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자이언티의 음악은 늙지 않아
대체 불가능한 레퍼런스, 연출된 순간마저 기준이 되는 뮤지션. '척'과 '진짜' 사이에서 자이언티의 초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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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이언티 하면 왠지 겨울이 떠올라요
제 음악에 바스락거리고, 찬바람 같은 무드가 있어서 그런 것 같아요. 겨울이 제 감성과 좀 더 어울리는 것 같기도 하고요.
여름 끝자락에 나오는 이번 앨범 <포저 Poser>가 새롭게 느껴집니다
여름에 앨범을 낸 적이 별로 없어요. 프로젝트 대부분이 하반기 끝에 있었죠. ‘눈’이나 ‘회전목마’처럼 겨울의 심상을 떠올리게 하는 곡이 많기도 하고요.

셔츠와 니트 풀오버, 레더 팬츠와 슈즈는 모두 Ferragamo. 선글라스는 아티스트 소장품.
‘5월의 밤’도 겨울에 발매했죠
그렇네요(웃음). 이번 앨범은 ‘여름용 음악을 내자’는 생각으로 접근하진 않았어요. ‘여름에 들어야 좋은 음악이겠다’ 싶어서 낸 거예요. 에너지가 느껴지는 음악들이거든요.
‘Poser’라는 제목이 흥미롭습니다. 이번 앨범의 착상은 어디서 시작됐을까요? 가사 한 줄일 수도 있고, 멜로디나 이미지일 수도 있는데
처음엔 직관적으로 포즈(Pose)라는 단어가 떠올랐어요. 한껏 포즈를 취하게 하는 음악이라는 생각이 든 게 착상의 시작이었어요. 그러다 포저(Poser)라는 단어를 알게 됐는데, 긍정적 의미는 아니에요. 읽지도 않는 책을 끼고 다니거나, 스케이트보드를 타지도 못하면서 사진 찍어 올리는 사람들을 뜻하는 말인데, 실제로 많이들 ‘척’하고 살잖아요? 저 역시 비싼 차 타고, 좋은 시계 차고, 잘 알지도 못하는 커피 브랜드를 향유하는 척하면서 살아요. 과장된 자아를 갖고 사는, 모두가 포저인 이 시대에 의미적으로 공감할 수 있는 부분이 있지 않을까 해서 제목으로 붙이게 됐어요.

선글라스는 Port Tanger.
척하는 게 꼭 나쁜 건 아닌 것 같아요. 그 과정에서 진정한 취향을 찾을 수도 있으니 말이죠
맞아요. 여러 의견이 나올 수 있는 단어예요. ‘포징하는 게 뭐 어때서~’라는 의견이 있을 수도 있고, ‘왜 스스로 포저라는 앨범을 냈지? 그간 오리지널한 음악을 했는데 이게 구라라는 건가?’라는 의견도 있을 만해요. 모두에게 스스로를 사랑하는 동시에 혐오하는, 이중적인 모습이 있으니 잡음을 만들고 싶은 의도도 있었어요.
대중을 상대로 하는 아티스트가 포저(Poser)가 아니기는 어려울 것 같아요. 자이언티는 스스로 포저라고 생각하는지
완전, 저는 완전 포저죠. 긍정적으로든 부정적으로든.

더블 브레스티드 테일러드 재킷은 Ernest W. Baker. 팬츠는 Paul Gaultier. 글러브는 Ernest W. Baker. 슈즈는 Egonlab. 선글라스는 Port Tanger.
지난 7월 연사로 참여한 ‘세바시 강연’이 화제였어요. ‘자이언티의 고백, 자기비하, 자기파괴의 끝에서 배운 자기연민을 통해 나를 사랑하는 법’이라는 제목부터 눈길을 끌었는데, 강연을 듣고 자신을 진짜 사랑하는 사람은 자신의 멋진 면만 아니라 부족한 면도 사랑하는 사람이라는 생각을 했습니다. 스스로 부족한 면까지 끌어안은 계기가 있을까요
참 얄팍한 대답이지만, 깊은 성찰을 통해 진정한 나를 발견하고 연민을 갖게 된 건 아니었어요. 제가 스스로를 사랑한다고 얘기할 수 있게 된 이유는 누군가가 나를 사랑한다고 말해 줘서예요. 잘하고 있다, 좋아 보인다, 멋지다…. 이런 얘기들이 저를 변화시킨 거죠. 결국 타인의 도움이 필요해요. 자기연민을 통해 나를 사랑하게 됐다고 했지만, 사실은 그게 결정적 계기였죠.
주변에 어떤 사람이 있는가는 정말 중요한 것 같습니다
맞아요. 그렇지만 그냥 지나가는 사람, 나와 아무 관련 없는 취객이 해주는 칭찬도 의미 있다는 생각이 들어요.

