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OCIETY
페미니스트는 어쩌다 낙인이 됐을까?
"이렇게 평범한 사람도 페미니스트라는 걸 보여주고 싶었어요." 유튜버 맹온의 단단한 얼굴과 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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캐멀 컬러의 재킷과 팬츠는 모두 Eudon Choi. 화이트 셔츠는 Cos. 슈즈는 Archivépke. 이어 커프는 스타일리스트 소장품.
부족한 게 많은 사람. 하지만 어제보다 더 나아지고 싶은 사람. 어쩌다 보니 활동명이 된 ‘맹온’은 친구가 지어준 별명이다. 내 ‘맹~’한 면모를 재미있어하는, 아주 똑 부러지는 친구다. 유튜브 채널을 연 것은 2019년 즈음. 처음에는 친구들과 일상을 기록으로 남기고 좋아하는 노래를 부른 커버 영상을 올리려는 목적이었고, 업로드도 몇 달에 하나씩 하는 정도였다. 지금처럼 주제 하나를 두고 이야기하는 토크 영상을 올릴 예정은 없었다.
사회 이슈에 언제부터 관심을 가졌나
2014년 세월호다. 수학여행을 다녀오던 내 또래에게 벌어진 일이다 보니 유족들의 마음이 너무 공감이 갔고, 실질적인 규명과 해결이 왜 이렇게 더딜까 싶었다. 이후 한동안은 또 큰 문제의식 없이 살았다. 나보다 여성인권 문제에 눈을 뜬 친구와 대화하며, 어떤 표현은 너무 과격하지 않나 생각했던 적도 있었을 정도니까. 하지만 여성 대상 수많은 범죄와 사건을 둘러싼 반응을 보며 뭔가 잘못됐다는 생각과 의문이 하나둘씩 자연스레 생겨났다.
채널이 처음 SNS에서 주목받은 건 2024년 3월, 안산 선수를 지지하는 발언 이후로 기억한다. 선수가 일본풍으로 연출한 업장을 개인 인스타그램 스토리에 비판한 것이 사이버불링으로 이어졌던 사건이다. ‘숏컷 여성’ ‘광주여대 출신’이라는 사실도 또 다른 혐오 요인이 됐다
소위 ‘좌표’가 찍혔는지 유튜브 채널에 댓글 테러가 발생했다. 한편으로는 문제 제기에 공감하는 많은 분의 도움과 응원도 받으며 100명 남짓했던 구독자 수가 1만 명으로 늘어나기도 했지만 사회 이슈 관련해 발언을 계속해 나갈 생각은 없었다. 그런데 8월에 딥 페이크 이슈가 공론화됐다. 목소리를 내기로 결심한 순간이다.
연예인은 물론 지인 여성의 얼굴을 성인물에 합성하는딥 페이크 영상물의 존재에 지난 9월에는 수천 명이 집회에 모이기도 했다
BBC 등 해외 언론이 유독 한국에서만 이런 현상이 생기는 데 관심을 보이기도 했고, 오랜만에 여성들의 분노와 연대가 응집하는 걸 보고 이 사건을 더 알려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무엇보다 초·중·고 교실의 여학생들의 불안감을 떠올리면 마음이 아팠다. 외국어 자막을 원하는 사람들이 많아지며 번역기와 구독자분들의 도움을 받아가며 영어 자막을 만들기도 했다.
당시 딥 페이크 엄벌 촉구 집회 참가자 대부분이 마스크와 모자로 얼굴을 가린 것을 보며, 여성들이 느끼는 신변 노출에 대한 공포를 실감했다. 페미니스트가 일종의 낙인처럼 사용되는 한국의 백래시 현상은 외신들도 주목할 정도다. 이런 상황에서 얼굴을 드러내고 스스로 페미니스트임을 밝힌 이유는
북미나 유럽 등 소위 선진국이라고 인식하는 국가 중에 페미니스트가 이렇게 사회적 낙인처럼 사용되는 나라는 없다. 한편 한국은 몇 년 전부터, 특히 연령대가 어릴수록 성별 관계없이 ‘페미는 좀…’이라는 분위기가 형성됐고, 그 이유도 들어보면 ‘남성혐오 집단 아니냐’ ‘여자 일베 아니냐’와 같이 일차원적이다. SNS상에서 발언하는 페미니스트들의 상당수가 이성과의 연애나 결혼, 화장을 하고 꾸미는 것을 검열하는 분위기가 있다 보니 페미니즘적 관점에 일부 동의하다가도 어린 여학생이라면 거부감이 들 수밖에 없는 면도 있다고 생각한다. 한창 꾸미고 싶고, 연애 감정에 관심이 많은 나이니까. 아이들에게 다른 선택지도 있다는 걸 알려주고 싶었다. 연애를 하고 꾸미는 것을 좋아하는 나 같은 사람, 평범한 사람도 페미니스트일 수 있다는 상상을 현실에서 조금이라도 할 수 있도록.
