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ULTURE

나홍진 감독을 만나 '호프' 2편에 대해 물어봤습니다

'곡성' 이후 10년. 나홍진은 거대한 장르 영화 '호프'로 돌아왔지만, 인터뷰 내내 거듭 한 말은 ‘아직’이었다. 아직 끝나지 않은 영화, 아직 닿지 않은 시네마, 아직 이뤄지지 않은 희망에 관하여.

프로필 by 정소진 2026.07.21

'호프' 왜 만들었냐고요? 지금 난리난 나홍진 감독 인터 기사에서 이어집니다.


나홍진 감독의 차기작이 <호프>라는 사실이 언론에 등장한 건 2022년경으로 기억합니다. 그리고 2023년 3월에 나홍진 감독 SNS에 외계인 그림이 한 장 올라왔고요. 그날이 해외 매체에서 마이클 패스밴더와 알리시아 비칸데르 <호프> 캐스팅 기사가 보도된 날이었어요. 직접 그린 거죠

네. 제가 그린 첫 그림이에요. 저도 그림을 많이 그려보고 싶었던 때인데, 한창 외계인 크리처 디자인을 할 때라 머릿속에 그 이미지가 가득해서 그린 거예요. 타블로이드에 실린 외계인 사진 같은 레트로함에 리얼함을 넣고 싶었죠. 그런데 실제로 할리우드 디자이너들과 작업해 보니, 그들에게는 수많은 SF영화 데이터가 있잖아요. 너무 레트로하게 가면 이걸 해도 저걸 해도 비슷해진다는 충고를 받아들이면서 외계인 파트의 레트로함은 많이 상쇄됐어요.


외계인이 등장하는 크리처 장르지만 <호프>에서 VFX만큼이나 클래식한 룩이 중요하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개봉하는 영화를 보면 ‘아하! 이런 느낌이구나’ 하고 아실 것 같은데. 단순히 캐릭터나 시대, 의상, 미술 같은 요소가 아니라 영화의 미장센, 프레임 전체에 ‘레트로가 박혀 있네’라는 느낌을 받을 거예요. <호프> 촬영을 시작할 때 홍경표 감독이 안 써본 렌즈를 쓰고 싶다고 빈티지 렌즈를 가져왔어요. <곡성> 때는 오히려 빈티지 느낌을 걷어내면서 찍었거든요. 빈티지 렌즈는 화각, 피사체와의 거리, 왜곡이 완전히 다릅니다. 대부분의 샷을 10mm, 20mm 와이드 렌즈로 찍었어요. 다른 렌즈는 왠지 붙지 않는 느낌이었고요. 아마도 모든 것이 ‘빈티지’여야 한다는 느낌이 시나리오에 담겨 있었고, 홍경표 감독을 비롯해 모든 팀이 자연스럽게 그렇게 느낀 것 같아요. 저는 <호프>를 만들면서 지금까지 1000번도 넘게 봤는데, 그 느낌이 지금도 너무 좋아요.


그 클래식함이 전이돼서 <호프>를 보고 떠오른 첫 단어가 ‘오늘의 시네마’였나 봅니다. <호프>는 꼭 극장에서 봐야 하는 이 시대의 클래식 무비라는 의미에서요. 특히 메이킹 클립을 보는데, 굉장히 감동적이더라고요. 인간이 ‘몸을 내던져서 만드는 스펙터클’은 본능적인 뭉클함이 있어요

인간 캐릭터 파트는 웬만하면 CG를 안 썼어요. 쓴다면 와이어 라인을 지우는 정도. 위험해도 배우들이 직접 운전하고, 말도 직접 타고, 스턴트맨들이 나와서 정말 위험한 장면도 직접 해냈거든요. 제가 재미있게 봤던 영화들, 엔딩 크레딧 올라갈 때 NG 컷을 보며 가슴을 쓸어내리던 그 장면을 CG 도움 없이 만들어보고 싶었어요. 그래서 외계인 파트의 CG와 한 프레임, 한 공간에서 이들이 부딪히면 되게 재미있겠다 싶어 이런 짓을 한 거죠(웃음).


‘나홍진의 시네마’ 중심에는 감독의 세계를 이해하는 배우들이 있습니다. 황정민, 조인성, 정호연과 현장 전체가 그렇죠. 영화에서도 숨을 ‘흡’ 하고 멈추게 되지만 달리는 말이 조인성 배우를 낚아채는 장면은 메이킹으로 보니 소름이 끼쳤어요. 홍경표 감독이 타이밍에 맞춰 카메라를 휙 돌릴 때 나홍진 감독의 표정은 완전히 아이 같았어요

엄청난 분들이죠. 이 영화는 한 컷도 쉬운 컷이 없어요. 한 컷 찍으려면 세팅만 한나절인데, 그 고생을 다 하고 배우들도 거기에 다 매달려요. 배우들이 현장을 많이 리드했어요. 그분들이 얼마나 의심이 많은 분들인데요(웃음). 준비 과정을 보고, 현장이 얼마나 준비돼 있는지, 어떻게 찍히고 있는지 직접 보면서 직감하는 거죠. 그런 과정이 계속 이어지니까 이렇게 고된 영화를 함께 해준 거죠. 하모니가 좋기도 했지만 완벽했던 현장이에요. 행복했어요.


