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간 디자이너와 사진가 두 사람의 홈 아틀리에
공간을 만들고 장면을 기록하는 두 사람이 함께 일하고 살아가는 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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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녕하세요. 건축설계를 바탕으로 공간을 디자인하는 김영언(32)과 사진가인 남편 안경훈(33)입니다. 저는 약 6년간 건축설계 일을 했고, 지금은 아르쿠스(ARCUS)라는 이름으로 공간 디자인 스튜디오를 준비하고 있어요. 남편은 사진과 그림 작업을 하고 있습니다.
올해 봄 회사를 그만둔 뒤, 건축에서 출발해 공간을 다루는 일을 여러 방향으로 해보고 싶어졌어요. 천을 고르고 바느질하거나 집을 직접 고치는 일도 좋아하고, 언젠가는 공예 오브제 브랜드도 만들고 싶습니다. 남편은 AI 도구에도 관심이 많아 그 분야를 공부하며 제 작업을 여러 방면에서 도와주기도 해요.
저희에겐 일에서 시작된 관심이 취미가 되고, 취미로 하던 일이 다시 작업으로 이어질 때가 많아요. 집도 두 사람이 함께 생활하고 일하는 동안 조금씩 저희를 닮아가는 것 같습니다.
공간을 소개해 주세요.
남편과 저는 양재천 가까운 30평 상가주택에서 1년 조금 넘게 살고 있습니다. 작업 공간으로도 쓰는 넓은 거실이 가장 오래 머무는 우리 집의 중심이에요. 오픈된 주방이 거실과 이어져 시야가 트이고, 목조 장식이 있는 천장 아래로 검은 데코타일을 한국 마루처럼 깔았습니다.
짙은 바닥이 낮게 깔린 배경이 되어주니 가구와 오브제, 작업 도구가 늘어나는 날에도 공간은 차분하게 느껴져요. 저희는 이 집을 ‘작은거인의집’이라고 부릅니다. 둘 다 체구가 작고 아직 사회에서 배우고 성장하는 중이지만, 각자의 일을 하고 꿈을 키워간다는 뜻을 담았어요.
이곳은 그 과정을 보내는 생활 공간이자, 저희가 만들고 기록하는 홈 아틀리에입니다.
현재 공간을 선택하게 된 이유는?
결정적인 이유는 천장이었어요. 비슷한 빌라와 상가 건물들 사이에서 집을 보러 들어왔는데, 목조 장식으로 된 천장이 눈에 들어왔습니다. 조명만 바꿔도 오래 머물고 싶은, 아늑하고 차분한 공간이 되겠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남편이 일하는 곳과 가깝고 저희가 좋아하는 양재천도 가까웠어요. 집에서 촬영도 하고 다양한 일을 할 수 있을 만큼 거실이 넓다는 점도 찾던 조건에 맞았고요. 여러 조건이 좋았지만 마지막에 마음을 확실히 정하게 한 건 역시 그 천장이었습니다.
공간을 처음 꾸미고 채워나갈 때 계획해둔 이미지나 레퍼런스가 있었다면?
꼭 인테리어 레퍼런스라기보다, 라이프스타일이 인상 깊었던 분들이 있어요. 인스타그램의 리빙 크리에이터 @metahaiku 계정은 제가 꿈꾸던 홈 아틀리에의 모습을 많이 보여줬어요. 두 사람이 공간을 자유롭게 쓰고 다양한 작업을 하는 일상이 부럽더라고요.
찰스·레이 임스 하우스도 기억에 남았는데, 여행에서 모아온 물건과 작업 재료, 시제품 등이 함께 놓인 것에 대해 ‘기능적인 장식’이라고 하더라고요. 그런 자유로움이 저희와도 잘 맞겠다고 생각했어요.
집을 꾸밀 생각으로 사진을 찾다 보니 책이 잔뜩 놓인 작업실에도 눈길이 갔어요. 좋아하는 장면을 저장해두고 언젠가 우리 집에서도 해보고 싶다고 생각했죠. 처음에는 거실 한쪽 벽을 책으로 가득 채우고 싶었습니다.
그런데 남편이 “책이 한곳에 다 있으면 오히려 안 읽게 되지 않을까? 집 곳곳에 두자”고 하더라고요. 그래서 낮은 책장을 놓고 여러 곳에 작은 책장과 북엔드를 두었습니다. 남편은 잘 읽게 되었는지 모르겠지만 전 여전히 책을 잘 안 읽긴 합니다. 아무튼 덕분에 뭐든 걸 수 있는 흰 벽이 생겼고, 물건을 툭툭 올려놓을 선반도 생겨 ‘기능적인 장식’을 시도할 수 있게 됐어요.
