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에서 새로운 남성 소비자군이 나타났는데, 이들의 성향과 스타일이 진화한 레트로섹슈얼이다.’ 뉴욕을 베이스로 한 남성지 <맨즈웨어>에서 접한 흥미로운 기사의 팩트다. 부연하면 이렇다. 메트로섹슈얼이나 레트로섹슈얼, 모두 유행이 지난 촌스러운 단어인 거 안다. 하지만 껍데기만 같을 뿐 의미는 새롭다. 새로운 레트로섹슈얼 스타일로 분류되는 이들의 가장 큰 특징은 미국의 전통적인 ‘masculinity’, 그러니까 남자가 남자다웠던 시절의 패션과 라이프스타일을 추구하며 이를 세련된 방식으로 향유한다는 점이다. 올해 초 이 소개한 맨해튼 로어 이스트 사이드의 F.S.C 바버숍과 프리맨 스포팅 클럽이 이 트렌드를 극명히 확인할 수 있는 장소다. 오래된 나무 패널로 마감한 숍의 내부에는 1930년대의 빈티지 체어와 앤티크한 크롬 소재 디스펜서가 있다. 클래식한 셰이빙 서비스는 물론 최신 스타일의 헤어 커트 서비스도 제공한다. 하지만 무엇보다 흥미로운 건 이곳의 바버들이다. 그들은 플레이드 체크 셔츠에 타이를 매고, 프리미엄 데님을 입고 일한다. 뉴스보이 캡도 쓴다. 수염을 기른 사람도 있지만 지저분하지 않다. 이들이 보여주는 것이 바로 진화한 레트로섹슈얼 그 자체다. <맨즈웨어>는 가장 극단적인 레트로섹슈얼 스타일을 ‘다소 거친 질감의 플란넬 셔츠와 싱글 몰트 위스키에 미쳐 있거나 광나는 고급 세단 대신 픽스트 바이크를 타고 다니거나 부티크에서 산 샴브레이 셔츠의 소매를 접어 올려 마치 과거의 블루 워커 스타일(카센터나 공장에서 일하는 노동자들의 패션)처럼 연출한 남자’라고 묘사했다. 이 세대는 메트로섹슈얼보다 브랜드를 보는 안목이나 라이프스타일에 대한 주관이 더욱 뚜렷하다. 선호하는 브랜드도 따로 있다. 대부분이 아메리칸 헤리티지와 아웃도어 빈티지 컨셉트를 추구하는 브랜드로 필슨, 울리치, 패들턴, 길디드 에이지, 엔지니어드 가먼츠, 레드 윙 부츠, 빈티지 레이밴 라인 등이 대표적이다. 그러니까 메트로섹슈얼이 내로라하는 명품 브랜드의 옷을 입고, 비싼 화장품으로 피부를 관리하기 위해 여자만큼 투자를 아끼지 않았다면 지금의 레트로섹슈얼은 남성성을 바탕으로 자신의 정확한 취향과 라이프스타일에 따라 부분적으로 지갑을 연다는 얘기다. 일본은 새로운 레트로섹슈얼 트렌드를 이미 체화한 지 오래다. 2009년 6월 <뉴욕 타임스>의 패션 & 스타일 섹션에 실렸던 기사의 내용처럼 아메리칸 스타일에 관심을 갖고 지속적으로 발전시킨 건 정작 미국이 아니라 일본이었기 때문이다. 1960년대 초반, 미국의 아이비리그 룩을 표방한 켄수케 이시주(Kensuke Ishizu)의 브랜드 ‘반 재킷(Van Jacket)’이 일본 남자들 사이에서 큰 반향을 일으켰는데, 이를 바탕으로 1970년에서 1980년 사이에 리바이스나 레드 윙 부츠 같은 미국 브랜드가 일본에서 엄청난 인기를 끈 것. 당장 도쿄 하라주쿠에 있는 빔스 매장만 봐도 답이 나온다. 러프한 목재 장식과 빈티지한 장식장으로 꾸민 매장에 워시-아웃한 아웃도어면 점퍼, 플란넬 체크 셔츠 등 레트로섹슈얼 가이들이 침을 흘릴 만한 아이템들이 즐비한 것. 아메리칸 빈티지 캐주얼 스타일을 논하면서 빠지지 않는 엔지니어드 가먼츠나 새롭게 떠오르는 비즈빔 같은 뉴욕 베이스의 일본 브랜드가 등장할 수 있었던 것도 모두 이들이 아메리칸 스타일을 오래전부터 체득한 결과다. 한국에도 새로운 레트로섹슈얼의 바람이 분다. 시리즈 플래그십 스토어나 아메리칸 스타일 편집매장인 블리커같이 빈티지한 창고나 헌팅 클럽 같은 ‘남자들의 공간’을 흉내 낸 패션 부티크가 속속 문을 열었고, 낡은 차고를 컨셉트로 한 그루밍 숍도 생겼다. 또 패들턴이나 알든처럼 한국 남자들에게 다소 생소한 토종 미국 브랜드들이 편집매장을 통해 인지도를 높이고 있다. 게다가 바이크 열풍까지. 일단 한국에서도 새로운 레트로섹슈얼 스타일이 대세가 될 것은 분명해 보인다. 그저 지나가는 바람일지, 제대로 자리를 잡을지는 좀 더 두고 봐야 할 일이지만.
*자세한 내용은 루엘 본지 10월호를 참조하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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