황정민, 조인성 배우는 나홍진 감독의 집요함을 사랑한다고 했어요. 그리고 모션 캡처 수트를 입고 사력을 다하는 마이클 패스밴더도 감동적이었죠. 그렇게 연기한 배우들에게 “왜 얼굴도 안 나오는 영화에 출연했냐”는 질문이 얼마나 무례했는지 다시 한 번 깨달았어요

저도 감동했어요. 잘 모르는 사람에게 둘러싸여 몸에 주렁주렁 기계를 달고 연기를 하는데, 너무 멋있는 거예요! 솔직히 후회했어요. 세상에, 내가 왜 이 사람을 CG로 덮지? 그냥 얼굴을 내보낼 걸(일동 폭소). 마이클 패스밴더가 더블린에서 자랐잖아요. 술꾼의 나라! 나이대도 정서도 비슷하고, 통하는 점도 많아서 매일 술 마시면서 이야기했어요. 할리우드 스타들이 까탈스럽다는 말을 많이 들었는데, 너무 기분 좋게 열심히 해줘서 감동했습니다. 알리시아 비칸데르에게도 고맙고요. 하루는 술 마시다 제게 그러더라고요. “나도 (얼굴 나오는) 연기 좀 하고 싶어!”


그리고 음악과 사운드! 마이클 에이블스의 영화음악이 주는 감각도 정말 좋았어요. 앞서지도, 뒤처지지도 않는 피부 같은 음악 말이죠

음악만 5년을 작업했어요. <호프>는 완전 빵빵 때려줘야 하거든요. 이건 느끼는 영화인데, 관객들이 그 느낌을 못 받으면 어떡하지? 그게 제일 걱정입니다.


<추격자> <황해> <곡성>에서 <호프>까지 이어지는 감독의 질문이 있는 것 같습니다. 인간이라는 생명체는 왜 이토록 연약하게 태어나 허망하게 서로 죽고 죽이는가? 전작들은 그 질문을 장르 안에 깔아 두었다면, 이번엔 그냥 장르 위로 꺼내놓은 것 같았어요. 관객이 찾아내느라 고생하지 않도록 말이죠

한 편의 영화를 만든다는 게 얼마나 긴 시간, 얼마나 많은 사람의 고생인지 아니까, 소재 하나가 저를 움직이게 하지는 못해요. 이 영화를 해야겠다는 결심에 몇 년이 필요합니다. 왜냐하면 시작하면 전 죽으니까(웃음). 진짜 죽을 텐데, 중간에 포기하지 않을 명분이 필요하니까요. 다만 인간과 폭력에 대한 제 고민이 전체를 관통하는지는 모르겠지만 어쨌든 ‘말이 되는’ 이야기를 해야 하잖아요. 그런데 <곡성>을 만들면서 제가 할 수 있는 모든 걸 다 털어놨기 때문에 다시 갈 마음이 없어요. 즙을 다 짜냈으니 더 짜낼 즙이 없는 거죠. 그래서 이번에는 장르영화를 만들되 좀 쉽게, 동화 같은 이야기를 만들고 싶었습니다. 저는 우리 영화가 왜 12세 관람가가 아닌지 지금도 이해할 수 없어요.


<호프>는 12세 관람가가 적정하다는 거죠

<호프>보다 어릴 때 읽은 동화들이 훨씬 끔찍하고 참혹하지 않아요? <플란다스의 개> 기억하나요? 와, 그 어린 나이에 애랑 개까지 어떻게 다 죽이냐고 펑펑 울었는데…. <호프>의 이야기는 쉬워야 했어요. 관객이 메타포를 해석할 여지가 없어야 한다. 대신 그 메타포를 어디에 넣었냐? 액션에 넣었어요.


지금까지 나홍진 감독의 영화를 보는 방식, 특히 <곡성>을 해석하는 방식으로 <호프>를 보면 오히려 놓치는 게 많겠군요

영화를 볼 때 크게 두 가지 방식이 있다고 생각해요. 영화는 비주얼과 사운드잖아요. 이 비주얼과 사운드를 보고 들으면서 머릿속으로 텍스트화 하는 분이 있고, 그냥 비주얼과 사운드로 받아들이는 분이 있어요. 영화를 텍스트화 하는 분에게는 이 영화가 ‘뭐지?’ 싶을 수 있어요. 영화의 비주얼과 사운드를 그대로, 몸으로 받아들여 주세요. 진짜 노력 많이 했어요. 음악만 5년을 작업했어요. <호프>는 느끼는 영화입니다.


그럼 우리는 <호프 2>를 언제 볼 수 있나요

저는 이번에 진짜 고생 많이 했어요. 이 정도로 시달린 경우는 없었어요. 개봉하면 근처에도 안 갈 거예요. 20년은 쉬어야 해요(웃음). 속편은 정말 몰라요. 왜냐하면 이런 규모의 영화를 이 규모의 자본으로는 만들 수는 없어요. 불가능해요. 한 번 했는데, 막상 해보니까 할 수 있는 게 아니더라고요. 제 의지는 충만하지만! 많이 봐주시고, 누가 다음 편을 만들자 하면 만들 수 있을지 모르겠어요.


마지막으로 나홍진 감독의 ‘호프’는

계속 오래 만드는 거죠. 오랫동안 작품을 만들고 싶은데, 같은 걸 두 번 하고 싶지는 않아요.


그리고 ‘자주’이길 바랍니다. 제 ‘호프’는 나홍진 감독이 ‘오늘의 시네마’를 계속, 오래, 자주 만들어주는 거예요

‘자주’는 제 의지와 무관한 일이에요.


Writer 박혜은

전 <맥스무비> 편집장이자 현재 영화 엔터테인먼트 미디어 <더 스크린> 편집장. 영화에 대한 깊이 있는 해석으로 대중과 소통하는 베테랑 영화 저널리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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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redit

  • 에디터 정소진
  • 인터뷰 박혜은
  • 사진가 목정욱
  • 아트 디자이너 강연수
  • 디지털 디자이너 오주영