거실, 침실, 주방, 화장실 등 각 공간의 특징을 간단히 공유해 주세요.
거실과 주방 — 열린 주방과 거실이 하나의 공간처럼 이어집니다. 거실에는 직접 만든 커다란 테이블이 중심을 잡고 있어요. 밥을 먹고, 일을 하고, 차를 마시고, 손님을 맞이하는 일이 모두 이곳에서 일어납니다. 목조 천장과 검은 바닥이 그 다양한 풍경의 배경이 되어줘요.
안방 — 동남향이라 집에서 채광이 가장 좋아요. 암막 커튼 없이 아침 빛을 받으며 일찍 하루를 시작하는 재미를 알게 됐습니다. 책장을 옷장처럼 활용해 침대 자리를 한쪽 코너에 구획했더니 아늑한 공간이 하나 더 생긴 듯해요. 제 작은 바느질 자리도 안방 한편에 있습니다.
남편의 작업실 — 방문을 떼어 거실과 이어지게 했어요. 들어서면 스테인리스 보드에 붙인 사진들이 먼저 보입니다. 사진 장비와 그림 도구, 집을 고치고 만드는 장비가 가득하지만, 남편은 이렇게 작은 공간에 물건들로 둘러싸여 있을 때 집중이 잘되는 것 같아요.
작은방 — 손님을 맞이하고 가볍게 촬영하는 방이에요. 나중에 제품 사진을 찍을 때 밝은 배경이 필요할 것 같아 물건을 덜어내고 벽을 하얗게 칠했습니다. 집에 사람을 초대하는 일이 많다 보니 손님이 편히 머물 방이 필요하기도 했고요. 직접 만든 커튼을 달고 조명에도 천을 더해 빛을 부드럽게 했어요. 졸업작품으로 만들었던 다탁은 조금 변형해 책장과 이어 놓았습니다. 포근한 오후 빛이 잘 어울리는 방입니다.
욕실 — 집주인 할아버지 부부가 예전에 직접 구해오셨다는 꽃무늬 변기와 세면대가 있어요. 처음에는 제 취향과 달랐지만 이제는 이 집만의 모습처럼 느껴져 정이 갑니다. 원래 미색이었는지 시간이 지나 바랜 건지 모를 타일도 자연스러워 보여, 새로 단 욕실장을 아이보리색으로 맞췄어요. 혼자 반신욕할 때 무드등만 켜두면 유난히 따뜻하게 느껴지는 공간입니다.
집에서 보내는 평범한 일상은 어떤 모습인가요?
자고, 밥 먹고, 차 마시고, 일해요. 수익이 생기는 일을 하지 않을 때에도 둘 다 습관처럼 자기 책상 앞에 앉아 있는 시간이 많습니다. 집에 오면 일단 앉고 보는 편이라 요즘은 일부러 양재천을 자주 걸어요.
퇴사 후 집에서 일하게 되면서 커피와 차를 마시는 시간도 늘었어요. 예전에는 퇴근 후에나 가던 산책을 아침이나 점심에도 할 수 있게 됐고요. 가까이 양재천이 있다는 게 새삼 큰 선물처럼 느껴집니다.
손님맞이도 잦아졌어요. 저희 둘 다 사람을 초대하고 새로운 사람을 만나는 걸 부담스러워 하지 않는 편이예요. 해외에 사는 가족과 친구들이 오기도 하고, 제가 지방에서 학교를 다녀 그때의 친구들이 서울에 올 때 들르기도 해요. 누군가 오면 거실 테이블에 앉아 네 시간쯤 이야기하는 건 흔한 일입니다. 집에서 보내는 시간이 길어지며 그동안 자주 못 보던 사람들을 만날 수 있게 된 것도 요즘 참 좋아요.
건축가와 사진가, 서로 다른 시선을 가진 두 사람이 함께 집을 꾸미는 과정은 어땠나요?
집을 꾸밀 때는 대체로 제가 먼저 방향을 잡지만, 남편의 한마디가 새로운 과제가 될 때가 많아요. 저는 공간을 다루는 일을 해서 오히려 익숙한 문제를 두루뭉술하게 넘길 때가 있는데, 남편은 관찰력이 좋고 자신이 느낀 것을 말로 정확하게 표현하는 편이에요. 생활하면서 거슬리는 부분이나 더 효율적으로 쓸 수 있는 방법을 짚어주면, 저도 그 문제를 다시 보게 됩니다.
