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테가 베네타의 조용한 가방이 시끄럽게 인기인 이유
지난 50년간 보테가 베네타는 말없이 직조의 언어를 건넸다. 그 언어의 이름은 인트레치아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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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신의 이름만으로 충분합니다.” 이런 말을 누군가 내게 한다면 그날 하루는 분명 어제보다 좀 더 잘 살아갈 수 있을 것 같습니다. 주인공은 나라고, 그렇게 말해주는 목소리에 기분은 뭉클해지고 자신감이 붙어 으쓱해진 어깨가 눈에 선한데요. 누군가의 인생을 뒤바꿀 정도의 힘을 가진 이 문장을 보테가 베네타는 1970년 초반 광고 캠페인 슬로건으로 내세운 바 있습니다. 당시 패션계는 화려하고 큼직한 로고 플레이가 부각됐는데요. 그래야 잘 팔린다고 믿었을까요. 그 한복판에서 보테가 베네타는 정반대로 움직였습니다. 제품에 로고를 드러내지 않는 브랜드의 원칙을 고수한 채 요란하지 않게, 그러나 단호하게 메시지를 건넸습니다. ‘당신의 이니셜만으로도 충분합니다(When your own initials are enough)’. 우리의 이름 대신 당신이 주인공이며, 우리의 이름 없이도 당신은 빛날 수 있다는 의미로 해석할 수 있을 텐데요. 당시로서는 파격적인 선언이었지만 설득력이 있었습니다. 보테가 베네타는 정말 그렇게 행동했기 때문이죠. 대신 인트레치아토가 전부를 말했습니다. 지금도 여전히 그렇고요.

패션 사진가 마크 홈이 촬영한 1995년 보테가 베네타 카탈로그.

1975년 인트레치아토 백의 초창기 모델.
이탈리아어로 ‘직조, 엮음’이라는 뜻의 인트레치아토는 얇고 가느다란 가죽 스트랩을 손으로 정교하게 엮는 수공예 기법을 일컫습니다. 그렇게 완성된 직조 패턴은 보테가 베네타를 식별하는 얼굴이자 브랜드 전체를 아우르는 징표로 널리 알려져 있죠. 그리고 이렇게 설명해도 무리가 없습니다. 보테가 베네타의 역사는 인트레치아토의 역사와 일맥상통합니다. 1970년대 중반 보테가 베네타의 장인들은 바느질이 어려운 두꺼운 가죽의 해법으로 끈처럼 얇게 절단한 가죽을 하나하나 엮었다고 합니다. 이 과정에서 내구성을 높이기 위해 기존의 수평 직조 대신 대각선으로 촘촘히 짜는 방법을 고안했는데, 결과물이 소스라치게 놀라웠습니다. 부드러운 실루엣과 역동적 미감을 갖춘 보테가 베네타의 독창적 디자인이 그렇게 탄생한 것이죠.
뛰어난 가죽 공예 기술을 넘어 미적 가치를 동시에 구현한 인트레치아토 기법은 보테가 베네타의 전성기를 열어젖힌 배경이라고 해도 전혀 무리가 없습니다. 특유의 대각선 짜임은 지난 반세기 동안 보테가 베네타의 인장으로 인식됐을 뿐 아니라 수공예와 창의성이라는 하우스의 철학을 시각적으로 드러내는 매개체로서 기능해왔거든요. 그러니까, 사전적 의미 그대로 인트레치아토는 보테가 베네타의 정체성과 철학을 견고하고 우아하게 엮어냈습니다.


1980년에는 한 편의 영화가 기폭제가 되어 보테가 베네타의 팬덤이 크게 형성됐습니다. 할리우드 흥행작 <아메리칸 지골로>에서 배우 로렌 허튼이 착용한 인트레치아토 클러치가 큰 반향을 불러일으켰습니다. 특유의 직조 패턴이 단숨에 신스틸러가 된 것이죠. 자고 났더니 세상이 달라졌다는 여러 성공기처럼 영화에 등장한 클러치는 큰 화두가 됐고 전보다 더 많은 사람들이 가죽으로 엮은 보테가 베네타의 철학을 알아보고 이야기했습니다. 그러고 보면 수공예 기술 하나로 브랜드의 거의 모든 것이 설명되고 이해된다면 그건 꽤 근사한 일이 아닌가 싶기도 합니다.

2005년 인트레치아토 백을 든 애슐리 올슨의 모습.

2011년 양손에 인트레치아토 백을 걸친 카메론 디아즈.
보테가 베네타 이야기가 나와서 말인데, 사무실에서 고개만 돌리면 보이는 동료 에디터가 있습니다. 출근 시간을 예측할 수 없지만, 묘하게도 그가 등장하면 벌어지는 장면만큼은 거의 일정합니다. 책상에 가방을 툭- 하고 던지듯 내려놓는데 무수히 많은 연습을 거친 체조 선수처럼 기계적일 정도로 정확하고 유려해요. 이런 감상에는 아무래도 가방이 한몫하는 것 같은데요. 그 가방을 말하자면 단단하지 않지만 흐트러지지 않고, 흐물거리지 않지만 빳빳하지도 않더군요. 절묘하게 균형을 잡은, 무심한 우아함의 형태랄까. 딱 그만큼의 주의를 끌고 이내 품위를 유지하며 책상 위에 안착하곤 합니다. 짐작했겠지만 가방에는 인트레치아토의 짜임이 있습니다. “이 가방을 좋아하는 이유라면 존재감이죠. 보테가 베네타는 요란하지 않게 그저 자신을 증명하는 것 같아 좋아요. 첫 가방을 구매했을 때 매장 직원의 설명 없이도 알 수 있는 것들이 있었어요. 손으로 가방을 쓸어내리면 가죽의 묵직함과 짜임이 촉감으로 와닿으면서 헤리티지가 말없이도 들리고 보이니까. 보테가 베네타는 저한테는 소유하고 싶기보단 이해하고 싶은 브랜드예요. 그리고 조용한 자신감이랄까, 이 가방에는 제가 갖고 싶은 그런 태도가 묻어나 오래 좋아할 것 같다는 확신이 딱 들었어요.”

