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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태리, 전인으로 구성된 아트 콜렉티브 야광. 신작 ‘Facade Zone’ 앞에 서 있다. 신체와 공간을 매개로 젠더와 노동을 둘러싼 사회적 구조를 탐구해왔다.
올해로 4회 째를 맞이한 2026 프리즈 서울 아티스트 어워드 수상 소식을 들었을 때, 서로 무슨 말을 했나
작업실에서 신작 구상을 하고 있었다. 예상하지 못한 결과라 둘 다 놀랐고, 말이 나오지도 않았다. 서로 껴안았던 것만 기억난다.
불가리(Bvlgari)와 프리즈가 손을 잡고, 단지 1회성 작품 발표를 넘어 작가를 장기적으로 지원할 수 있는 체계와 관계를 구축하는 제도다. 아이러니하고 흥미로운 지점도 있다. 야광은 2022년 <Lubricant> 이후 지금까지 사회의 정상성이나 제도에서 밀려나는 존재를 다뤄왔는데, 가장 큰 미술시장 무대 중 하나인 프리즈 한가운데에 서 있으니 말이다
첫 개인전을 연 2022년, 프리즈는 우리와 상관없는 별나라 이야기 같았다. 2025년 아트선재가 주최한 <오프사이트 2>를 통해 프리즈 라이브와 연계한 작업을 선보이면서 코엑스 전시장에 처음 갔을 만큼 먼 일이었다. 막상 ‘안쪽’에 들어와보니 우리가 봐온 것들이 없지 않더라. 전시장은 하룻밤 사이에 세워졌다가 며칠 만에 사라지는 곳이고, 그런 임시적 시간이 이번 작업의 시작이 됐다.
‘야광’이라는 이름은 낮 동안 빛을 흡수했다가 어둠 속에서 발광하는 특성에서 가져왔다. 그런 의미에서 신작 ‘Facade Zone’은 무엇을 흡수해서 다시 비추나
먼저 이름에 대해 조금 다르게 말하고 싶다. 빛을 흡수했다가 어둠 속에서만 발산한다는 설명보다 어둠 속에서 빛나는 모든 것을 아우르는 말로 쓴다. 잘 보이지 않는 존재와 목소리를 대신 비춘다기보다 이미 어둠 속에 존재하는 것들을 조명하는 쪽에 가깝다. ‘Facade Zone’은 전시장 가벽을 비춘다. 짧은 며칠 간 세워지고 해체되는 가벽은 전시장의 중요한 특징이면서 사람들이 궁금해하지 않는 대상이다. 그 비가시성과 숨겨진 움직임을 조명하고 싶었다.
수많은 작품의 구획을 나누는 전시장의 ‘벽’을 해체한다는 건 꽤 전복적으로 느껴진다
‘화이트 큐브’라는 말이 있을 만큼 하얀 벽은 전시장에서 중요한 요소다. 그 벽들이 하룻밤 사이에 세워지는 거대한 임시 도시 같은 모습이 된다. 우리는 이 벽을 막힌 면이 아니라 속을 파낸 구조로 다시 보고 싶었다. 그 속에 빛이 개입하면 벽은 직선적 차원이 아니라 가장 깊숙한 곳부터 코엑스의 천장까지 그림자가 닿으며 계속 변화하는 구조물이 된다. 해체하고 재구성해서 공간을 좁히는 것이 아니라 넓히고 싶었다.
신작에는 한국 불화의 의복과 사슬 등 장식에서 착안한 요소들이 등장한다
불화나 탱화에서 인물을 둘러싸는 장식 요소들, 즉 광배와 천의, 불꽃으로 둘러진 몸, 구름 같은 것에 관심이 있었다. 불화의 중요한 인물들은 모두 정면성을 띠고 있는 반면 그들을 감싸는 주변부 장식은 오히려 자유롭고 공간감이 느껴진다. 정면성이라는 규칙과 거기서 벗어나 흐트러지는 요소들 사이의 대비가 지닌 힘이 우리가 하려는 이야기와 닮았다고 생각했다.
매년 불가리(Bvlgari)의 후원으로 진행되는 ‘프리즈 서울 아티스트 어워드’의 올해 수상자로 주목 받은 야광. 조각 ·영상·설치· 퍼포먼스를 넘나드는 작업을 선보여 왔다.
작품의 텍스처 사이에서 빛과 그림자가 움직인다
처음에는 프로그래밍으로 자동 구동되는 공연용 조명을 쓰려 했으나 이미 자본 스펙터클이 공고한 페어장에 또 다른 스펙터클을 더하고 싶지는 않았다. 절대적 한계를 두기로 했다. 설치된 조명은 손전등처럼 배터리로 작동하고, 정해진 시간이 지나면 멈춘다. 누군가 배터리를 갈아야 다시 움직인다. 두 개의 키네틱 손전등이 서로 반대 방향으로 교차하며 지나가기에 표면 도상은 한 번도 같은 상태로 고정되지 않는다.
