싱글력 만렙 남성의 독락 베이스캠프
평생 이사 안 갈 작정으로 채운 취향의 요새. 소음은 문 밖에, 안온함은 곁에 둔 인생의 오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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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이어(FIRE)족이라는 선택지를 제 삶의 시간표에 뒤늦게 조용히 끼워 넣고, 숨 가쁘게 돌아가던 조직의 궤도에서 한 걸음 물러나 이제는 '내 마음대로 사는 삶'을 실천하고 있습니다. 넥타이를 매고 치열하게 달리던 인생의 오전 일과를 무사히 마친 뒤, 꽤 여유롭고 담백한 '인생의 오후'를 맞이하며 싱글력(力)을 조용히 다져가고 있는 평범한 아저씨죠.
나이라는 숫자를 겹겹이 통과하며 제가 깨달은 명확한 사실 하나는, 타인과의 시끌벅적한 감정 소모보다 말없이 공간의 중심을 잡아주는 가구와 그 사이를 깊게 채우는 음악, 그리고 제 취향이 온전히 스며든 소중한 사물들과 교감하는 시간이 제게는 훨씬 이롭다는 것입니다. 인간관계의 폭을 억지로 넓히는 대신, 저는 제가 머무는 공간과 사물의 질서를 조율하는 데 깊이 몰두합니다. 제가 아끼는 물건들이 각자의 제자리를 찾아 단정한 선과 비례를 이룰 때 비로소 깊은 안도감을 느끼거든요. 모든 구성 요소가 구조적인 합을 이룬 이 고요한 집이야말로, 세상의 소음으로부터 저를 안전하게 품어주는 견고한 방패라고 믿습니다.
아침이면 정성껏 내린 핸드 드립 커피 향에 머물고, 좋아하는 음악과 책 속으로 가만히 침잠하는 정갈한 루틴이 제 하루의 중심입니다. 거창한 사회적 타이틀보다 제 곁을 채운 사물의 디테일에서 소소한 행복을 찾고, 바람 따라 떠다니듯 가장 나다운 속도로 유영하는 것. 타인의 시선에서 훌쩍 벗어난 이 조용하고 약간은 이기적인 일상이야말로, 저라는 사람의 본질을 단단하게 채워가는 가장 즐거운 과정이라 생각합니다.
공간을 소개해 주세요
이곳은 서울에 위치한 19년 차 주상복합 아파트입니다. 엘리베이터를 타고 지하로 곧장 내려가면 백화점부터 이마트, 극장까지 모든 인프라가 매끄럽게 연결되어 있어, 저처럼 혼자 사는 사람에게는 더없이 제격인 완벽한 베이스캠프죠. 이 편리한 입지 조건만큼이나 내부 공간 역시 철저하게 저에게 맞춰져 있습니다. 기성복처럼 획일화된 아파트의 구조를 가만히 내려놓고, 오직 저의 '싱글 라이프' 동선과 생활 방식에 맞춰 대대적인 '구조적 해체와 재구성'을 거쳤습니다.
저는 단순히 예쁜 물건을 사 모으는 것을 넘어, 사물이 품고 있는 시간과 경험을 아끼는 수집가에 가깝습니다. 그렇기에 집을 고치며 가장 치열하게 고민했던 것은 "이 공간에 어떤 것들이, 어떻게 놓여야 내가 가장 깊은 편안함을 느낄 수 있을까" 하는 점이었습니다. 그저 아름다운 가구를 들여놓는 데 그치지 않고, 사물이 놓이는 환경과 공간을 바라보는 시선이 제 내면과 자연스럽게 맞닿기를 바랐죠. '모든 물건에는 마땅한 제자리가 있다'는 철학처럼, 각자의 자리를 지키는 사물들이 단정한 선 속에서 구조적으로 다정하게 어우러질 때 비로소 진정한 '집'이 완성된다고 생각했거든요.
그 결과, 이 집은 싱글 라이프의 여유를 오롯이 누릴 수 있는 쾌적한 캔버스가 되었습니다. 답답한 벽을 허물고, 두 개의 방을 터서 다이닝과 서재가 유연하게 이어지는 스튜디오형 평면을 완성했습니다. 특히 천장을 노출해 얻어낸 2.7m의 시원한 천장고는, 현관을 열고 들어설 때마다 마치 공간의 볼륨감이 다른 차원으로 전환되는 듯한 기분 좋은 개방감을 선사합니다.
