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LLE DECOR

도예가 노에 쿠레모토의 리투아니아 작업실

혼돈과 평화가 공존하는 이곳에서 모성과 창작은 결코 대립하지 않는다.

프로필 by 윤정훈 2026.01.06
오니 가면에서 영감받은 ‘섀도’ 시리즈를 들고 있는 노에 쿠레모토와 그의 아들.

오니 가면에서 영감받은 ‘섀도’ 시리즈를 들고 있는 노에 쿠레모토와 그의 아들.


작업대 위, 막내 테츠야와 일본 달마 인형에서 영감받은 오브제들.

작업대 위, 막내 테츠야와 일본 달마 인형에서 영감받은 오브제들.


도예와 육아가 공존하는 노에의 작업실 풍경. 아이들은 태어날 때부터 이 공간에서 자라왔다.

런던과 리투아니아에 작업실을 두고 네 명의 아이를 키우고 있어요. 당신의 하루는 어떤가요

새벽 다섯 시 반에 일어나 아침을 준비하고, 여섯 시쯤 아이들을 깨워 옷을 입히고 밥을 먹어요. 모두 등교시키고 나서 집과 작업실을 정리하며 리셋 타임을 갖습니다. 오전 9시부터 오후 1시까지 온전한 제 시간이에요. 제 하루의 중심이자 ‘성역’이죠. 다시 오후 1시부터 점심과 저녁을 만들어두고 아이들 하원 준비를 해요. 간식과 목욕, 저녁 식사, 큰 아이들 숙제, 일본 책 읽기와 취침 준비를 마치면 밤 9시가 되고요. 그때부터 메일 확인과 전시 준비 등 못다 한 업무를 이어가요.


작업실을 누비는 아이들의 모습이 사랑스럽기 그지없네요

우리 애들은 태어날 때부터 작업실에 있었고, 자라면서 점토로 자기만의 생명체를 만들었어요. 그 작은 손끝이 매일 저를 깨닫게 합니다. 기쁨과 호기심, 약간의 장난기로 예술을 대하는 법을 가르쳐주죠. 하지만 이곳은 제가 예술을 하고, 가족의 생계를 꾸리는 곳이에요. 그래서 꽤 일찍, 아이들이 “안 돼”라는 말을 이해하기 시작할 무렵부터 작업실을 ‘존중해야 하는 곳’으로 가르쳤어요. 심하게 장난치거나 방해하면 잠시 나가게 했죠. 늘 제 옆에 있고 싶어 해서 약속을 지킬 준비가 되면 언제든 다시 들어오라고 했어요. 덕분에 제 작업을 정말 조심스레 다루게 됐습니다.


아이를 업고 있거나 아이들에게 둘러싸인 채 작업하는 모습은 단란하지만 다른 의미로 치열해 보입니다

저는 늘 두 가지 사이에서 흔들렸어요. ‘이상적 예술가’ 그리고 ‘이상적 엄마’. 작업할 때마다 머릿속에서 누군가 속삭여요. ‘네 예술에 누가 관심이나 있겠어?’ ‘이걸 누가 사니?’ ‘이제 마흔도 넘었잖아’ ‘아이들과 보내는 시간도 부족해’ ‘넌 네가 돼야 할 사람의 절반밖에 안 돼’. 짧은 시간을 온전히 쓰고 좌절에서 벗어나기 위해 ‘흙을 이용한 서도’를 시작했어요. 서도는 일본 전통 서예예요. 어릴 적에는 아침마다 그날의 기운을 담은 한자를 썼는데, 꿈을 마음에 새기고 현실로 옮겨주는 과정이라고 배웠습니다. 마찬가지로 매일 하나의 흙 조각을 공기 속 드로잉처럼 만들기로 했어요. 못해도 상관없었죠. 그렇게 일주일 후 조각이 7개, 어느새 100개까지 쌓였어요. 그중 3개를 골라 큰 작품으로 발전시켰어요. 그렇게 탄생한 게 바로 ‘Shodo–’ 시리즈예요.


