FASHION

글렌 마틴스는 왜 메종 마르지엘라의 불완전함을 설계했는가

글렌 마틴스는 데뷔부터 평범하지 않은 컬렉션을 선보이며, 메종 마르지엘라의 새로운 시대가 이미 시작됐음을 분명하게 각인시켰다. 다음 컬렉션은 또 어떨까?

프로필 by 김명민 2026.01.31

창립자 마르탱 마르지엘라 이후 약 10년간 메종 마르지엘라 하우스를 이끌어온 존 갈리아노. 지난해 초, 그 시대는 마침표를 찍었다. 곧바로 전해진 새로운 크리에이티브 디렉터 임명 소식. 지금은 사라졌지만 수많은 추종자를 낳았던 브랜드 와이 프로젝트를 만든 장본인이자 디젤을 다시 뜨거운 브랜드 반열에 올려놓은 인물 ‘글렌 마틴스’다.

이 소식에 패션계 반응은 비교적 긍정적이었다. 와이 프로젝트를 통해 보여준 ‘아방가르드’ 코드, 디젤 컬렉션에서 반복적으로 드러난 ‘해체주의’ 그리고 앤트워프 왕립예술학교를 졸업한 벨기에 출신 디자이너라는 이력까지. 글렌 마틴스는 여러 측면에서 마르지엘라의 계보와 자연스럽게 맞닿아 있었으니까.


그렇게 베일을 벗은 글렌표 메종 마르지엘라. 그의 첫 쇼는 파리패션위크에서 공개된 아티즈널 컬렉션이었다. 이 쇼는 단순히 데뷔를 넘어, 메종 마르지엘라의 본질을 탐구하고 이를 현대적으로 계승하는 글렌 마틴스의 선언이었다. 글렌 마틴스는 마르지엘라의 핵심 철학인 ‘익명성’을 중심에 두고, 아카이브 피스에서 발췌한 요소를 조형적인 형태로 재해석했다.


익명성을 상징하는 페이스 마스크는 업사이클링 원단과 버려진 장신구, 금속 등 다양한 소재를 활용해 제작했다. 의상은 중세 건축물에서 영감받아 구조적이면서도 성스러운 분위기를 자아냈고, 아카이브에서 차용한 비닐 소재는 오프닝 룩을 비롯해 컬렉션 전반에 다양한 형태로 변주돼 등장했다. 트롱프뢰유와 극단적인 입체 실루엣, 해체적이고 파괴적인 디테일 등 글렌 마틴스의 정체성을 보여주는 실험적 디자인도 빠지지 않았다.

결과적으로 글렌 마틴스는 데뷔부터 평범하지 않은 컬렉션을 선보이며, 메종 마르지엘라의 새로운 시대가 이미 시작됐음을 분명하게 각인시켰다. 얼마 지나지 않아, 대중에게 또다시 신임을 얻을 무대, 2026 봄 여름 컬렉션이 공개됐다. 이번 컬렉션은 쿠튀르 컬렉션과는 다른 느낌으로, 일상을 위한 현실적 언어로 제시했다.


쇼를 시작하기에 앞서 먼저 참석자의 입가에 미소가 번졌다. 차가운 정적을 깨고 앙증맞은 꼬마 오케스트라 연주자들이 등장한 것. 쇼장의 공기를 부드럽게 환기시키는 역할처럼 보이지만, 이들은 글렌 마틴스가 철저하게 계산한 무대장치다. 삐걱거리고 어설픈 그들의 연주는 메종 마르지엘라가 오랫동안 추구해 온 동시에 이번 컬렉션의 핵심 주제이기도 한 불완전한 미학을 상징적으로 드러낸다.

음악이 흐르는 사이, 런웨이는 조용하면서도 빠르게 움직였다. 가장 먼저 눈에 띈 건 개구기 같은 마우스피스. 지난 시즌에 이어 등장한 익명성을 상징하는 장치로 모델의 표정을 완전히 지워냈다. 컬렉션은 일상 아이템을 재해석한 변형적인 피스로 가득했다. 턱시도 베스트를 과감하게 잘라낸 해체적 테일러링, 슬립 드레스를 아우터웨어 위에 덧붙인 실험적 레이어드, 테이프로 거칠고 주름지게 고정해 완성한 조형적 실루엣까지. 글렌은 불완전한 파편을 모아 새로운 아름다움으로 재조합했다.


성공적인 첫 쿠튀르 컬렉션 그리고 시험 같은 두 번째 레디 투 웨어 컬렉션에 이르기까지. 글렌 마틴스는 메종 마르지엘라의 언어를 차분하게 정제하고, 새로운 방향으로 뒤틀어 영역을 확장하고 있다. 존 갈리아노가 메종 마르지엘라를 통해 극적인 세계관을 피워냈다면, 글렌 마틴스는 역으로 그 세계를 해체하며 메종의 언어를 현재형으로 재정렬하고 있는 것이다. 다음 컬렉션은 또 어떨까? 이제는 안정 궤도에 오른 그의 가능성에 확신감마저 든다.


관련기사

Credit

  • 에디터 김명민
  • 사진 브랜드
  • 아트 디자이너 정혜림
  • 디지털 디자이너 김민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