미감과 효율 모두 두 사람에게 중요하지만, 보는 방식은 조금 달라요. 저는 공간 전체를 보며 생각하는 데 익숙하고, 남편은 한 장면을 보듯 눈앞의 모습을 직관적으로 볼 때가 많아요. 살아온 환경도 다르니 무엇이 보기 좋고 쓰기 편한지 생각이 엇갈릴 때가 있죠. 그럴 땐 서로의 이유를 이야기하고, 때로는 한참 토론합니다. 그렇게 나온 해결책이 저 혼자 생각했을 때보다 우리 생활에 더 잘 맞는 경우가 많아요.
건축가로서 자신의 집을 꾸미는 일은 클라이언트의 공간을 설계하는 것과 어떻게 달랐나요?
아직 개인적인 경험이 많진 않지만 그간의 경험으로 이야기하자면, 클라이언트와 충분히 이야기해도 제가 그 사람의 삶을 전부 알 수는 없어요. 제가 만들어 드리는 공간은 그 집 이야기의 한 시기이고, 이후에는 그곳에 사는 사람이 생활하며 집을 계속 바꾸고 익혀간다고 생각합니다.
제 집에서는 그 시간을 직접 겪을 수 있어요. 처음 자취를 시작하거나 신혼집을 꾸릴 때는 자신에게 맞는 생활 방식조차 아직 모를 수 있잖아요. 저희도 함께 살면서 서로에게 맞춰가는 것들이 생겼어요.
그래서 제 집은 가능한 한 시간을 두고 꾸미려 합니다. 오래 고민하다 보면 걱정도 늘고 완성이 늦어지지만, 며칠이나 몇 주는 그냥 바닥에서 밥을 먹고 책을 쌓아둔 채 지내도 제가 괜찮으면 되니까요. 그만큼 여유롭게 생각할 수 있는 것 같습니다.
작은방 역시 처음 생각했던 작업실 대신 손님과 촬영을 위한 방이 됐어요. 살아보면서 용도를 바꿀 수 있다는 게 제 집을 꾸미는 가장 큰 재미입니다.
일과 생활이 한 공간에서 자연스럽게 공존할 수 있도록 만든 장치가 있나요?
일과 생활을 이어주는 가장 큰 장치는 거실의 테이블이에요. 식탁, 컴퓨터 책상, 티 테이블, 손님맞이 자리를 따로 두는 대신 넓은 테이블 하나에서 여러 일을 해보고 싶었습니다.
저희 부부는 사람들을 집에 초대하고 새로 만나는 시간이 좀 많은 편인 것 같아요. 친구들이 와서 각자 노트북 켜고 일을 해도, 손님 10명 정도가 와서 함께 둘러앉을 때도, 여러 그릇을 놓고 밥을 먹어도 넉넉한 테이블이면 좋겠다고 생각했어요. 열린 주방과도 이어져서 이곳에서 밥을 먹고 차를 마시고, 일을 하다가 물건을 만들고 영화를 보기도 해요.
두 사람이 노트북을 켜고 마주 볼 수 있는 폭, 컴퓨터 작업을 할 때 쓸 발판, 테이블보나 패브릭을 눈에 띄지 않게 넣어둘 자리까지 나름 머릿속으로 설계하고 직접 만들었습니다. 자세히 보면 조금 투박할지 몰라도 정말 쓰임이 좋아요. 한 자리에 앉아 여러 방식으로 살아볼 수 있게 해주는, 이 집에서 가장 중심이 되는 가구입니다.
한편으로는 일과 휴식을 조금 나누는 것도 필요했어요. 원룸이나 작은 집에 살 때는 피곤하면 바로 누워버리기 십상이었고, 잘 때도 제대로 쉬지 못하는 기분이 들 때가 있었거든요. 지금은 거실 책장을 60cm 정도 더 길게 놓고 가림막 천을 내려두었습니다. 문이 열려 있어도 침대가 바로 보이지 않고 한두 걸음 돌아서 들어가게 돼요. 소소하지만 저희에게는 일하는 자리에서 쉬는 자리로 넘어가는 장치입니다.
공간을 채운 사물 중 각별한 애정을 지닌 가구나 오브제가 있다면?
방명록으로 쓰는 제 기타가 가장 먼저 떠올라요. 첫 자취방과 연구실, 신혼집을 거치는 동안 찾아온 사람들이 기타에 사인을 남겼습니다. 물건 하나에 제 거처의 변화와 저희 부부가 맺어온 인연이 함께 남아 있어요.
남편의 친구가 보내준 기린 가족 조각상도 있어요. 짐바브웨에 사는 친구가 생일 선물로 갖고 싶은 걸 묻기에 “뭘 줘, 돌이나 줘” 하고 농담했는데, 정말 돌로 만든 기린 가족을 보내왔죠. 저희가 아이를 낳고 화목한 가정을 꾸리길 바라는 마음까지 담긴 선물이었습니다.
