “연주자가 하루 연습을 거르면 본인이 알고, 일주일을 거르면 관객이 안다고 하잖아요. 글도 그래요. 며칠만 손을 놓아도 막막해요. 그래서 매일 몇 줄이라도 씁니다. 그래야 다음 날에도 쓸 수 있거든요.”


목공 작업실의 공구와 작업대.

목공 작업실의 공구와 작업대.


‘시력검사-새’(2024) 제작에 사용했던 스텐실.

‘시력검사-새’(2024) 제작에 사용했던 스텐실.


쓰다 남은 몽당연필로 만든 드로잉 도구.

쓰다 남은 몽당연필로 만든 드로잉 도구.


‘개념미술’이란 말조차 생소하던 1990년대 초, 안규철은 미술을 통한 생각의 궤적을 누구보다 투명하게 드러냈다. ‘엉성한 신비주의’를 경계하며 현대미술의 난해함에 맞섰고, 일상의 사물 속에서 사회의 부조리와 모순, 삶에 관한 진실, 철학적 메시지를 끌어내 논리적으로 설명 가능한 미술을 실천해 왔다. 세 벌의 외투 소매를 이어 붙인 ‘단결, 권력, 자유’(1992)에서는 연대가 언제나 자유로 이어지지는 않음을 시사했고, ‘자폐적인 문’(2004)에서는 사방이 문으로 막혀 있어 결국 소통이 단절되는 아이러니를 표현했다. 자전거 두 대가 손잡이와 안장이 맞닿아 있어 어디로도 나아갈 수 없는 ‘두 대의 자전거’(2014), 펠트로 만들어 소리를 낼 수 없는 ‘과묵한 종’(2017) 등으로 역설의 미학을 드러내기도 했다. 크고 작은 오브제부터 건축적 규모의 설치미술 작품 ‘49개의 방’(2014), 관객 참여형 프로젝트 ‘1000명의 책’(2015), 사진과 퍼포먼스, 텍스트를 캔버스 위의 이미지로 바꾸는 평면 작업까지. 형태나 재료보다 ‘생각이 중심이 되는 미술’로 나아가며 고유한 작업 세계를 구축해 왔지만, 지난 30여 년의 성취에도 불구하고 오늘의 안규철은 여전히 ‘하지 못한 것들’을 떠올리고 있다.


49개의 방’을 비롯한 설치미술 작업의 구상 단계에서 제작한 모형들과 뒤쪽 선반에 놓인 ‘죄 많은 솔’(1990~1991/2021).

49개의 방’을 비롯한 설치미술 작업의 구상 단계에서 제작한 모형들과 뒤쪽 선반에 놓인 ‘죄 많은 솔’(1990~1991/2021).


김수영 탄생 100주년을 기념해 같은 제목의 시를 적고 드로잉을 덧붙인 ‘거짓말의 여운 속에서’(2021).

김수영 탄생 100주년을 기념해 같은 제목의 시를 적고 드로잉을 덧붙인 ‘거짓말의 여운 속에서’(2021).


안규철 작가.

안규철 작가.


