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OCIETY

링고아니대박이, 내 강아지가 남긴 것

나중에야 알게 됐다. 내 강아지를 통해 알게 된 세상이 너무나 크다는 것을.

프로필 by 이마루 2024.09.29
2024년 7월 7일. 이날은 13년을 함께했던 내 동생 ‘링고 아니 대박이’가 세상을 떠난 날이다. 링고 아니 대박이와 만난 것은 10여 년 전. 근처에 살던 주민의 반려견이 낳은 새끼 강아지를 데려왔다. 지금 알고 있는 것을 13년 전에도 알았더라면 참 좋았을 텐데, 당시에는 펫 숍에서 사는 것만 아니면 괜찮다고 안일하게 생각했다. 그것 또한 입양이 아닌 구매행위에 가깝다는 걸 안 건 훨씬 나중의 일이다.

반려견 이름이 링고 아니 대박이라고 하면 사람들은 어쩌다 그런 이름을 갖게 됐는지 궁금해하는데, 알고 보면 별것 없는 시시한 이야기다. 처음 데려왔을 때는 귀여우면서도 특별한 이름을 지어주고 싶어서 고민 끝에 일본어로 ‘사과’를 의미하는 ‘링고’라고 이름을 지었는데, 함께 산 지 반년쯤 시간이 흘렀을까? 링고라는 이름이 도통 익숙해지지 않았는지 부모님이 돌연 이름을 ‘대박이’로 바꿔버린 것! 하지만 이미 동물병원과 SNS 계정, 반려동물용품 숍 등 모두 ‘링고’로 등록해 버린 상태라 자연스럽게 밖에서는 링고, 집 안에서는 대박이로 불렸다. 마치 배우나 아이돌의 활동명이 다른 것처럼 말이다. 그때부터 스타가 될 운명이었던 걸까? 상냥하고 인자한 교수님같이 푸근한 미소를 띤 대박이의 사진이 SNS에서 인기를 끌기 시작했다. 물론 실제로 대박이가 미소 지은 것은 아니고 이 또한 인간의 시선으로 바라본 이미지였겠지만, 어느 순간부터 미소 짓는 대박이의 얼굴이 교수님 ‘밈’으로 사용되면서 자연스럽게 트위터에서 ‘최고의 명문대 링아대학교 교수님’이라고 불리게 됐다. 해외에도 알려진 건지 핀터레스트에서 대박이 사진을 발견할 때마다 깜짝 놀라곤 한다.

아직 SNS에서는 링고라고 불렸던 2020년 12월 15일. 대박이는 심장병 중말기 진단을 받았다. 그리고 그날을 기점으로 모든 SNS 이름을 링고 아니 대박이로 바꿨다. 평소 링고를 사랑했던 많은 사람이 본명인 대박이로 투병을 응원해 준다면 그 수많은 마음이 모여 기적이 일어날지도 모른다고 믿고 싶었다. 처음 진단에서 길어야 2년이라는 이야기를 들었던 대박이는 무려 4년을 더 함께했으니, 돌이켜보면 정말 기적이 일어난 것인지도 모른다.

‘교수님 강아지’라고 불렸던 대박이는 내게도 많은 걸 가르쳐줬다. 그중 가장 큰 변화는 비인간 존재가 가족 구성원에 추가된 이후 그동안 철저히 인간 중심으로 살아왔던 내 시야가 유기견 → 길고양이 → 동물원과 수족관 → 가축으로 분류된 동물 → 환경 순서로 넓어졌다는 것. 송아지나 병아리, 양과 말이 지금 내 옆에서 자고 있는 강아지와 사실은 다를 게 하나도 없다는 것을 깨달은 몇 년 전부터는 자연스럽게 육식을 하지 않게 됐다. 다소 어설픈 비건이지만 앞으로도 이런 생각은 바뀌지 않을 것 같다.

문제는 이 새로운 가치관이 내 생업과 상충한다는 것이다. 갖고 싶은데 시중에 없어서 직접 만들어 팔기 시작한 엄지검지 핑거리스 니트 장갑이 좋은 반응을 얻으며 시작하게 된 내 작은 브랜드 ‘미온전’. 양모 중 가장 좋다는 어린 양의 털을 이용해 ‘램스울’을 소재로 한 니트 장갑은 가장 사랑받은 제품 중 하나다. 그러나 인간이 양모를 얼마나 비인도적인 방식으로 취하고 있는지 알게 됐고, 관리를 아무리 잘해도 특성상 2~3년밖에 사용하지 못하고 버려지는 소모품을 물건이 넘쳐흐르는 이 시대에 만들어내는 생산자라는 부채감이 생겼다. 오래 쓸 수 있는 튼튼한 제품을 만드는 것이 옳은 길이라고 생각해 훨씬 튼튼한 봉제 장갑을 만들기로 결정했다. 수요가 보장돼 있는 인기 제품을 더 이상 생산하지 않기로 결정하기까지 얼마나 두려웠는지. 우려대로 판매량은 떨어졌지만 그럼에도 아무것도 몰랐던 때로 돌아가고 싶지는 않다. 이건 대박이가 내게 새롭게 알려준 세상이니까.

