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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이아몬드보다 핫하다? 투르말린이 주목받는 이유

어느 때보다 뜨겁게 회자되고 있는 보석, 투르말린. 하이 주얼리 브랜드들이 앞다투어 투르말린을 선택하는 이유는 무엇일까.

프로필 by 김효정 2025.08.08
화이트 골드에 인디콜라이트 투르말린을 세팅한 ‘플로레센스’ 네크리스는 LOUIS VUITTON.

화이트 골드에 인디콜라이트 투르말린을 세팅한 ‘플로레센스’ 네크리스는 LOUIS VUITTON.


네온 블루빛이 강렬한 한 보석이 전 세계를 사로잡고 있다. 바로 파라이바 투르말린이다. 작년 크리스티 홍콩 경매에서 캐럿당 11만 달러에 낙찰되고, LA 본햄스 경매에서는 추정가를 10배나 뛰어넘는 기록을 세웠으며, 국내에서는 지드래곤이 88억 원짜리 투르말린 반지를 착용하며 폭발적 화제를 모았다. 티파니부터 불가리, 루이 비통까지 내로라하는 럭셔리 브랜드들 역시 투르말린에 주목하는 중이다. 이들의 선택은 우연이 아니다. 전통 3대 유색석의 가격이 치솟으면서 고품질 원석의 확보가 갈수록 어려워지는 반면 투르말린은 한 보석군에서 무지갯빛 스펙트럼을 모두 구현할 수 있다. 디자인 측면에서 자유도가 높으면서도 상대적으로 합리적인 가격에 희소성과 스토리를 동시에 확보할 수 있는 것이다.


지구가 빚어낸 무지개

브라질 파라이바주 바탈리아 광산에서의 극적인 발견이 모든 것의 시작이었다. 1981년부터 한 광부가 이 언덕 어딘가에 지금까지 본 적 없는 푸른 보석이 있을 거라는 믿음으로 채굴을 계속했다. 수년의 집념 끝에 마침내 첫 번째 원석을 발견했고, ‘네온 투르말린’이라는 이름으로 본격 공개했다. 햇빛 아래서 전기가 흐르듯 번쩍이는 네온 블루의 결정체, 구리와 망간이 지구 깊숙한 곳에서 오랜 세월에 걸쳐 완성한 걸작이었다. 이후 발견지의 이름을 따 ‘파라이바 투르말린’으로 불리게 되었다. 투르말린은 단일 결정군으로는 가장 다양한 색을 지닌 보석이다. 붕소, 철, 망간, 구리 같은 원소들이 공존하며 만들어낸 색의 혼합은 지질학적 격동기와 복합적인 광물 환경을 말해준다. 다이아몬드가 고온고압의 상징이라면, 투르말린은 복합성과 다양성의 증거물이다.


원산지가 만들어낸 또 다른 가치

2000년대에 들어 나이지리아와 모잠비크에서도 화학적으로 동일한 성분의 투르말린이 발견됐다. 국제보석학회는 구리 함유량을 기준으로 모두 파라이바 투르말린으로 분류했지만 보석 시장에선 더 세심하게 구분한다. 현재 브라질 파라이바의 채굴량은 이미 바닥났고 모잠비크가 세계 최대 생산국이 되었다. 하지만 산업구조는 다르다. 모잠비크에선 주로 원석을 채굴만 하고 가공과 유통은 태국이나 홍콩 같은 보석 거래 중심지에서 이뤄진다. 반면 브라질은 채굴부터 연마까지 자체적으로 처리하는 전통 보석 국가다. 이런 차이는 가격에도 반영되는데, 브라질산의 경우 ‘최초 발견지의 신화’와 함께 프리미엄이 붙는다. 일반적으로 브라질산이 더 강렬한 네온 컬러를 띠지만 최근에는 모잠비크산 고품질 원석도 이에 못지않은 색상을 구현한다. 그럼에도 브라질 파라이바 광산이 사실상 고갈된 시점에서 원조의 가치는 더욱 부각되고 있다.


매혹적 컬러가 지닌 매력

투르말린의 진짜 매력은 한 보석군에서 펼쳐지는 놀라운 색채 스펙트럼에 있다. 각 색상마다 고유한 성격과 메시지가 있어 마치 한 가족이 각자 다른 삶을 사는 듯하다. 투르말린계의 여왕은 루벨라이트다. 라즈베리부터 딥 레드까지 루비 못지않은 스펙트럼을 보여주며 컬러마다 그 매력이 사뭇 다르다. 루비가 권위를 대변한다면, 루벨라이트는 더 자유롭고 감각적이다. 순수한 적색에 가까울수록 가치가 높게 매겨진다. 푸른빛을 띠는 인디콜라이트는 깊은 바다의 신비를 품었다. 사파이어가 하늘의 고귀함을 상징한다면 인디콜라이트는 심해의 고요함을 담는다. 강한 다색성으로 인해 보는 각도마다 다른 청색 톤을 보여준다. 파라이바 투르말린은 단연코 투르말린계의 슈퍼스타다. 전기가 흐르는 듯한 네온 블루 빛깔은 초현실적인 느낌을 주며, 미래적이고 혁신적인 감성을 대변한다. 라군 투르말린은 마케팅의 승리작이다. ‘블루-그린 투르말린’이라는 딱딱한 이름에서 ‘라군’으로 바뀌면서 완전히 새로운 존재로 거듭났다. 하나의 결정 안에서 두 가지 이상의 색상이 조화를 이루는 파티 컬러 트루말린은 세상에 단 하나뿐인 매력을 지닌다.


