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의 하루를 포착한 어느 직장인의 조류도감
새들은 가장 자유로운 몸으로 하늘을 날지만, 동시에 가장 치열한 방식으로 오늘을 살아낸다. 그 사랑스러운 존재들이 품은 씩씩함을 포착한 탐조가 담씨의 조류도감.
전체 페이지를 읽으시려면
회원가입 및 로그인을 해주세요!
일본 홋카이도 라우스 항에서 유빙 위에 앉아 사색에 잠긴 흰꼬리수리.
평일에는 직장인, 휴일에는 탐조 사진가 ‘담씨’로 활동 중입니다. 일상에서도 탐조를 멈추지 않는다고요. 새의 하루를 기록하기 시작한 계기는 무엇입니까
예전 직장 근처 공원에서 발견한 어치가 겨울나기를 하려고 땅에 도토리를 심는 모습이 너무 귀여웠어요. 원하는 자리에 도토리를 심으려는데 잘 심어지지 않으니까 다시 꺼냈다가 또다시 심더라고요. 마치 인간이 고민하는 것처럼요. 그리고 청설모가 나무 사이를 타잔처럼 멋지게 점프하는 모습도 자주 볼 수 있었습니다. 이 사랑스러운 모습을 담기 위해 카메라를 장만한 것이 본격적인 계기가 됐죠.
씩씩하고 명랑하게 비행하는 송골매의 얼굴.
탐조 현장의 하루는 어떤 활동으로 채워집니까
굉장히 지루해 보일 겁니다. 아침 일찍 현장에 도착해 오후 5시까지 시간을 보내는 게 보통이죠. 탐조를 하면서 필드를 쭉 둘러보는데, 희한하게도 주변에 새가 거의 없다든가 목표로 했던 새가 나타나지 않아 허탕 치는 경우도 많고요. 그래도 예기치 못한 장면이 발생할 수 있다는 게 탐조의 묘미죠.
중국 내몽골 하이라얼, 눈 덮인 초원에서 먹이를 찾기 위해 고요하게 응시하는 흰올빼미
오래 기다리는 만큼 고생스러운 순간도 많겠죠. 고생 끝에 얻은 사진은 어떤 장면으로 채워졌나요
어느 폐교 근처 옹달샘에서 호반새를 목격했다는 지인의 소식을 듣고 숲속 옹달샘에 위장막을 치고 대기한 적 있습니다. 모기가 너무 많아 정말 고생했어요. 숲모기나 왕모기가 시야를 가릴 정도였으니까요. 모기향을 피워도 소용없고, 장갑이나 바지를 뚫고 제 피를 빨아갔습니다. 그렇게 5시간을 버티다가 호반새도 보이지 않고, 도저히 참을 수 없어 철수하려던 찰나에 호반새가 갑자기 나타나 사냥을 시작했습니다. 그 모습을 촬영할 수 있었죠. 단 한 번 먹잇감을 사냥하고 다시 나타나지 않았지만, 덕분에 긴 기다림을 보상받은 기분이었습니다.
전북 전주, 인근 야산에서 해를 쬐며 쉬고 있는 수리부엉이.
출몰 장소에 대한 정보는 어디서 얻나요
<조류도감>에서 얻거나 탐조를 하는 지인들과 정보를 나누고, 인터넷 커뮤니티나 기록을 통해 최근 관찰 소식을 확인합니다. 외국 새를 촬영할 때는 그 지역에서 사용하는 메신저를 통해 현지 탐조가들과 정보를 교환하죠. 촬영 장소는 비교적 다양한 편입니다. 집 근처인 순천만을 자주 찾고, 목포·구례·대구·제주 등 여러 지역을 다니며 촬영합니다. 해외로는 일본과 중국, 내몽골에서도 촬영했죠.
전남 순천 송광사 인근 계곡에서 육추 활동 중인 물까마귀.
새의 다양한 모습 중 담씨가 가장 사랑하는 모습은 무엇입니까
새들은 어떤 순간에서든 모두 사랑스럽습니다. 초점이 나갔거나 기록으로 남기기 어려운 사진이 아니라면 대부분 지우지 못하고 하드디스크에 그대로 채워두죠. 그만큼 새들의 다양한 순간을 소중하게 여기거든요. 최근에 본 장면 중 가장 사랑스러운 모습은 흰올빼미가 하품하는 모습입니다. 그 외에도 광활한 내몽골의 설경 위를 흰올빼미가 날아다니던 장면은 지금도 잊기 어렵네요. 끝없이 펼쳐진 하얀 설경 위에서 천사처럼 조용히 활공하던 모습이 경이로웠죠.