“대박이를 잘 보내준 뒤에는 유기동물을 구조하고, 임시보호하고, 입양을 보내는 삶을 살 거야!” 꽤 오래전부터 주변에 하고 다녔던 말이다. 대박이가 세상을 떠난 후 당연히 매일 밤낮을 눈물로 지냈다. 무기력 그 자체였던 날들. 그날도 침대에 누워 평소처럼 구조가 필요한 아이들의 사진을 ‘링고 아니 대박이’ 트위터 계정에 올렸다. 예전부터 자주 했던 일이기에 특별할 것 없는 일상이었다. 그런데 이상하게도 1주일 내내 한 아이의 얼굴이 자꾸 눈에 아른거렸다. ‘그래, 어차피 오래전부터 하기로 마음먹었던 일인데, 이 아이부터 시작하자!’ 다음날, 내 발걸음은 경기도 여주에 있는 보호소로 향했다.

눈 주변의 털 색만 달라 마치 고글을 쓴 것 같아서 ‘고글씨’라고 부르게 된 강아지와의 첫 만남이다. 현재 링아대학교 1회 입학생으로 무럭무럭 자라고 있는 고글씨는 똑똑한 순둥이다. 하지만 열악할 수밖에 없는 보호소에서 어린 시절을 보낸 탓일까. 검사 결과 감염된 바이러스만 일곱 개였다. 앞으로 예상되는 치료비와 검사비만 해도 어마어마한 상황. 구조와 임시보호 입양을 이어가며 링아대의 이름으로 계속 졸업생을 배출하려는 계획을 실행하기에는 돈이 가장 큰 걸림돌이었다. 그래서 정작 대박이가 링고라는 이름으로 수만 명의 팔로어를 가진 SNS 스타가 됐을 때는 시도할 생각조차 없던 일을 실행에 옮겼다. 제작비와 순수익이 투명하게 공개되는 플랫폼 ‘마플샵’을 통해 링아대 굿즈를 제작 판매하기로 결심했다. 이 과정에서 ‘죽은 개로 돈을 번다’ ‘슬프지도 않냐’는 익명성 비난에 시달리기도 했는데, 정작 그런 사람들은 유기견 문제에 아무 관심도 없는 이들이라는 걸 알고 있어서 하루 이틀 만에 훌훌 털고 원래 계획대로 진행했다. 그러나 분명하게 하고 싶은 말이 있다. 떠나보낸 반려동물을 향한 애도가 본인 성에 찰 만큼 SNS에 전시되지 않는다고 해서 그 계정 뒤에 존재하는 사람의 일상 또한 아무렇지 않은 것은 아니라는 것. 매 순간 슬프고 무너지는 누군가의 일상이 SNS에 보여지는 일부로 판단할 수 있는 것은 아니다. 이건 펫 로스로 슬퍼하는 반려인에게만 해당되는 건 아니다. 유족다운, 피해자다운 모습을 요구하는 것 자체가 폭력이다.

금세 훌훌 털어내고 일어날 수 있었던 가장 큰 이유는 대박이를 추모하는 나만의 방식에 마음 깊이 공감하고 이런 행보를 응원하는 사람이 많았기 때문이다. 심지어 망원동에 있는 ‘어쩌다 망원 구내식당’ 사장님은 여러 보호자들이 본인의 반려견, 반려묘로 굿즈를 제작 · 판매해 보호소에 후원하는 오프라인 행사에 기꺼이 공간을 내줬다. 나 또한 그곳에서 판매한 링아대 스티커의 수익금을 ‘행동하는 동물사랑’에 기부했다. 이런 흐름이 얼마나 호쾌하게 느껴지던지! 지난 상처들이 싹 지워지는 기분이었다.

13년 동안 함께했던 내 동생 대박이는 더 이상 내 곁에 없다. ‘고글씨’의 치료 기간은 짧지 않겠지만 워낙 씩씩하고 튼튼한 아이라 이겨낼 수 있으리라 믿는다. 대박이가 넓혀준 내 세계, 대박이를 통해 배운 많은 것이 이제는 동력이 돼 나를 예상치 못한 길로 이끈다. 앞으로 어떤 일을 하든 대박이가 함께한다는 건 변함없다. 우선 1회 입학생 고글씨를 우수한 성적으로 졸업시키고 2회, 3회, 4회까지 졸업생을 배출하면서!

Credit

  • 에디터 이마루
  • 글 전영은
  • 일러스트레이터 KAY MCDONAGH
  • 아트 디자이너 구판서
  • 디지털 디자이너 김려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