뜨거운 도시를 위한 스포트막스의 새로운 유니폼
스포트막스는 익숙한 도시복을 더 가볍고 유연하게 재설계했다. 시어 소재, 열린 구조, 유동적인 실루엣으로 완성한 새로운 여름의 옷.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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숨이 막힐 만큼 더운 여름, 이런 날씨에 옷은 어디까지 가벼워질 수 있을까. 스포트막스의 2027 봄 여름 컬렉션은 유럽을 휩쓴 기록적인 폭염 ‘카니큘(Canicule)’에서 출발합니다. 카니큘은 프랑스어로 낮의 열기가 밤에도 좀처럼 식지 않은 채 며칠씩 이어지는 극심한 폭염을 가리킵니다. 바로 그 답답한 열기가 이번 컬렉션을 움직였습니다. 밀라노에서 베니스, 파리에서 도쿄까지. 스포트막스는 뜨거운 도시를 오가며 일하고 이동하는 사람들을 관찰했죠. 그리고 지금의 기후와 생활 방식에 맞는 새로운 도시의 유니폼을 떠올렸습니다.
새로운 컬렉션에서 특히 흥미로운 점은 가벼움을 만드는 방식입니다. 보통 더우면 옷을 줄이거나 벗는 쪽으로 생각하기 쉬운데요. 스포트막스는 옷을 줄이거나 덜어내는 대신, 우리가 익숙하게 입어온 옷의 구조를 손봤어요. 자켓, 수트, 트렌치코트의 형태는 그대로 유지하는 대신 밀도를 낮췄습니다. 틈을 내고 빛과 공기가 지나갈 자리를 냈죠.
테일러링은 수트의 클래식함은 간직한 채 핀스트라이프 보일과 비스코스, 울로 새롭게 재구성했습니다. 오픈 패널은 착시를 보는 듯한 효과를 자아내고요. 핀스트라이프 트라우저 안에는 버뮤다 쇼츠가 숨어 있는데요. 겉으로 보면 꽤 단정한 비즈니스웨어예요. 그런데 한 겹 안쪽에는 한여름의 현실이 들어 있습니다.
이 지점이 이번 컬렉션에서 꽤 중요하게 여겨져요. 스포트막스가 말하는 ‘유니폼’은 모두가 똑같이 입는 옷이 아니에요. 매일 반복해서 손이 가는 자켓, 팬츠, 셔츠 등 익숙한 도시의 옷들을 지금의 기후, 생활 방식, 움직임에 맞게 다시 설계한 거예요. 그러니까 미래의 옷을 새로 발명하기보다, 우리 곁에 있는 옷을 미래에 맞게 바꾼 셈입니다.
이번 시즌 빈번하게 쓰인 시어 소재도 같은 맥락입니다. 단순히 몸을 드러내기 위한 장치는 아니에요. 오히려 옷의 형태는 남기고 무게만 지우는 방법에 가까워요. 실크와 비스코스 오간자 위로 에크루, 오렌지, 블러시 핑크가 포개집니다. 한 겹 또 한 겹. 투명한 색이 포개지면서 새로운 그라데이션이 만들어지고요. 유리잔 속 물에 비친 진주빛에서 출발한 컬러 팔레트는 은은한 그레이에서 선명한 보석색까지 이어집니다.
색을 만드는 방식도 흥미롭더군요. 하나의 표면에 색을 완성하는 대신 투명한 층을 겹쳐 깊이를 만듭니다. 색조차 무게를 갖지 않는 듯 보이는데요. 앤티크 베네치아 레이스 식탁보를 다룬 방식도 비슷합니다. 레이스를 자수로 그대로 재현하지 않았습니다. 프린트로 옮겨서 흔적만 남긴 뒤 그 위에 오간자 트렌치코트를 겹쳤죠. 레이스는 비치지만 형태는 선명하지 않죠. 장식마저 한 단계 가볍게 만든 것입니다.
한편 실루엣은 꽤 구조적입니다. 긴 벨트와 웨이스트밴드가 흘러내릴 듯한 볼륨을 잡아주고, 구조적인 자켓 아래에는 부드럽고 둥글게 흐르는 팬츠가 놓이는데요. 단단함과 유연함, 구조와 움직임이 계속 한 룩 안에서 공존합니다. 소재는 또 어떻고요. 부드러운 나파와 스웨이드는 간결한 스커트와 슬리브리스 자켓, 코트로 이어지고 변형 가능한 패널을 더해 몸 주변에 공기가 머물 공간을 조성했어요. 데님 역시 익숙한 단단함을 내려놓았죠. 단단하고 뻣뻣한 데님이 아니에요. 부드럽고 유연하게 흐르도록 다뤄집니다. 결국 소재를 바꾸는 게 아니에요. 수트, 레더, 데님처럼 여름과 거리가 있어 보이는 옷의 성격 자체를 변형한 것이죠.
그래서 이번 컬렉션이 제시하는 미래는 낯선 모습이 아닙니다.우리가 이미 잘 알고 있는 옷들인데요. 스포트막스는 그 익숙함을 버리지 않았습니다. 대신 지금의 온도와 움직임에 맞춰 다시 조율했죠. 그리고 이 옷들은 하루의 한 장면에만 머물지도 않아요. 이를테면 니트웨어는 매끈한 컷아웃 스윔웨어와 텍스처가 돋보이는 자카드에서 영감을 받아, 일과 후 해변으로 향하는 자유로운 순간을 떠올리게 합니다. 슈즈와 주얼리도 컬렉션 전반에 투명성을 유지하고, 유리 조각처럼 빛나는 주얼리도 그 흐름을 이어가는데요. 일과 휴식, 도시와 탈출. 그 사이를 하나의 옷장이 자연스럽게 오갑니다.
1969년부터 동시대의 삶을 꾸준히 반영해온 스포트막스가 이번 시즌 마주한 질문은 단순합니다. 지금의 기후 변화에서 도시의 옷은 어떻게 달라져야 할까. 그 답은 형태를 포기하는 데 있지 않았습니다. 무게와 밀도를 덜고 그 자리에 공기, 빛, 움직임을 들였습니다. 뜨거운 열기 앞에서 옷을 벗는 대신 구조를 비워내기. 스포트막스가 제안하는 새로운 여름의 유니폼입니다.
Credit
- 사진 SPORTMAX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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