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TAR

이준혁 인터뷰 "비밀은 말하면 비밀이 아니죠"

자신이 마음껏 발견되도록 내버려두는 이준혁. 그 유연하고 다채로운 남자의 세계.

프로필 by 김명민 2025.02.26

인터뷰는 이준혁 인터뷰 "멜로에 어울리지 않는다고 생각했어요"로부터 이어집니다.


실제로 직장인 친구가 많다면서요. 친구들에게 물어본 것도 있었나요

엄밀하게 <나의 완벽한 비서>는 오피스물이라고 볼 수 없어요. 중요한 건 극중 두 사람의 관계이고, 약간의 사무실 에피소드가 더해진 정도랄까요. 그렇게까지 적나라한 회사원들의 현실이 담기지는 않았습니다. 오히려 회사원 친구들은 <비밀의 숲>을 보며 동재 쪽에 많이 공감하더군요. 야근하다가 전화 오면 바로 뛰쳐나가거나 회사에 출근하며 욕하는 장면들. 그런 부분을 <나의 완벽한 비서>에 녹일 수는 없으니까.


롱 코트와 팬츠, 첼시 부츠, 에버그린 컬러의 페블 버킷 라지 백은 모두 Loewe.

롱 코트와 팬츠, 첼시 부츠, 에버그린 컬러의 페블 버킷 라지 백은 모두 Loewe.

그렇네요. 어쩌면 일상은 로맨스보다 스릴러에 가까울지도

… 네, <나의 완벽한 비서>는 오히려 회사 생각이 나지 않게 해야 하지 않을까(웃음).


은호는 참 좋은 아빠이기도 했어요. 딸을 홀로 키우는, 애틋하고 애달픈 마음에 대해서도 고민했겠습니다

그럼요. 실제로 아이가 없으니 ‘딸’이라는 대상과의 연기에서 걱정도 꽤 했습니다. 그래서 현장에서 별이 역의 기소유 배우와 많은 대화를 나눴는데, 참 프로페셔널한 친구였죠! 육아의 현실을 보여주는 드라마는 아니예요. 세상에는 현실을 보여주며 바뀌어야 할 부분을 꼬집는 작품이 있는가 하면, 청사진을 보여주는 것도 있죠. 비록 그것이 판타지처럼 느껴질지언정 힘을 내게 하고, 나아가야 할 희망 가득한 ‘상’을 제시해 주는 것도 필요해요. 두 방향성이 골고루 필요하다고 생각하는데 이번에는 후자의 방향으로 나아가려 했죠.


수트 재킷과 실크 셔츠는 모두 Loewe.

수트 재킷과 실크 셔츠는 모두 Loewe.

멜로도 좋지만 개인적으로는 단정한 얼굴에 눈알이 살짝 돌아 있는 ‘미친놈’ 같은 모습도 좋아요. 예컨대 <60일, 지정생존자>의 영석, <비질란테>의 강옥 같은 캐릭터를 연기할 때는 어떤 식으로 스스로를 꺼내놓나요

워낙 영화를 많이 보다 보니 한때는 뒤틀린 인간상에 끌렸어요. 제가 작품을 통해 좋아했던 배우들이 해온 선택에 근접하게 다가가려고 했죠. 레오나르도 디카프리오도 <장고: 분노의 추적자>에서 몹쓸 악역을 했었고, 그가 <더 울프 오브 월 스트리트>에서 연기한 조단 벨포트 역은 동재와 비슷한 부분이 많아요. 크리스천 베일을 보면서 저도 변신에 능하면 좋겠다 싶어 살을 찌웠다 뺐다 하고요. 물론 건강을 해치는 일이었지만(웃음). 그렇게 부딪혀왔던 거죠. 콘텐츠의 열렬한 ‘소비자’로서 이준혁은 거의 모든 영화를 좋아해요. 조금 이상한 캐릭터가 나오든, B급이든 C급이라 불리든 상관없이요. 그렇기에 다양한 장르에 겁없이 달려들 수 있었던 것일지도요.