한국예술종합학교 교수직을 내려놓고 전업 작가가 된 지난 5년. 안규철의 노트는 작가로서 여정에 대한 회고, 앞으로 다가올 고민으로 가득하다. “미술이 해야 할 일은 이런 거라고 믿으며 여기까지 왔어요. 그런데 과연 ‘그런 선택밖에 없었나?’ 하는 생각이 들어요. 나는 왜 미술의 초점을 감각에서 생각으로 옮겼을까? 어째서 감정이 스며들 틈이 없었을까? 다른 시도를 했다면 어땠을까? 이제 와서 작업의 방향을 바꾼다면 내 신념을 배신하는 일일까? 예전에 포기했던 것들을 다시 내 안에서 불러낼 수는 없을까…. 쉽게 말해 제 현재 상태가 완벽히 만족스럽지 않다는 거죠.” 그의 작업실 풍경 역시 이런 태도와 닮아 있다. 작품과 생활 도구를 크게 구별하지 않고 무심히 놓인 모습에서 과거에 연연하거나 현재에 안주하지 않는 태도가 드러난다. ‘이대로는 충분하지 않다’는 마음은 안규철 작가의 오랜 동력이었다. “다른 작가들을 보며 ‘왜 나는 저렇게 못할까?’라는 생각을 해요. 솔 르윗, 안셀름 키퍼 같은 작가들을 보면 그런 혁신성과 예술적 힘이 어디서 오는 걸까 싶어요.” 수만 개의 비즈를 엮어 ‘Only Others Save Us’ 라는 문구를 표현한 설치미술 작품, ‘타인만이 우리를 구원한다’(2024)는 이러한 태도의연장선에 있다. “그들처럼 경이로운 경지에 최대한 다가가보고 싶어요. 질투의 힘이라고 할 수도 있겠습니다만, ‘타인만이 우리를 구원한다’는 아담 자가예프스키의 시구처럼 타인의 아름다움과 경이에는 한 사람을 특별하게 만드는 힘이 있는 것 같습니다.”


여러 개의 색연필을 막대에 고정해 만든 드로잉 도구.

여러 개의 색연필을 막대에 고정해 만든 드로잉 도구.


작업실이 있는 주택 외관.

작업실이 있는 주택 외관.


작업실로 향하는 외부 계단.

작업실로 향하는 외부 계단.


작업실 모퉁이 한쪽에는 다리 하나가 유독 길게 빠진 의자가 벽에 단단히 붙들려 있다. 미술 잡지 기자로서의 삶을 뒤로하고 떠난 독일 유학 시절 선보인 ‘무명작가를 위한 다섯 개의 질문 II’(1991)의 일부인 오브제다. 예술가와 평범한 인생 사이에 놓인 무명작가로서의 고뇌가 담긴 이 작품은 다섯 개의 손잡이가 달린 채 ‘kunst(예술)’라 적힌 문, 손잡이가 없는 채 ‘leben(인생)’이라 적힌 문, 엉뚱하게도 화분에서 자라는 의자로 이뤄졌다. 예술이란 화분 속에서 나무 의자를 키우는 것처럼 불가능한 영역이고, 예술의 세계로 들어가려면 ‘예술은 인생보다 중요한가’ ‘당신은 언제 예술가인가’ ‘예술가는 무엇을 하나’ ‘한번 예술가면 죽을 때까지 예술을 해야 하는가’ ‘예술은 돈인가’와 같은 질문에 답해야 한다는 의미였다. 더 이상 무명작가가 아니지만 안규철에게 이 작업은 여전히 유효하다. 예술가를 날마다 자라나는 나무에 비유한 것처럼 안규철은 예술을 시작한 이래 예술과 예술가에 대한 질문을 멈춘 적 없다. “지금도 그 질문 앞에 서 있는 건 같아요. 다섯 가지라 했지만 사실 수십 가지의 질문이 있었죠. 지금이라 해서 크게 달라졌을까요. 조금은 변했겠지만, 여전히 자문하고 있다는 점에서 그 작업은 여전히 유효해요. 다른 작가들도 각자 처한 진퇴양난 속에서 ‘나는 어떤 나무를 키울 것인가’ 하고 자문한다면 그 작품은 계속해서 살아 있겠죠.” 매일의 글쓰기, 매일의 질문이 반복되는 곳. 10년 전 이 작업실에 처음 들어왔을 때부터 지금까지 그리고 앞으로도 안규철의 노트에는 날마다 새로운 문장이 더해지고 있다. 언제 공개될지 모르는 드로잉과 작은 조각들도 차곡차곡 쌓여갈 것이다. 안규철과 그의 작업실은 언제나 ‘과정’ 속에 있다.

Credit

  • 에디터 윤정훈
  • 사진가 표기식
  • 아트 디자이너 김강아
  • 디지털 디자이너 김려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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