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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각가 이사무 노구치가 뉴욕에 새긴 거대한 작업들

이사무 노구치가 평생 ‘집’이라 부른 도시는 단 하나, 뉴욕이다. 붉은 정육면체 조각 ‘레드 큐브’와 수많은 미완의 놀이터 프로젝트에서 드러나는 그의 도시와 공공예술 실험을 전시 <노구치의 뉴욕>에서 만날 수 있다.

프로필 by 이경진 2026.03.22

맨해튼을 걷다 보면 무채색 건물 사이에서 기분 좋은 충격을 주는 강렬한 붉은 점 하나와 마주한다. 이사무 노구치의 ‘레드 큐브(Red Cube)’. 거대한 정육면체가 아슬아슬하게 한 꼭짓점만으로 도시 중력을 거스르며 땅 위에 서 있어, 잠시 멈춰 이 도시를 다시 보게 만든다. 붉은 입방체 중앙에 뚫린 구멍을 통해 하늘을 보면 뉴욕이 차가운 빌딩 숲이 아닌, 하나의 거대한 조각 작품처럼 다가온다. 오는 2월, 노구치 뮤지엄 개관 40주년을 맞아 열리는 전시 <노구치의 뉴욕 Noguchi’s New York>은 바로 이 지점에서 시작한다.


노구치가 자신의 생애를 통틀어 ‘집’이라 불렀던 유일한 도시, 그가 가장 치열하게 사랑하고 부딪혔던 뉴욕과의 역동적인 관계를 추적하는 여정이다. 노구치는 전 세계를 유랑하며 살았지만, 말년의 그는 자신을 “그저 이곳저곳을 떠돌아다니는 뉴요커일 뿐”이라 했다. 17세였던 1922년에 처음 뉴욕에 발을 디딘 후, 1988년 사망할 때까지 그는 파리, 도쿄, 멕시코시티를 오가면서도 늘 뉴욕으로 돌아왔다. 그에게 뉴욕은 단순히 물리적 거주지가 아니라 자신의 예술적 비전이 뿌리를 내리고 시험받는 거대한 실험실이자 영원한 귀환의 장소였을 것이다. 그는 이 도시에서 자신의 상징적 작품 중 일부를 창조했고, 실현되지 않은 수많은 프로젝트를 구상했으며, 시민적 가능성을 품은 공간들을 상상했다.


노구치가 뉴욕의 골조 사이에 새겨 넣은 작업들은 도시의 맥박과 긴밀하게 혹은 역동적으로 호흡한다. 록펠러 센터에 설치된 ‘News(Associated Press Building Plaque)’(1940)는 1938년에 치열한 공모를 뚫고 당선된 작품이다. 세계 최초의 대형 스테인리스스틸 주물 조각 작품으로, 전운이 감돌던 시기에 뉴스를 쫓는 기자들의 역동성을 담았다. 차가운 금속 위에 새겨진 속도감은 현대 도시 뉴욕의 에너지를 정직하게 포착했다.


반면, 월 스트리트 한복판에 자리한 ‘Sunken Garden’(1961~1964)은 도시 속도를 늦춰주는 고요한 오아시스다. 노구치는 일본 교토 우지강에서 가져온 바위들을 배치해 자본의 중심지에 현대적인 선(禪)의 공간을 만들었다. 사방이 유리로 막혀 오직 위에서 아래로 내려다보는 ‘시선’만 허용하는 이 정원은 분주한 도시인에게 잠시나마 정신적 고요를 선사한다. 여기에 ‘굴러가는 주사위’를 은유한 ‘Red Cube’까지, 노구치는 격자 구조로 뻗어 나가는 뉴욕에 유연한 사색의 틈을 심었다.


하지만 <노구치의 뉴욕>이 진정으로 조명하려는 노구치의 진면목은 끝내 뉴욕에 세워지지 못했던 ‘놀이터’ 프로젝트에 있다. 그에게 놀이터는 단순히 아이들이 노는 장소가 아니라 ‘지구의 표면을 조각하는’ 일이었다. 1933년의 ‘Play Mountain’부터 루이스 칸과 협업한 ‘Riverside Playground’에 이르기까지, 그는 아이들이 정형화된 기구 없이 스스로 길을 찾는, ‘방향이 정해지지 않은 놀이(Non-Directed Play)’를 꿈꿨다. 당시 관료주의의 벽에 부딪혀 위험하다거나 미쳤다는 평을 들으며 거절당했던 꿈들은 이번 전시에서 잭 커닝햄과 니콜라 메나르의 단편 애니메이션을 통해 부활한다. 실현되지 못한 조각적 지형 사이로 흐르는 아이들의 웃음소리는 노구치가 이 도시 공동체에 제안했던 ‘규제 없는 자유’와 ‘시민적 가능성’이 무엇이었는지를 상징적으로 보여준다. 우리는 도시를 어떤 시선으로 바라보고 가꿔야 할까.


이사무 노구치는 공공예술이 도시의 직조를 어떻게 변화시킬 수 있다고 생각했을까? 정치적이고 물질적이며 또 사회적 환경으로서 뉴욕과 관계를 맺은 아티스트로서 노구치는 뉴욕을 가능성의 장소로 생각했다. 아이디어가 뿌리를 내리고 우리가 함께 살아가는 방식을 형성할 수 있는 도시로 말이다. 노구치 뮤지엄 큐레이터 케이트 위너는 말한다. “뉴욕은 이사무 노구치를 만들었고, 도전하게 했고, 궁극적으로 그의 가장 야심 찬 아이디어들을 시험한 무대였어요.” 노구치 뮤지엄 관장 에이미 하우가 이번 전시에 부친 말처럼 “도시란 아이디어가 뿌리를 내리고 우리가 살아가는 방식을 형성할 수 있는 가능성의 장소”가 아닐까?


이사무 노구치에게 뉴욕은 자신의 끊임없는 귀환과 재창조를 담아온 ‘집’이었다. 그는 뉴욕이라는 도시의 딱딱한 질감에서 부드러운 영성을 찾아냈고, 공공의 공간을 통해 사람들의 삶에 개입하려 했다. 그리고 노구치의 시도는 지금도 유효하다. 뉴욕이라는 거대한 조각 작품은 지금도 노구치의 시선 속에서 끊임없이 다시 빚어지는 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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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redit

  • 에디터 이경진
  • 아트 디자이너 김강아
  • 디지털 디자이너 김민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