온화한 표정 뒤편, ‘돌진’과 ‘돌파’에 능한 배우입니다. 20여 년 가까이 연기해 오며 어떤 추진력으로 스스로를 이끌어왔나요

캐릭터들을 되려 저와 철저히 분리했던 것 같아요. 사실 저는 전면에 나서는 것 자체를 두려워하는 편이었어요. 그런 의미에서 멜로나 로코가 더욱 두려웠는데, 배우 개인의 매력이나 장기로 흘러가는 경우가 많으니까요. 그러니 저만의 연기 접근법이라면 나를 최대한 외면하는 식이었어요. 다만 그럼에도 감독님이나 오늘처럼 포토그래퍼에게 제가 다시 발굴되거나 만들어질 수는 있다고 봐요. 프레임에 내포된 의미를 해석하는 과정이 즐거워서 영화를 좋아하는데, 어떤 프레임에 있는 이준혁을 객관적으로 해석했을 때 재미가 생겨요. 프레임 속의 주사위를 입에 문 제가 존재하는 오늘처럼…. 그걸 온전히 즐길 수 있다고는 말 못 하겠지만, 모두가 공동의 목표로 그간 없던 추상적인 것을 탄생시키고, 그걸 전하는 과정이 흥미로워요. 어쩌면 그게 제 동력이죠. 그러니까 생각보다 순수한 동기로 걸어왔던 것 같아요.


캐시미어 스웨터는 Loewe.

캐시미어 스웨터는 Loewe.

영화 마니아로서 요즘 새로 빠진 장르가 있나요

오컬트에 한번 들어가보려고요. 마니아까지는 아니지만, 오컬트나 좀비물을 꽤 좋아해요. 최근 <수퍼내추럴>을 봤는데 괜찮더군요.


이준혁의 오컬트라니요! 부디 출연하길 바랍니다. 그 밖에도 우리가 당신에 관해 모르는 한 가지만 말해 줄 수 있나요. 지켜보기에 참 재미난 사람인 것 같거든요

비밀은 말하면 비밀이 아니죠(웃음)?


보머 재킷과 탱크톱, 카고 팬츠는 모두 Loewe.

보머 재킷과 탱크톱, 카고 팬츠는 모두 Loewe.

역시 재밌어요(웃음). <나의 완벽한 비서>에서 두 주인공은 서로에게 ‘참 잘했어요’ 도장을 찍어주었습니다. 요즘 스스로 도장을 찍어주고 싶은 구석이 있다면

40대가 됐으니 부인하려 해도 부인할 수 없는, 성실하게 채워온 노동량이 존재합니다(웃음). 원래 개근하는 타입이 아닌데 배우 일에 개근하고 있는 모습을 보면서 일을 정말 좋아한다는 것, 객관화해서 스스로를 봐도 정말 열심히 살아가고 있다는 것이 느껴져요. 이런 측면은 인정할 수 있을 것 같아요.


로고 티셔츠는 Loewe.

로고 티셔츠는 Loewe.

작가는 ‘서로를 너그럽게 봐주는 어른들의 이야기’라고도 말했습니다. 이준혁은 어른인가요

오래전에 어른이 됐지만, 좋은 어른이 되는 건 여전히 힘들어요. 그건 데미지에 대한 내성을 뜻하는 것 같은데요. 현장은 늘 리스크가 가득하지만, 전보다 여유롭게 대처하고 덜 흔들립니다. 하지만 그에 비해 다른 개인적인 것들, 그러니까 새로 겪어보는 상황 앞에서는 여전히 흔들린단 말이죠. 겪어보지 못한 세계에서 저는 다시 다져나가야 하는 단계인 것 같아요. 그럼에도 직접 경험하고 확인해 본 것에 관해서는 훨씬 너그럽고 든든하게 알려줄 수 있는 사람이 진짜 어른 아닌가 싶어요.


쇼트 슬리브 셔츠와 플리츠 팬츠, 첼시 부츠는 모두 Loewe.

쇼트 슬리브 셔츠와 플리츠 팬츠, 첼시 부츠는 모두 Loewe.

너그럽고 든든한 이준혁만의 언어로 사랑을 다른 단어로 바꿔본다면

신뢰. 믿음이 온전히 교환되면 우리는 서로 마음을 준다고 느끼는 것 같아요. ‘가치 교환’이 나쁜 말은 아니니까. “사랑해”라고 말하면 조금 어려워요. 그것은 순간의 충동일 수도, 또 다른 것일지도 모르죠. 하지만 “내가 당신을 신뢰해”라고 말하면 제게는 더 명확한 것 같아요.

Credit

  • 패션 에디터 김명민
  • 피처 에디터 전혜진
  • 사진가 김신애
  • 스타일리스트 박현지
  • 헤어 스타일리스트 가희 (ARTISICHACHA)
  • 메이크업 아티스트 지예 (ARTISICHACHA)
  • 세트 스타일리스트 권도형 (ONDOH)
  • 아트 디자이너 김지은
  • 디지털 디자이너 오주영
  • 어시스턴트 이민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