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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금메달 스노보더' 최가온이 말하는 동계올림픽 비하인드

훌쩍 바람을 타고. 스노보더 최가온이 궤도를 그리던 순간.

프로필 by 박찬 2026.03.18

2026 밀라노•코르티나담페초 동계올림픽 직후 귀국한 지 한 달이 흘렀어요. 몸 상태는 어때요

순조롭게 회복 중이에요. 손 보호대를 하고 있지만 일상생활이나 가벼운 훈련은 가능해요. 4월에 다시 해외로 나가 시즌 준비를 이어가야죠.


이번 동계올림픽에서 한국 설상 종목 사상 첫 금메달을 안겼어요. 귀국 후 반응 때문에 놀라지는 않았나요

너무 놀랐죠(웃음). 친구들이랑 가던 작은 카페가 있어요. 귀국 후 오랜만에 갔는데, 직원들이 다들 알아보더라고요. 케이크를 무료로 주겠다고 해서 괜찮다고 했던 기억이 나요. 그 순간 많은 분들이 제 활동을 알고 있다는 걸 실감했어요.


평범한 일상으로 잠시 돌아왔는데요. 어떤 일상을 보내는지

특별한 곳을 간다기보다 평범하게 카페나 노래방에서 노는 편이에요. 그렇게 느슨한 시간이 있어야 다시 운동할 힘이 생기는 것 같아요.


친구들은 대부분 같은 운동선수들인가요

아니요, 평범하게 학교 생활하는 친구들이 많아요. 처음 국가대표가 됐을 때는 친구들이 '내 친구가 국가대표야?’ 하면서 신기해하더니 지금은 똑같이 대해줘요.


페이크 퍼 햇은 Yue Qiqi. 티셔츠와 카고 팬츠는 모두 스타일리스트 소장품.

페이크 퍼 햇은 Yue Qiqi. 티셔츠와 카고 팬츠는 모두 스타일리스트 소장품.


일곱 살 때 처음 스노보드를 시작했어요. 처음 보드를 탔던 순간을 떠올리면 어떤 장면이 가장 먼저 떠오르나요

하프파이프(U자 형 슬로프에서 점프와 회전 등을 구사하는 스노보드의 한 종목)에 처음 도전했던 순간이 떠올라요. 그때는 이게 얼마나 위험한 스포츠인지도 몰랐고, 그냥 재밌다는 감정이 전부였어요. 속도가 붙고, 몸이 공중으로 올라가는 순간의 감각이 강렬했어요. 지금도 그때 느낌을 정확하게 설명하기는 어렵지만, 몸이 먼저 반응했던 기억이 나요. 돌이켜보면 그때 이미 이 스포츠를 계속하게 될 운명이었던 것 같기도 해요.


2년 전 스위스 락스 월드컵 직전 훈련 때 척추 골절상을 입은 적도 있었고, 올림픽 직전에도 부상을 안고 경기에 나섰죠. 그렇게 몸이 부서지는 경험을 하면 두려움이 생길 텐데요. 부상에 대한 두려움이 크지는 않았는지

솔직히 어릴 때는 두려움이라는 걸 깊게 생각해 본 적 없었던 것 같아요. 그냥 겁이 없었달까요. 다치고 나서도 다쳤다는 사실보다 ‘언제 다시 탈 수 있을까’를 먼저 생각했고요. 그런데 허리를 크게 다쳤을 때는 처음으로 생각을 멈췄어요. 내가 이 길을 계속 가야 하는지, 다른 길을 생각해야 하는 건 아닌지. 그때는 통증보다 마음이 더 힘들었어요. 그래도 결국 다시 보드를 잡게 되더라고요.


지치는 순간에도 다시 돌아오는 곳이 왜 보드 앞일까요? 그 선택의 이유에 대해 생각해 본 적 있나요

선택이라는 단편적 개념은 아니었던 것 같아요. 당연히 이어가야 하는 법칙처럼, 어릴 때부터 이걸 하면서 살아왔고 자연스럽게 ‘올림픽’이라는 목표가 생겼어요. 그 목표에 도달하기 전까지는 중간에 주저앉을 수 없다는 생각을 했던 것 같아요. 힘든 순간이 없었던 것도 아니지만, 그런 순간에 '왜 계속 이 길을 가야 하지?'라고 되뇌었어요.


트레인이 포인트인 티셔츠와 팬츠, 가죽 장갑은 모두 Balenciaga. 스니커즈는 Nike. 고글은 모델 소장품.

