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LLE DECOR

디자인과 회화 작가의 30년 우정이 완성한 전시

오랜 우정이 예술이 될 때. 디자인과 회화, 입체와 평면으로 서로 다른 궤적을 그리면서 ‘사물의 본질’이라는 종착지를 향해 걸어온 두 아티스트가 만났다. 나탈리 뒤 파스키에와 피에르 샤르팽이 예술로 나눈 다정한 대화.

프로필 by 이경진 2026.03.11

파리 메트로 7호선 끝자락, 이브리(Ivry)에 있는 현대미술센터 ‘르 크레다크(Le Crdac)’에서 전시 <안디아모 Andiamo>가 막을 올렸다. 1913년 미국식 ‘데이라이트 팩토리(Daylight Factory)’를 모델로 삼아 벽돌과 강철 구조로 지어진 크레다크는 전면 유리창을 통해 도시의 활기와 전시 공간의 정적이 자연스럽게 교차하는 매력을 발산하는 공간이다. 이 특별한 장소에서 오브제 디자이너 피에르 샤르팽(Pierre Charpin)과 일러스트레이터이자 아티스트인 나탈리 뒤 파스키에(Nathalie Du Pasquier)의 작업이 하나의 생명체처럼 공명하고 있다.


나탈리 뒤 파스키에와 피에르 샤르팽.

나탈리 뒤 파스키에와 피에르 샤르팽.

두 작가의 작품을 나란히 놓아 하나의 프로젝트처럼 느껴지게 하는 이번 전시를 위해 나탈리는 크레다크의 공간적 특성까지 총체적으로 고민했다. “본래 무언가를 정리하는 행위 자체를 즐겨요. 자연스럽게 선반이나 책장 같은 구조물에 관심이 생겼죠. 내게 선반은 입체적이면서도 평면적 속성을 지닌, 작은 건축물처럼 느껴집니다. 이번 전시는 벽체가 별로 없고 바닥면이 넓은, 크레다크 전시장 조건에 맞춰 공간에서 스스로 존재감을 드러내는 독립적 가구를 상상하고 구현하는 방향으로 작업했어요.”


앞쪽의 세라믹 화병은 나탈리 뒤 파스키에의 ‘Venerdì’(2017). 테이블 오브제는 피에르 샤르팽의 ‘Table à manger 12-12’(1998) 멤피스 에디션. 뒤쪽 배경의 그림은 왼쪽부터 피에르 샤르팽의 ‘Sans titre’(2018). 나탈리 뒤 파스키에의 ‘Sans titre’(2009). 피에르 샤르팽의 ‘Sans titre’(2018). 나탈리 뒤 파스키에의 ‘Sans titre’(2002). 피에르 샤르팽의 ‘Sans titre’(2015). 나탈리 뒤 파스키에의 ‘La Pistola’ (2004). 왼쪽부터 나탈리 뒤 파스키에의 ‘Con sasso rosso’(2002), ‘Con le ombre che cadono’(2004).

나탈리와 피에르는 30년이라는 긴 시간 동안 서로의 세계를 존중하며 우정을 쌓아온 사이다. 밀란을 거점으로 활동하는 나탈리 뒤 파스키에는 도발적인 디자인 운동 ‘멤피스’의 창립 멤버로 이름을 알린 후, 1987년부터 독학으로 구축한 자신만의 회화 언어에 전념해 왔다. 피에르 샤르팽 역시 알키미아(Alchimia)와 멤피스의 실험적 디자인을 접하며 강렬한 색채와 자유로운 형식 속에서 새로운 가능성을 발견한 바 있다.


