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79년식 프랑스 주택 리모델링, 나만의 집을 완성하다
이국적 감성의 단독주택 리모델링과 나를 담은 공간 이야기.
전체 페이지를 읽으시려면
회원가입 및 로그인을 해주세요!
매일 아침, 나지막한 경사 지붕 바로 아래에 은밀하고 안온한 지중해 석회동굴 같은 다락방에서 눈을 뜬다. 작은 창으로 계절마다 조금씩 달라지는 태양의 방향과 화창한 날, 흐린 날, 비 오는 날 모두 각기 다른 색감으로 스며드는 빛을 관찰하며 잠시 달콤한 게으름으로 하루를 상상해 본다. 이윽고 긴 단잠에 빠진 고요한 밤의 장막을 한껏 걷어 올리고, 다락과 맞닿은 복층으로 나온다. 투명한 유리 너머로 펼쳐진 거실을 내려다본다.

이국적 정취의 집 빈티지 가구와 소품들, 담황색 갈대와 길게 늘어뜨린 유려한 라인의 등나무 줄기, 우아한 샹들리에. 짙게 배어든 아침 햇살에 나른하게 깨어난 것들이 회화적 시퀀스를 만들어내고 있다. 집의 이국적인 뉘앙스를 극대화하기 위해 애써 고른 빛바랜 블루 타일이 지중해의 먼 파도처럼 밀려와 하얀 포말을 이루고, 그 푸른 물결로 거실을 물들인다. 바라보기만 해도 행복해지는 풍경으로 하루를 시작하고 싶었다. 지금 내 시야에 담긴 장면을 보고 있노라면 리모델링을 결심하던 첫 순간부터 이어진 몇 해가 다큐멘터리 필름처럼 재상영되곤 한다.
삶을 단단하게 지탱하고 내 가치관과 미학을 담은, 오롯이 내가 좋아하는 것으로 채워진 사적·공적 공간을 만들고 싶었다. 여행에서 마주한 수많은 예술 작품과 경이로운 이국적 정취, 공간 연출 작업으로 체화한 모든 유무형의 예술적 감각을 집약하고 싶었다. 그 과정은 방황이 잦았던 스스로와 화해하는 일이며, ‘나다운 삶’을 공고히 구축하는 리추얼이 될 것 같았다. 그렇게 작고 오래된 단독주택을 고치며 내 삶도 리모델링해 나가는 경이로운 여정을 시작했다.

낭만과 야만 사이, 리모델링 과정 켜켜이 쌓인 세월의 더께만큼 손볼 곳투성이인 집. 손바닥만 한 마당이랄 것도, 대문이랄 것도 없는 집은 퇴색한 도로변에 바싹 붙어 있었다. 서울 아차산 자락, 유년 시절에 본 골목 어귀의 피아노 교습소를 연상시키는 대지 33평의 1979년식 프랑스 주택이었다. 삐걱거리는 알루미늄 현관문, 썩어 있던 오목장식형 무늬목 천장과 니스 칠로 번들거리는 체리색 나무 문, 수십 번을 덧대 바른 꽃무늬 벽지, 깨지고 변색된 옥색 타일, 잠깐의 바람에도 덜컹거리는 나무 창문 등 매캐한 유적 같은 건축 요소를 하나씩 걷어냈다. 낡은 마감재 뒤에 숨겨진, 성글게 쌓아 올린 벽돌과 굴곡지고 거친 천장, 건축 당시 시대적 감성을 품은 석재 외장 타일의 고색창연한 질감은 남겨두었다.
철거하며 사라진 옛 다락의 일부 대신 극적으로 드러난 박공 천장을 이 공간의 자유분방한 정체성으로 삼았다. 집은 때로는 보존되기도 하지만 때로는 견뎌내기도 한다. 그리고 그 집의 가치를 발견한 누군가의 손길을 통해 재생되고 재해석된다. 낭만과 야만 사이를 넘나들며 예상보다 길고 녹록지 않았던 리모델링 공사. 작더라도 꿈에 그리던 나만의 단독주택이 생겼다는 행복감과 당장이라도 도망가고 싶은 고단한 심정, 그 숱한 모순의 순간이 복층 창 아래 촘촘히 새겨졌다. 나를 닮은, 나를 담은 공간. 자신의 집을 만든다는 건 근사하고 애틋한 일이다.

오감이 깃드는 공간 복층 계단을 내려오면 점점 기분이 좋아진다. 마음이 이끄는 음악을 틀고, 차를 우려내며, 샌들 우드 향은 드라이플라워에도 잃어버린 향기를 심어준다. 집의 풍경과 어울리는 음악, 차, 향, 아울러 그들이 조율해 낸 독특한 공기의 촉감까지. 이 모든 것이 깃들자 공간은 한층 감미롭고 농밀해진다. 청록색 양개 도어 앞에 놓인 화분에 물을 주고, 전면 폴딩 도어를 열어 잠깐 환기도 시킨다. 햇살은 격렬하게 쌓이고 바람은 집 안 곳곳에 자유롭게 퍼져나간다. 마치 하나의 호흡처럼 집 안 전체를 거침없이 헤집는다.
이 집은 물리적·감각적으로 경계 없이 이어져 있다. 집의 구조는 현관, 거실, 작업실, 서재, 주방, 욕실, 복층, 다락으로 나뉘어 있지만 이 모든 개별적 장소는 유기적으로 연결돼 있다. 이는 집을 거닐다 보면 체감할 수 있다. 거실과 복층은 반쯤 열린 투명 유리창으로, 문이 없는 서재와 복층은 계단으로, 오픈된 구조의 복층을 통해 방과 거실이 하나로 이어진다. 또 복층 계단 끝과 연결된 주방 위의 기존 다락은 상부 벽 마감 없이 작업실과 자연스럽게 연결되기 때문에 결국 조각난 공간들이 하나로 호흡하는 셈이다. 입구에서 다락까지 어디 하나 막힘없이 하나의 시퀀스로 연결된 구조를 통해 선형의 시간이 흐르고 흘러 다시 제자리로 되돌아오고 무한히 순환하길 바랐다. 나에게 일과 삶의 경계가 모호하듯, 이 집 또한 개별 공간의 경계를 흩트렸다. 관습적 기능과 고정적 틀을 혼합해 이 집의 고유한 일관성도 만들었다. 18세기 프랑스 살롱처럼 지적이고 예술적인 관계가 벌어지는 열린 공간을 추구하며 사람들과 교류하려는 욕구가 물리적으로 표출된 결과이기도 하다.
표면적 구조를 벗어나 감각과 삶의 방식까지 내 방식대로 정의한 이 집은 과거와 현재, 미래를 초월하는 ‘가장 진실한 시간의 결’을 허락해 주었다. 옅은 바람결에 샹들리에가 깨질 듯 연약하게 흔들린다. 아침마다 아차산을 넘어 우리 집으로 풍성하게 머문 자연의 체취를 느끼는 일은 새로운 집에서 얻은 가장 감동적인 순간 중 하나다. 가장 나다운 공간에서 인생의 새로운 계절이 시작되고 있다. 페이메이르 그림 같은 일상들이다.
김서윤
예술로 은유하는 빈티지 공간 디렉터. <오래된 집의 탐미>를 썼다.
Credit
- 에디터 윤정훈
- 글 김서윤
- 아트 디자이너 김강아
- 디지털 디자이너 오주영
2025 가을 필수템 총정리
점점 짧아지는 가을, 아쉬움 없이 누리려면 체크하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