죽을 걸 알면서도 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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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산은 도대체 왜 하는 걸까? 어차피 내려올 걸 알면서도’. 산을 탈 때마다 머릿속에 장기하의 노래가 맴돈다. 지리산, 한라산, 설악산 등 수많은 산을 타고 트레일 러닝 대회에 나가 입상까지 했지만 등산을 좋아해본 적은 없다. 굳이 따지자면 등산보다 날 듯이 뛰어 내려오는 하산을 좋아하는데, 그것도 산에서 빨리 탈출하고 싶어서, 산을 빠져나오는 과정이라 좋아한 거다. 이번 시즌에는 거의 격주로 산을 타지만 누군가가 가자고 해서 간 거지 한 번도 자의로 산에 가거나 ‘등산을 하고 싶다’는 마음으로 간 건 아니다. 산을 잘 타긴 하는데 그렇다고 내 재능과 흥미가 일치하지 않는 거의 유일한 영역이 등산일지도 모른다.
얼마 전 친구가 같이 사는 동생이 더러워 죽겠다며 울분을 토했다. 친구의 동생은 도무지 ‘정리’라는 걸 모른다고 했다. 물건을 제자리에 두는 법도 없지만 ‘제자리’라는 개념 자체에 회의적이라고 한다. 동생의 주장은 ‘어차피 어지러질 걸 왜 치우냐’는 거다. 다시 침대에 들어가서 잘 건데 왜 침구를 정리해야 하는지, 어차피 다시 신고 나갈 건데 왜 신발을 가지런히 벗어놔야 하는지, 어차피 물 마시고 싶을 때 씻어서 마실 건데 왜 다 마신 컵을 싱크대가 아닌 협탁에 방치하면 안 되는 건지 동생은 오히려 한마디하는 친구를 이해하지 못하겠단다. 동생이 그렇게 얘기할 때 어떻게 대꾸하냐고 한 친구한테 물었더니 “야, 어차피 죽을 거 뭐 하려고 사냐!”는 대답이 돌아왔단다.
인생은 질서에서 무질서로, 엔트로피가 높아지는 과정의 연속이다. 시간이 흐를수록 가장 안정적인 상태에서 가장 불안정한 상태로 모든 것이 흩어진다. 단단했던 얼음은 분자의 결속이 느슨해지며 이리저리 흐르는 물이 된다. 자주 입은 검은색 티셔츠는 염색약 조직이 섬유 조직에서 떨어져 나가 희끗희끗해진다. 디퓨저에서 좋은 향이 퍼지는 것도 엔트로피 증가의 원칙 때문이다. 병 속에 빼곡하게 밀집돼 있던 향수 기체는 넓은 공간으로 무질서하게 퍼져 나간다. 우주는 언제나 엔트로피가 증가하는 방향을 선택한다. 그게 원래 우주의 타고난 성질이기 때문에.
은목걸이는 왜 이렇게 쉽게 변색되냐며 불평할 필요가 없다. 원래 은은 거무튀튀한 휘운석이었다. 땅속에 평화롭게 묻혀 있던 휘운석의 안정적인 상태를 인간이 억지로 캐내 용광로에 집어넣고 엄청난 열에너지를 쏟아부어 제련시켰다. 온갖 불순물이 뒤섞여 있던 광물로부터 순수한 은을 뽑아내 아주 규칙적이고 촘촘하게 배열한 불안정한 질서. 엄밀히 말해 이건 자연의 순리를 거스르는 일이기에 은 입장에서는 기회만 되면 다시 이 불안정한 상태를 탈피해 원래의 편안하고 안정적인 저에너지ㆍ고엔트로피 상태인 휘운석으로 돌아가려는 것이다. 우리는 이 우주적 질서를 거스르기 위해 계속 은목걸이를 쓸고 닦고 세척하며 엔트로피를 낮추려 한다. 영원하지 않다는 걸 알면서, 끝내 막아낼 수 없다는 걸 알면서도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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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게 삶이다. 계속해서 흩어지는 에너지를 어떻게든 붙잡아보려고 애쓰는 것. 어쩔 수 없는 것을 어떻게든 해보려는 것. 무질서에 대한 영원한 저항. 아무것도 안 하고 가만히 부서져 내리는 흐름에 몸을 맡기는 게 안락할 수도 있겠지. 그러나 우리는 찰나의 질서와 형태를 만들기 위해 그리도 애를 쓴다. 녹아내린 얼음물은 아무 데로나 흐르고 향수병을 떠난 향기는 어디로든 퍼지는데, 그 무량하고 무한한 경우의 수 속에서 인간은 ‘스스로 선택하기’를 선택했다. 영원히 얼음을 얼릴 수 없다면 내가 원하는 잔에 그 물을 담기라도 해야 하는 것이다. 내가 원해서 선택한 것만이 나를 나로서(또는 나로써) 유지하고 충족시키니까. 그래서 행복해지는 데는 반드시 노력이 필요하다.
개복치같이 ‘퍽’하면 손실되는 근육을 유지하기 위해 오늘도 애써 운동하고 약간은 신경 써서 점심 메뉴를 고른다. 조금 멋쩍고 귀찮지만 연락이 뜸한 지인에게 ‘잘 지내세요?’라는 안부를 보낸다. 왜 그래야 하는지 아직도 이해할 수 없지만 외출했다 돌아오면 애인에게 집에 왔다고 알려준다. 그래야 흩어지지 않으니까. 내 근세포도, 내 사랑하는 관계들도. 무위로 돌아가는 것이 지극히 당연한 걸 알면서 저항하는 건 영원하기 위해서가 아니라 존재하는 동안 잘 있기 위해서 한 순간에 추락하지 않고 예쁘게 잘 내려앉기 위해서. 그걸 깨닫기 위해 사람들은 산에 오르고 내일 다시 펼쳐볼 서류 뭉치를 가지런히 정리한다. 언제나 거기 있는 산이 말해 준다. 애써 보라고. 결과와 상관없이 애쓰는 것 자체로 가치 있다고. 죽을 걸 알면서도 산다. 내려올 걸 알면서도 산에 오른다.
Writer
에리카
여성 전용 헬스장 샤크짐 공동대표. 사무직 직장인으로 살다가 30대에 완전한 ‘운동인’으로 각성했다. 더 많은 여자가 운동해야 한다는 믿음 하에 <떼인 근력 찾아드립니다>를 펴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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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redit
- 에디터 전혜진
- 글 에리카
- 사진 ©unsplash
- 아트 디자이너 김민정
- 디지털 디자이너 오주영