니트 타이는 Oscar Ouyang. 민트색 셔츠와 재킷은 모두 Moseori. 팬츠는 Donggyun Hong. 선글라스는 Taekh. 슈즈는 아티스트 소장품.
반대로 뮤지션이라면 불특정 다수로부터 부정적 평가를 받기도 쉬운데요
그럴 땐 아프죠. 떨쳐내려고 할수록 더 각인되고요. 그건 어쩔 수 없는 부분이라고 받아들이기로 했어요. 피부 트러블 같은 거죠. 없앴는데 불쑥 다시 돋는.
자기혐오가 긍정적으로 발휘된 케이스 같아요. 자기혐오를 극복하지 못하고 부정적인 생각에 머물러 있는 사람도 많잖아요? 그런 분들에게 한마디해 준다면
제가 감히 어려운 시기를 보내고 있는 분들에게 위로나 조언을 할 수는 없을 것 같아요. “괜찮아질 거다” “긍정적으로 생각해라” “힘내라” 이런 말은 너무 부적절하고요. 그럼에도 용기 내서 위로의 말을 건넨다면 “당신 인생은 한 번뿐”이라는 얘기를 해주고 싶어요. 한 번뿐인 삶을 살고 있으니 소중히 여겨야 한다고 말이죠.
음악이라는 게 타임머신 같은 면이 있잖아요? 과거에 그 음악을 함께 들었던 누군가를 떠올리거나, 그때의 감정을 소환하기도 하죠. 그런데 이건 리스너의 입장이고 창작자에겐 어떤가요? 과거에 만든 노래를 들으면 어떤 감정이 드는지
옛날 음악을 들으며 그 시기의 감정을 떠올리는 빈도는 좀 적은 것 같고, 항상 시류를 생각하면서 작업하는 쪽이에요. 그러니까 ‘지금 취향으로 이게 설득이 되나?’ ‘먹히는 부분이 있나?’ 하면서 듣다 보면 이전엔 몰랐는데 지금은 ‘이게 멋있네?’ 싶은 것도 있고. ‘이거 되게 기세네!’ 싶은 부분도 있어요.

뒷면에 ‘POSER’를 프린트 작업한 후디드 집업은 Praying. 리메이크된 팬츠는 Egonlab. 슈즈와 안경은 모두 아티스트 소장품.
결국 시간을 이겨낸 음악에 느끼는 감정이 아닐까요? 당신의 데뷔곡 영상에 달린 댓글 중 많은 추천을 받은 건 “진짜 노래가 늙지 않는다”는 대목이에요. 시대를 견디는 음악을 하는 건 아티스트에게 어떤 의미인가요
너무 좋은 말이죠. 시간 흐름을 부정하고 싶은 건 아닌데, 제 안의 어린 자아를 지켜주고 싶은 마음이 있어요. 제 음악적 자아가 저랑 같이 늙어가는 걸 원치 않는 거죠. 육체적으로는 늙어가고 생각도 굳어가지만, 창작을 하는 순수한 어린 자아는 남아 있다고 믿기에 두 가지를 완전히 분리해 두고 싶은 거예요. 물론 나이가 들면서 생기는 성숙하고 중후한 멋도 있겠죠. 그 역시 엄청난 멋이지만 예술하는 사람으로서 두 가지를 분리해야 제가 행복해진다고 생각해요.
경험담을 가사에 많이 녹여내는 걸로 알아요. 강렬한 경험이 창작자에겐 무조건 도움이 되나요? 오히려 너무 강렬해서 노래로 풀어내지 못하는 경우도 있을 것 같은데요
정말 강렬한 경험을 하게 되면 어쩔 수 없이 음악으로 만들게 되는 것 같긴 해요. 어쩔 수 없다면서 나도 모르게 그 경험을 노래를 만들고 있곤 하죠. 그런데 그런 경험은 살면서 몇 번 없지 않나요. 강렬한 경험 자체가 드문 일이라 자주 좀 느껴봤으면 좋겠어요.

