에르메스의 시노그래퍼가 무대에 펼친 시계의 움직임
시간에 대한 정의와 메커니컬을 바라보는 메종의 관점을 7분간의 서사로 펼쳐낸 에르메스. 시노그래퍼 장 시몽 로슈가 구현한 ‘미스테리어스 메커니즘’에서 관람자는 정교하게 설계된 시간의 무대 뒤편에 머물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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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스테리어스 메커니즘’을 주제로 에르메스 부스에 설치한 시노그래피.
부스에 들어서자마자 시노그래피가 눈에 들어오더군요. 에르메스 워치 부스의 시노그래피에 대한 설명을 부탁드립니다. 이 시노그래피를 한 문장으로 정의한다면
가장 중요하게 생각한 건 관람자가 시노그래피라는 무대로 직접 들어가는 경험입니다. 올해 에르메스가 중점적으로 선보인 스켈레톤 워치는 내부가 훤히 드러나는 것이 특징인데, 그 감각을 이 공간에서 느낄 수 있도록 하고 싶었습니다. 작업을 하면서 스켈레톤 워치 무브먼트와 극장 무대가 닮아 있다는 걸 발견했어요. 극장 무대에 다양한 메커니즘이 존재하는 것처럼 시계 역시 수많은 구조와 장치로 이뤄져 있잖아요. 그래서 시계를 하나의 세계로 보고, 무브먼트는 그 안에서 움직이는 요소로 해석해 이번 시노그래피에 담았습니다.
극장 무대라는 개념에 이 부스를 찾는 관람자도 포함되나요
직접적으로 포함한 개념은 아니에요. 오히려 이번 시노그래피의 중심에는 지안파올로 파니가 디자인한 스카프 모티프의 그림이 자리하고 있습니다. 이 스카프에서 영감받은 다이얼의 컴플리케이션 워치도 함께 전시돼 있는데요. 우리가 맡은 역할은 스카프 그림 속에 담긴 이야기와 그 안에 등장하는 말이 품은 서사를 이 공간에 드러내는 것이었죠. 이번 작업에서 저는 영화의 시작점으로 돌아가고 싶었어요. 초기의 영화가 여러 장면의 연결을 통해 하나의 이야기를 만들어냈듯, 이번 시노그래피 역시 무대 속의 다양한 레이어와 이미지들을 이어 하나의 서사를 완성하도록 구성했습니다. 장면이 겹치고 연결되면서 관람자가 한 편의 영화를 보듯 공간을 경험하도록 한 것이죠.
에르메스의 ‘메커니컬’을 테마로 공간을 풀어냈는데, 이를 ‘공간 경험’의 무대로 만들 때 가장 중요하게 생각한 요소는
시계는 여러 개의 레이어로 이뤄진 작은 구조물이지만, 그 자체로 하나의 공간이자 세계입니다. 저는 시노그래피를 통해 이 개념을 하나의 ‘공간 경험’으로 느끼게 해주고 싶었습니다. 중요한 건 앞면뿐 아니라 무대 뒤까지 보여주는 것이었어요. 시노그래피를 돌아 뒤쪽으로 가면 무대가 어떤 장치와 구조로 이뤄졌는지 볼 수 있도록 구성했죠. 어떻게 보면 거대한 오르골 내부를 들여다보는 느낌이거나, 커다란 태엽 시계의 뒷면을 마주하는 감각에 가까울 수 있습니다. 나아가 그 안으로 직접 들어가는 경험까지 전달하고 싶었어요.
무대 앞뒤 면을 모두 보여주고 싶었군요
네. 실제로 극장 무대가 어떤 메커니즘으로 움직이고 구성되는지 이해하기 위해 많이 연구했습니다. 도르래 같은 구조도 단순한 장식이 아니라 움직이는 요소로 적용했습니다. 무대 뒤편의 기술적 장치와 움직임을 공간에 현실적으로 구현하고 싶었거든요.
무대장치의 모티프가 된 아쏘 카발리에 앙 포름.
당신의 작업은 늘 ‘무생물을 어떻게 살아 움직이게 할 것인가’에 초점을 둡니다. 이 질문이 이번 프로젝트에서 어떻게 구현됐는지 궁금합니다
처음으로 빛을 적극적으로 이용했습니다. 무대장치 뒤에 광원을 설치해 태양이 연상되는 구조를 만들고, 빛의 밝기에 따라 하루의 흐름이 달라 보이도록 설정했죠. 그렇게 만들어진 빛은 그림자를 만들고, 서로 다른 그림자들이 겹치면서 다양한 레이어와 하나의 컴포지션을 완성해 냅니다. 결과적으로 정적인 그림이 아니라 스스로 움직이는 것처럼 보이도록 그림 자체에 생명력을 불어넣는 거죠.
