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사건건’ 전중섭의 예사롭지 않은 공간 디테일
사사건건의 가구들이 모인 풍경은 그 자체로 하나의 흥미로운 사건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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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상을 위한 악기로 만든 풍경, ‘사사건건’ 전중섭
‘사사건건’은 가구로 공간 디자인이라는 판을 새롭게 장악한 디자인 스튜디오다. 건축을 공부한 전중섭은 인테리어 스튜디오와 건축설계사무소를 거쳐 사사건건을 열었다. 사사건건의 가구는 고착화된 형태와 쓰임에서 벗어난다. 사용자가 필요로 하는 기능을 가장 솔직한 형태로 드러내면서 공간을 구획하고 길을 만들며, 때에 따라 나뉘고 합쳐진다. 그렇게 만들어진 가구들이 모인 풍경은 그 자체로 하나의 흥미로운 사건이다.
그랑메종 남산 쇼룸.
LCDC 팝업 스토어.
티에리스 티 라운지.
원래 사사건건은 사이드 프로젝트로 시작된 것으로 안다
건축 설계사무소에 다니면서 취미로 시작했다. 건축 현장에서 풀기 어려운 디자인적 욕구를 해소하고 싶었다. 본업에 지장을 주지 않기 위해 새벽이나 퇴근 후, 주말 시간을 쪼개 썼다. 이상하게 들릴지 모르겠지만, 힘들다고 느낀 적은 거의 없다. 회사에서 못하는 일을 하니 그 자체로 즐겁더라. 어떤 재미는 고통을 동반할 수밖에 없다고 생각한다(웃음). 지난해 독립해 본격적으로 작업을 이어가고 있다.
그간 진행한 프로젝트 개수를 세어보니 33개더라
해를 거듭할수록 갱신되고 있지만, 초창기 진행한 세 개의 프로젝트가 여전히 중요하다. 리추얼 플랫폼 ‘밑미’와 양말 브랜드 ‘아이헤이트먼데이’를 위한 공간 그리고 용산 식물 숍 ‘4T’다. 이 프로젝트를 통해 내가 무엇에 재밌어하고 어떤 방향으로 가야 하는지 확신을 가질 수 있었다. 가구를 만드는 일이 즐겁고, 그것이 실제 장소와 사용자에게 유의미한 영향을 준다는 걸 체감했다.
가구를 중심으로 공간을 설계하는 방향은 언제 어떻게 자리 잡았나
사사건건 활동을 막 시작할 땐 배경 공사까지 하기 어려운 예산의 프로젝트가 많았다. 그래서 자연스럽게 가구 중심으로 접근했는데, 프로젝트를 거듭할수록 가구를 잘 만드는 것으로도 충분히 좋은 공간 경험이 가능하다는 걸 체감했다. 무엇보다 서울처럼 공간이 빠르게 생기고 사라지는 환경에서는 오히려 이런 접근이 적절하다고 느꼈다.
복합문화공간 미네랄하우스를 위해 제작한 캐노피를 설치한 서프보드 형태의 바.
윤현상재 ‘Small Sculpture’를 위해 디자인한 전시 공간.
양말 브랜드 ‘아이헤이트먼데이’를 위해 제작한 테이블.
‘일상을 위한 기구를 만든다(Shape Instruments of Life)’는 슬로건이 인상적이다
악기에서 착안했다. 악기는 겉보기에 화려하지만 본질적으로 소리를 내기 위한 형태에서 출발한다. 음을 정확히 내기 위한 치수와 구조가 먼저 정해지고, 그 다음 장식이 더해진다. 가구도 마찬가지다. 사용에 필요한 기능을 충족하면서 구조 자체를 장식의 대상으로 삼을 수 있다. 피상적인 장식으로 공간을 채우기보다 쓰임새가 명확하면서도 아름다운 걸 만들고 싶다.
식음료 공간부터 브랜드 쇼룸, 팝업 공간 등을 디자인해 왔다. 클라이언트를 고려하는 방식은
사소한 생활습관에 대해 많이 묻는다. 의류 매장이라면 ‘옷걸이 말고 옷을 거는 다른 곳이 있는지’ 등을 묻는 방식이다. 개인 차원의 공간 운용 방식과 성향을 묻고 이를 공간에 반영하려는 의도 때문이다.
