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파트를 놀이터처럼 꾸민 초현실적 아티스트의 집
어른이 된 아이를 위한 놀이터가 된 베를린 아파트. 메리엄 케이하니에게 집은 세상에서 가장 자유로운 안식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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거실에서 다이닝 룸으로 이어지는 통로. 거친 텍스처의 석고 조형으로 입구를 장식했다.
삶이 무겁게 내려앉을 때, 우리는 그 시간을 견디기 위해 나만의 은신처를 상상하곤 한다. 아티스트 메리엄 케이하니(Maryam Keyhani)는 상상 속 은신처를 현실로 구현했다. 자신이 일상을 보내는 집을 그 어디에도 없는 특별한 곳으로 바꾸면서 말이다. 이란에서 태어나 어린 시절 캐나다로 이주한 메리엄은 현재 베를린에서 두 아이와 남편과 함께 지내고 있다. 우스꽝스러운 모자 아래 밝게 웃고 있는 모습과 달리 메리엄은 녹록지 않은 유년 시절을 보냈다.
각양각색의 모자로 채운 방과 메리엄 케이하니.
예술은 그때부터 그녀가 감정을 소화하는 방식이었다. 자신이 쓰고 싶은 모자를 찾지 못한 그녀는 결국 모자를 직접 만들기 시작했고, 그렇게 탄생한 초현실적이고 과장된 모자는 그녀의 시그너처가 됐다. 모자를 비롯한 다양한 오브제와 회화를 아우르는 메리엄의 작업은 언제나 현실과 상상의 경계에서 출발한다. 그런 감각이 잘 축적된 그녀의 집과 작업실도 마찬가지다.
높은 천장과 큰 창으로 베를린의 흐린 빛이 조용히 스며들고, 그 아래로 개성 강한 회화와 조각, 모자와 오브제들이 자리를 지키며 저마다 특별한 장면을 만든다. 그 속에서 메리엄은 날마다 다른 자신을 드러낸다. 때로는 화려한 옷을 걸치고 대담한 제스처를 취하는 그림 속 여성처럼, 때로는 크고 넓은 모자 아래 숨어 비밀스러운 미소를 짓는 아이처럼.
영감의 흔적으로 가득한 메리엄의 침실. 벽 한 쪽에 레퍼런스 이미지로 가득한 무드보드를 세워두었다.
수많은 붓질의 흔적이 그대로 쌓인 작업실, 어디서도 본 적 없는 모자로 가득한 방, 기묘하지만 사랑스러운 침실까지. ‘방’이라기보다 ‘장면’이나 ‘세계’라는 말이 더 어울릴 것 같네요
이 집은 커다란 인형의 집이에요. 집 안의 모든 공간은 하나의 역할극이 이뤄지는 무대죠. 저는 이곳에서 아이처럼 일상을 놀이하듯 보내고 있어요.
이전엔 다른 예술가가 살던 곳이라고 들었어요. 처음 이 집과 마주했을 때 어떤 감정이 먼저 들었나요
잘 관리된 상태는 아니었죠. 누군가 이곳에서 예술을 하며 시간을 보냈다는 사실이 강하게 다가왔어요. 그 점이 이 집을 선택한 이유였어요.
기다란 검은 팔과 드레이프 천으로 장식해 기묘한 아름다움이 감도는 창가.
리모델링 과정에서 중요하게 생각한 건
빛을 가장 먼저 생각했어요. 베를린은 흐린 날이 많아 실내 밝기가 중요하거든요. 높은 천장이 주는 여유로운 감각도 놓치고 싶지 않았어요. 이런 바탕에서 ‘어른들의 놀이터’를 만들고 싶었습니다. 그래서 집 안의 모든 것을 장난감처럼 늘어놓았어요. 물론 정리정돈에 엄격하지도 않지만(웃음).
핑크빛 옷장이 된 디바를 유쾌한 동작으로 들고 있는 메리엄.
회화와 조각을 공부하고 그 예술적 배경으로 모자 만드는 일을 시작했어요. 모자를 쓰는 순간 주목받을 수밖에 없는 매우 독특한 모자들이죠
제게 모자는 신체의 일부나 다름없어요. 모자 없이 집을 나서는 일은 거의 없고, 집 안에서도 자주 써요. 모자를 쓰지 않으면 뭐랄까, 머리가 없는 것 같은 느낌이에요.
정수리에 손이 달린 ‘핸드 헤드피스(Hand Headpiece)’처럼 당신의 모자에는 용기와 웃음이 있어요. 지금 당신에게 가장 필요한 모자를 꼽는다면
예전에는 좋아하는 모자를 꼽기도 했지만 솔직히 지금은 다 똑같이 사랑해요. 다만 때마다 다른 것 같아요. 당신이 말한 것처럼 더 용감해질 수 있는 모자를 고를 때도 있고, 숨고 싶은 기분이 들면 큰 모자를 골라요. 순간순간의 감정과 기분에 따라 달라져요.
동일하게 테라코타 톤으로 마감한 주방.
당신의 그림에 등장하는 여성들은 얼굴을 드러내기보다 과장된 실루엣과 화려한 옷차림을 하고 있어요. 당신처럼요. 패션은 여성에게 어떤 가능성을 열어주는 도구일까요
패션은 상황과 감정에 따라 자신을 선택적으로 드러내거나 숨길 수 있는 언어인 것 같아요. 결국 제 그림 속 여성들은 저와 같아요. 어떤 날엔 드레스와 모자 밑으로 숨고 싶고, 또 어떤 날에는 그 옷 덕분에 더 대담하고 용감해지기도 하죠. 삶의 무게와 감정을 잠시 잊으려는 놀이처럼 한껏 차려입을 때도 있어요.
작업실에서 바라본 다이닝 룸.
작업을 통해 세상에 던지고 싶은 메시지는
이란 여성도 한 명의 아티스트로서 개인 작업을 할 수 있다는 것. 이런 사실 자체를 드러내고 싶어요. 다른 문화나 시선이 쉽게 우리를 하나의 이미지로 규정하려 들지만, 사람이 꼭 한 가지 방식으로만 존재할 필요는 없잖아요. 요즘엔 제 작업에 담긴 페르시아적 정체성을 깊이 탐구하는 과정에 있어요. 나이가 들어서인지 결국 사람은 시간이 지날수록 자신만의 집으로 돌아가게 되는 것 같아요.
날개를 그린 벽화와 장난감, 가구를 따라 동화 속 한 장면처럼 펼쳐진 아이 방.
태어난 집에서 멀리 떠나 먼 땅에 자신만의 집을 만든 당신에게 ‘좋은 집’이란 무엇일까요
제게 좋은 집은 자유로울 수 있는 곳이에요. 놀 수 있고, 무너질 수 있고, 슬퍼질 수도 있고, 모든 감정의 사이클을 다 느낄 수 있어야 한다고 생각해요. 저는 이 집에서 그렇게 지내고 있어요. 무거운 삶 속에 작은 가벼움을 주는 저만의 장난감에 둘러싸여서요.
Credit
- 에디터 윤정훈
- 사진가 이민
- 아트 디자이너 김진림
- 디지털 디자이너 김민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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