이번 공간에서 가장 중심이 된 요소는 빛일까요
맞습니다. 시간에 대해 이야기할 때 빛은 떼어놓을 수 없는 요소죠. 해를 비롯한 천체의 움직임이 하루를 만들고, 우리는 그 흐름을 빛의 변화로 인지하니까요. 그런 점에서 빛은 이 작업에서 가장 핵심적인 요소입니다.
관람자가 공간을 ‘보는 것’을 넘어 ‘느끼게’ 하기 위해 어떤 장치를 사용했나요
이 시노그래피는 7분이라는 한 사이클 안에 관람자가 하루의 흐름을 경험하게 되는 시간적 요소를 적극 사용했습니다. 해가 떠오르며 밝아지다가, 시간이 흐르면서 패널이 내려오고 빛이 사라지며 하루가 마무리됩니다. 7분 사이클이 끝난 뒤에는 약 1분 정도 ‘크레이지 미닛’이라고 부르는 구간이 이어집니다. 태엽이 감기는 듯한 소리와 함께 이전 사이클과는 다른 방식의 빛과 음악이 등장하고, 다시 새로운 하루가 시작되죠. 이런 반복 구조에서 관람자는 이 공간에 머무는 동안 다른 시간이 잠시 멈춘 듯한 경험을 하게 되고, 짧은 시간에 며칠을 보낸 것 같은 시간의 밀도를 느끼게 됩니다. 광원이 있지만 주변을 어둡게 해서 전체적으로 아늑한 분위기를 조성했고, 이 시노그래피를 위해 별도로 작곡된 음악을 더해 빛과 소리, 시간이 하나의 감각으로 통합되도록 했습니다. 전체적으로 워치스 앤 원더스의 밝고 분주한 환경과 대비되는, 보다 조용하고 사색적인 시간과 공간을 제안하고 싶었습니다. 결국 에르메스가 시간에 접근하는 하나의 방식이죠.
시노그래퍼 장 시몽 로슈.
시계의 치밀하고 빈틈없이 흘러가는 구조와 시노그래피의 감성적 경험의 균형은 어떻게 잡았나요
소재로 그 균형을 맞췄다고 볼 수 있습니다. 시계는 금속으로 이뤄진 차갑고 정밀한 물성이 강한 반면, 이번 시노그래피에서는 종이와 목재 또는 밧줄처럼 따뜻하고 익숙한 소재를 사용했습니다. 전체적으로 오두막이나 집을 연상시키는 분위기를 연출했는데, 일상에서 쉽게 접할 수 있는 재료라 자연스럽게 감각적인 친밀감을 형성할 수 있을 것으로 봤습니다. 이런 소재는 시계가 가진 구조적 긴장감을 완화시키는 역할을 해요. 예를 들어 시노그래피에 설치된 도르래는 톱니바퀴가 없는 원형으로 제작했어요. 보다 안전하고 익숙하며, 장난감처럼 친근하게 느껴지도록 했죠. 밧줄과 목재가 맞닿으며 만들어내는 소리 역시 금속과는 다른, 부드럽고 평화로운 감각을 전달합니다. 이런 요소가 결합되면서 시계의 구조적 차가움과 시노그래피의 감성적 경험 사이의 균형을 이루고자 했습니다.
에르메스의 장인 정신과 시계 메커니즘 사이의 연관성은 어디서 찾았나요
처음에는 시노그래피를 미니어처로 먼저 제작했습니다. 목재를 직접 깎고 선반 작업을 거쳐 완성한 작은 무대였는데, 그 과정에 이미 장인 정신이 담겨 있다고 생각합니다. 단순한 축소 모형이 아니라 실제 무대처럼 기능이 작동하도록 만들었거든요. 뒤에서 들어오는 빛, 종이의 움직임, 구조물의 작동 방식까지 모두 구현했습니다. 목재 선반과 도르래 등에 사용된 소재는 밤나무인데, 매우 단단하고 품질이 뛰어난 목재입니다. 이런 소재 활용 등의 세밀한 디테일도 에르메스의 장인 정신과 맞닿아 있다고 생각해요.
시계가 하나의 퍼포머라면, 그것을 담아내는 공간은 어떤 역할을 해야 할까요
퍼포먼스가 존재하기 위해서는 무대 공간을 분명하게 정의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시계는 점점 더 복잡해지고 새로운 컴플리케이션이 끊임없이 등장하지만, 결국 그 모든 기능이 구현되는 공간은 손목 위의 작은 케이스 안이죠. 그런 점에서 시계는 연극과 닮아 있습니다. 2000년이 넘는 시간 동안 연극은 끊임없이 진화해 왔지만, 무대라는 형식은 여전히 클래식한 구조를 유지하고 있어요. 중요한 것은 제한된 공간에서 무엇을 새롭게 발명해 내고, 그것을 어떤 방식으로 이야기를 풀어내느냐 하는 것이에요. 시계 역시 마찬가지입니다.
Credit
- 에디터 송유정
- 아트 디자이너 민홍주
- 디지털 디자이너 민경선
- COURTESY OF HERMÉ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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