‘방문자(2023)를 위한 조각’에서 풍긴 암모니아 냄새가 기억에 자리한다. 이번 작품에서도 라텍스와 금속, 두 소재가 만났을 때 산화 작용을 염두에 뒀다. 형태뿐 아니라 냄새와 촉감, 시간에 따른 변화처럼 완전히 통제할 수 없는 ‘물성’은 작업에서 얼마나 중요한 부분인가
우리는 라텍스라는 물성이 죽어가는 상태 혹은 죽음을 향해 가는 상태라는 것을 작업으로 받아들인다. 라텍스는 금방 삭고 곪는다. 계속 충동 작용을 겪는 살아 있는 몸과 같다. 그것이 서로 다른 생각을 갖고 살아가는 세상의 모습처럼 느껴진다. 충돌하면서도 얽히고설켜 계속 어떤 작용을 만들어가는 모습은 필연적이고 아름답다. ‘Facade Zone’에서는 훨씬 많은 양의 체인을 라텍스와 만나게 해 라텍스가 원래 지닌 색보다 진하게 산화되고 있다. 나무의 진갈색도 철을 산화시켜 나온 색이다. 산화는 수분이 남아 있는 한 계속되고, 그 과정을 거친 부분은 바스러진다. 농담으로 우리가 만든 조각은 나중에 다 ‘누워 있게’ 될 거라는 얘기를 한다.
프리즈 서울에서 최초 공개된 신작 커미션 <Facade Zone>(2026)은 페어장 스탠드의 가벽을 해체한 뒤 이를 목재 골조로 재구성한 장소특정적 설치 작업이다.
‘Facade’라는 단어는 다양한 뜻을 품고 있다. 야광이 정의하는 ‘Facade Zone’은 어떤 곳인가? 집이나 전시장, 도시처럼 누군가에게 당연히 허락된 공간이 다른 누군가에게는 끊임없이 존재를 증명해야 하는 곳이기도 하다
앞면만 요구되는 구역. 뒤가 없는 것이 아니라 뒤를 보지 않기로 합의한 자리다. 다만 우리가 하고 싶은 것은 뒷면을 대신 비춰주는 게 아니다. 그보다 앞면과 뒷면이 한 구조에 존재하는 상태, 그 사이를 오가는 움직임 자체를 드러내고 싶었다. 그래서 벽의 속을 파내고 그 틈으로 빛이 지나가게 했다. 빛이 움직이는 동안 어떤 면은 앞이 됐다가 곧 뒤가 되고, 그림자가 지나가면 다시 순서가 바뀐다. 어느 쪽도 최종적인 면으로 고정되지 않는다. 이 조건은 페어장에만 있는 게 아니다. 누군가에게는 그냥 들어가면 되는 집과 전시장과 도시가 다른 누군가에게는 계속 자기 존재를 설명하고 증명해야 통과할 수 있는 곳이 된다. 통과하는 데 비용이 드는 모든 장소가 ‘파사드 존’이다. 그리고 그 안에 있는 사람도 보이는 쪽과 보이지 않는 쪽을 계속 오가면서 산다.
레즈비언의 삶을 조명해 왔지만, 작품을 반드시 ‘퀴어 아트’라는 맥락에서 읽을 필요는 없다고 생각하는가
여성 퀴어의 삶을 구체적으로 조명한 건 첫 번째 개인전이다. 당시 그것이 필요하다고 생각했고, 그 이후 작업에서 퀴어함은 주제적 측면이 아니라 전체적 방법론으로 작동한다. 재료를 다루는 방식, 무엇을 중심에 두지 않을지 정하는 방식, 둘이 팀으로 일하는 방식 전체에 걸쳐 있다. 있는 것을 없는 것처럼 다루는 자리에서는 이름을 정확히 말하는 게 가장 효율적인 방법이지만, 그것만으로 부족하다고 느끼는 순간은 그 이름 하나가 붙는 순간 작업이 다 설명됐다고 여겨질 때다. 작업이 무엇으로 만들어졌고, 어떻게 변해가는지에 대한 질문이 그 지점에서 멈춰버리는 경우가 있다. 이 딜레마도 작업으로 타개해 나갈 것이다.
요즘 머릿속을 차지하고 있는, 미술과 전혀 관계없는 것은
집에 있는 고양이 ‘카레’와 도마뱀 ‘생강’ ‘마늘이’를 케어하고 좋은 시간을 보내는 것.
퀴어 미술에 대한 논의와 시도가 활발한 지금, 야광의 작업이 어떤 방식으로 기억되길 바라나
주제보다 작업으로, 무엇을 다룬 팀이었는지보다 그것을 어떤 물질과 구조로 만들었는지가 남았으면 한다. 레즈비언 미술이 지금 할 수 있는 일은 재현 목록을 하나 더 늘리는 것이 아니다. 우리가 흥미롭게 보는 것은 시간과 관계를 다르게 조직하는 방식이다. 이름이 없어 기록되지 않는 관계, 규격에 맞지 않아 통계에서 빠지는 몸, 흔적을 남기지 않는 것이 잘한 일로 여겨지는 노동. 그것들이 비가시적인 이유는 대상이 없어서가 아니라 보는 틀이 그들을 헤아리지 않기 때문이고, 그 비가시성 자체에서 찾을 수 있는 즐거움도 있다. 틀 자체를 흔드는 일은 여전히 필요하고, 지금 그 논의가 가장 활발한 시기라면 더더욱 할 수 있는 일이 많을 것이다.
야광은 지금부터 어떤 일을 벌일 예정인가
서 있는 자리는 매번 달라질 수 있다. 다만 야광이 처음 만들어질 때 조망하고 싶었던 것을 늘 고정점에 두고, 거기서부터 다른 것을 확장해 나가려 한다. 어떤 시간이 흐르든, 어디에 있든 그 점은 바뀌지 않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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