1985년 레드 컬러 카디건에 화이트 컬러 인트레치아토 백을 매치한 고(故) 다이애나 왕세자비.

2005년 파멜라 앤더슨과 까바 백.
그의 사연은 이런데, 보테가 베네타를 좋아하는 사람들도 이런 말을 합니다. 오래 함께해도 디자인이 질리지 않다, 같은 짜임처럼 보여도 색감, 두께, 곡선이 다 다르다, 시간이 지나면 자기 손에 맞게 길들여진다, 로고를 과감히 지운 조용함이 오히려 큰 목소리로 다가온다. 그러니까, 결국 보테가 베네타의 가치는 ‘보이는 것’보다 ‘느껴지는 것’에 더 밀접한 것 같습니다. 그 감각의 중심에는 인트레치아토가 우뚝 존재하고요.

몬테벨로 아뜰리에서 보테가 베네타의 기술이 장인들의 손에서 다음 세대의 손으로 전수된다.
보테가 베네타의 시그니처 직조 기법은 세상에 소개된 지 50년째가 되는 올해까지도 장인의 손에서 또 다른 손으로 충실히 계승되어 동시대의 위시리스트를 채우고 있습니다. 시대와 유행을 뛰어넘는 클래식이란 바로 인트레치아토를 두고 말할 수 있을 텐데요. 그런 와중에 창의성이라는 브랜드의 기조를 잊지 않으려는 듯 인트레치아토는 변화를 게을리하지 않았습니다. 색상, 형태, 구조, 크기의 변주를 거듭하며 50가지 이상의 새로운 디자인 언어로 말을 건넸는데요.
2002년 봄 시즌에 처음 선보인 까바 백 컬렉션은 가장 상징적인 디자인 중 하나로 언급됩니다. 직사각 형태의 가벼운 토트백으로 인트레치오라는 입체적 직조 방식을 도입해 강렬한 획을 그었죠. 특히 직사각형 프레임과 안팎 모두에 구현된 완성도 높은 짜임새는 하우스 아틀리에의 솜씨를 아쉬움 없이 증명했습니다. 2022년에 첫선을 보인 토스카 숄더 백은 또 어떻고요. 요컨대 보테가 베네타의 전통적 미학에 공예적 실험을 더했습니다. 무려 145m에 달하는 튜브 형태의 가죽 스트립을 사용해 5일에 걸친 수작업으로 박음질 없이 제작되는데요. 섬세하고 조형적인 실루엣에 열에 아홉은 온통 마음을 빼앗기게 됩니다.





이탈리아어로 ‘가자!’라는 뜻을 품은 안디아모는 인트레치아토의 정교한 짜임에 실용성과 유연성을 더했죠. 조절 가능한 가죽 스트랩, 편리한 내부 수납 공간을 갖춰 일상에 밀착된 럭셔리를 제안함과 동시에 크기와 형태의 다양화로 인트레치아토의 가능성을 넓혔다는 평가입니다. 그다음 아카이브 백을 재해석해 오는 7월 31일 새롭게 선보일 캄파나가 있습니다. 넉넉한 크기의 이 토트백은 부드럽게 흐르는 라운드 실루엣과 두 개의 탑 핸들이 첫인상을 결정하는데요. 넓은 내부 공간과 수납 공간으로 실용성을 높였습니다. 매끈한 가죽 버전과 인트레치아토 에디션 두 종류로 인트레치아토 에디션의 경우 15mm 너비의 보다 넓어진 가죽 스트랩을 사용해 부드러운 질감과 유려한 형태감을 강조한 것이 특기할 만합니다.

부드럽게 흐르는 라운드 실루엣과 안팎으로 드러나는 인트레치아토 수공 기법이 돋보이는 블랙 컬러 캄파나 백.

비트루트 컬러 캄파나 백.
인트레치아토 기법은 이렇게 꾸준히 변했습니다. 더 넓어지고, 더 입체적이 되기도 하고 다양한 실루엣으로 변주됐죠. 그런데도 늘 ‘보테가 베네타’였습니다. 말 대신 건넨 직조의 언어에는 예나 지금이나 보테가 베네타를 선택한 사람의 취향을 존중하는 태도, 공방의 기술과 품질에 대한 자부심, ‘노 로고’에 대한 단호한 의지가 집약되어 있습니다. 결국 보테가 베네타와 인트레치아토는 지난 50년간 이 말을 증명한 셈입니다. '당신의 이름만으로 충분합니다.'
Credit
- COURTESY OF BOTTEGA VENET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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