임현재의 아주 특별한 서울국제음악콩쿠르 우승 스토리
바이올리니스트 임현재를 무력과 무의미한 삶으로부터 구조한 건 음률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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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20회 서울국제음악콩쿠르 바이올린 부문에서 우승을 거머쥐었습니다. 휠체어에 앉아 시벨리우스의 협주곡을 연주했던 이번 콩쿠르의 결승 무대는 당신에게 어떤 의미였나요
이번 콩쿠르 우승은 단순한 결과 이상의 의미를 지녀요. 4년의 긴 공백과 재활을 겪고, 또 1년의 세월을 보낸 후 오른 무대였으니까요. 여섯 차례의 수술과 공백기 이후, 음악을 다시 시작했던 시간을 떠올리면, 무대에 설 수 있다는 것 자체가 큰 기적처럼 느껴지곤 합니다. 앞으로의 선택에서도 이 경험은 저를 조급하게 만들지 않고, 음악과 제 삶에 솔직하게 집중하도록 이끌어줄 것이라 믿습니다.
바이올리니스트 임현재는 2024년 윤이상국제음악콩쿠르와 2025년 장 시벨리우스 콩쿠르에서 준결선에 진출한 후 제20회 서울국제음악콩쿠르 결선 무대에서 1위를 차지하며 클래식 음악계에 아름답고 소란한 진동을 일으켰다.
7세 때부터 미국으로 건너가 세계적인 명문 커티스음악원 출신의 촉망받는 바이올린 연주자로 성장했죠. 음악과 바이올린을 삶에 들이기 시작한 때는
네 살 때 피아노를 시작했고, 일곱 살에 바이올린을 만났어요. 처음부터 음악가가 되어야겠다는 생각보다는, 소리를 내는 것 자체를 즐거워 했던 기억이 더 큽니다. 본격적으로 음악에 몰두하기 시작한 시점을 딱 잘라 말하기는 어렵지만, 시간이 지날수록 음악이 선택이 아닌 삶의 일부가 되었다는 걸 느낍니다. 연습과 일상의 경계가 흐려지고, 음악을 중심으로 점차 하루를 살아가게 되었을 때가 진짜 시작이었죠.
그로부터 성인이 되고, 2020년 교통사고를 당한 후 더 이상 연주를 하지 못하는 순간마저 거쳤습니다. 그 과정에서 연주 방식이나 음악관이 크게 바뀌기도 했을까요
사고 이후 오랜 시간 동안 바이올린을 다시 연주할 수 있을 거라고 상상조차 못 했어요. 육체적인 문제도 컸지만, 그보다 더 힘들었던 건 '아무것도 할 수 없다'는 무력감이 반복해서 찾아왔다는 점이었어요. 그 감정에서 쉽게 빠져나오지 못했고, 바이올린을 바라보는 것조차 힘든 시기도 있었죠. 하지만 바로 그 시간 덕분에 음악이 제게 무엇이었고, 어떤 의미였는지, 어떤 방식으로 음악을 이어가고 싶은지 처음부터 다시 생각하게 되었어요. 예전처럼 맹목적으로 연습하는 것이 더는 건강하지도, 지속 가능하지도 않다는 사실을 깨달았고요. 연주를 할 수 없는 시간 속에서 오히려 음악의 본질과 의미에 대해 다시 생각해보게 된 겁니다. 그 결과, 음악은 결코 감정을 숨길 수 없는 분야이고, 연주자의 성품이나 인격, 삶의 태도 같은 것들이 자연스럽게 드러난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고, 지금은 연주뿐만 아니라 삶 자체가 음악과 이어져 있다는 사실에 집중하고 있습니다.
장윤성 지휘 한경아르떼필하모닉과 협연한 이번 콩쿠르 결선에서는 '시벨리우스 바이올린 협주곡 D단조'를 연주해 심사위원으로부터 '연륜이 느껴지는 연주'라는 평을 받았습니다. 예선에서는 바흐부터 모차르트, 베토벤까지 연주곡을 다채롭게 선택했는데요. 레퍼토리 구성에서 전략적으로 고려한 요소가 있나요
의도적으로 대비를 만들려고 하지는 않았어요. 나를 가장 잘 보여줄 수 있는 곡, 그리고 개인적으로 더 애정이 가는 작품들로 자연스럽게 구성했죠. 각 작품이 지닌 시대적 배경과 작곡가의 언어를 존중하면서, 지금의 제 음악과 가장 솔직하게 맞닿아 있는 곡을 선택하는 게 중요했어요. 그중에서도 시벨리우스 바이올린 협주곡은 특히 그런 선택의 흐름 속에 있던 작품이고요. 음악 안에 담긴 깊이와 고독, 그리고 거대한 에너지가 지금 제 내면과 많이 닮았다고 느꼈습니다. 무엇보다 제 음악적 방향을 가장 진솔하게 보여줄 수 있는 곡이 시벨리우스 바이올린 협주곡이었고요.
