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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 만드는 사람에게 한강 작가의 노벨문학상은 어떤 의미일까?
감격스러운 그 사건으로 인해 ‘책 만드는 일’을 반추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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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상훈
민음사에서 편집자로 일하고 있다. 아니 에르노, 욘 포세 등의 작품을 편집했다. 
©unsplash
한강 작가가 노벨문학상을 수상한 덕에 출판사 풍경이 뉴스에도 나오고, 늘 아파트와 주식 얘기만 하던 사람들마저 독서를 열망하게 됐으며, 어느새 책이 유행의 최첨단에 서게 됐으니 이보다 더 좋은 일이 있을까! 개인적으로 여태 감격스러운 그 사건으로 인해 너무 익숙해서 원망하고, 사랑한다고 자부하면서도 정작 제대로 사랑해 주지 못했던 ‘책 만드는 일’을 반추했다. 솔직히 문학이 무엇이기에 이토록 전 세계가 야단법석이냐는, 허심탄회하지만 그만큼 대답하기 곤란한 철학적 질문을 들은 탓이기도 하다. 가만 생각해 보니 단지 문학이 좋아서 이 일을 해왔다. 더구나 좋아하는 덴 달리 이유가 없으니 사실상 맹목적으로 책을 만들어왔는지도 모르겠다. 편집 노동자를 곤경에 빠뜨릴 만큼 치명적인 존재론적 질문엔 이제껏 내가 애써 외면해 온, 책을 만들고 문학을 편집하는 일의 참된 의미가 들어 있다. 일로 자아실현을 하려 하면 인생을 그릇친다는 소리를 들은 뒤로(번아웃으로 향하는 지름길) 편집자란 모름지기 책이라는 상품을 만드는 사람일 뿐이라고 스스로를 몰아붙여왔다. 그러는 동안, 너무나 많은 것들을 무심코 ‘돈을 버는 보람’으로 상쇄해 온 건 아닐까? 문학책을 편집한다는 것은 인류의 고통과 우리 사이에 다리를 놓는 일. 놀랍게도 문학의 가치는 바로 이 고통 속에 도사리고 있다. 작가뿐 아니라 편집자도 이런 자각이나 사명 없이는 감히 책을 만들어내지 못할 것이다. 톨스토이의 말대로 행복은 저마다 비슷하지만 불행은 제각각이고, 이에 더해 찰리 채플린도 삶이란 멀리서 보면 희극이고 가까이서 보면 비극이라 했다. 오늘날 세상 모든 것들(불행과 비극마저)이 구경거리로 가공돼 소비되고 있다. 그러나 문학만큼은 비극이 일회성 오락으로 휘발되지 않도록 당신을 고통 곁으로 거세게 끌어당기고, 그 고통을 흔하디흔한 광고 전단이 아닌 공감의 영역으로, 그리하여 변화를 촉구하는 행동으로 옮겨놓는다. 문학책을 손에 쥐고 책장을 펼친 순간, 독자는 이미 위대한 첫걸음을 내딛은 것이다. 도처에 숨죽인 고통을 외면하지 말라고, 끊임없이 연쇄하는 비극을 결코 잊지 말라고 호소하는 작가의 문장 앞으로 독자의 눈동자를 이끄는 일, 어쩌면 나는 책이 아닌, 바로 이 일을 좋아하는지도 모른다.
Credit
- 에디터 윤정훈
- 아트 디자이너 김강아
- 디지털 디자이너 오주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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