민트색 셔츠와 재킷은 모두 Moseori. 팬츠는 Donggyun Hong. 니트 타이는 Oscar Ouyang. 선글라스는 Taekh. 슈즈는 아티스트 소장품.
하긴 강렬하게 사랑하고 싶어도 그럴 수 있는 상대를 만나는 것 자체가 쉽지 않은 세상이죠
그러니까요. 그래서 문득 ‘슴슴하게’ 사는 것도 좋은 것 같아요. 슴슴하게 살면 작은 경험도 크게 다가올 테니 뭔가 번뜩이는 아이디어를 얻을 수도 있고요.
얼마 전 성수동에 있는 영화관 ‘무비랜드’의 6월 큐레이터로 참여했죠? 추천 영화 중 <머니볼>을 고른 이유가 흥미롭더군요. 창업을 앞두고 힌트를 받은 영화라고 했는데, <머니볼>에서 배운 깨달음을 ‘스탠다드프렌즈’에 적용하고 있는지
완전 있죠. 많은 야구 구단이 홈런 타자 영입에 혈안이 돼 있고, 천문학적 비용을 들이죠. 지금 우리 음악계도 비슷하다고 생각해요. 홈런 타자 만들기를 하고 있잖아요? 홈런 타자 만들기의 전제 조건은 ‘돈’인데, 거기서 문제가 발생해요. 제작부터 홍보, 마케팅까지 모두 비용이 어마어마하죠. 결정적으로 지속하기가 어렵습니다.

셔츠와 니트 풀오버, 레더 팬츠와 슈즈는 모두 Ferragamo. 선글라스는 아티스트 소장품.
타자(가수)들이 빠르게 대체된다는 의미인가요
네. 주체성을 가진 팀으로 기획했다면 관리가 좀 소홀해도 자생력을 가지고 이어나갈 텐데, 공급 시스템이 이렇게 돼 있으니 소비자 입장에서는 “다음 세대는 누구야?” 하면서 옮겨가요. 아이폰도 아닌데 말이죠.
아이폰 비유가 콕 박히는군요
저는 그게 문제라고 봐요. 그런 시점에 <머니볼>을 봤는데, 주인공인 야구 단장이 중요하게 생각한 건 스타플레이어를 영입하는 것보다 데이터 분석을 통해 출루율을 높이는 것이었어요. 거기서 창업에 대한 확신을 얻었죠. 일단 제작 역량을 키워야겠다고 생각했어요. 높은 빈도로 음악을 제작해 발매하더라도 무너지지 않는 시스템을 만드는 게 첫 스텝이었죠. 어려움은 있었지만 지난 3년간 그런 시스템을 만드는 데 성공했어요. 흑자 전환도 했고요.

종이배 모양의 타이와 톱, 레이스업 베스트는 모두 Moseori. 주름 장식의 팬츠는 Comme Des Garçons Homme Plus. 안경은 Ginger Eyewear. 슈즈는 아티스트 소장품.
박수 치고 싶군요
저희가 잘하는 게 음악 제작이라 음악 레이블로 시작했지만, 다른 분야에서 또 뭘 할 수 있을지 찾고 있어요. 사운드 디자인이나 음향 같은. “음악이랑 음향이 뭐가 달라?”라고 할 수 있지만, 정말 다르거든요. 음향은 영상이나 여러 기술과 엮일 수 있어서 다양해요. 그걸 두 번째 스텝으로 넓혀볼 생각이에요.
관행을 깨고 지속 가능한 모델을 만들고 싶은 거군요
회사 이름이 스탠다드프렌즈이지만 어떤 기준이 되고 싶은 건 아니에요. 좋은 옵션을 만드는 데 더 가깝죠. 왜냐하면 아티스트 입장에서 지금 시장은 옵션이 너무 없거든요.

재킷은 Ernest W. Baker. 선글라스는 Port Tanger.
이 질문으로 마무리하면 좋겠네요. 어떤 인터뷰에서 “김해솔과 자이언티는 조금 별개인 브랜드”라고 했어요. 브랜드라는 게 고정적이기도 하지만 시기에 따라 조금씩 달라지기도 해요. 2025년 현재 자이언티라는 브랜드를 정의한다면
적절한 대답인지 모르겠는데, 당장 떠오르는 단어는 ‘레퍼런스’예요. 우리나라 창작 판에서 대체할 수 없는 뭔가로 남아야겠다는 목표가 있어요. 좋은 사례로 남고 싶다! 이런 생각을 합니다.
Credit
- 에디터 이재희
- 사진가 김희준
- 패션 스타일리스트 최예지
- 헤어 스타일리스트 가배
- 메이크업 아티스트 정수연
- 인터뷰어 정시우
- 아트 디자이너 이소정
- 디지털 디자이너 오주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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