제 취향과 라이프스타일은 이토록 매끄러운 공간의 흐름 곳곳에 스며 있습니다. 시선을 멈추게 하는 문선과 걸레받이를 덜어낸 '마이너스 몰딩'으로 갤러리처럼 단정한 바탕을 만들었고, 모든 방문에는 문턱 없는 슬라이딩 도어를 달아 발끝에 채이는 제약을 없앴습니다. 슬리퍼 없이 맨발로 가볍게 드나들 수 있도록 정돈한 건식 화장실 역시, 일상 속 번거로움을 기분 좋게 덜어주며 혼자 사는 삶의 소박한 쾌적함을 한층 끌어올려 주는 요소입니다.
"평생 이사 안 갈 작정으로 고친집"이라는 글을 읽었습니다. 현재 공간이 그 선택이 된 이유는?
사실 이 공간은 제가 예전부터 소유하고 있던 집입니다. 오랜 시간 여러 세입자들이 거쳐 가며 곳곳이 꽤 노후화되어 있었죠. 비워진 낡은 집을 찬찬히 둘러보던 어느 날 문득, ‘이제는 타인의 보편적인 기준이 아니라, 오롯이 내가 원하는 방식대로 이 공간을 다시 빚어보자’는 결심이 섰습니다.
그렇게 본격적인 철거를 진행하며 본연의 뼈대를 마주했을 때, 저는 이 집이 제가 원하던 공간을 실현할 수 있는 최적의 바탕이라는 것을 알게 되었습니다. 가장 결정적인 이유는 이 주상복합 건물이 내력벽의 제약에서 자유로운 '라멘구조'로 지어졌기 때문입니다. 덕분에 방과 거실을 가로막던 벽을 허물고, 하나의 거대한 스튜디오형 공간으로 통합하는 과감한 구조 변경이 가능했습니다.
이런 물리적인 자유로움 위에, 누군가 만들어 놓은 기성품 같은 틀 대신 오직 저의 쓸모에 맞춰 꼭 필요한 요소들만 정교하게 채워 넣었습니다. 바닥의 질감, 벽이 만들어내는 단정한 선, 조명의 온도, 그리고 가구의 배열까지 모든 구성 요소가 자연스럽게 어우러지도록 세심하게 조율했죠.
내 취향과 경험이 일상으로 고스란히 이어지고, 애쓰지 않아도 가장 나다운 모습으로 편안하게 머물 수 있는 집. 제가 지향하는 삶의 태도를 온전히 담아낼 수 있는 이 공간을 완성하고 나니, 더 이상 다른 곳을 기웃거릴 이유가 없어졌습니다.
"이사 안 갈 작정"이라는 말이 앞으로 삶의 변화를 공간 안에서 모두 수용하겠다는 다짐 같기도 합니다. 10년, 20년 뒤 라이프 스타일이 변해도 현재의 공간이 유효할 것 같은지?
앞으로 10년, 20년이 지나도 조용히 나만의 시간을 보내는 지금의 라이프스타일은 크게 변하지 않을 것 같습니다. 오히려 이 공간 안에서 그 삶의 방식이 더 단단해지길 바라죠. 요동치는 변화보다는 안정을 선호하고, 밖에서의 소란스러운 만남보다는 제 공간에서 아끼는 사물들과 조용히 시간을 보내는 것을 더 즐기는 편이니까요.
최근 『이향인』이라는 책을 읽으며, 세상의 기준에 휘둘리지 않고 관찰자로서 자기만의 세계를 지켜가는 태도에 깊이 공감했습니다. 제가 추구하는 '자발적 고립'과도 맞닿아 있죠. 타인의 시선에서 벗어나 오롯이 나만의 질서 속에 머무는 시간은 제게 큰 안식을 줍니다. 제가 나이 들어가는 속도에 맞춰 이 공간도 자연스럽게 나이 들어갈 테니, 앞으로의 삶을 담아내기에도 충분한 집입니다.
그런데 평생 이사 가지 않겠다며 집을 다 고쳐놓고 나니, 최근 조심스레 새로운 로망이 하나 생겼습니다. 지금의 싱글 라이프를 조금 더 온전하게 누려보고 싶다는 생각인데요. 지금 사는 주상복합의 편리함도 훌륭하지만, 언젠가 고즈넉한 동네에 오직 저의 라이프스타일만을 반영한 단독주택을 지어보고 싶어졌습니다. 짐을 더 늘리겠다는 게 아니라, 온전히 독립된 공간에서 제가 아끼는 가구와 음악, 그리고 자연이 함께 어우러지는 '싱글 라이프의 완성형'을 경험해보고 싶다는 마음입니다.
물론 지금 머무는 이 공간이 주는 평온함은 여전히 무척 만족스럽습니다. 단독주택을 짓겠다는 꿈이 현실이 될지, 기분 좋은 상상으로 남을지는 아직 모릅니다. 하지만 어느 쪽이든 괜찮습니다. 저는 오늘도 이 정갈한 공간에서 저만의 속도로 충분히 편안한 일상을 보내고 있으니까요. 설령 이 집이 제 마지막 안식처가 된다고 해도, 그것 나름대로 꽤 근사한 결말일 것 같습니다.