트레인이 포인트인 티셔츠와 팬츠, 가죽 장갑은 모두 Balenciaga. 스니커즈는 Nike. 고글은 모델 소장품.


질문에 대한 답변을 스스로 찾아 나갔군요

네. 스스로 답을 찾을 수 있었던 건 이게 제 꿈이기 때문인 것 같아요. 우연처럼 시작했지만 지금의 저를 만든 건 결국 이 스포츠였다는 생각이 들어요. 그래서 더 감사하죠. 힘들 때도 있지만, 다시 돌아오게 되는 이유는 결국 여기서 가장 많은 시간을 보내왔고, 가장 많이 배우고 성장했기 때문이에요.


부모님도 스노보드를 좋아하신다고요. 지금의 최가온 선수를 만든 배경에는 가족들이 가장 큰 부분을 차지했을 것 같아요

그럼요. 특히 아빠요. 하프파이프라는 종목은 한 번 타려면 리프트를 타거나, 사람이 많으면 걸어 올라가야 하거든요. 다른 선수들의 부모나 코치들은 보통 위에서 지켜보거나 영상을 찍어주는 경우가 많은데, 아빠는 늘 저랑 같이 걸어 내려와서 보드를 들어주고 뒤에서 밀어줬어요. 그때는 그게 당연한 줄 알았는데 어느 순간부터 그게 당연한 게 아니라는 걸 알게 됐어요. 아빠가 저에게 보여준 헌신을 생각하면, 결국 제가 해야 할 일은 끝까지 해내는 것뿐이라고 생각했죠.


체크 패턴의 레더 코트는 Burberry.

체크 패턴의 레더 코트는 Burberry.


어린 나이에 해외에서 훈련해야 했는데, 그 시간은 어떻게 기억에 남았나요

일본에서 훈련하던 시간이 길었어요. 처음에는 가족이 거의 같이 생활했어요. 그러다 상황이 바뀌면서 오빠는 공부 때문에 한국에 남고, 저는 부모님과 지냈죠. 낯선 환경에서 훈련을 계속한다는 게 쉽지 않았지만, 그 시기를 버텨낸 경험이 지금의 저를 만든 것 같아요. 훈련이 없는 날에는 아빠, 오빠와 함께 카트로 경주하기도 했어요. 그 시간이 가장 즐거웠던 기억이 나요(웃음).


그러고 보니 SNS에서 카트 운전하는 걸 봤어요. 운전을 좋아하니 운전면허증 시험이 기다려지겠네요

맞아요. 성인이 되면 가장 먼저 운전면허를 딸 거예요. 언젠가 레이싱 서킷 같은 곳에서 오빠와 경기해 보고 싶어요.


레드 터틀넥 톱과 프릴 디테일의 톱은 모두 Bmuet(te). 발레리나 스커트는 Repetto. 데님 스키 팬츠와 문 부츠는 Moncler.

레드 터틀넥 톱과 프릴 디테일의 톱은 모두 Bmuet(te). 발레리나 스커트는 Repetto. 데님 스키 팬츠와 문 부츠는 Moncler.


최가온이라는 사람을 접했을 때 대중이 느끼는 첫 단어는 ‘정신력’ 혹은 ‘투혼’ 같아요. 특히 올림픽 결선에서 두 번 넘어지고 마지막 런에 들어갔던 장면이 많은 사람들에게 강하게 남았죠. 그 순간 슬로프에서 어떤 생각을 했나요

지금도 결선 치르는 날이 계속 기억나요. 단 하루, 몇 시간 안에 모든 게 결정되는 상황이었죠. 솔직히 몸 상태는 많이 좋지 않았어요. 무릎에 힘이 들어가지 않았고, 정신적으로도 많이 흔들렸어요. ‘왜 하필 지금일까?’ 싶었어요. 만약 포기하면 이 하루가 평생 후회로 남을 것 같았어요. 더 크게 다칠 수 있다는 것도 알았지만 ‘여기서 멈추고 싶지 않다’는 마음이 더 컸어요. 마지막 런에 들어갈 때는 늘 해왔던 기도조차 하지 않았어요.


그 이유는 뭐였을까요

음, 스스로를 믿고 내려가고 싶었어요. 정확하게는, 꼭 그래야 한다고 생각했고요. 이 결선에서 크게 다칠 수 있다는 건 알았지만 ‘죽더라도 이걸 끝까지 해내야 한다’는 마음이 들었어요. 물론 코치님은 끝까지 말리셨죠. 직접 걷고 뛸 수 있어야 출전을 허락하겠다고 했어요. 그래서 계속 앉았다가 일어나고, 걸어보고, 다시 멈추기를 반복하면서 몸 상태를 확인했던 기억이 나요. 아빠는 제 성격을 아니까 어차피 뛸 거라는 걸 알았던 것 같아요.


