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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토트넘 레전드' 손흥민 인터뷰 다시 보기

토트넘의 손흥민이 엘르에 기록한 진심과 확고함.

프로필 by 김영재 2025.08.03

손흥민은 토트넘 홋스퍼의 유니폼을 입고 누구보다 빠르게 달렸습니다. 누구보다 아름답게 웃었습니다. 그라운드는 손흥민의 열정으로 빛났고, 팬들의 기억은 손흥민의 세레머니로 물들었습니다. 10년이라는 시간 동안 손흥민은 그저 오래 머문 선수가 아니라 토트넘의 상징으로 거듭났습니다. 손흥민이 토트넘의 7번이었기에 우리는 축구를 사랑할 이유가 더 많았습니다.


엘르 2021년 10월호 화보

엘르 2021년 10월호 화보

‘굿바이, 토트넘.’ 손흥민이 올여름을 끝으로 토트넘과의 동행에 마침표를 찍습니다. 통산 454경기 173골, 프리미어리그 아시아 선수 최초 득점왕, 토트넘 구단 역대 최다 도움 1위, 구단 역사상 외국인 선수 중 최다 득점자, 장장 17년 동안 이어진 토트넘의 무관을 끊은 캡틴. 손흥민은 토트넘의 진정한 레전드라는 사실에 이견은 없을 것입니다. 여기에 더해 손흥민은 화려한 타이틀과 기록만으로 평가되는 선수가 아니었죠. 부상을 안고 뛰었고 팀이 흔들릴 때도 이탈하지 않았습니다. 수많은 전술 변화 속에서도 늘 맡은 역할을 다했습니다. 경기장에서의 태도, 동료를 향한 헌신은 또 어떻고요.


손흥민은 토트넘에서 뛰는 동안 서울과 런던에서 <엘르>와의 만남을 여럿 가졌습니다. 만날 때마다 손흥민은 그저 한결같았습니다. 그 마음을 스스로 잊지 않으려는 것처럼 축구를 향한 엄청난 열정과 진심, 소속팀에 대한 애정, 국가대표라는 사명감을 말하고 또 나누었습니다. 여기, 손흥민의 말들을 다시 꺼내 모았습니다. 때마침 토트넘 유니폼을 입고 마지막이 될지도 모르는 경기가 있는 날입니다. 더구나 일요일. 오늘은 ‘슈퍼 SON데이’입니다.


엘르 2024년 10월호 화보

엘르 2024년 10월호 화보

“사람들이 생각하는 것보다 저는 훨씬 더 축구를 좋아해요”라고 스스럼없이 말할 정도로 축구 ‘덕후’예요. 축구에 관심 없는 사람에게 이 종목의 아름다움을 말해 준다면

음, 제가 진짜 좋아하는 부분에 대해 이야기할게요. 8만 명이 경기장에 입장한다면 대체 몇 개의 눈이 하나의 축구공을 바라볼까요? 저는 그렇게 많은 사람의 시선이 공 하나, 선수의 사소한 움직임 하나에 때로는 실망하고 행복해하며 열광한다는 것, 선수와 팬 사이의 일체감이 정말 아름답게 느껴져요. 열광하는 법을 배워보세요. TV로 보다 보면 어느 순간 경기장에 가고 싶고, 경기장에 한번 가보면 구장의 잔디 냄새가 궁금해지고, 선수들의 숨소리나 땀방울을 더 가까이에서 느껴보고 싶을 거예요. 저는 축구를 사랑하는 사람이 더 많아지면 좋겠어요.


사람들은 때로 경기에 임한 이들의 스포츠맨십 때문에 감동받기도 해요. 선수로서 가장 중요하게 여기는 정신은

제가 지향하는 삶의 모든 키워드와 연결되는데 ‘존중’이에요. 제가 경기장에서 최선을 다하는 것도 결국 그 때문이거든요. 저희 팀과 팬들, 그리고 상대 팀을 향한 존중까지요. 상대방이 존재하지 않으면 축구는 경기 자체가 성립되지 않으니까요.


소년 시절, 소위 축구 엘리트 코스와는 다른 길을 걸었습니다. 열일곱 살 때 함부르크 유소년팀으로 연수를 떠나 지금은 프리미어 리그 최고의 선수 중 한 명이 됐고요. 축구의 신이 있다고 믿나요

2018년 러시아 월드컵 조별 리그 당시 독일과의 경기를 앞두고 혼자 기도했어요. 제발 2:0으로 이기게 해달라고. 비록 조별 리그 진출에 실패했지만 정말 2:0으로 승리를 거뒀죠. 축구 신의 존재를 믿는 건 아니에요. 다만 믿음이 존재한다는 것은 느껴요. 자신에 대한 믿음, 축구라는 스포츠에 대한 믿음, 노력에 대한 믿음…. 그런 게 경기 결과를 변화시키죠. 이건 절대 운으로 되는 게 아니거든요.


엘르 2022년 12월호 화보

엘르 2022년 12월호 화보

항상 실력적인 것보다 마인드셋이나 태도에 대한 이야기를 많이 하는 것 같습니다

매일 연습을 하는 한 실력은 사라지지 않아요. 그러나 자신을 흔들고, 의심할 만한 상황은 누구에게나 분명히 오기 마련이죠. 그런 순간 스스로를 믿고 더 강하게 나아가야 해요. 그래야 더 큰 힘이 생기니까요.