아직 미완으로 남아있는 공간이나 디테일이 있는지?
딱 한 곳, 아직 비워둔 자리가 있습니다. 바로 거실 한쪽에 앰프와 스피커를 놓으려고 남겨둔 여백이에요.
제가 워낙 음악 듣는 걸 좋아하다 보니, 이 공간에 어울릴 소리를 찾는 일만큼은 섣불리 서두르고 싶지 않더라고요. 그래서 다른 인테리어는 다 끝내놓고도 오디오만큼은 천천히 고르기로 마음먹었고, 요즘도 틈이 날 때마다 여러 기기들을 찬찬히 청음하러 다니며 신중하게 고민하고 있습니다.
사실 저한테는 무언가를 단숨에 사서 빈자리를 채워 넣는 것보다, 마음에 쏙 드는 물건을 천천히 알아가고 탐구하는 이 과정 자체가 제일 재미있거든요. 사물마다 가진 고유한 매력이나 소리의 결을 비교해 보면서 '과연 내 공간에 왔을 때 어떤 어울림을 만들어낼까' 상상해 보는 거죠.
언젠가 제 마음에 꼭 드는 스피커와 앰프가 그 빈자리를 채워주겠지만, 지금 당장은 기분 좋은 설렘으로 남겨둔 이 '미완성의 시간'을 조금 더 여유롭게 즐겨볼 생각입니다.
거실, 침실, 주방, 화장실 등 각 공간적 특징을 간단히 공유해 주세요.
거실: 구축 아파트의 최대 단점인 층고를 노출하여 2.7m로 높혔습니다. 천장이 높아지니 83인치 TV가 작아 보일 만큼 공간의 개방감이 커졌습니다. 평소 아끼는 가구들이 돋보일 수 있도록 바탕을 정돈했는데, 카시나 마라룽가 소파를 중심으로 장 프루베의 게리동 바스테이블, 프리츠 한센의 스완 체어를 여백을 두어 배치했습니다. 탁 트인 공간에서 조용히 음악을 듣고 식집사로서 식물들을 살피며 차분한 일상을 보내는 공간입니다.
주방: 요리를 자주 하지는 않지만, 시각적으로 간결하게 정돈된 형태를 원했습니다. 이를 위해 스테인리스 상판에 후드 일체형 인덕션을 매립하여 군더더기를 없앴습니다. 싱크볼까지 이음매 없이 이어지는 스테인리스 특유의 차갑고 견고한 물성을 선호합니다. 매일 아침 이 정갈한 공간에서 드립 커피를 내리며 하루를 시작합니다.
다이닝 & 서재: 방을 나누던 벽을 허물고 거실과 다이닝, 서재가 자연스럽게 이어지는 스튜디오 형태의 구조로 바꿨습니다. 덕분에 장 프루베의 EM테이블과 스탠다드 체어나 아르텍 스툴 같은 가구들을 공간의 제약 없이 유연하게 사용할 수 있습니다. 한쪽 벽면은 비초에(Vitsœ) 606 시스템 선반으로 채웠는데, 저만의 취향과 관심사를 차분하게 모아두는 지극히 개인적인 공간입니다.
침실: 오롯이 수면과 휴식에만 집중할 수 있는 공간으로 만들었습니다. 문선이 없는 슬라이딩 도어를 열고 단(Step-up)을 한 칸 올라가는 구조를 적용해, 일상 공간과 휴식 공간을 물리적, 심리적으로 분리했습니다. 주말 아침, 단이 높아진 침대에 누워 창밖 하늘을 바라보며 쉬는 시간을 좋아합니다.
화장실: 슬리퍼를 갈아 신는 번거로움을 없애기 위해 거실과 단차를 맞춘 건식 화장실로 시공했습니다. 바닥이 이어져 있어 로봇 청소기가 자유롭게 드나들 수 있어 관리도 편리합니다. 대신 샤워 공간을 넉넉하게 확보하고 매립형 레인 샤워기를 설치했습니다. 맨발로 오가는 쾌적함과 넓은 샤워 부스가 주는 개방감이 일상의 편리함을 높여줍니다.
공간에 물건을 들일 때에도 신중할 것 같다. 가구나 오브제를 고르는 기준 혹은 신념이 있다면?
저는 공간에 새로운 사물을 하나 들일 때 굉장히 오랜 시간을 두고 신중하게 고민하는 편입니다. 대학 시절 건축을 전공하며 품었던 건축가들에 대한 오랜 관심은 여전히 제 취향의 가장 깊은 뿌리가 되어주고 있습니다.