광고와 협찬이 들어올 정도로 구독자 6만 명까지 성장했던 유튜브 채널의 영상은 현재 전부 삭제된 상태다. 동덕여대 시위를 지지하는 영상을 올린 이후 계정 사칭과 악플, 주변인 신상 공개 등을 포함한 본격적인 사이버불링의 대상이 된 것이 발단이었다
만약 부모님이 안 계셨다면 끝까지 안 내렸을 것이다. 얼굴을 드러내고 발언한 내가 타깃이 됐을 뿐 악의적인 영상과 기사, 조롱이 여학생들에게 끝없이 가해지는데 나까지 도망친 것처럼 보이지는 않을까, 어른인 내가 조금이라도 더 버텼어야 하는 것 아닌가 싶어 많이 미안했다. 하지만 내 신변에 무슨 일이 생길까 봐 노심초사하시는 부모님, 그런 스트레스가 신체적 증상으로까지 나타나는 엄마를 보며 결정을 내릴 수밖에 없었다.
몇 살 더 많은 20대에 불과한데 10대 학생은 물론 대학생에게도 어른으로서 책임을 느끼는 것이 놀랍다
처음엔 특별한 사명감은 없었다. 하지만 채널이 조금씩 알려지면서 많은 메시지와 댓글, 이메일을 받았는데 체감상 10대 학생들이 50% 정도 되는 것 같았다. 학교에서는 보호받지 못했는데 그래도 지켜주려는 어른이 있다는 데 위로받았다는 친구, 그냥 애들이 ‘페미는 나쁘다’고 하니까 나쁜 줄 알면서도 마음속에 피어난 의문들이 영상을 보고 풀렸다는 학생 등. 교실에서 ‘페미’가 욕처럼 쓰이는 시기를 보내는 학생들 입장에서는 내 유튜브 댓글창밖에 심정을 토로할 곳이 없다는 것도 느껴졌다.
20대 개인으로서 할 수 있는 최선을 다했다고 생각한다. 사이버불링에 대응할 수 있는 제도적 수단은 없나
악성 댓글이나 나를 사칭한 계정을 신고하고, 유튜브 본사에 메일을 보내기도 했다. ‘조치를 취해달라’는 일종의 탄원서를 영문으로 작성해 본사에 메일을 보내는 운동을 주도하고 참여한 분도 많았다. 하지만 실질적으로 이뤄진 조치는 없다. 유튜브 코리아에서 연예인과 유튜버들을 모아 사이버불링 관련 캠페인을 했던 게 지난 10월이었음을 생각하면 좀 허탈한 것이 사실이다.
얼마 전에는 인천여고 학생들이 시국선언문을 올리자 근방의 남고 학생들이 여학생들의 신상을 특정해 SNS에 게시하고 조롱하는 일이 있었다. 사이버불링이 지금 세대에게는 일종의 놀이처럼 된 것 같기도 한데
일단 남초 커뮤니티에서 ‘페미’ 성향이 짐작되는 사람을 발견하면 공격을 하는 것이 주류 문화가 되었다. 내 경우에는 남초 커뮤니티에 글이 직접적으로 올라올 때도 있고, 반페미니즘적인 사이버 렉카에 유튜브 커뮤니티에서 운영하는 디스코드나 오픈 채팅방에 채널 링크가 공유되기도 했다. 이것은 그들에겐 ‘정당한’ ‘정의구현’이다. 악당을 발견하면 다 같이 공격해 죽이는 게임 같은 것이다. 조롱하고 혐오하고 성희롱하는 것에 죄의식이 없다. 게임이 어린 학생들에게는 굉장히 일반적인 취미인데 게임 방송이나 대화창을 보면 성적 모욕감을 주는 언어, 여성혐오적 표현이 너무 문제의식 없이 사용된다. 이게 미치는 악영향도 있다고 본다.
