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브루탈리스트'가 소환한 브루탈리즘 건축 걸작
올해 가장 주목할 만한 걸작과 함께 브루탈리즘이 돌아왔다.
전체 페이지를 읽으시려면
회원가입 및 로그인을 해주세요!
브루탈리즘 건축가의 런던 아파트
전형적이지 않은 주거 디자인으로 브루탈리즘 운동 당시 가장 흥미로운 건축물을 만들어낸 헝가리 출신의 건축가 에르노 골드핑거(Erno˝ Goldfinger). 그가 설계한 런던 동쪽의 ‘밸프런 타워’는 골드핑거의 대표작이다. 아파트 형태에 대한 선입견을 깨고 주거 타워와 서비스 타워를 분리해 긴 복도로 연결하는 레이아웃을 선보였다. 서비스 타워에는 엘리베이터와 계단, 세탁실이 마련돼 있는데 거주하는 주거 타워로 연결되는 복도가 3개 층마다 하나씩 설치돼 있다. 이는 일련의 수평적인 띠를 형성하며, 84m에 달하는 건물 높이와 대조를 이룬다. 골드핑거의 아이디어는 영국 전역에 있는 슬럼가를 위한 대안 주택 디자인이었다.

최근 밸프런 타워를 현대식 주거 기준에 맞게 개조하는 프로젝트가 실행돼 건물에 새로운 생명을 불어넣었다. 건축과 조경, 도시를 디자인하는 스튜디오 이그렛 웨스트(Studio Egret West)가 1960년대에 지어진 이 건물의 유산과 디테일을 잃지 않으면서 현대적 용도와 현행 규정에 맞게 개선했다. 기존 구조물은 유치한 채 노출 콘크리트를 깨끗하게 청소하고 화재 예방과 방수, 단열 등 안전 및 내부 시설을 보강했다. 또 서비스 타워에는 골드핑거의 비전을 실현하기 위해 영화관 · 체육관 · 도서관 등 주민 복지 시설을 향상시켰고, 주변 지역과 재통합해 커뮤니티를 조성했다. 다시 활기를 되찾은 이 상징적인 건물에는 지속 가능한 미래만이 남았다.

북미 브루탈리즘 건축의 아이콘
‘가장 큰 규모의 실수(A blunder on the grandest scale)’. 1974년 토론토 대학교 로바츠 도서관 개관 당시 어느 건축가가 남긴 비평이었다. 당시 로바츠 도서관 건축디자인은 환영받지 못했다. 끊임없는 비방에도 불구하고 이 건축물이 북미 브루탈리즘 건축 아이콘으로 자리매김할 수 있었던 이유는 색다른 설계 방식 덕분이었다. 1973년 뉴욕 건축회사인 워너, 번스, 토앤 & 룬드(The Firm of Warner, Burns, Toan & Lunde)와 지역 건축 스튜디오인 매더스 앤 할덴비(Mathers & Haldenby)가 설계했다. 지난 반세기 동안 건축계에 보편화돼 있던 ‘직각’에서 벗어나 크고 작은 삼각형 덩어리를 모은 ‘등각투상법’을 적용했다. 등각투상법은 각각 120°를 이루는 세 개의 기본 축 위에 물체의 높이와 너비, 안쪽 길이를 옮겨 나타내는 투상법이다.

문화유산으로 등재된 로바츠 도서관은 기존 건축은 존중하되 현대적인 학습 스타일과 장비 업그레이드가 필요했다. 이를 위해 토론토 건축설계사 슈퍼퀼(Superku..l)은 건물 4층에 있는 열람실을 새롭게 단장했다. 노출 콘크리트와 거대한 기둥, 삼각형 천장 격자 등 고유한 공간적 특성을 분석해 이를 포용하는 해결책을 제안했다. 대칭적인 레이아웃을 강조해 명확한 시야를 확보하고, 음향 전문가 팀과 협력해 천공 목재와 금속 패널을 사용해 실내 건축과 조화를 이루는 방음 시스템을 만들었다. 콘크리트가 주를 이루는 공간에 천연 소재로 맞춤 디자인한 가구를 배치해 공간에 따뜻함을 더했다.
아르헨티나 브루탈리스트의 집
건축디자인 역사에서 중요한 자료가 되는 작품이 한 세기도 지나지 않아 훼손되고 있다. 이를 해결하기 위해 세계건축유산을 보존하는 비영리단체 세계기념물기금(WMF)은 가구 브랜드 놀(Knoll)과 함께 격년으로 근대건축을 혁신적으로 보존하는 건축가와 단체에 ‘모더니즘’ 상을 수여한다. 2024년 수상자는 ‘카사 소브레 엘 아로요’를 복원한 아르헨티나 문화 및 공공사업부와 마르 델 플라타(Mar del Plata) 지방자치단체다. ‘개울 위의 집’이라는 의미를 가진 이곳은 라틴아메리카의 모더니즘 건축을 이끈 아만시오 윌리엄스(Amancio Williams)가 음악가 아버지를 위해 지은 집이다.

지금은 개울이 사라졌지만, 당시 흐르던 물 위로 다리 형태의 콘크리트 아치를 만들고 그 위에 집을 올렸다. 풍경을 조화롭게 통합한 건축물로 많은 주목을 받았다. 그러나 아만시오의 아버지가 사망하자 지역 사업가가 건물을 매입해 관리했지만, 승계 문제로 방치된 건축물이 됐다. 화려했던 지난날의 명성이 무색할 만큼 집은 수년 동안 버려지고 파손됐으며 화재까지 겪었다. 그러나 아르헨티나 정부의 끊임없는 관심 덕에 보관된 스케치를 기반으로 원래 구조와 유사한 재료, 기술 및 방법론을 적용한 철저한 복원으로 다시 제 모습을 되찾았다. 현재는 아르헨티나 근대유산을 감상하고 보존하기 위한 박물관으로 재탄생했다.

그리스 브루탈리즘
1970년 그리스에서 보기 드문 브루탈리즘 건축물이 소나무 숲에 지어졌다. 아테네 근교 도시 아티카에 있는 사무 공간은 알렉산드로스 톰바지스(Alexandros Tombazis)가 설계했다. 알렉산드로스는 그리스의 현존 건축가로 건축 당시 최대 철근 콘크리트 회사의 요청으로 건물을 완성했다. 그러나 마지막 임차인이 베이지 컬러로 건물 외벽을 칠해 브루탈리즘 정체성이 왜곡됐고, 상당 부분이 손상됐다.

형식보다 인류에게 필요한 건축물을 만드는 데 주력하는 게오르게스 바트지오스 건축사무소(Georges Batzios Architects)는 외벽 복원을 위해 현장에서 콘크리트 샘플을 채취해 화학적으로 분석한 후 그에 맞는 시멘트를 전체 콘크리트 표면에 발랐다. 그리고 가천장과 여러 설비들로 가려져 있던 와플 모양의 천장 구조를 발견하고, 이를 내부 디자인의 중심으로 삼아 그리드에 따라 공간을 과감하게 재배치했다. 건물 속에 감춰진 아름다운 속성을 드러내는 동시에 건물 내부를 새롭게 정의한 것이다. 기존 건축물이 가진 아름다움을 보존하고 극대화한 환상적인 신구 협업이 이뤄진 것이다.

Credit
- 에디터 권아름
- 사진 DOUBLESPACE·MANUEL GÓMEZ·GEORGE SFAKIANAKIS
- COURTESY OF SUPERKÜ·WMF·GEORGES BATZIOS ARCHITECTS
2025 가을 필수템 총정리
점점 짧아지는 가을, 아쉬움 없이 누리려면 체크하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