그래서인지 특히 건축가들이 디자인한 가구들에 마음이 많이 끌립니다. 그들에게 가구란 공간을 장식하는 소품을 넘어, 완벽한 비례와 구조를 지닌 하나의 '작은 건축물'과 같으니까요. 제가 가구를 고르는 가장 중요한 기준인 '타임리스(Timeless)' 역시 이런 건축적인 견고함과 맞닿아 있습니다. 르 코르뷔지에나 장 프루베 같은 거장들의 설계처럼 유행에 흔들리지 않는 본질적인 아름다움을 지닌 것들이 결국 오랜 세월 제 곁에 남더라고요.
사물이 품고 있는 '이야기'와 '디자이너의 철학'을 탐구하는 과정도 빼놓을 수 없습니다. 어떤 시대적 배경 속에서 이 선과 물성이 탄생했는지 치열하게 공부하고 그 세계관에 공감할 때, 비로소 그 물건은 제 공간에 들어올 자격을 얻습니다.
특히 저는 이미 누군가의 손때가 묻은 빈티지 제품보다는, 일년이 걸리더라도 새 제품을 들여 저와 함께 나이 들어가는 과정을 선호합니다. 아무런 흔적 없는 매끄러운 사물 위에 오직 저만의 사용감과 생활의 기억을 새겨 넣는 것, 그렇게 '반려 가구'로서 저만의 서사를 만들어가는 것이 진정한 소장 가치라고 믿기 때문입니다.
이러한 고집 때문에 집 안을 채우는 속도는 한없이 더딜 수밖에 없습니다. 하지만 이렇게 신중하게 고른 가구들은 저마다의 깊은 이야기를 품은 채 공간 곳곳에서 완벽한 제자리를 지키게 됩니다. 결코 쉽게 대체될 수 없는, 저만의 단단한 일상을 완성해 주는 소중한 동료들이죠.
가구를 고를 때 공간의 구조적 맥락을 먼저 고려하는지 아니면, 가구 자체의 조형미 혹은 디자인에 더 끌리는지?
저는 그 둘을 결코 떼어놓고 생각하지 않습니다. 가구 자체의 아름다움도 중요하지만, 그것이 놓일 '공간의 맥락'이 뒷받침되지 않으면 가구가 가진 진짜 매력을 보여주기 어렵다고 생각하거든요. 평소에도 '모든 물건에는 마땅히 어울리는 제자리와 배경이 있다'고 믿는 편입니다.
얼마 전 백화점 까시나(Cassina) 매장에 구경을 갔다가, 상담 중 직원분께서 다른 고객들의 자택에 가구를 배치한 참고 사진들을 보여주셨는데, 속으로 내심 안타까운 마음이 들었습니다. 일반적인 아파트 특유의 두꺼운 몰딩이나 화려한 마감재, 정돈되지 않은 톤 앤 매너 속에 덩그러니 놓인 르 코르뷔지에의 마스터피스는 본연의 매력을 제대로 뿜어내지 못하고 어딘가 길을 잃은 듯 보였거든요.
그 모습을 보며 가구를 들이는 일은 단순히 유명하고 아름다운 물건을 소유하는 게 아니라, '공간과 사물이 자연스럽게 어우러지도록 알맞은 배경을 찾아주는 일'이라는 생각이 더욱 단단해졌습니다.
제가 이번에 집을 고치면서 걸레받이나 문선 같은 시각적인 방해 요소를 모두 덜어내고, 집 전체를 정갈한 도화지처럼 담백하게 비워낸 것도 바로 이 때문입니다. 가구가 공간을 억지로 압도하거나 공간이 가구를 삼키지 않고, 사물이 지닌 고유한 선과 질감이 공간이라는 차분한 배경 안에서 자연스럽게 제 목소리를 낼 때 비로소 제가 원하던 그림이 완성된다고 봅니다.
공간을 채운 사물 중 각별한 애정을 지닌 가구나 오브제가 있다면?
집 안을 채우고 있는 사물들은 저마다 오랜 시간 신중하게 고민하고 곁에 둔 것들이라 어느 하나 각별하지 않은 것이 없습니다. 그중에서도 굳이 꼽자면, 가장 먼저 까시나(Cassina)의 LC3 1인용 소파를 들고 싶습니다. 대학 시절부터 깊이 동경해 온 건축가 르 코르뷔지에와 피에르 잔느레, 샬롯 페리앙이 1928년에 함께 디자인한 마스터피스입니다. 과거 르 코르뷔지에에게만 집중되었던 조명을 세 명의 디자이너가 정당하게 나눌 수 있도록, 까시나에서 '3 Fauteuil Grand Confort, grand modèle'이라는 공식 명칭으로 변경한 점도 무척 의미 있다고 생각합니다. 푹신한 쿠션을 강철 프레임으로 밖에서 감싸 안은 이 건축적인 구조는, 백 년에 가까운 세월이 흘렀음에도 여전히 압도적인 조형미를 선사합니다.