주저함 없이 무언가를 만드는 아이의 손끝은 노에에게 또 다른 영감이 된다.

주저함 없이 무언가를 만드는 아이의 손끝은 노에에게 또 다른 영감이 된다.


마네키 네코에서 영감받은 작업을 진행 중인 노에 쿠레모토.

마네키 네코에서 영감받은 작업을 진행 중인 노에 쿠레모토.


오사카에서 태어나 17세 때 런던으로 이주한 다음, 런던 센트럴 마틴에서 개념미술을 공부했죠. 어릴 때부터 예술가를 꿈꿨나요

기억이 닿는 한 저는 늘 무언가를 만들었어요. 아버지는 화가이자 조각가, 교수였어요. 집 안엔 언제나 캔버스와 석고 가루, 예술을 향한 집념이 가득했습니다. ‘나도 예술가가 되고 싶다’는 말이 자연스러워야 했는데, 이상하게 그 말을 못했어요. 인정받지 못할까 봐 두려웠나 봐요. 부모님은 늘 절 지지해 주셨지만, 사랑이 오히려 망설이게 할 때도 있잖아요.


예술가가 아닌 다른 직업을 가져본 적 있는지

안 해본 게 없어요. 베이비시터와 일본어 교사, 바텐더, 웨이트리스, 세트 디자이너, 아트 디렉터, 시장에서 물건을 팔기도 했죠. 취업 비자를 유지하기 위해 ‘제대로 된 형태의 직업’을 가져야 했거든요. 그러다 무언가 잘못됐다는 느낌이 들면서 전업 예술가의 길로 뛰어들었어요. 무모하게 뛰어든 게 아니라 출구를 정교하게 설계했습니다. 현 직장을 ‘나의 후원자’로 보고 퇴사 자금을 마련한 다음, 매일 1시간은 작업에 할애하며, 스케치북을 늘 곁에 두고 공유 작업실을 구했죠. 가까운 사람들에게 작업을 보여주고 판매도 해보며 그룹전에도 참여했어요. 그렇게 창작의 가장자리부터 서 있기 시작했어요.


개념미술에서 도예로 전향해 일본 전통 신화에서 영감을 받은 조각 작품을 선보이고 있습니다. 무엇이 계기가 됐나요

오랫동안 저는 일본 유산에 등돌리고 서구의 차갑고 지적인 개념미술을 좇았어요. 신화는 구시대적이고 민담은 진부하다고 생각했죠. 그런데 삶은 묘하게도 결국 원을 그리더군요. 한참 뒤에야 밀쳐냈던 이야기들을 다시 발견했어요. 미신이라 여겼던 것들 속에서 제가 씨름하던 현실적 문제에 대한 답이 있었죠. 일본 신화에 끌리는 이유는 단순 미학이나 정체성 때문은 아닙니다. 우리는 놀라운 진보의 시대에 살고 있지만 여전히 무언가를 찾아 헤매요. 보다 근본적인, 의미 있게 사는 법 말이죠. 신과 영혼, 변신하는 존재에 대한 이야기 이면엔 시간이 흘러도 변하지 않는 진실이 숨어 있어요. 사람들이 제 흙 생명체들을 보고 더 큰 질문을 던졌으면 해요.


고대 고분에서 출토된 점토 인형 하니와를 현대적으로 재해석한 조각들.

고대 고분에서 출토된 점토 인형 하니와를 현대적으로 재해석한 조각들.


작업실 한쪽에서 자신만의 흙 생명체를 빚고 있는 아이들.

작업실 한쪽에서 자신만의 흙 생명체를 빚고 있는 아이들.


분주하면서도 평화로운 기운이 감도는 작업실.

분주하면서도 평화로운 기운이 감도는 작업실.


흙이 당신에게 일으키는 감각이란

처음 흙을 만졌을 때 오래전에 알고 있던 무언가를 떠올리는 느낌이었어요. 손이 알아서 움직였죠. 얼마 전 어머니가 제가 다섯 살 때 만든 도자 조각 사진을 보내줬는데, 놀랍게도 지금 작업과 거의 같더군요. 좋은 건지 나쁜 건지 모르겠습니다만, 저에게 흙을 다루는 일은 평생 배운 것을 벗겨내는 일 같아요. 순수한 창작으로 통하는 직선이죠.