실버 이어링은 모델 소장품.

실버 이어링은 모델 소장품.


그 모습을 지켜본 지인들의 반응도 궁금해요

친구들은 경기 내내 영상통화를 켜 놓고 같이 보고 있었다고 하더라고요. 새벽이었는데 다들 모여서 경기를 봤다는 얘기에 놀랐어요. 결선에서 제가 넘어졌을 때 친구가 우는 모습을 나중에 봤는데, 인상 깊게 남아 있어요. 금메달이 확정되고 시상식 전에 잠깐 통화했는데 그 친구가 계속 울더라고요. 저는 좋은 날인데 왜 우냐고 했어요. 그간 제가 견디고 부딪힌 시간들이 저 혼자만의 시간은 아니구나, 많은 이들이 지켜보고 있었구나, 그런 생각이 들었어요. 포기하지 않아서 다행이라는 마음이 들었죠.


설원을 내려올 때 선수만이 아는 특별한 감각도 있나요

올림픽 무대에 선다는 것 자체가 이미 일반적 경험과는 많이 달라요. 특히 하프파이프는 규모가 크고, 내려올 때 시야 아래로 관중이 한눈에 들어와요. 밤 경기라 조명 아래서 눈이 흩날리는 모습이 선명하게 기억에 남아 있어요. 그날 느꼈던 빛과 바람, 공기의 감각은 평생 잊지 못할 거예요.


폴로 스웨터와 드레이핑 디테일의 스웨터는 모두 Loewe. 셔링 패널 팬츠는 Phenomenon Seeper. 스노보드와 부츠는 모두 모델 소장품.

폴로 스웨터와 드레이핑 디테일의 스웨터는 모두 Loewe. 셔링 패널 팬츠는 Phenomenon Seeper. 스노보드와 부츠는 모두 모델 소장품.


스노보드 하프파이프라는 종목에 승부를 걸어야겠다고 마음먹은 결정적인 순간이 있었나요

첫 국제대회인 엑스게임(X Games)이 결정적이었어요. 슈퍼파이프에서 우승하면서 처음으로 ‘내가 해외에서도 가능성이 있구나’라는 생각이 들었어요. 그전까지는 그냥 좋아서 스노보드를 타는 느낌이었는데 그 순간부터 이걸 제대로, 프로로서 도전해 보자는 마음이 생겼어요.


가온 양의 이름은 '중심'이라는 뜻의 순우리말입니다. 이름처럼 중심을 지켜야 한다고 느끼는 순간이 있었나요

부모님께 항상 겸손해야 한다는 말을 자주 들으며 자랐어요. 아빠도 늘 그 얘기를 하셨고요. 올림픽에서 금메달을 받고 왔다고 제가 달라진 건 아니에요. 다음 시즌을 준비해야 하는 선수일 뿐이죠. 그런 마음을 유지하려고 노력하는 게 결국 제 중심인 것 같아요. 많은 분들이 기대하는 만큼 또 한 번 준비해서 묵묵히 나아갈 계획입니다.


(위)트레인이 포인트인 티셔츠와 팬츠, 가죽 장갑은 모두 Balenciaga. 고글과 헬멧은 모델 소장품. (아래) 레드 터틀넥 톱과 프릴 디테일의 톱은 모두 Bmuet(te). 발레리나 스커트는 Repetto. 데님 스키 팬츠와 문 부츠는 Moncler.

(위)트레인이 포인트인 티셔츠와 팬츠, 가죽 장갑은 모두 Balenciaga. 고글과 헬멧은 모델 소장품. (아래) 레드 터틀넥 톱과 프릴 디테일의 톱은 모두 Bmuet(te). 발레리나 스커트는 Repetto. 데님 스키 팬츠와 문 부츠는 Moncler.


마지막 질문이에요. 올림픽 결선 직전의 자신과 만난다면 무슨 말을 해 주고 싶나요

그때와 같은 말을 할 것 같아요. 포기하지 말라고, 그대로 밀고 나가도 된다고요. 결과는 알 수 없지만, 설원을 딛고 나면 다음 장면은 반드시 이어진다고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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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redit

  • 에디터 박찬
  • 사진가 최은미
  • 헤어 스타일리스트 박은정
  • 메이크업 아티스트 김윤영
  • 아트 디자이너 민홍주
  • 디지털 디자이너 오주영