조명 중에서는 카스티글리오니 형제가 디자인한 플로스(Flos)의 타치아(Taccia)를 아낍니다. "천장에 매달린 조명을 바닥에 거꾸로 세워보면 어떨까?"라는 기발한 발상에서 출발한 작품이죠. 거대한 유리 볼을 지탱하는 묵직한 베이스는 사실 전구의 열을 식히기 위한 방열판인데, 이 철저히 기능적인 요소가 고대 로마 건축의 기둥을 연상시키는 우아한 비례로 완성되었다는 점이 무척 흥미롭고 아름답습니다.
공간에 다정한 온기를 더해주는 비트라(Vitra)의 우든 돌(Wooden Dolls)도 빼놓을 수 없습니다. 1952년 알렉산더 지라드가 자신의 집을 위해 직접 깎아 만든 이 인형들은 본래 판매용이 아닌 지극히 개인적인 취향의 산물이었습니다. 동유럽의 민속 예술과 기하학적 형태가 어우러진 이 오브제들은 자칫 차갑고 정형화될 수 있는 공간에 부드러운 위트와 생동감을 불어넣어 줍니다. 현재 13개의 인형을 수집했는데, 조급해하지 않고 천천히 하나씩 모아 언젠가 전체 시리즈를 완성해 볼 생각입니다.
여기에 이탈리아 건축가 에토레 소트사스의 깔리마꼬(Callimaco) 플로어 조명, 등받이 조절이 가능해 실용성과 미감을 모두 갖춘 비코 마지스트레티의 마라룽가(Maralunga) 소파 역시 제 공간의 분위기를 단단하게 잡아주는 소중한 가구들입니다. 하중을 지탱하는 뒷다리의 구조적 원리를 시각적으로 아름답게 풀어낸 장 프루베(Jean Prouvé)의 EM 테이블과 스탠다드 체어 역시, 저마다 거장들의 치열한 고민을 품고 공간의 밀도를 채워줍니다.
사실 이 집에 놓인 모든 가구에는 저마다의 깊은 서사가 담겨 있습니다. 디터 람스의 비초에(Vitsœ) 선반 시스템도 그렇고, 공간에 어울릴 완벽한 스위블 체어를 찾기 위해 근 1년을 고심한 끝에 아르네 야콥센의 스완 체어를 들이게 된 일도 제겐 뜻깊은 과정이었습니다. 이렇듯 저마다의 철학과 이야기를 품은 사물들과 매일 눈을 맞추고 교감하며 살아가는 것은, 이 공간이 제게 선사하는 가장 크고 고요한 기쁨입니다.
최근 구매한 인테리어, 리빙 아이템은? 나아가 구매하고 싶은 아이템이 있다면?
가장 최근에 제 곁으로 온 아이템은 아르텍과 폴 스미스(Paul Smith)가 협업한 '스툴 60' 리미티드 에디션입니다. 건축가 알바 알토(Alvar Aalto)의 견고한 디자인 위에 폴 스미스의 감각적인 컬러가 입혀진 제품이죠. 시트 하부는 강렬한 레드 컬러로 마감되어 있고, 세 개의 다리는 각각 스카이 블루, 러스트, 브리티쉬 레이싱 그린 컬러로 구성되어 있어 각도에 따라 전혀 다른 표정을 보여주는 것이 특징입니다.
이와 함께 무민(Moomin) 리미티드 컬렉션 스툴도 함께 들였습니다. 2025년, 아르텍의 90주년과 핀란드의 작가 토베 얀손(Tove Jansson)의 첫 번째 무민 소설 출시 80주년을 동시에 기념하기 위해 탄생한 아주 특별한 에디션입니다. 미니멀한 공간에 무민의 다정한 정서를 한 방울 떨어뜨려 주는 듯해 볼 때마다 기분이 좋아집니다.
이번 구매를 통해 제 공간에는 총 6개의 알바 알토 스툴 60이 모이게 되었습니다. 스툴 60의 진정한 묘미는 바로 '스태킹(Stacking)'에 있다는 것입니다. 스툴을 하나씩 위로 쌓아 올릴 때마다 폴 스미스의 다채로운 컬러들과 무민의 서사가 겹겹이 층을 이루는데, 그 모습이 마치 하나의 조형물 처럼 보이거든요.
