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구 최후의 여자' 염문경 감독이 꿈꾸는 종말론적 세계
각본가이자 감독인 염문경은 영화와 사랑, 상처와 연대를 통해 도리어 살아갈 이유를 묻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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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는 7월 15일 개봉하는 <지구 최후의 여자>는 과거의 상처를 안고 살아가는 시나리오 작가 구한아와, 번번이 장편 입봉에 실패하는 감독 지망생 송철이 영화를 만들기 위해 손을 잡는 이야기다. 작품은 어떤 질문에서 출발했나
출발점은 '우리는 왜 살아가는가?'라는 질문이었다. 세상이 점점 나빠지는 것처럼 느껴지는 이 각박한 시대에, 그럼에도 사람은 왜 서로를 믿고, 왜 이야기를 만들며 살아가는지 이야기해보고 싶었다. 작중 영화를 만드는 두 사람의 이야기는 그 질문을 가장 잘 담아낼 수 있는 방식이었다. 그래서 각자 다른 상처를 지닌 구한아와 송철을 주인공으로 삼았다.
함께 작업하는 두 사람은 우여곡절 끝에 어느 순간 서로를 이해하는 동료가 된다. 사랑보다 연대를 먼저 이야기하고 싶었던 이유가 있는지
사랑이라는 감정 없이도, 사람과 사람은 서로를 이해하고 함께 살아갈 수 있다고 믿었다. 그래서 두 사람을 연인보다 동료로 그리고 싶었다. 서로를 인간으로 이해하는 마음이 결국 우리를 살아가게 만드는 힘이라고 생각했다. 두 사람이 사랑에 빠지는 것보다 같은 방향을 바라보는 사람이 되는 것이 더 중요했다.
<지구 최후의 여자>의 염문경 감독. <자이언트 펭TV> 메인 작가, <만약에 우리> 각본 참여, 산문집 <내향형 인간의 농담> 작가로도 활동했다.
작중 구한아와 송철은 과거 자신들에게 상처를 준 감독과 다시 마주한다. 하지만 그들은 복수보다 ‘이야기를 만드는 일’에 집중하는데, 감독 역시 창작이 사람을 치유할 수 있다고 믿는 편인가
물론이다. 치유를 위해 창작하는 것은 아니지만, 개인적으로 창작을 통해 치유받곤 했다. 실제 힘들었던 경험을 바탕으로 만든 단편 영화 <백야>를 관객들에게 선보이며 그 치유의 과정을 접했다. 혼자 묻어두고 있을 때는 고되었지만, 이야기를 꺼내고 많은 사람들이 공감해 주면서 비로소 그 시간을 지나올 수 있었다.
<지구 최후의 여자> 스틸컷.
독립영화 지원사업과 여성영화 가산점 등 실제 영화계에서 첨예하게 논의되는 문제들도 작품 안에 자연스럽게 녹여냈다. 어느 한쪽의 입장을 대변하기보다 블랙코미디적 요소를 통해 질문을 던지는데, 이런 방식을 택한 이유는 무엇인가
사회적인 이슈에 대해 하나의 정답만을 내리고 싶지는 않았다. 여성영화 가산점만 해도 왜 만들어졌는지 그 의도를 충분히 이해한다. 동시에 그것 때문에 일부 창작자들이 느끼는 불편한 감정 역시 이해한다. 나는 정책을 평가하려는 것이 아니라 그런 현실 속에서 사람들이 어떻게 갈등하고, 또 어떻게 만나 서로를 이해하게 되는지를 보여주고 싶었다. 영화를 본 뒤 누군가가 이 문제를 고심하게 된다면 그것만으로도 충분하다고 생각했다.
<지구 최후의 여자>는 SF와 블랙코미디, 애니메이션, 뮤지컬, 모큐멘터리 등 장르적 요소를 자유롭게 넘나 든다. 여러 장르가 뒤섞이는데도 특별한 계기가 있었는지
그런 장르적인 농담을 즐긴다. 어릴 때 비디오 가게를 하던 아버지 덕분에 다양한 장르 영화를 자연스레 접했다. 그래서인지 몰라도 여러 장르를 자유롭게 오가는 것이 나만의 언어가 됐다. 관객도 그 장르적 농담을 함께 즐겨주길 바란다.
<지구 최후의 여자> 스틸컷 속 구한아와 송철. <지구 최후의 여자>를 공동작업한 이종민 감독과 염문경 감독은 연인 사이다.
작품은 결국 ‘우리는 왜 돈도 안 되는 영화를 만들까요?’라는 질문을 던진다. 감독 본인에게 영화를 만든다는 것은 어떤 의미인가
영화는 내 마음을 이해받는 방식이다. 사람마다 자신의 이야기를 세상 밖으로 꺼내는 방법이 다르다. 누군가는 글을 쓰고, 누군가는 유튜브를 하고, 누군가가 정치를 하는 것처럼 나는 나의 이야기를 바탕으로 영화를 만든다. 가공된 그 이야기를 누군가가 받아들이고 “나도 같은 마음이었다”라고 말해주는 순간, 창작은 비로소 완성되는 것 같다.
그간 산문집 <내향형 인간의 농담> 작가, <자이언트 펭TV> 메인 작가, <만약에 우리> 각본 참여 등 다양한 영역을 오가며 이야기를 만들어왔다. 장르와 매체는 달라도 본인 작품을 관통하는 하나의 키워드가 있다면 무엇일까
결국 ‘균형’인 것 같다. 어떤 사회적 이슈를 보더라도 한쪽으로 쉽게 기울어지지 않으려 한다. 오히려 반대편에서는 어떻게 생각할지를 계속 상상한다. 그래서 악역도 단순한 악마처럼 그리고 싶지 않다. 그 사람 역시 자기 나름의 이유를 가지고 살아가는 인간이라고 생각한다. 거기에 유머도 중요하다. 사람은 누구나 조금씩 이상하고, 그 모습은 슬프면서도 웃길 수 있다. 그 기묘한 균형감을 가장 좋아한다.
염문경 감독이 분한 구한아. 그는 이번 작품의 각본도 직접 집필했다.
마지막으로, <지구 최후의 여자>는 결국 영화를 만드는 사람들의 이야기를 넘어 ‘살아가는 사람들’의 이야기처럼 읽힌다. 관객들이 극장을 나서며 가장 오래 품었으면 하는 감정이 있다면.
‘그럼에도 불구하고’라는 마음이다. 삶이 아무 의미 없어 보이는 순간도 있지만, 우리는 각자의 쓸데없는 일을 하며 하루를 살아간다. 그리고 그 시간이 결국 ‘삶의 다음’을 만든다고 믿는다. 영화를 보고 “그래도 살아볼 만하다”는 감정 하나만 남는다면 충분하다.
Credit
- 에디터 박찬
엘르 비디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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