오렌지와 핑크, 옐로 컬러가 그러데이션된 투르말린을 세팅한 ‘조이’ 링은 LOUIS VUITTON. 파라이바 투르말린과 다이아몬드를 세팅한 ‘웨이브 파라이바 투르말린’ 링은 TIFFANY & CO. 핑크 투르말린과 다양한 컬러의 유색석을 세팅한 ‘엔들리스 스프링’ 링은 BVLGARI. 블루-그린 투르말린을 세팅한 ‘플로레센스’ 브레이슬릿은 LOUIS VUITTON. 그린 투르말린과 다이아몬드를 세팅한 ‘로즈’ 링은 PIAGET.

브랜드의 전략적 선택

투르말린은 표준화를 거부하는 보석이다. 보는 각도에 따라 색상이 달라지는 다색성 현상을 얼마나 섬세하게 활용하느냐가 완성도를 좌우한다. 바이컬러 투르말린에서는 이런 철학이 더욱 극명하게 드러난다. 두 가지 색이 만나는 경계를 어떻게 처리하느냐에 따라 평범한 돌이 예술품으로 승화되기도 한다. 그렇다면 럭셔리 브랜드는 왜 이처럼 까다로운 보석을 선택할까? 이들은 투르말린을 통해 각자의 정체성을 드러낸다. 불가리는 46.72캐럿 핑크 투르말린으로 로마 건축의 삼각형 지붕 장식을 표현하며 화려한 색과 희소성을 동시에 잡았다. 2025년 폴리크로마 컬렉션에서 영원불멸의 로마와 현대 여성의 역동성을 하나로 담아낸 것이다. 티파니는 다른 방향을 택했다. 모잠비크산 쿠프리안 엘바이트 투르말린으로 바다의 파도를 표현하며 브랜드가 오랫동안 추구해온 바다와 신화의 세계를 재해석한 것. 2025년의 ‘시 오브 원더(Sea of Wonder)’ 컬렉션은 19세기 뉴욕의 우아함과 21세기 감각을 투르말린을 통해 연결한 결과다. 루이 비통은 173.05캐럿 브라질산 인디콜라이트와 164.34캐럿 루벨라이트를 모노그램 플라워 디자인과 결합해 ‘전통과 혁신의 조화’라는 메시지를 전한다. 이들의 공통점은 다이아몬드가 줄 수 없는 ‘스토리텔링’을 투르말린에 담아내는 것이다. 브랜드들은 더 이상 보석을 귀하다는 점만으로 고르지 않는다. 색이 지닌 문화적 맥락, 고유의 원산지처럼 서사가 있는 보석을 원한다. 그중에서도 브랜딩이 가능한 유색석의 대표 주자로 투르말린이 떠오르는 중이다.


새로운 현상이 된 유색석

유색석의 인기는 투르말린에만 국한되지 않는다. 스피넬과 가닛도 이미 하이 주얼리 브랜드와 경매 시장에서 주목받고 있는 스톤이다. 각각 적색을 넘어 블루, 바이올렛, 오렌지까지 아우르는 광범위한 컬러 스펙트럼으로 선택을 폭을 넓혔다. 유색석의 인기가 전하는 메시지는 분명하다. 21세기에는 보석의 가치가 더 이상 캐럿 숫자나 투명도만으로 결정되지 않는다는 것. 유색석 열풍은 단순히 아름다운 색상만의 문제가 아니라 ‘어디에서 왔는지’, ‘어떤 이야기를 담고 있는지’ 고유의 히스토리 역시 중요한 요소가 되었다. 희소성과 원산지, 럭셔리의 브랜딩이 절묘하게 맞물리며 보석이 비로소 시대를 상징하는 ‘현상’이 되는 것이다. 1980년대 한 광부의 확신이 이제 전 세계 경매장과 럭셔리 부티크, 젊은이들의 SNS까지 점령했다. 파라이바 투르말린을 손에 쥔 이들이 공통적으로 하는 말이 있다. 살아 있는 듯한 느낌이 든다는 것이다. 그리고 그 이야기를 해석하고 소비하는 주체는 더 이상 왕족이나 귀족이 아닌 우리 모두가 되었다. 브라질 언덕에서 시작된 한 광부의 꿈이, 이제 전 세계인의 손과 목에서 새로운 빛을 발하고 있다.

writer 윤성원(주얼리 스페셜리스트·한양대학교 공학대학원 보석학과 겸임교수)

Credit

  • 에디터 김효정(미디어랩)
  • 글 윤성원
  • 일러스트레이터 김도트
  • 아트 디자이너 김려은
  • 디지털 디자이너 김려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