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엘르보이스] 꼰대가 돼가는 걸까요?
2020.01.31

‘자신의 사고방식을 타인에게 강요하는 직장 상사나 나이 많은 사람을 가리키는 말.’ 뜻을 굳이 찾아보지 않아도 사회생활을 한 사람이라면 ‘꼰대’가 무엇인지 경험으로 알고 있다. 술자리 속풀이에 가까웠던 이야기가 어느덧 사회적으로도 확장돼 ‘안티 꼰대’ 정신으로 퍼지고 있기 때문이다. 술 강권하지 않기, 사생활 묻지 않기, 폭언하지 않기 등 직장 내 ‘꼰대질’을 경계하는 교육도 심심찮게 이뤄지고 있다. 하지만 그 누구도 본인이 ‘꼰대’일 거라고 생각하지 않는다. 모두가 피해야 하는 그 ‘절대 악’ 혹은 절대 악적인 존재가 되고 싶은 사람은 없을 테니 말이다.
패기 넘치던 21세, 대학교에 입학한 나는 무척 들떠 있었다. 재수를 해 1년 늦게 학교에 들어갔지만, 모두가 상식적이고 합리적이며 평등할 것이라는 ‘진리의 상아탑’에 대한 믿음은 견고했다. 한 학번 높은 선배들과도 나이가 같으면 말을 놓고 격의 없이 지냈다. 하지만 1년 뒤 듣게 된 것은 “우리 과는 학번제야”라며 존댓말을 해야 한다는 선배의 청천벽력 같은 말이었다. ‘과대표가 되면 바꿔야지’란 생각으로 불합리하다고 생각했던 ‘그’ 학번제를 꾹 참고 학교생활을 했다. ‘학번’이 권력인 줄 안다며 선배들이 ‘꼰대’라고 생각했다. 하지만 막상 과대가 되니 정신없이 시간이 흘러갔고, 1학년 때의 다짐은 생각도 못 한 채 졸업을 향해 달려가는 나를 발견했다. 심지어 학번제에도 나름의 이유가 있을 것이라는 자기합리화까지 하면서 먼저 들어온 사람에 대한 예의를 갖추는 것도 나쁘지 않다고 생각했던 것 같다. 어쩌면 1학년 때 불합리하다고 생각했던 선배들의 ‘꼰대’ 의식을 그대로 계승하고 있었던 건 아닐까. 잊고 있던 이 일이 생각난 건 회사에 들어온 후배를 ‘이해하려는’ 나를 발견하면서부터다. 상사가 내 주말 생활에 본인을 대입하며 ‘힙’하다고 칭찬했을 때 기분이 썩 좋지 않았던 적이 있었는데 말이다. 나도 어느 순간 후배들의 사고방식을 조금이라도 ‘이해’하지 못하면 발버둥을 치며 따라가려 했다. 모르는 신조어도 죽을 둥 살 둥 따라잡으려 애썼다. 신곡과 새로 데뷔한 아이돌의 이름을 외며 ‘아직 죽지 않았음’을 뽐냈다. 간혹 그들의 문화가 이해되지 않으면 내 방식으로 그들을 설득하려 했다. 내가 이해하지 못하는 트렌디하고 재미난 일은 없을 것이라고 생각하면서 말이다. 그것이 나를 ‘꼰대’로 만들고 있었다.
나이는 누구나 먹는다. 그것은 누구나 시간이 흐르면 노력 없이 얻을 수 있는 것이다. 노력 없이 가만히 있다가 얻은 나이를 권력으로 알고, 모든 것을 통제하에 두려는 모습은 때로 안쓰럽다. 모든 것을 내가 이해할 수 있어야 한다고 생각할 때, 그리고 내가 그것을 이해할 수 없다는 것을 인정하지 않을 때 우리는 ‘꼰대’가 된다. 있는 그대로 바라보는 것, ‘내가 틀릴 수 있음’을 인정할 수 있는 힘이 중요하다. 요즘 나는 후배에게 먼저 식사나 술자리를 묻지 않는다. 먼저 그들이 나에게 마음을 열 때까지 있는 그대로 바라보려 애쓴다. 아직 직장 생활 5년 차밖에 되지 않았음에도 점점 ‘꼰대’ 직전인 ‘곤대’가 되어가는 나를 보면서 그러지 말자고 다짐한다. 2020년에는 우리 모두 좀 더 강물처럼 자연스럽게 흘러갈 수 있길!
Writer 이은재 SBS PD. 유튜브 콘텐츠 <문명특급> MC 혹은 ‘연반인 재재‘로 좀 더 친근하다. 가볍고 재기발랄한 방식으로 세상에 생각할 거리를 던지고 싶어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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재재
SBS PD. 유튜브 콘텐츠인 〈문명특급〉 MC 혹은 ‘연반인 재재’로 좀 더 친근하다. 가볍고 재기발랄한 방식으로 세상에 생각할 거리를 던지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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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글 이은재
- 에디터 이마루
- 사진 Unsplash(Jason Rosewell)
- 디자인 오주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