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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떤 집에 살고 싶나요?

아파트 공화국에서 집을 짓고 사는 이유는 무엇일까? 보편적이기보다 기꺼이 예외적이기를 택한 사람들과 그들의 집을 다룬 전시 <연결하는 집>.

프로필 by 윤정훈 2024.09.09
오헤제건축의 '목천의 세 집' 드로잉. 도시에서 따로 살던 3대 가족의 시골 이주 계획을 위해 설계한 집으로, 가족이 모이고 마을 사람들이 조화롭게 만나는 '장'을 그리며 세 가지 유형의 구조물을 하나의 집으로 설계했다.

오헤제건축의 '목천의 세 집' 드로잉. 도시에서 따로 살던 3대 가족의 시골 이주 계획을 위해 설계한 집으로, 가족이 모이고 마을 사람들이 조화롭게 만나는 '장'을 그리며 세 가지 유형의 구조물을 하나의 집으로 설계했다.

“이 집이 나를 성장시켰어요.” 한국인들이 열망하는 아파트가 아닌, 특별한 집을 선택한 사람들. 나는 그들이 어떻게 살고 있는지 궁금했다. 전시를 준비하며 만난 사람들은 자신의 집에 대한 자긍심으로 빛나는 얼굴을 하고 있었다. 지난 7월부터 국립현대미술관 과천관에서 열린 <연결하는 집: 대안적 삶을 위한 건축>(이하 <연결하는 집>) 이야기다. 동시대 한국 주거의 다양성을 사회문화적 관점에서 살펴보기 위해 마련된 이 전시는 기획자인 내 삶도 돌아보게 했다. 전시 오픈 후 한 일간지 리뷰에 폭발적 반응의 댓글이 달렸다. 480여 개의 댓글 중 대다수는 아파트의 환금성에 대한 찬양과 불편한 집에 대한 동정이었다. 하지만 여기 그와 다른 현실이 있다. 전시 개막 후 한 달이 지난 지금, 나는 여전히 자신에 집에 대해 말하던 그들의 반짝이는 눈빛을 잊지 못한다. ‘집 같은 집’이라는 관습을 부정하고, 본인 의지로 선택한 집 그대로를 존중한다는 목소리를 기억한다.

에이오에이아키텍츠의 '호지' 드로잉. 강릉의 한적한 시골에 자리 잡은 스테이로, 운영자 가족이 사는 주택과 숙소동으로 이뤄진 새로운 유형의 집이다.

에이오에이아키텍츠의 '호지' 드로잉. 강릉의 한적한 시골에 자리 잡은 스테이로, 운영자 가족이 사는 주택과 숙소동으로 이뤄진 새로운 유형의 집이다.

30~60대까지 폭넓은 세대의 건축가들이 작가로 참여했다. 그들이 설계한 58채의 집을 여섯 개의 소주제로 배치했다. 전시를 준비하면서 가능하면 모든 집을 직접 방문해 거주자들을 만났다. 인터뷰 후에는 집이 건축주를 닮아 있다는 결론에 이르렀다. 1년간의 현장조사 끝에 전시장에는 설계 과정을 보여주는 건축가들의 스케치와 모형, 사진, 영상과 거주자들의 일상 기록을 함께 설치했다. 집을 향한 건축주의 꿈을 실현시키기 위해 그들의 말에 귀 기울인 건축가들의 흔적과 그곳에 사는 사람들의 이야기가 공존하길 바랐다. 몇몇 집주인과의 대화는 별책으로 만들고 싶을 정도로 인상적이었다. 그들의 이야기는 평생 아파트에 살았던 내 마음을 움직였다. 그들처럼 다른 형식의 집을 꿈꾸고, 실천하고 싶었다. 이번 전시에서 내가 관객에게 바란 지점이기도 하다. 전시 영문 제목 <Performative Home>이 품은 뜻은 전시의 숨은 핵심이다. 내 삶을 움직이게 만드는 집. 내 삶의 환경을 돌아보고 우리가 공존하도록 이끌어주는 집. 아래 글은 그런 ‘수행성(performative)’을 불러일으키는 집에 관한 못다한 기록이다.