심사위원장인 이미경 전 독일 뮌헨 국립음대 학장으로부터의 '많은 레퍼토리를 훌륭하게 소화했다'는 평도 이어졌죠. 레퍼토리를 선택할 때 가장 먼저 고려하는 기준은 무엇인가요? 기술 난이도, 메시지, 본인과의 궁합 등이 있을 것 같습니다
레퍼토리를 고를 때, 작품이 가진 언어와 성격, 제 음악적 정체성과의 궁합을 가장 먼저 생각합니다. 시대적 배경과 작곡가의 개성을 충분히 이해하고, 제 나름의 해석을 만들어 가는 과정이 무엇보다 중요하고요.
연주 스타일에 가장 큰 영향을 준 스승이나 연주자가 있다면
음악적 길에 가장 큰 영향을 준 분은 '미도리 고토' 선생님입니다. 은사 미도리 선생님은 늘 영감을 주는 존재이자, 음악가로서뿐만 아니라 한 인간으로서도 존경하는 분입니다. 어린 시절부터 선생님의 연주를 들으며 자랐고, 그 가르침은 제 연주 뿐만 아니라 삶을 대하는 태도에도 깊은 영향이 되었거든요.
스스로를 연주자로서 한 단어로 어떻게 표현할 수 있을까요
'전환'. 음악을 대하는 태도와 방향이 이전과 많이 바뀌었어요. 저는 지금 그 변화의 한가운데에 서 있고요. 어떤 한 모습으로 규정되기보다는, 계속 열려 있고 자라나는 과정에 있는 연주자라고 생각합니다. 삶과 음악 모두에서 멈추지 않고 변화하는 것은 살아가는 데 있어 정말 중요한 가치가 되었습니다.
'좋은 연주'의 기준은 시간이 지나며 어떻게 변해왔을지 궁금합니다. 당신이 생각하는 좋은 연주란
예전에는 완벽함을 추구했어요. 기술, 표현, 무대, 모든 면에서 완벽하게 해내는 게 중요했죠. 지금은 음악과 곡이 가진 본연의 의미와 청중과의 연결을 가장 중시합니다. 삶이 무력하고 무의미하게 느껴질 때, 음악은 제 삶에 다시 숨을 불어넣어 준 에너지거든요. 멈춰있던 시간이자 공백기 속에서도 저를 일으켜 세우고, 사랑과 용기를 만들어준 힘임을 절감했습니다. 그렇기에 기술적 완벽함보다, 음악을 통해 감정을 전달하는 것, 작품의 언어를 진정성 있게 표현하는 것이 좋은 연주라고 생각합니다.
올해 다양한 무대가 기다리고 있습니다. 특히 체코 프라하 스메타나홀에서 열리는 노스 체코 필하모닉 오케스트라 정기연주회에 협연자로 초청되었습니다
이 협연을 비롯해 리사이틀, 실내악 등 다양한 레퍼토리의 무대가 예정되어 있습니다. 특히 오케스트라와 함께하는 무대에서는 작품의 구조와 흐름을 더욱 깊이 이해하고, 음악적으로 한 단계 확장된 소리를 만들어내는 데 집중하고 싶습니다.
지금 본인에게 가장 큰 과제는 무엇입니까? 10년 후에도 꼭 붙잡고 싶은 가치는
끝없이 변화하는 나 자신과 음악을 솔직하게 이어가는 것. 그리고 무엇보다 잃고 싶지 않은 것은 '진정성'입니다. 삶과 음악 모두에서 흔들리지 않고 솔직하게 표현하는 태도를 가지고 살아가고 싶습니다.
그 마음가짐을 꿈이라고도 부를 수 있을까요
예전에는 목표가 분명했던 것 같습니다. 어느 무대에 서고, 어떤 성과를 이루는가가 중요했죠. 지금은 꿈이 조금 달라졌어요. 앞으로도 계속 연주할 수 있는 사람, 삶과 음악이 자연스럽게 이어지는 연주자로 남는 것이 가장 큰 바람입니다. 제 소리가 누군가에게 조용히 닿을 수 있다면, 그것만으로도 충분히 의미 있는 꿈이라고 생각합니다.
Credit
- 사진 임현재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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