1990년대 중반부터 이어온 두 사람의 우정은 사물에 대한 지속적 관심, 드로잉에 대한 애정, 형태와 색 그리고 표면에 대한 예민한 감각이라는 공통 언어로 더욱 단단해졌다. 창작의 시작을 ‘선(線)’에 두는 피에르는 자신의 드로잉이 구체적 사물로 치환되는 과정을 다음과 같이 설명한다. “제 모든 작업은 언제나 단순한 드로잉에서 출발합니다. 최소한의 선으로 그린 형태는 대상을 그대로 재현하기보다 그 자체로 하나의 독립적 형체가 됩니다. 그런 감각은 재료 이전의 도형과 비례, 색에 대한 탐구로 이어지고, 자연스럽게 디자인으로 확장되죠. 내가 디자인한 오브제들은 조각적이에요. 단순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금욕적이지는 않습니다. 연필로 그은 한 줄의 선에서 출발한 오브제에서 나만의 감각이 전해졌으면 해요.”


피에르는 이번 전시에 대해 나탈리와 오랜 시간 함께해온 예술적 대화를 물리적으로 구현한 결과물이라 덧붙인다. “우리는 긴 세월 친구로 지내왔어요. 이번 전시는 그간 이어온 우리의 대화를 실제 형상으로 구현해 낸 결과인 거죠. 나탈리와 저는 늘 형태에 대한 감수성과 그것을 표현하는 방식에 대해 이야기해 왔습니다. 사물이나 오브제가 지닌 본연의 기능을 넘어 이를 ‘형태의 세계’로 읽어내고자 했죠. 이번 전시를 통해 서로의 작업에 대한 관심과 존중을 선명하게 보여주고 싶었습니다.”


왼쪽부터 피에르 샤르팽의 ‘Pinocchio’(2013), 나탈리 뒤 파스키에의 ‘Sans titre’(2025), 피에르 샤르팽과 나탈리 뒤 파스키에의 공동 작업인 ‘Échelle PCNDP’(2025). 왼쪽 페인팅은 나탈리 뒤 파스키에의 ‘My bicycle is loaded’(2004). 나무, 스펀지, 목탄, 고무줄로 이뤄진 오브제는 피에르 샤르팽의 ‘Sculpture’(2018).

나탈리 역시 둘의 협업을 두고 서로 다른 언어가 교차하며 만들어진 ‘의외성’을 강조한다. “제 작업에 등장하는 형태의 대부분은 우연에서 시작됩니다. 정해진 틀보다 즉흥적 발상으로 무언가를 빚어내는 거죠. 피에르와 저는 서로 다른 분야에서 활동하고 있기 때문에 우리가 같은 언어를 공유한다고 보기는 어렵습니다. 음악에 비유하자면 피에르와 저는 분명 각자 다른 악기를 들고 있는 연주자이고, 이번 전시 덕분에 완전히 새로운 협주곡을 함께 만들어본 거예요.”


나탈리와 피에르의 작업에는 ‘일상 사물’이라는 공통분모가 있다. 사물이 지닌 본연의 기능을 넘어 하나의 ‘형태’로 읽어내는 것이 이들의 공통적 출발점이다. 나탈리는 주로 손에 닿는 것들, 조형적으로 잘 어우러지는 사물을 그림의 주제로 선택한다. “사물에서 특정한 감정을 읽어내기보다 그들이 ‘왜 그런 형태를 갖게 됐는지’ 이해할 수 있는 구조와 원리에 더 관심이 가요. 그래서 제 그림 속 사물이 언제나 조용하고, 시간이 멈춘 것처럼 정지된 상태로 존재하길 바라죠.”


피에르 역시 학생 때부터 예술이 일상과 연결되는 지점을 끊임없이 탐구하며, 사물에 대한 지속적 관심과 드로잉에 대한 애정을 작업에 녹여왔다. “여러 고민 끝에 제 관심은 자연스럽게 ‘감상의 오브제’에서 ‘사용의 오브제’로 이동하게 됐어요. 일상 사물은 긍정적이든 부정적이든 우리에게 감정을 불러일으킵니다. 디자이너로서 제가 관심을 두는 지점도 바로 그 순간의 감정이에요. 사물이 가진 기능을 넘어 사용자가 그 사물과 정서적 관계를 맺게 만드는 것, 그것이 디자이너로서 제가 할 수 있는 역할이자 의무인 것 같아요.”