김대균 건축가가 설계한 '대구 앞산주택'에는 친구, 이웃과 기꺼이 마당을 공유하려는 건축주의 열린 마음이 담겼다.

김대균 건축가가 설계한 '대구 앞산주택'에는 친구, 이웃과 기꺼이 마당을 공유하려는 건축주의 열린 마음이 담겼다.

노마드 라이프스타일을 추구하는 부부를 위해 김광수 건축가가 지은 '베이스캠프 마운틴'.

노마드 라이프스타일을 추구하는 부부를 위해 김광수 건축가가 지은 '베이스캠프 마운틴'.

김광수 건축가(스튜디오케이웍스)의 ‘베이스캠프 마운틴’(2004년 베니스 건축비엔날레 출품작)은 건축 수명 주기가 유달리 짧은 서울에서 비닐하우스와 컨테이너로 지은 임시 주택이다. 당시 건축학도였던 나는 그 집을 좋아했다. 20년이 지난 지금까지 남아 있으리라 기대하지 않았는데, 우연히 그 집이 여전히 살아 있음을 알게 됐다. 이 ‘가벼운 건축물’은 노마드적 삶을 살고 있는 집주인 데니와 젬마 부부를 닮았다. 집은 언제든 다른 곳으로 떠날 수 있게 도와주는 베이스캠프라는 그들을 통해 나는 최소한의 삶에 대해 생각해 볼 수 있었다. 비슷한 시기인 2000년, 한국건축사의 주요 주택으로 소개된 승효상 건축가(이로재)의 ‘수백당’은 내가 잡지에서 봤던 모습 그대로였다. 건축주의 배려 덕분이었다. 그는 불편한 집이라는 오명보다 눈에 거슬리지 않는 미학적인 집을 선호한다고 말했다. 그 속에는 건축가의 의도를 존중하고 그것을 받아들이겠다는 사용자의 의지가 담겨 있었다. 부부와 자녀로 구성된 4인 가족이란 오랜 규범을 깨는 집도 있었다. 가족의 일원이 된 반려동물과 함께 사는 집이 대표적인데, 그중 양수인 건축가(삶것건축사사무소)의 ‘고개집’과 나은중·유소래 건축가(네임리스건축)의 ‘언덕 위의 집’은 흥미로운 비교 대상이다.

거주자 의도에 따라 자유롭게 공간을 바꿔 쓰도록 한 승효상 건축가의 '수백당' 모형,

거주자 의도에 따라 자유롭게 공간을 바꿔 쓰도록 한 승효상 건축가의 '수백당' 모형,

먼저 ‘고개집’은 ‘고’양이와 ‘개’를 위한 집이라는 뜻에서 붙인 이름이다. 건축주는 동물과 인간의 삶의 속도 차이가 집을 구상할 때 고려되면 좋겠다고 말했다. 성인의 입장에서 8년이란 시간은 큰 변화가 없지만, 개와 고양이의 입장에서 그 시간은 노년을 맞는 시간이기 때문이다. 물고기와 거북이 그리고 식물이 있는 ‘언덕 위의 집’은 훨씬 더 다양한 종이 공존한다. 건축주는 동물에 맞춘 인위적 공간설계보다 일반적인 집의 형식에서 어떻게 함께 살지 고민하는 게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어떤 집은 이웃과 관계를 맺는 방식을 새롭게 정의했다. 김대균 건축가(착착건축사무소)가 설계한 ‘대구 앞산주택’은 한적한 곳에 지은 간결한 집이다. 앞마당이 있는 단독주택이지만, 15년 넘게 많은 사람이 드나든 공동 장소였다. 두 아들의 성장을 가까이서 볼 수 있는 집을 의뢰한 건축주는 아들과 친구들, 심지어 마을 주민들의 놀이터가 되도록 집을 활짝 열었다. 사진작가인 건축주는 그 시간을 틈틈이 기록했다.

