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리오 비탈레는 베르사체를 어떻게 현재형으로 만들려 했는가
너무 이른 퇴장이라 실감이 나질 않는 와중에 다리오 비탈레가 베르사체에 남긴 새로운 좌표는 유의미하다. 도나텔라 이후, 베르사체에 남긴 짧지만 분명한 흔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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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리오 비탈레의 첫 쇼는 밀란의 피나코테카 암브로시아나에서 열렸다. “전시를 감상하면서 잠시 기다려 주세요.” 컬렉션을 보기 전에 하우스에서 귀뜸한 말이다. 이곳은 레오나르도 다빈치의 원고와 르네상스 회화를 소장한, 밀란에서도 상징적 미술관 중 하나다. 베르사체가 전통적으로 선택해 온 화려한 쇼장이나 산업 공간이 아닌, 역사와 신화 그리고 예술적 권위가 축적된 곳. 우리는 이곳에서 다리오 비탈레의 옷을 소비하듯 보지 않는다. 각자의 느낌대로 사유한다.
이탈리아에서 패션 교육을 받은 다리오 비탈레는 디스퀘어드2와 보테가 베네타를 거치며 이탈리아식 테일러링과 소재에 대한 감각을 다졌다. 결정적으로 그의 재능이 빛을 발한 건 미우미우였다. 10년 넘는 시간 동안 다리오 비탈레는 미우치아 프라다와 함께 미우미우의 브랜드 이미지 전반을 관통하며, 특유의 미감을 구축했다.
그리고 마침내 다리오 비탈레의 감각은 2025년 베르사체의 크리에이티브 디렉터를 맡으며 가장 어려운 시험대에 오르게 된다. 도나텔라 베르사체 이후, 가문의 DNA로 유지돼 온 하우스가 처음으로 외부 시선에 의해 재해석돼야 하는 자리였기 때문이다.
다리오 비탈레의 첫 베르사체. 메두사와 바로크, 금빛 장식은 있지만 이전의 것은 아니었다. 너무 분명한 DNA 덕일까. 베르사체는 늘 베르사체라는 이유로 섹시미를 최대한으로 그려왔다. 이들은 1990년대 슈퍼모델들의 신화였고, 2000년대를 점령한 드레스의 아이콘이었다. 늘 반짝이고, 과장되고, 황금빛으로 빛났다.
다리오 비탈레의 베르사체는 컬러와 실루엣부터 달랐다. 1990년대의 지아니 베르사체의 아카이브를 소환했지만 복각하지는 않았다. 한 마디로 정제된 관능. 노골적인 섹시미 대신 실루엣의 긴장과 비율로 감각을 드러내고, 과한 장식보다 구조로 태도를 말한다. 여기에 특유의 이탤리언 스타일의 레트로 레이어드는 컬렉션을 지루하지 않게 조율했다.
다리오 비탈레의 컬렉션이 끝나고 한 인터뷰에서 컬렉션의 의도를 명백히 드러냈다. “나는 섹시미를 보여주고 싶지 않았다. 단지 그것을 느끼게 하고 싶었다.” 지아니와 도나텔라 시대의 베르사체가 시각적 쾌락과 즉각적인 관능을 중심으로 했다면, 다리오 비탈레는 관능을 보는 사람의 사적인 영역으로 옮기려 했다. 그는 섹시미를 드러내는 디자이너가 아니라, 왜 섹시한가를 묻게 만드는 디자이너였다.
다리오 비탈레의 ‘왜’는 우리가 미우미우를 좋아했던 이유를 생각해 보면 알 수 있다. 모순적이게도 순진해 보이지만 순수하진 않고, 단정한 룩을 입은 소녀지만 어딘가 관능적인 여자를 만드는 것처럼 말이다. 컬렉션을 선보이자마자 평가는 엇갈렸다. 언론은 물론 여론까지 시끄러웠다. “예전의 베르사체가 아니다”라는 반응과 동시에 “지금의 시대를 관통하는 설득력 있는 베르사체”라는 목소리가 공존했다.
분명한 것은 다리오 비탈레는 이 거대한 베르사체 하우스를 ‘추억의 아이콘’이 아닌 ‘현재형 브랜드’로 재정의하려 했다는 점이다. 실제로 1980년대 스타일의 글램한 음악을 들으며 ‘팝’한 컬러 스펙스럼의 베르사체 ‘뉴 룩’을 동시에 접한 에디터는 후자의 의견에 가까웠다. 컬렉션을 보는 내내 다리오 비탈레의 다음 챕터가 벌써부터 기다려졌으니까.
그러나 이 실험은 길게 이어지지 않았다. 베르사체가 프라다 그룹에 인수되면서, 안타깝게도 다리오 비탈레는 하우스를 떠나게 됐다. 너무 이른 퇴장이라 실감이 나질 않는 와중에 그가 남긴 짧은 ‘족적’은 유의미하다. 철옹성 같은 베르사체 왕국에 짧은 좌표 하나는 남겼다고. 분명 다리오 비탈레를 다시 만나는 일은 그리 멀진 않을 것 같다. 늘 자신만의 질서를 만들어왔던 그이기에.
Credit
- 에디터 이하얀
- 사진 브랜드
- 아트 디자이너 강연수
- 디지털 디자이너 오주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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