필요할 때는 의자로, 때로는 사이드 테이블로 활용하다가 사용하지 않을 때는 차곡차곡 쌓아 올리는 그 과정 자체가 제게는 더할 나위 없는 즐거움입니다. 단순히 가구를 모으는 것이 아니라, 제가 좋아하는 건축가의 철학이 담긴 오브제들이 제 손길을 거쳐 매일 새로운 풍경을 만들어가는 재미에 푹 빠져 있습니다.
최근에는 이탈리아 건축가 에토레 소트사스의 '깔리마꼬(Callimaco)' 플로어 조명을 새 식구로 맞이했습니다. 최근 생산된 모델부터는 조도를 조절하는 디밍 스위치가 빠졌다는 사실을 모른 채 덜컥 구입하는 바람에 혼자 아차 싶어 당황하기도 했지만, 지금은 볼수록 자꾸만 시선이 가는 매력적인 반려 조명이 되었습니다.
제 공간을 채우고 있는 가구들이 대부분 '형태는 기능을 따른다'는 모더니즘의 정석에 가깝다면, 깔리마꼬는 그 엄숙한 규칙을 유쾌하게 비틀어버리는 작품입니다. 기능주의의 틀을 깨고 오직 시각적인 감각과 색채에 집중하며 포스트모더니즘의 길을 열었던 디자이너의 의도가 고스란히 담겨 있죠.
정갈하고 이성적인 모더니즘 가구들 한가운데서 마치 톡톡 튀는 '반골'처럼 자리 잡고 있는데, 그 낯선 에너지가 오히려 집 안의 분위기를 매력적으로 환기해 주어 무척 마음에 듭니다.
앞으로 구매하고 싶은 아이템이 있다면?
이제는 '과유불급'을 되새기며 채움을 잠시 멈추는 시간을 갖고 있습니다. 집을 고치고 제 취향의 사물들로 밀도 있게 채워온 지난 3년의 여정을 돌아보니, 이제는 정말이지 더 이상 무언가를 채울 필요성을 느끼지 못하거든요.
특히 가장 좋아하거나 애착이 가는 '스팟'이 있는지?
Spot 1. 마라룽가 소파
집 안에서 제가 가장 애착을 느끼는 '최애 스팟'은 두말할 것 없이 까시나 마라룽가(Maralunga) 소파 위입니다. 이곳은 제 싱글 라이프의 모든 즐거움이 집약된, 그야말로 휴식에 최적화된 저만의 아지트죠.
마라룽가의 백미는 시간이 흐를수록 제 체형에 맞춰 길들어가는 가죽의 질감이에요. 앉는 습관에 따라 가죽이 자연스럽게 변해가는 걸 보면, 마치 나만을 위해 맞춤 제작된 옷을 입는 것 같은 기분 좋은 일체감을 줍니다.
사용법도 아주 위트 있습니다. 집중해서 영화를 볼 때는 등받이를 '툭' 올려서 목을 든든하게 받쳐주고, 쉴 때는 다시 접어서 공간을 탁 트여 보이게 만듭니다. 이 소파 위에서 넷플릭스를 정주행하며 오롯이 나에게만 집중하는 시간은 제가 집에서 누리는 최고의 사치입니다. 제 일상의 게으름까지 멋지게 승화시켜 주는 가장 든든한 파트너예요.
Spot 2. 비초에(Vitsœ) 시스템
거실 한쪽 벽면에는 비초에(Vitsœ) 606 시스템을 설치했습니다. 1960년 디터 람스(Dieter Rams)가 디자인한 이 선반은 '더 적게, 하지만 더 낫게(Less, but better)'라는 그의 디자인 철학이 고스란히 담겨 있습니다. 화려하게 시선을 끌기보다는 눈에 띄지 않는 정교함과 극도의 간결함이 이 가구의 진짜 매력이죠.
복잡한 도구 없이도 필요에 따라 선반이나 수납장의 위치를 자유롭게 바꿀 수 있어서, 시간이 흐르고 생활이 변해도 그에 맞춰 유연하게 쓸 수 있다는 점이 큰 장점입니다.
저는 이곳에 평소 아끼는 카메라와 책, 그리고 하나씩 모으고 있는 우든 돌들을 올려둡니다. 군더더기 없는 담백한 선반 위에 물건들이 가지런히 놓여 있는 모습을 보면 마음이 한결 차분해집니다. 공간을 억지로 압도하지 않고, 일상의 물건들을 단정하게 품어주며 묵묵히 배경이 되어주는 모습이 참 좋습니다.
집에서 보내는 평범한 일상은 어떤 모습인지?