가구 하나하나 생김새가 예사롭지 않다. 독특한 디자인의 비결은
일부러 독특한 형태를 추구하진 않는다. 사물의 쓰임새를 솔직히 드러내기 때문인 듯하다. ‘왜 저렇게 생겼을까’ 하고 짐작할 수 있도록 디자인한다. 이동이 필요한 가구라면 움직임을 관장하는 부속품을 강조하고, 서 있거나 벽에 매달린 방식 등이 잘 드러나도록 고려한다. 어딘가 밋밋하게 느껴질 때는 필요한 기능을 새롭게 상상하기도 한다. 기능을 토대로 장식적 변주를 시도하면, 그때의 장식은 결코 무의미하지 않고 기능과 함께 살아 있는 존재가 된다. 내게 기능과 표현은 단순히 인과관계로 설명되는 것이 아니라 동시에 일어나는 일이다. 시도하고 싶은 형태가 있는데 마침 그걸 성립시키는 기능이 필요할 때, 그때의 쾌감은 엄청나다.
성수동 편집 숍을 위해 디자인한 테이블.
사사건건 대표 전중섭의 집. 오래된 맨션을 레너베이션했으며, 직접 제작한 가구에 페인팅을 더해 어디에도 없는 예술적 공간을 완성했다.
광진구 카페 포스트커피. 오직 가구로 이뤄진 레이아웃은 좁은 공간의 활용도를 높인다.
리추얼 플랫폼 ‘밑미’를 위해 제작한 선반.
익숙한 비례나 대칭에서 벗어난 형태가 많다
보편적 수준에서 완성된 디자인을 조금 견디기 어려워하는 것 같다. ‘저게 정말 잘 디자인된 것일까?’ 하는 의문이 든다. 건축처럼 큰 스케일이라면 비례와 대칭을 엄격히 추구하는 게 맞겠지만, 책꽂이나 싱크대 같은 기물까지 꼭 그래야 할까 싶다. 오히려 수학적 비례를 따르다 보면 필요한 기능이 억압되는 경우도 많다. 또 현장마다 효율적 형태가 다 다르다. 잘 계산된 비례가 주는 안정감도 있지만, 그걸 벗어나는 순간부터 진짜 디자인이 시작된다고 생각한다. ‘금욕적 디자인’보다 ‘분방한 디자인’을 하고 싶다. 비껴 나간 형태에서 느껴지는 경쾌함이 좋다.
경첩 같은 연결 부위를 무척 세밀하게 풀어내기도 한다. 이런 디테일을 탐구하는 이유는
목재 수납장의 문처럼 넓고 큰 면적이 공간에서 멍청하게 서 있는 모습이 싫다. 그런 요소가 공간의 전체적 인상을 다소 맨송맨송하게 만들 때 경첩 같은 부속의 정교함을 더하면 밀도가 높아진다. 투박하고 무심한 요소와 집착적으로 다듬은 공예적 요소가 적절히 공존할 때 공간은 균형감을 얻는다.
작업한 가구 중 지금까지 유효한 것은
아이헤이트먼데이 쇼룸을 위해 만든 원형 책상. 지름 2~3m의 원형 상판을 각기 다른 서랍장이 다리처럼 받치는 구조인데, 서로 다른 가구들이 모여 하나의 책상이 된다. 이 작업 이후로 필요에 따라 합치거나 분리해 쓰는 가구를 적극적으로 시도하기 시작했다.
‘티에리스 티 라운지’처럼 벽 대신 가변적 가구로 주방을 만든 경우도 인상적이다
주방 전체를 가구로 구현한 첫 프로젝트다. 20평 남짓한 공간이라 벽을 세우면 공간이 좁아 보이고 답답해지는 상황이었다. 식음료 공간에서 심장 같은 주방은 단순히 벽으로 가리는 건 본질을 잃는 일이라고 생각했다. 나는 ‘이해할 수 있는 구조’에서 좋은 감정이 시작된다고 생각한다. 처음엔 낯설어도 각 요소의 쓰임새가 명확히 인지되고, 그것들이 모여 큰 형태를 이룬 과정이 쉽게 읽힐 때 공간을 편안하게 느낀다고 본다.
그간 작업한 가구들에 ‘kk’라는 이름을 붙이고 일련번호를 매겨왔다. 어떤 의미가 있나 그동안 만든 가구의 개수다. 휘발되지 않고 계속 살아 있으면 좋겠다는 생각에 프로젝트와 관계없이 처음부터 번호를 매겨왔는데, 어느새 200개를 넘어섰다.
가까운 미래의 계획은 가구 전시와 책 출판을 앞두고 있다. 전시에서는 지난 5년의 지향점을, 책에서는 과거부터 이어져온 사사건건의 방식과 생각을 차분히 들려줄 예정이다.
Credit
- 에디터 윤정훈
- 사진 SSKK·SON MI HYUN·YOUNHYUN
- 아트 디자이너 김강아
- 디지털 디자이너 김려은
- COURTESY OF SASAKUNKU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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