미국에 사는 동생 내외를 보러 갔다가 뉴욕을 2박 3일 동안 빠듯하게 돌아다녔는데, 그 와중에 모마에서 체스판 하나에 꽂혀 사 왔어요. 부피도 있고 일정도 바빴지만 어떻게든 공수해 온, 정말 예쁜 체스판입니다. 여러 작가가 디자인한 체스판을 보니 저희도 언젠가 우리 결에 맞는 체스판을 만들어보고 싶어졌어요. 저는 이제 막 남편에게 체스를 배우는 중이고요.
최근 구매한 인테리어, 리빙 아이템은? 나아가 구매하고 싶은 아이템이 있다면?
아주 최근은 아니지만 근래에 산 리빙 아이템은 전통 간살문이에요. 차도 마시고 커피도 내리다 보니 도구가 많아 홈 카페장이 어수선해 보일 때가 있거든요. 주방과 거실이 열려 있어서 그 사이를 한 번 끊어주는 물건이 있으면 했어요. 천을 걸면 목조 천장과 따로 노는 느낌이 들 것 같아 나무 소재로 찾다가 간살문을 골랐습니다. 높이가 1,800 mm라 아래에 받쳐줄 스툴이 필요한 건 조금 아쉬워요.
이사 오면서 들인 수납침대도 매일 잘 쓰고 있어요. 매트리스보다 넓게 주문 제작하고 높이도 골랐는데, 침대에서 내려올 때 넓은 가장자리에 평상처럼 잠시 앉을 수 있어 편합니다. 서랍과 콘센트가 있고, 책·조명·가습기·충전기를 올려둘 자리도 넉넉해 별도 협탁이 필요 없어요. 요즘은 매트리스를 빼고 그 위에 패드만 깔아 낮게 자고 있습니다.
다음으로 찾고 있는 건 퇴수기가 있는 돌 차판이에요. 나무 차판은 물 관리에 자신이 없고, 거실 테이블이 조금 낮아 높이 있는 차판도 잘 맞을 것 같아요. 차 마시는 시간이 늘면서 점점 필요해져서 열심히 찾아보는 중입니다. 결혼기념일 선물로 받고 싶다고 말해볼까 싶어요.
이 집이 생활 습관이나 취향에 가져온 변화가 있다면?
이 집에 살면서 해 뜨면 밝게, 해 지면 어둡게 생활하는 게 몸에 배었어요. 시골 사람 같지만 저는 사람이 바닥에 붙어 사는 게 좋고, 해 뜨면 일어나고 해 지면 눕는 자연스러운 생활을 추구해요. 물론 실제 삶이 늘 그렇게 흘러가지는 않지만요.. 나무 천장 아래에서 해가 떨어지면 조도를 낮추고 지내는 시간이 참 잔잔해서 좋습니다.
쓰는 공간이 넓어지니까 처음엔 이것저것 채우게 되더라고요. 그런데 채워놓은 곳에서 여유를 찾기 쉽지 않다는 걸 체감 중이에요. 디자인할 때도 덜어내는 게 일이고, 취향이 깊어지는 데에도 좋아하는 이유를 구체적으로 찾는 소거법이 필요하겠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여전히 맥시멀리스트지만, 요즘은 더디게나마 조금씩 덜어내는 법을 배우고 있어요.
공간을 정의하는 세 가지 키워드는?
일 — 홈 아틀리에다 보니, 집이지만 먼저 일하는 공간으로 읽히는 것 같아요.
편안함 — 저희가 이 집에서 느끼는 아늑하고 편안한 기분을 집에 오는 사람들도 느꼈으면 좋겠습니다.
자유로움 — 하나씩 들여다보면 생각보다 제멋대로인 부분들이 있어요. 문을 떼어 놓거나 합판을 툭툭 올려놓고 책장으로 쓰는 것 등, 남편의 단순함과 제 투박함이 묻어난 곳들에서 이 집만의 독특함이 느껴질 것 같아요.
끝으로, 앞으로 공간에 더해 보고 싶은 변화가 있다면 무엇일까요?
베란다 공간을 빨래 말고 사용을 못하고 있는데, 뭔가 제작도 하고 식물 물도 편하게 주는 공간 등으로 다용도실처럼 만들고 싶다는 생각을 합니다. 고민중이에요!
언젠가는 남편의 사진이나 제가 만든 오브제를 집에서 함께 보여주는 작은 사진전도 열어보고 싶어요. 쉽진 않겠지만 오픈하우스 갤러리처럼 평소 저희가 일하고 차를 마시는 거실에 손님들이 와서 작품을 보고 오래 이야기한다면 재미있을 것 같아요.
Credit
- 사진&글 @smallgiant.hom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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