전시 <안디아모> 전경. 왼쪽의 목조 오브제는 나탈리 뒤 파스키에의 ‘Sans titre’(2023). 오른쪽의 래커 마감한 금속과 착색한 목재 구조물은 피에르 샤르팽의 ‘Cabinet Girotondo’(2002).

두 사람의 작업에는 단순하고 명확한 오브제가 반복적으로 등장한다. 둥글고 부드러운 실루엣, 선과 면이라는 조형의 기본 요소를 통해 서로 다른 분야임에도 같은 언어를 공유하는 것이다. 피에르는 나탈리와 자신이 공통적으로 ‘읽기 쉬운 형태(Legible Forms)’를 지향한다고 강조한다. “저는 복잡하고 난해한 걸 지양하는 편이라 기하학이나 선의 배열 혹은 사물을 나란히 두거나 쌓아 올리는 단순한 행위에 가치를 둡니다. 예를 들어 테이블을 디자인할 때, 저는 그것이 누가 봐도 가장 ‘테이블다운’ 모습이길 바라죠. 즉각적으로 인식하되 특정 원형을 복제하지 않은 상태, 그 사이의 긴장감을 유지하는 것이 제 작업에서 중요한 지점이에요.”


나탈리에게도 자신만의 팔레트가 있다. “색을 다룰 때 매우 직관적인 태도를 유지해요. 그날의 날씨나 기분 혹은 작업실에 남은 물감의 상태에 따라 선택이 달라지죠. 제게 중요한 건 독립된 컬러가 아니라 그들이 만들어내는 ‘조합’입니다. 이 세상에 예쁘지 않은 색은 없어요. 다만 어울리지 않는 조합만 있을 뿐이죠. 투명한 병을 그리더라도 그것이 선명한 색채 덩어리로 보이길 원해요. 그런 과정에서 추상과 구상의 경계가 자연스럽게 흐려지거든요.”


오일 페인팅은 나탈리 뒤 파스키에의 ‘Mucchio’(2006), 래커 마감된 유리섬유 오브제는 피에르 샤르팽의 ‘Stand ST5’(2002).

오일 페인팅은 나탈리 뒤 파스키에의 ‘Mucchio’(2006), 래커 마감된 유리섬유 오브제는 피에르 샤르팽의 ‘Stand ST5’(2002).

전경에 걸린 흰 오브제는 피에르 샤르팽의 ‘UFO objet suspendu’(2009) 프로토타입. 배경의 채색된 목재 구조물은 나탈리 뒤 파스키에의 ‘Una stanza bianco perla’(2018). 피에르 샤르팽의 구조물 ‘Dessin avec ruban réalisé in situ’(2026), 나탈리 뒤 파스키에의 오일 페인팅 ‘Mano di porcellana’(2004). 채색된 나무 선반과 구성 요소들, 두 점의 캔버스 오일 페인팅은 나탈리 뒤 파스키에의 ‘Sans titre’(2025). 무라노 유리와 금속으로 만든 오브제는 피에르 샤르팽의 ‘Struttura 1, 2, 3’(2022).

위치나 시대, 장르 구분 없이 형식과 의미에 따라 재배치된 두 작가의 작업은 초창기부터 현재를 아우르며 경쾌하고 다채로운 풍경을 만들어낸다. 그 안에서 작가들의 경계는 자연스럽게 흐려지고, 두 창작자의 섬세한 제스처와 오랜 우정의 흔적이 고요하게 드러난다. 가장 단순한 것이 가장 강력한 울림을 줄 수 있으며, 예술과 일상은 결국 같은 뿌리를 공유한다는 사실을 증명하면서. 전시 <안디아모>의 입구에서 나탈리와 피에르가 건네는 메시지는 더없이 명료하다. ‘안디아모(함께 가자)! 예술이라는 다정한 대화 속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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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redit

  • 에디터 이경진
  • 컨트리뷰팅 에디터 김이지은
  • 사진가 JULIE ANSIAU
  • 아트 디자이너 강연수
  • 디지털 디자이너 오주영
  • COURTESY OF LE CRÉDAC