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엘르보이스] 히잡 쓴 스파이커가 열어젖힌 세계
2024.05.16

ⓒ unsplash
솔직히 고백하면 나도 무슬림 여성에 대한 편견이 있었다. 소극적이고, 새로운 환경에서 잘 적응하지 못할 것이라는. 무엇보다 코트에서 활약하는 무슬림 여성의 존재를 상상해 본 적 없었다. 그러던 중 리그 데뷔전에 나타난 메가왓티는 웜업에서부터 코트 분위기를 올리고, 가장 높이 날아오르고, ‘메가트론’이라는 별명에 걸맞게 경기장을 울리는 스파이크로 상대 팀 선수는 물론 팬들까지 긴장시켰다. 득점 후 가장 크게 포효하면서 경기장을 열광시키는 에너지, 스스로 존경한다고 밝힌 세계적인 배구선수 앞에서도 주저하지 않는 플레이, 위기였던 경기를 스스로 해결한 후 기쁨의 눈물을 흘리던 승부욕. 피부와 머리를 가린 히잡과 타이츠로도 감춰지지 않는 스포츠 스타의 탄생을 경기장에서 지켜본 날이 잊히지 않는다. 이미 태국, 베트남 리그를 경험하고 한국에서 새로운 도전에 나선 메가왓티는 세계 어디로든 갈 수 있음을 믿는다고 인터뷰했고, 우리 모두 그의 찬란한 미래를 굳게 믿도록 만들었다.

V리그 아시아쿼터제 도입 이후 가장 사랑 받는 선수로 떠오른 메가왓티
처음 배구를 보던 시기, 머리 짧은 여성 선수들을 본 엄마가 “남자 같은 애들이 있네”라고 하셨던 기억이 난다. 남자 같은 게 아니라 머리가 짧고 어깨가 넓은 여성도 있을 뿐이라고 되받아친 기억도. 그래서 메가왓티와 폰푼 선수를 보는 지금은 무슬림 혹은 태국 여성답지 않다고 말하는 것이 얼마나 어리석은 표현인지 안다. 모든 여성은 종교와 국적에 갇히지 않는 존재지만, 동시에 특정 종교와 국가의 여성들은 각자의 다양한 모습으로 해당 종교와 국가를 대표하는 것이므로.
이슬람 교리에 대한 이해도나 개인적 견해는 다르겠지만, 경기를 이기고 나면 상기된 표정으로 “알라에게 감사한다”고 말하는 메가왓티 선수에게서 느끼는 감동은 종교를 초월하는 뜨거운 공감이다. “(저와) 다른 종교를 가진 분들도 삶에서 신의 존재를 느끼시기 바란다”고 인터뷰했던 선수의 말처럼 그와 다른 종교와 국적을 가진 사람들도 타인이 만든 분류나 판단에 갇히지 말고 당신의 심장을 뛰게 할 배구 스타를 뜨겁게 만나보길 권한다.
곧 다음 시즌을 위한 아시아 쿼터 트라이아웃이 시작된다. 지난 시즌을 함께하며 새로운 세계를 열어젖힌 모든 선수에게 진심으로 감사하며, 앞으로도 1년간 편견을 가르고 날아올라 통쾌한 스파이크로 내 일상을 밝혀줄 새로운 선수를 기다린다. 편견에 갇혀 있던 나 또한 이번 시즌 내 눈앞에서 배구공을 ‘후려갈겨준’ 선수들 덕분에 지난해보다 조금이나마 덜 부끄러운 팬으로서 더 크게 환호를 보낼 예정이니까.
Writer

곽민지
다양한 비혼자의 일상을 이야기하는 예능 팟캐스트 〈비혼세〉 진행자이자 출판 레이블 ‘아말페’ 대표. 〈걸어서 환장 속으로〉 〈난 슬플 땐 봉춤을 춰〉를 썼다. 여성의 몸과 사랑, 관계에 관심이 많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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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redit
- 에디터 이마루
- 글 곽민지
- 아트 디자이너 민홍주
- 디지털 디자이너 김민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