선수들에게 정신력은 항상 중요한 문제죠. 특히 필드 위에서 강한 모습을 보여줘야 하고요. 경기장 밖에서도 약한 모습을 드러내는 것이 어색한가요

전혀 주변에 드러내지 않는 편이에요. ‘힘들다’는 말은 아버지에게도 해본 적 없는 것 같아요. 어릴 때부터 대표팀 생활을 했고, 힘든 모습을 보이면 안 되는 사람처럼 여겨졌으니까요. 타고난 낙천성도 한몫했죠. 좋은 일은 오래 간직하되 안 좋은 일은 최대한 빨리 잊는 편이거든요. 안 좋은 상황에서도 좋은 면을 보려 하고요. 그리고 힘들어하다가도 막상 운동장에 들어가면 다 잊어요. 그 순간만큼은 신나게 뛰어놀게 되니까.


승패는 항상 다이내믹합니다. 다음 경기가 있다는 것, 그것은 손흥민에게 부담인가요, 기쁨인가요

내게 최고의 경기를 할 수 있는 기회가 또 한 번 주어졌다는 것. ‘다음 경기’가 제게 의미하는 건 그것입니다. 설령 최고의 모습을 보여주지 못한 경기더라도 그 또한 성장과 배움의 과정일 수 있겠죠. 그러나 다음 경기에 임할 때는 내가 최고의 경기를 펼칠 수 있다고, 정말 그렇게 생각해요. 더 잘할 수 있다고.


엘르 2024년 10월호 화보

엘르 2024년 10월호 화보

치열한 이적 시장, 연봉으로 수백억 원 단위가 거론되는 프로축구의 세계는 엄정하기도 합니다

지금 함께 뛰고 있는 친구와 영원히 함께할 수 없다는 것, 내가 잘한다고 해서 한 팀에 끝까지 있을 수 있는 게 아니라는 사실은 인지하고 있어요. 하지만 어차피 미래 일은 아무도 모르는 거잖아요. 축구뿐 아니라 우리 삶 자체가 그렇죠. 그래서 다시 돌아오지 않을 매 순간을 즐기며 보내는 게 제게는 중요해요. ‘오늘 행복을 내일로 미루지 말자’는 말을 좋아하고 마음 깊이 공감하는 이유예요.


‘주장 손흥민’이라는 수식어가 이제 익숙해졌죠. 한국 선수들과 있을 때의 리더십 그리고 다양한 문화적 배경을 가진 선수들이 모인 토트넘에서의 리더십은 다를 수밖에 없을 것 같은데

사실 비슷해요. 대표팀에서도, 토트넘에서도 어느 순간 ‘고참’이 됐다 보니 18세 때의 나는 선배들을 보며 무슨 생각을 했는지 되새겨보기도 하죠. 누군가가 어떤 모습을 보였을 때 영감을 받고 마음을 다잡게 됐는지. 말로 하기보다 그라운드 안팎에서 사소한 것부터 좋은 모습을 보여주려고 해요. ‘나도 저렇게 해야겠다’는 마음이 자연스럽게 들게 하는 게 제가 생각하는 리더십이에요. 부족하겠지만요.


톰 홀랜드, F1 선수 랜도 노리스, 테니스 신성 에마 라두카누까지. 모두 토트넘의 팬임을 밝혔어요. EPL 여러 구단 중에서 내가 생각하는 토트넘이라는 팀의 매력은

어릴 때부터 가족이 구단의 팬이어서 자연스럽게 응원하게 된 경우도 있고, 특정 선수를 응원하기도 하겠지만 우선은 좋은 선수들이죠! 저희 팀만의 에너지가 확실히 있어요. 선수끼리 호흡도 잘 맞고, 다양한 색이 잘 조합돼 있죠. 잘생기고 젊은 선수가 많기도 해요. 저는 제외하겠습니다(웃음).


엘르 2022년 12월호 화보

엘르 2022년 12월호 화보

요즘 더 각별하게 표현하고 싶은 감정이 있다면

표현력 부족이겠지만 ‘감사하다’는 말이 제가 담고자 하는 감정을 충분히 포괄하지 못한다는 생각은 합니다. 그리고 행복해요. 프리미어 리그에서 10년 동안 사랑받으며 선수로 뛰고 있다는 것 자체가 엄청난 행복이죠.


짧은 시간 동안 요청하는 모든 이에게 사인하거나, 기념 촬영에 응하더군요. 어떻게 그럴 수 있나요

내가 좋아서 시작한 축구인데, 예상치 못한 사랑과 응원을 받으며 뛰고 있죠. 제가 열심히 하는 모습을 이렇게 많은 분이 좋아해주신다는 게 너무나도 감사한 만큼 그 분들께 조금이라도 행복이 된다면 당연히 해야 한다고 생각해요. 그리고 이 정도의 큰 사랑은 현역 선수일 때 받을 수 있는 아주 특별한 일 같거든요.


손흥민은 어떤 사람을 ‘멋지다’고 생각하나요

항상 즐겁게 자신의 분야에서 일하는 사람. 어떤 일을 잘하고 못하는 건 내가 선택할 수 있는 일이 아니에요. 하지만 내가 있는 위치에서 재미있게, 즐겁게 일하는 건 누구든지 할 수 있죠.


엘르 2022년 12월호 화보

엘르 2022년 12월호 화보

여전히 행복한 거죠? 축구할 때

살면서 행복한 순간을 행복한 것인지 모르고 놓치는 순간이 진짜 많거든요? 저는 축구하는 게 너무 재미있어요. 제가 가장 좋아하는 것을 할 수 있어서 정말 행복합니다.

Credit

  • 피처 에디터 이마루
  • 사진가 김희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