혐오가 주류일 때 그에 대항하는 이야기를 하는 쪽에만 더 높은 도덕성이 요구된다. 남성혐오적 표현을 사용한 댓글 하나가 당신을 괴롭히는 데 계속 인용되는 것처럼 말이다
당시 내가 사용한 표현 자체는 단어만 봤을 땐 올바른 표현이 아니었다고 생각한다. 하지만 피해자가 가해자에게 돌을 던진 것은 당위성이 있다고 믿는다. 만약 나를 악질적으로 괴롭히는 이들이 집단이 아닌 소수 몇몇이었다면 이만큼 타격이 크지 않았을 것이다. 당시 내 친구 사진까지 캡처해 계정을 만들어 나를 공격하는 수단으로 썼고, 그런 계정이 한둘이 아니었다. 다만 내 행동이 어린 학생들에게 안 좋은 영향을 줄 수도 있으니 앞으로는 조금 더 신중하게 행동하려고 한다.
지난 11월 21일에 진행된 숙명여대 중앙여성학동아리 초청 강연은 어땠나. 실제로 얼굴을 마주 보는 건 또다른 경험이 되기도 한다
개인적으로 스트레스가 극심했던 시기라 좋은 에너지를 주지 못할까 봐 우려를 많이 했는데, 예상 인원의 두 배가 넘은 사람들이 왔다. 2부는 질의응답 시간이었는데, 혼자 이야기하는 게 아니라 누군가와 함께 답변하고, 서로 공감하고, 고민하는 경험이 내게도 소중했다. 나보고 고생이 많다며 “한번 안아드려도 될까요?”라는 분도 있었다. 눈물이 났다.
목소리를 내려는 1020 여성들이 이처럼 깊은 고립감을 느끼는 한편, 최근 집회 문화를 비롯해 정치·사회적으로 젊은 여성들이 그 어느 때보다 주목받는 흐름도 있다. 20대 여성으로서 느끼는 바는
정말 가까운 친구들과의 단톡방은 비상계엄령 때부터 그야말로 ‘불타서’ 끝없이 뉴스를 공유하고 이야기를 나누고 있는 것이 사실이다. 하지만 인터넷이나 SNS를 통해 빠르게 정보를 얻는 데 관심이 없다면 정치·사회적 문제와 멀어질 수 있다는 생각도 든다. 그러나 젊은 여성 중 대부분은 인터넷과 SNS를 즐겨 하지 않나. 이들은 더 이상 참거나 기다리지 않는다. 세상을 조금이라도 더 좋게 바꿀 수 있다면 기꺼이 움직인다. 이제 세상은 그것을 똑바로 들여다볼 수 있어야 한다. 사회를 움직이는 흐름의 중심에 그들이 있다는 것을.
좋아하는 여성 인물이 있다면
실제 인물은 아니지만, 드라마 <하이에나>에서 김혜수 씨가 연기한 정금자 변호사다. 물불 안 가리고 때로는 범법 행위까지 감수하면서 자신의 목표를 밀어붙이지만 매력적인 요소도 있다. 이런 여성 캐릭터는 여전히 많지 않은 것 같다. 그리고 지금 동덕여대 재학생들을 비롯해 각자의 자리에서 버티는 모든 여성이 존경스럽다. 고개를 돌렸을 때 내 옆에 누군가 있다는 것, 그걸 아는 것만으로도 서로 힘이 된다고 생각한다.
앞으로 어떤 사람이 되고 싶나
주변에서 뭐라고 하든 내가 말하고 싶은 게 있다면 흔들리지 않고 목소리를 낼 수 있는 용기가 있으면 좋겠다. 앞으로도 계속.

Credit
- 에디터 이마루
- 스타일리스트 김미강
- 헤어&메이크업 아티스트 이현정
- 사진 진소연
- 디지털디자이너 김민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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