일본 홋카이도 라우스 항에서 먹이를 찾아 헤매는 중인 흰꼬리수리.
촬영을 위해 조류에 대한 탐구도 잊지 않을 텐데요. 가장 중요하게 생각하는 사전작업이 있나요
촬영 전에 새에 대한 정보를 찾아보기는 합니다만, 실제 촬영에서는 그런 정보가 절대적 기준은 아니에요. 분명 그 시간과 장소, 환경에 나타난다고 알려진 새가 온종일 모습을 보이지 않는 경우도 있고, 전혀 예상하지 못한 장소에서 갑자기 나타나기도 하니까요.
둥지를 떠난 지 얼마 안 된 어린 올빼미, 아직 세상 물정을 모르는 유조.
그 과정에서 자연스럽게 알게 된 새의 습성이 있다면
대부분의 새들은 사람이 위장하고 있어도 이미 다 알고 있는 듯 눈치를 줍니다. 그만큼 경계심이 강하고 민감하죠. 또 어떤 새들은 의외로 사람 가까이에서도 크게 개의치 않고 먹이 활동을 그대로 지속하기도 합니다. 결국은 현장에서 얼마나 오래 관찰하고 기다리느냐가 지대한 영향을 주는 것 같습니다. 대신 맹금류를 촬영할 때는 예외입니다.
제주도 남원 인근 해안가 절벽에서 활동 중인 송골매.
맹금류를 촬영하는 방식은 다른 새의 경우와 조금 다릅니까
촬영 전날 일기예보를 검색해 바람 세기나 방향을 꼭 확인합니다. 예를 들어 물수리는 사냥할 때 바람을 품고 들어오기 때문에 바람의 흐름을 이해하는 것이 정말 중요하죠. 바람이 불어오는 방향을 확인하고, 내가 바람을 등진다고 생각하며 촬영 위치를 선정하면 정면으로 사냥하는 모습을 담을 가능성이 높아집니다. 때로는 좋은 장면을 위해 일주일 가까이 한 장소에 머물며 시간과 싸울 때도 있습니다.
전북 남원의 어느 시골, 내리는 비를 바라보며 운치를 즐기는 호반새.
탐조 경험을 통해 조류 사회의 특성과 서열, 규칙을 알게 될 수도 있나요? 유독 그런 특징이 돋보인 새도 궁금한데요
최근에 관찰했던 홍여새에게서 그런 특징이 두드러졌던 것 같습니다. 홍여새는 무리를 이루어 활동하면서 우리나라 전국을 방랑하며 먹이를 찾는데, 나뭇가지나 전깃줄에 앉아 있다가 떼를 지어 날아와 물이나 먹이를 먹고 홀연히 사라집니다. 겨울이 끝나갈 무렵 잠깐 머물다 가는 철새죠. 그리고 열매가 풍부한 나무를 발견하면 그 주변을 반복적으로 찾는 패턴이 있습니다. 흥미로운 점은 곧바로 달려들어 먹이를 먹지 않는다는 것입니다.
먹이를 발견했는데 왜 곧바로 먹지 않나요
자세히 관찰해 보면 우두머리나 보초병 역할을 하는 듯한 개체가 먼저 눈치를 보며 주변을 경계하고 상황을 살피는 경우가 많더라고요. 그 개체가 조심스럽게 열매를 먹기 시작하면 그제야 다른 홍여새들이 우르르 모여들어 함께 먹이를 먹기 시작합니다. 어느 순간 무리가 다시 우르르 날아올라 근처에서 몸을 숨길 수 있는 나무로 이동했다가, 잠시 후 다시 날아와 먹이를 먹는 패턴을 반복하죠.
일본 홋카이도 라우스 항에서 영역을 놓고 충돌한 참수리들.
숲에서 아련하게 서 있는 올빼미, 석양을 바라보는 흰꼬리수리, 먹이를 물고 드라마틱하게 날아오르는 참수리 등의 사진에서 새의 표정과 몸짓이 꽤나 감성적입니다. 촬영할 때 가장 중요하게 생각하는 부분이 있다면
눈입니다. 새의 눈의 안광에 따라 표정과 생명력이 사실적이거든요. 특히 눈의 안광이 빛나거나, 주변 풍경이 은은하게 비치는 순간을 담게 되면 더할 나위 없이 행복하죠. 촬영할 때 항상 눈이 잘 보이는 각도나 빛의 방향을 의식합니다.