직장 생활 내내 연신 울려대던 전화기에서 멀어진 것. 제 일상은 그 조용한 변화에서 시작됩니다. 굳이 애써야 했던 불필요한 인간관계들을 하나둘 정리하고 나니, 일상에 자연스럽게 고요한 평화가 찾아오더군요.
집에서의 시간은 꽤 단순합니다. 책을 읽거나, 영화를 보거나, 지난 여행에서 사 온 LP를 틀어두고 음악을 듣습니다. 그러다 문득 공간의 분위기가 마음에 들면 사진으로 남기기도 하고요. 외부의 소음 없이 좋아하는 것들을 조용히 탐닉하며 고독을 편안하게 즐기는, 이른바 '싱글력'이 날로 상승하는 평범한 아저씨의 하루죠.
물론 좋아하는 것에 깊이 빠지다 보면, 그 탐닉이 이따금 물욕으로 이어지기도 합니다. 하지만 이제는 그 과정마저도 유쾌하게 받아들이고 있습니다. 설령 그것이 결국 무언가를 사는 소비로 끝난다 해도, 그 안에서 제 취향을 확인하고 얻는 확실한 즐거움이 있으니까요. 복잡한 것들을 덜어내고, 오롯이 나라는 사람과 내가 아끼는 사물들에만 집중하는 지금의 담백한 시간들이 참 좋습니다.
집이 가장 아름다운 시간대는 언제인지, 그리고 이 집안에서 가장 편안한 순간은?
저에게 집이 가장 보기 좋게 변하는 시간은 해 질 녘, 창밖으로 노을이 길게 드리워질 때입니다. 거실의 커다란 창은 사계절의 변화를 고스란히 투영하는 캔버스가 되어주는데, 계절마다 미묘하게 달라지는 빛의 온도와 풍경의 질감이 거실의 사물들 위로 은은하게 번져나가는 그 찰나의 순간을 좋아합니다. 굳이 화려한 장식을 더하지 않아도 자연이 주는 색감이 공간의 공기를 바꿔놓을 때, 비로소 이 집을 나만의 방식대로 빚어냈다는 깊은 안도감을 느낍니다.
이 집에서 누리는 가장 편안한 순간은 오직 나만의 질서 속에 머무는 ‘완벽한 고립’의 시간입니다.
낮 시간 동안 그 누구에게도 방해받지 않고 온전한 정적을 즐길 수 있다는 것, 그것은 은퇴 후 제가 누리는 가장 큰 호사입니다. 세상의 소음에서 한 걸음 물러나 오직 내가 선택한 사물과 음악, 그리고 나 자신에게만 집중하는 그 정적인 순간에 마음은 비로소 깊게 이완됩니다. 타인의 시선이나 불필요한 감정 소모 없이 고요한 공간의 흐름에 오롯이 몸을 맡길 때, 저는 이 집에서 완전한 편안함을 느낍니다.
공간을 정의(대표) 하는 3가지 키워드는?
1. 안온 (安穩)
완벽한 이완을 허락하는 안식처 거창한 명분이나 타인의 시선 없이, 오롯이 쉴 수 있는 곳입니다. 유명한 곳을 찾아다니거나 억지로 사교 모임을 채워야 마음이 놓이는 분들도 있겠지만, 저는 제 몸에 꼭 맞게 길들여진 마라룽가나 LC3에 푹 기대어 가만히 창밖을 보는 시간이 가장 좋습니다. 세상의 번잡함이나 오지랖은 문 밖에 두고, 가장 헐렁하고 편안한 모습으로 지낼 수 있는 저만의 안전지대랄까요. 그저 나태한 것이 아니라, 제가 좋아하는 사물들 틈에서 꽤 적극적으로 평화를 누리는 중입니다.
2. 유희 (遊戱)
취향으로 채워가는 어른의 놀이터 어릴 적 프라모델을 조립하던 소년이 나이 쉰을 넘어 다루는 물건의 스케일만 살짝 키운 셈입니다. 좋아하는 건축가들의 가구로 공간의 완벽한 비례를 찾는 퍼즐 맞추기는 기본이고, 여기에 음악과 영화가 더해지면 놀이터는 더욱 완벽해집니다. 요즘은 제 공간을 채울 완벽한 소리를 찾기 위해 매킨토시 앰프와 탄노이, B&W 스피커 조합을 알아보며 이리저리 청음하러 다니는 재미에 푹 빠져 있죠. 집에 돌아와서는 수십 번은 족히 돌려본 '백 투 더 퓨처'를 틀어놓고 예전 영화들을 다시 보면서 놓쳤던 디테일들을 발견하고 엄청 즐거워 합니다. 거창한 외부 활동 대신, 좋아하는 것을 깊이 파고들며 취향의 농도를 짙게 만들어가는 이 설레는 여정 자체가 제게는 훌륭한 놀이입니다.
