실용성이 최우선인 집 VS 불편하지만 예쁜 집
비주얼 디렉터 박은우의 선택은?
전체 페이지를 읽으시려면
회원가입 및 로그인을 해주세요!

수년간 차곡차곡 모은 식기류를 ‘잘’ 수납하기 위해 마련한 식기장. 블랙 프레임으로 둘러싸여 모던하면서도 공간에 포인트가 되어준다. 바이브레이션 무늬 가공을 더한 스테인리스 아일랜드 식탁으로 생활 스크래치에 대한 부담을 줄였다.
취향에 관해 기억해야 할 중요한 사실 하나. 그것은 늘 변하기 마련이다. 하지만 변한다고 해서 깊이가 얕아지거나 흐려지는 것은 아니며, 오히려 언제나 짙어지고 배가된다는 것. 덕시아나, 에르메스 메종, 디올 메종 그리고 GFFG를 거쳐 현재는 개인 비즈니스를 준비 중인 박은우 대표는 최근 성수동에 새로운 공간을 마련했다. 약 4년간 머무른 성북동 복층 빌라를 뒤로하고 만난 이곳에는 그가 오랜 시간 일터와 삶터에서 차곡차곡 쌓아온 취향이 새롭게 전개되고 있다. 생활공간이지만 쇼룸을 연상케 할 정도로 군더더기 없는 모습. 불편하지 않을까? “어떤 사람은 실용성을 최우선으로 따지는가 하면, 어떤 사람은 좀 불편해도 예쁘면 참아요. 저는 후자에 가까운 사람이에요. 아름다움이 제겐 가장 편안한 상태죠.” 그에게 변화란 늘 즐거운 일이고, 아름다움은 곧 안정이다.

‘세잔(Sesann)’ 소파는 타키니(Tacchini), 뒤편의 ‘세르펜테 플로어 램프(Serpente Floor Lamp)’는 마르티넬리 루체(Martinelli Luce), 천장의 ‘이오스(EOS)’ 조명은 우메이(Umage).

동선부터 수납 방식, 컬러, 조명, 손잡이까지 세세히 고민하고 디자인한 주방.
“한 50군데는 본 것 같아요. 딱히 지역이나 평수를 정해두지는 않았죠. 공간과 제품 스타일링을 하고 있다 보니 스튜디오처럼 촬영도 가능하고, 강남과 멀지 않으면 좋겠다고 생각했어요. 그러다 이 건물을 발견했죠. 무척 낡았지만 그래서인지 월세가 저렴했고, 그 점이 꽤 어필됐어요. 주방을 넓게 쓸 수 있다는 것도 이점으로 다가왔고요.” 그렇게 시작된 셀프 인테리어의 첫걸음은 대대적 철거였다. 뼈대만 남은 현장은 막막했지만 다른 의미로 무엇이든 가능하다는 뜻이기도 했다. “예전에는 빈티지 부티크 호텔 분위기로 공간을 꾸미는 걸 선호했는데, 시간이 지나면서 좀 고색하게 느껴지더라고요. 여전히 빈티지를 좋아하지만, 40대 중반에 접어드니 낡아 보이는 느낌이 조금 꺼려졌어요. 그사이 취향도 변했고요. 그래서 이번엔 좀 더 모던한 분위기로 꾸리고 싶었어요. 나름 새로운 장르에 도전하는 셈이었죠.”

빈티지와 모던, 그릇부터 가구와 조명에 이르기까지 모두 좋아하는 것으로 채운 공간.

현관을 지나면 개성 있는 가구들이 여유롭게 배치된 널찍한 공간이 펼쳐진다. 타키니 소파, 트래버틴 사이드 테이블, 마르티넬리 루체 조명, 유광 빈티지 테이블이 절묘하게 어우러져 모던함 속에 클래식 포인트가 있는 풍경이 연출된다. 창과 식기장을 감싸는 블랙 격자 프레임이 서로 마주 보고 있어 적당한 통일감을 형성한다. 전보다 넓어진 공간 덕분에 한창 활기 넘칠 나이의 반려묘 누밤이는 마음껏 질주 본능을 즐기게 됐다. 이곳에서 가장 공들인 공간은 단연 주방. 레이아웃과 소재를 직접 선정하고, 합이 잘 맞는 시공 기술자를 만나 완성했다. 스테인리스 아일랜드 식탁부터 싱크대나 냉장고 수납장 같은 부피 큰 가구는 물론 조명과 집기, 선반 손잡이까지 어느 하나 허투루 고른 게 없다. “마실 것 좀 드릴까요? 저만의 메뉴판이 있어요. 손님이나 친구가 올 때마다 일일이 묻기 번거로워 하나 만들었거든요(웃음).”


박은우 대표가 음료를 권하며 아일랜드 식탁 아래에서 꺼낸 종이에는 카페에서 볼법한 다양한 음료 메뉴가 적혀 있다. 원룸에서 살던 시절부터 ‘홈 카페’ 컨셉트를 즐기며 플레이팅을 즐겼다는 그는 음료 한 잔조차 성의 없이 내지 않는다. 스틸 트레이 위에 음료 한 잔과 작은 디저트 플레이트를 곁들이는 세심함에서 일상에서조차 스스로와 타인을 대접하길 즐기는 모습을 엿볼 수 있다. 그런 마음으로 오래전부터 하나둘씩 모아온 식기류들이기에 단순 수납이 아닌 전시 대상으로 여겼는지도. 이에 주방 옆에 소장한 그릇이 한눈에 보이는 너른 식기장을 마련했다.

식기장에 전시된 은식기 컬렉션.

박은우 대표와 반려묘 누밤이.
덕분에 필요한 물건을 꺼낼 때마다 수납장을 헤집지 않아도 되는 편리함도 얻었다. 박은우 대표에게 좋은 공간이란 ‘좋아하는 것으로만 채워진 곳’이다. 이제 막 발을 내디딘 공간이라 미처 들이지 못한 가구 목록도 아직 많다. 마음껏 채우지 못한 아쉬움은 날마다 조금씩 가구와 소품 배치를 바꾸며 달래고 있다. 하지만 취향은 늘 자라나고, 좋아하는 마음엔 끝이 없는 법. 긴 시간이 지나 더 많은 것이 채워진다 해도 그의 공간은 언제나 미완인 채로 남을 것이다.
Credit
- 에디터 윤정훈
- 아트 디자이너 김강아
- 사진가 박나희
- 디지털 디자이너 김민지
엘르 비디오
엘르와 만난 스타들의 더 많은 이야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