눈 덮인 초원을 화려하게 수놓은 흰올빼미의 천사 같은 날갯짓.
지금까지 찍은 탐조 사진 중 가장 강렬한 이야기가 담긴 장면은
제주도에서 송골매가 물꿩을 사냥한 사진입니다. 이른 아침, 해가 막 수평선 너머로 떠오를 때, 바다에서 육지로 힘겹게 날아오던 보기 드문 철새 물꿩이 매와 마주쳤죠. 그 순간부터 매와의 숨 막히는 추격전이 펼쳐졌습니다. 물꿩은 필사적으로 도망치며 바다 위를 스치듯 날았고, 심지어 바닷속으로 몸을 던지며 매에게서 벗어나려 몸부림쳤어요. 그러나 매는 단 한 번도 놓치지 않았고, 결국 지친 물꿩은 매의 강력한 발톱에 붙잡히고 말았죠. 그때가 정확히 오전 7시였을 겁니다.
결국 매에게 붙잡힌 물꿩의 운명은 어떤 결론을 맞이했나요
매는 잡은 물꿩을 둥지 근처 바위 위에 내려놓고 곧바로 먹잇감 손질에 들어갔죠. 먹잇감을 해체해 둥지로 가져가 새끼들에게 먹이려고요. 그 순간에도 물꿩은 완전히 숨이 끊어지지 않은 상태였고, 몸부림치듯 발과 날개를 퍼덕이고 있었습니다. 먹잇감 손질이 끝나고 둥지로 날아오를 때, 수평선 너머로 해가 점점 더 높이 떠오르며 매의 뒤편에 위치한 바위에 붉은 햇빛이 반사돼 퍼지기 시작했는데, 먹잇감을 움켜쥔 매와 그 배경을 붉게 물들이던 빛의 결과물이 합쳐진 사진을 담아낼 수 있었습니다.
전북 김제에서 먹이를 찾기 위해 광활한 설경 위를 저공 비행하는 큰말똥가리.
새의 여러 가지 면모 중 비록 인간이지만 닮고 싶은 것도 있을까요
가장 사랑스럽고 부러운 건 날갯짓으로 자유롭게 날아다닐 수 있다는 점 아닐까요? 늘 그 모습을 바라보며 새처럼 자유롭게 하늘을 나는 기분은 어떨지 상상해 보곤 합니다.
일본 훗카이도 구시로시, 야칸 국제두루미센터에서 발견한 환영 같은 두루미들.
직장 근처에서 겨울나기를 하는 어치처럼 새에게서 인간의 모습이 보일 때도 있나요
일본 북해도에서 촬영했을 때였어요. 당시 참수리가 유빙 위에 앉아 있었는데, 작은 얼음 덩어리를 공처럼 굴리며 노는 모습을 발견했죠. 처음에는 우연한 행동인 줄 알았는데 계속 얼음을 밀거나 발로 툭툭 건드리는 게 영락없이 노는 모습이었어요. 그 모습에서 ‘이 녀석들도 따분함을 느끼는 걸까?’ 싶었고, 카메라를 내려놓고 그 장면을 유심히 봤던 기억이 납니다. 그런 순간과 마주할 때마다 각자의 방식으로 시간을 보내며 살아가는, 우리와 똑같은 존재라는 생각이 들죠.
중국 내몽골 하이라얼의 민간 근처에서 아장아장 걷는 금눈쇠올빼미.
오랫동안 당신 앞을 스쳐 지나간 수많은 새들에게, 당신의 사진 속 다양한 표정의 새에게 한마디 건넬 수 있다면
‘우리보다 더 치열한 삶을 살고 스러져 가는구나’ 하는 생각이 듭니다. 먹이를 찾고, 천적을 피하고, 혹독한 날씨를 견디며 하루하루를 버티는 모습을 보고 있으면 그 치열한 순간들을 우리에게 보여줘 고맙다고 말하고 싶습니다.
Credit
- 에디터 정소진
- 사진가 박원근
- 아트 디자이너 김려은
- 디지털 디자이너 민경선
엘르 비디오
엘르와 만난 스타들의 더 많은 이야기.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