3. 독락 (獨樂)
혼자라서 완전해지는 1인분의 삶 외로움을 덜어내겠다고 굳이 불필요한 약속을 만들지 않습니다. 제게는 혼자 보내는 시간이 텅 빈 결핍이 아니라 오히려 가장 꽉 찬 일상이거든요. 낮에는 누구의 연락도 없는 적막 속에서 우아한 고독을 즐기다가, 밤이 되면 미국 주식 창을 띄워놓고 꽤 진지한 긴장감에 빠져들기도 합니다. 고요함과 기분 좋은 긴장감을 제 마음대로 오가는 이 리듬이야말로, 혼자 사는 사람만이 누릴 수 있는 진짜 특권 아닐까 조심스레 생각해 봅니다.
이 공간에서 가장 '나답다'고 느껴지는 포인트가 있다면?
특정 가구나 공간의 한 코너를 꼽기보다는, '이 집을 완성해 낸 지독한 과정 그 자체'가 저를 가장 잘 설명해 주는 것 같습니다.
처음 집을 고치기로 마음먹었을 때부터 제 머릿속에는 구조적 조화에 대한 확고한 청사진이 있었습니다. 특히 제가 사랑하는 '비초에(Vitsœ)' 시스템 선반만큼은 무슨 일이 있어도 공간에 꼭 들이겠다는 일념이 있었죠. 그래서 대충 빈 벽을 남겨달라고 한 게 아니라, 아예 초기 도면 단계부터 선반이 들어갈 완벽한 위치와 비례를 계산해 인테리어 소장님께 콕 집어 전달했습니다.
각 실별로 제가 원하는 마감재의 느낌, 사물이 놓일 자리, 공간의 본질적인 분위기에 대한 디자인 요구사항을 꼼꼼하게 정리하다 보니 어느새 A4 용지 8장(그것도 10포인트 폰트로 빼곡하게 꽉 채워서요)이 나오더군요. 시공을 맡은 소장님 입장에서는 혀를 내두를 만큼 까탈스럽고 피곤한 클라이언트였겠지만, 제게 공간이란 그만큼 치밀하게 계획되고 통제된 질서를 갖춰야만 비로소 안온함을 주는 곳이니까요.
결국 이 공간은 단순히 유행하는 스타일을 따라서 한 결과물이 아닙니다. 은퇴 후의 일상을 어떻게 영위할 것인지에 대한 고민과, 오랫동안 벼려온 제 취향을 쏟아부은 8장짜리 기획서가 고스란히 3D 실물로 구현된 셈이죠. 대충 타협하지 않고 끝내 완벽한 제자리를 찾아준 그 기분 좋은 강박과 집념으로 빚어낸 이 집 전체가 곧, 가장 '나다운' 자화상입니다.
앞으로 이 공간에 더해보고 싶은 변화가 있다면 무엇일까요?
지금 이 공간에서 무언가를 획기적으로 바꾸거나 더할 계획은 없습니다. 오히려 앞으로 이 공간에서, 그리고 제 삶에서 맞이할 변화는 '비워냄'에 가깝습니다.
스스로 미니멀리스트라고 생각하면서도, 멋진 사물들을 보면 공간을 채우고 싶어지는 변덕이 늘 제 안에 있었습니다. 결국 미련 없이 홀가분해지기 위해서는 역설적이게도 한 번쯤 내 취향의 끝까지 완벽하게 채워보는 경험이 필요했던 것 같습니다. 그래서 눈에 거슬리지 않는 콘센트 위치부터 1년을 꼬박 기다려 받은 가구까지, 제 집념을 다해 지금의 공간을 밀도 있게 완성했죠.
이제는 제가 깐깐하게 선택한 사물들로 채워진 지금의 즐거움을 충분히 만끽한 뒤, 시간의 흐름에 따라 불필요한 것들을 하나씩 기분 좋게 덜어낼 생각입니다.
그리고 그 기나긴 '비워냄'의 여정 끝에는, 결국 제게 가장 꼭 맞는 집을 밑그림부터 직접 그려서 지어보고 싶다는 오랜 로망이 기다리고 있습니다. 그곳은 무언가를 더 사 모으기 위한 공간이 아닙니다. 오랜 시간 제 곁을 지키며 끝까지 살아남은 소수의 반려 가구들, 그리고 저라는 사람이 가장 자연스럽고 편안하게 호흡할 수 있는 궁극의 그릇을 제 손으로 직접 완성해 보고 싶거든요. 한 번 완벽하게 채워봤기에 비로소 가능해진, 가장 간결하고 여유로운 다음 스텝을 기분 좋게 상상하고 있습니다.
Credit
- 사진&글 @btfmart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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