 사람과 동식물이 한데 공존하는 방식을 고민한 네임리스건축의 '언덕 위 의 집' 드로잉

사람과 동식물이 한데 공존하는 방식을 고민한 네임리스건축의 '언덕 위 의 집' 드로잉

단층 구옥을 부부와 네 마리의 고양이가 사는 집 겸 서점으로 개조한 비유에스아키텍츠의 '쓸모의 발견' 드로잉.

단층 구옥을 부부와 네 마리의 고양이가 사는 집 겸 서점으로 개조한 비유에스아키텍츠의 '쓸모의 발견' 드로잉.

“우리에게 과분한 집”이라고 운을 뗀 그들은 ‘집이 사람의 기운을 눌러서는 안 된다’는 신념으로 타인을 환영하는 장소를 만들었다. 또 시골과 도시라는 이분법에서 벗어나, 집을 대안적 삶을 향한 적극적 실천 수단으로 삼은 경우도 만났다. 이해든 · 최재필 건축가(오헤제건축)의 ‘목천의 세 집’은 무려 3대 가족의 시골 이주 계획을 위해 마련된 집이다. 건축가의 정교한 핸드 드로잉과 모형을 통해 집이라는 건축과 연결된 자연과 집의 섬세한 관계를 살펴볼 수 있다. 반면 박지현· 조성학(비유에스아키텍츠)이 설계한 ‘쓸모의 발견’은 서울의 오래된 동네에 있는 낡은 집을 고친 것으로, 마을 골목을 지키는 책방이 있다. 자기 집보다 이웃 할머니가 사는 집의 마당을 더 보여주고 싶었다는 건축주의 눈에는 동네에 대한 사랑이 가득했다. 라이프스타일의 변화는 집의 시간성마저 바꾸고 있다. 한 달 살기, 4도 3촌 살이 등 삶의 방식이 대중화되는 지금, 집에 대한 전통 규범은 조금씩 흐트러지고 있다.

국립현대미술관 과천관에서 열리고 있는 <연결하는 집> 전시 전경.

국립현대미술관 과천관에서 열리고 있는 <연결하는 집> 전시 전경.

교외 대형 카페와 더불어 최근 몇 년간 한국 현대건축가들이 집중적으로 작업한 ‘스테이’ 건축이 대표적이다. 서재원(에이오에이아키텍츠)의 ‘호지’는 건축주 가족의 집과 세 개의 숙소동, 한 개의 공용 공간으로 이뤄진 곳이다. 주인이 계속 머무는 집과 손님에게 잠시 빌려주는 집이 집합을 이뤘다는 점에서 특히 흥미로운 인상으로 남았다. 언급한 것 외에도 <연결하는 집>에 소개된 모든 집들은 ‘나도 이런 집에서 살 수 있다’는 용기를 줬다. 그래서 나는 지금 한창 집짓기 공부를 하고 있다. 2년 안에 꿈을 현실로 만드는 것이 목표다. 물론 이번 전시를 봤다고 갑자기 살던 아파트를 팔고 집을 짓기는 어려울 것이다. 하지만 누구나 사는 장소를 선택할 권리가 있고, 그것은 주체적이고 능동적인 힘에 의해서 가능한 일일 것이다. 58채의 집들은 대부분 100평 이하의 크지 않은 주택들로, 한국에 얼마 없는 소규모 필지에 지어진 곳들이다. 작은 땅이 합쳐져 대단지 아파트 지구로 바뀌는 흐름에서 도시 생태계의 다양성을 지키는 보루 같은 곳들이다. 이 작은 특별함이 귀중하다. 전시기획자로서 바람이 있다면, 우리에게 주어진 집의 선택지가 보다 다채로워질 수 있기를. 그런 집들이 연결된 성좌가 빛나고 아름답기를 기대한다.

Credit

  • 에디터 윤정훈
  • 아트 디자이너 김려은
  • 디지털 디자이너 김민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