대표적으로 고대 일본의 토우를 현대적으로 해석한 ‘하니와(Haniwa)’가 있습니다. 이 시리즈의 시작은

본래 하니와는 무덤에 묻힌 망자의 수호자이지만, 제 하니와는 현재를 살아가는 우리를 위한 수호자예요. 저는 오랫동안 예술가가 되는 걸 두려워했어요. 솔직하게 말하는 것도, 안정적인 직장을 떠나는 것도, 갈등과 마주하는 것도. 그래서 ‘착한 사람’으로 남았죠. 대신 제 목소리를 잃었고요. 그러다 하니와를 만나 제 안의 창작 본능이 깨어났어요. 하니와를 빚으며 다시 살아 있음을 느꼈죠. 제 하니와들은 온전히 자기 자신으로 존재하려는 영혼을 위한 상징이에요.


도깨비 가면을 재해석한 ‘섀도(Shadow)’ 시리즈는 무엇에서 영감을 받았나요

카를 융은 말했죠. “빛이 있다면 반드시 그림자도 있다.” 일본의 오니(도깨비) 가면은 집안에 걸어두거나 축제 때 쓰여요. 일상 속에서 가면은 우리 안의 어두운 면과 마주하게 합니다. 제게 가면은 ‘훈련된 공격성’을 상징하며, 내면의 그림자를 일깨워 놀게 하는 도구예요. ‘좋은 사람’이란 공격성이 없는 존재가 아니라 자신의 힘과 선량함을 다스릴 줄 아는 사람이라고 생각합니다. ‘섀도’는 그런 양면성을 끌어안는 시도예요.


출산과 육아 그리고 커리어의 충돌은 많은 여성이 마주하는 실존적 문제입니다. 그 긴 시간을 통과하는 동안 어떤 변화를 마주했나요

그 두려움은 너무 잘 알죠. 솔직히 말해 아이를 낳지 않으려 했어요. 언제나 일이 전부였고, 커리어를 가진 어머니의 모습을 본 적 없어서 육아는 불가능한 일 같았거든요. 아이가 생기면 성공에서 멀어질 것 같고, 아이가 없는 여성들이 더 쉽게 기회를 잡고 더 진실하게 받아들여지는 듯했어요. 하지만 엄마가 된다는 건 삶에서 고귀한 책임을 받아들이는 일이고, 세상에서 내가 가장 중요한 존재가 아니라는 걸 깨닫는 일이었죠. 스스로 성숙하다고 믿던 서른 살의 저는 그제야 세상을 반밖에 보지 못했다는 걸 알았어요. 여섯 살 이세이, 네 살 하쿠세키, 두 살 코하루, 이제 갓 11개월이 된 테츠야까지. 네 아이와 함께 저는 여전히 카오스 속에서 살고 있어요(웃음). 하지만 그 혼란 속에서 삶의 복잡함과 근원을 더 선명하게 봅니다. 모성은 제 예술을 더 깊고 진실하게 만들었어요. 이건 미치도록 혼란스럽지만 동시에 즐겁고, 무엇보다 인간적인 경험이에요.


예술가로서 현재 몰두하고 바라는 것은

제 작업은 현대사회가 만들어낸 불행, 즉 ‘좋은 삶’이라는 각본에 대한 의문에서 시작됩니다. 바라던 것에 도달하고도 공허했던 제 경험이 출발점이었죠. 저는 누군가 그 각본에서 벗어나 자신만의 길을 찾도록 영감을 주고 싶어요. 앞으로 한국, 일본, 중국 등 아시아 지역의 활동을 늘리고 싶습니다.

Credit

  • 에디터 윤정훈
  • 사진가 KESTUTIS ZILIONIS
  • 아트 디자이너 이유미
  • 디지털 디자이너 김려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