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카치 블렌디드 위스키는 몰트 위스키와 그레인 위스키가 혼합되어 만들어진다. 이때 보통 한 블렌디드 위스키에 들어가는 몰트 위스키 비율은 30~40% 정도다. 나머지는 그레인 위스키로 채워진다. 몰트 위스키의 사용 비율은 그레인 위스키보다 낮지만 혼합된 어떤 몰트 위스키가 사용되었느냐에 따라 그 블렌디드 위스키의 맛과 향이 달라진다. 보통 블렌디드 위스키에 들어가는 몰트 위스키는 적게는 3가지, 많게는 40종류에 이른다. 그 몰트 위스키 중에 블렌디드 위스키의 맛과 향에 가장 큰 영향을 좌우하는 몰트위스키를 키 몰트(key malts), 패커스(packers), 코어 몰트(core malts), 혹은 탑 드레싱(top dressing) 이라고 한다. 블렌디드 위스키 생산자 대부분은 키 몰트 위스키 증류소를 소유하고 있으며 이를 자신의 위스키 생산에 있어 중요한 요소로 인지하고 있다. 이른바 ‘명주’라고 불리는 블렌디드 위스키에는 항상 좋은 키 몰트가 사용되고 있다. 오른쪽에 있는 5개의 몰트 위스키 - 블렌디드 위스키 조합이 대표적인 예다. 이외에도 사례는 많다. 블랙 & 화이트에는 발멘나흐(Balmenach)와 달후아인(Dalwhinnie), 뷰캐넌(Buchanan`s)에는 쿨일라(Caol Ila), 페이머스 그라우스에는 하이랜드 파크, 딤플에는 글렌킨치(Glenkinchie), 커티삭에는 글렌고인(Glengoyne), 올드파에는 크래건모어(Cragganmore) 증류소의 원액이 들어간다. 그러므로 싱글몰트 위스키를 하나 둘씩 맛보면 무의미하게 마시던 블렌디드 위스키에 새로운 시각으로 볼 수 있다.
1 아버펠디 → 듀어스 스카치 블렌디드 위스키는 나라마다 인기 제품이 다르다. 미국에서 가장 인기 있는 건 1899년에 출시된 듀어스다. 듀어스는 1860년대 스코틀랜드에서 주류중계상을 하며 ‘블렌딩’이라는 기술을 처음으로 들여와 블렌디드 위스키를 만든 선구자 중의 하나인 존 듀어스가 세운 듀어스사의 위스키다. 국내에는 지명도가 낮은 편이지만 뛰어난 품질로 각종 주류품평회에서 수많은 상을 휩쓸어 명주의 반열에 올랐다. 이 듀어스에는 아버펠디(Aberfeldy) 증류소의 원액이 담겨 있다. 아버펠디는 1890년대 설립되었는데 이 증류소에서 생산된 원액을 블렌딩한 덕분에 듀어스가 탄생할 수 있었다고 말할 수 있다.
2 더 글렌리벳 → 시바스리갈 발렌타인, 조니워커와 함께 우리나라 3대 스카치 위스키로 부를 수 있는 시바스리갈. 그 연산별 라인업 중에서도 엘리자베스 여왕의 대관식에 맞춰 만들어진 로얄살루트 21년은 에딘버러성의 대포 모양을 본떠 만든 도자기병으로 유명하다. 국내 수집가들 사이에서도 색깔별로 병을 모으는 게 유행했다. 색깔마다 맛이 다르다고 주장하는 사람도 있지만 색깔에 상관없이 맛은 같다. 이 시바스리갈에 함유된 대표적인 몰트 위스키가 스트라스아이라(Strathisla)의 원액이다. 그 다음으로 중요한 위스키는 스코틀랜드 최초로 합법적인 면허를 획득해 위스키를 만들기 시작한 글렌리벳 증류소의 원액이다. 로얄살루트 특유의 부드러운 과일향과 감칠맛의 비밀이 글렌리벳 원액이라고 말하는 이도 많다. 화창한 봄날 글렌리벳 증류소를 방문해서 주변 환경을 둘러본다면 그 혹자의 이야기가 아주 신빙성 없는 건 아니라는 사실을 느낄 수 있다.
3 탈리스커 → 조니워커 블루 스카치 위스키를 얘기하면서 1820년 스코틀랜드 길마녹에서 식품점을 운영하던 존 워커에 의해 탄생한 조니워커를 빼놓을 수 없다. 1992년에 출시된 조니워커의 프리미엄급 제품인 블루 라벨에는 좋은 몰트 위스키들이 많이 함유되어 있다. 숙성연수에 구애받지 않고 마스터 블렌더의 능력을 발휘할 수 있게 숙성년수를 표기하지 않은 NAS(non age statement) 제품인 조니워커 블루의 대표 원액은 카듀(Cardhu) 증류소의 것이다. 어쩌면 카듀는 조니워커의 상징이자 고향이다. 실제로 이 증류소에는 조니워커의 고향을 표방하고 있는 여러 상징물을 볼 수 있다. 카듀 원액이 조니워커 블루의 원숙미를 보여준다면 스코틀랜드 서남쪽 스카이섬에 있는 탈리스커(Talisker) 증류소의 몰트는 역동적인 맛을 선물한다. 화산지대로 이뤄진 스카이섬의 유일한 증류소인 탈리스커의 몰트 위스키는 화산이 폭발하는 듯한 강렬함을 자랑한다. 조니워커 블루와 탈리스커 25년을 함께 마셔보면 몰트 위스키와 블렌디드 위스키의 관계를 쉽게 이해할 수 있을 것이다.
4 발베니 → 그랜츠 이제 대부분의 위스키는 대규모 자본을 가진 다국적 위스키 업체에 의해 생산되고 있다. 그 와중에 아직까지도 증류소를 설립한 가문에 의해 운영되는 증류소가 있다. 가장 대표적인 예가 전세계 판매율 1위의 싱글몰트 위스키인 글렌피딕을 생산하고 있는 윌리엄 그랜츠 앤 선이다. 그랜츠(Grant’s)는 가업을 잇고 있는 윌리엄 그랜츠 앤 선이 설립자의 이름을 붙여 만드는 블렌디드 위스키다. 여기에는 당연하게도 윌리엄 그랜츠 앤 선이 소유하고 있는 증류소의 원액이 들어가는데 그 대표적인 원액이 발베니(Balvenie)다. 전통적인 수공 방식으로 생산되는 발베니는 위스키를 만들 때 로비듀의 샘물을 이용한다. 로비듀 샘물은 그랜츠를 블렌딩할 때도 쓰여 맛과 향의 일관성을 유지해준다.
5 라프로익 → 발렌타인 30년 6공 시절, 어느 ‘보통 사람’ 덕분에 국내에 널리 알려진 술이 발렌타인 30년이다. 1920년대부터 출시되어 특히 한국과 일본에서 대표적인 프리미엄 위스키로 자리잡은 이 위스키에는 글렌버기(Glenburgie)와 밀톤더프(Miltonduff), 그리고 스코틀랜드 아이라섬의 신비를 간직한 라프로익 증류소의 30년 이상 숙성 위스키 원액이 함유되어 있다. 가장 부드러운 위스키에 가장 파워풀한 위스키가 함께 하고 있다는 점이 아이러니컬하지만 오래된 아이라 위스키가 품고 있는 강건함이야말로 고숙성 위스키의 품위를 지켜준다고 말하고 싶다. 라프로익은 1815년 알렉스 존스톤에 의해 설립된 증류소로 아직 수공업 방식으로 위스키를 생산하고 있다. ‘There is a thin line between love and hate’라는 슬로건으로 판매할만큼 개성이 강하다. 강한 크레졸향 덕분에 미국 금주령 시대에는 의료용 소독약으로 위장해 수출되기도 했다. 국내에는 라프로익 25년이 수입되고 있으니 발렌타인 30년의 젠틀함과 라프로익의 강인함을 함께 비교해봐도 좋을 듯 하다.
* 자세한 내용은 루엘 본지 2월호를 참조하세요!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