첫 독립, 불완전한 집에서 배우는 진짜 자유와 성장
‘TACT’ 공동운영자 송태영은 집을 통해 진정한 홀로서기를 맞이하고있다.
전체 페이지를 읽으시려면
회원가입 및 로그인을 해주세요!

만나려면 어떻게든 만난다고 했던가. 이 집을 만난 계기는 설렘 가득 안고 계약한 첫 집이 계약 파기되면서 시작했다. 아직도 기억이 생생하다. 우울한 주말을 보내고 일요일 밤에 자기 전 다시 부동산 정보를 찾다 이 집을 발견했다. 흐린 월요일 아침, 이미 전철은 탔고, 가면서 부동산에 연락을 취했다. 이윽고 부동산 사장님이 손으로 가리키는 방향을 보고 ‘계약을 하겠구나’ 싶었다. 흐린 날이라 채광도 객관적으로 알 수 있었으며, 다시 설레는 마음이 가득 차올라 집을 계약했다. 계약 파기로 인한 계약금 배액 상환으로 복비까지 치러서 완벽한 전화위복이 됐다.

첫 월세살이 월셋집이지만 가장 단순한 방식으로 화장실 하나와 주방, 바닥 공사를 했다. 4~6년 지낼 생각을 했기에 공사에 들인 비용을 월세처럼 나눠 정신 승리도 했다. 하지만 모든 것이 처음이었다. 백지장 같은 흰 바닥은 지금 생각해 보면 따스함이 느껴지지도 않고 밋밋하며, 가구를 자주 옮기는 내 생활습관으로 생긴 흠집이 눈에 잘 띄어 가장 실패한 부분이라는 생각도 든다. 하지만 어쩌겠는가. 바닥만큼 갈아엎기 어려운 것도 없다. 이래서 땅이 중요하다는 걸 체험했다.
크기 대비 달콤한 조건이었지만, 채우는 건 또 다른 일이었다. 비움의 미학을 터득하려면 우선 채워봐야 한다는 생각이었는데, 10년 가까이 사무공간에 두고 모아온 소장품과 본가에서 가져온 것들로는 어림도 없었다. 나와 마찬가지로 이곳이 익숙해 보이지 않는 사물들이 위화감을 조성했다. 기껏 나 편하자고 독립했는데 편하지도 않은 데다가 돈도 내가 내고, 관리까지 직접 해야 한다는 생각에 잠시 고달파졌다. 하지만 또 자고 일어나면 ‘여기가 진정 내 집이 맞나’(월세를 내는 주제에) 싶은 배부름에 정신 차리고 다시 이것저것 바꾸고, 마주하고, 사용했다. 기회가 닿아 해외 중고 가구를 취급하게 되면서 공간 구성에 더욱 관심이 생기고, 가구와 사물을 공부할 명분이 생겼다. 다행히 흥미를 느꼈고, 이 역시 무궁무진한 세계인지라 푹 빠져들었다.

적응의 시간 첫 독립을 방 네 개짜리 집으로 했으니 적응에는 당연히 시간이 걸렸다. 환경 변화에 곧잘 적응하는 편이라고 생각했지만, 막상 내가 한동안 누울 자리라 그런지 욕심이 커져 쉽지 않았다. 그래도 운이 좋았던 건 같은 빌라에 사는 이웃들이 참 좋았다는 것. 이 건물에서 오래 지낸 탓인지 마주칠 때마다 정답게 인사를 주고받았다. 혼자 지내는 나에게, 내가 가진 그 어떤 조명과 자연 채광보다 따스하게 다가왔다. 아래층 아이는 위로는 층간 소음이 없다고 생각하는지 마구 뛰어다녔지만 나름 시간이 정해져 있고, ‘꺄르르’ 소리를 들으면 아랫집 문을 두들기는 시도조차 어려워졌다. 이제는 ‘쿵쿵’ 소리가 안 나면 이상할 정도가 됐다.
시간이 지나 눈 감고 돌아다닐 수 있을 만큼 공간 구성을 가늠할 수 있게 되고, 욕심 없이 지낸다면 어느 정도의 크기가 충분할지 아는 정도가 됐다. 원치 않는 적응도 할 수 있었다. 결코 초대한 적 없는, 그저 외부에서 유입된 엄지손가락만 한 갈색빛 손님을 발견하면 여름이 온 걸 알 수 있었고(손으로는 자신이 없어 신발로 살상을 저질렀다. 다행히 집에 서식하는 손님은 없다), 식물 친구들도 조금씩 더 들였다. 잘 키우지는 못하지만 죽이지는 않고 있다. 그래도 최소한의 관리는 필요한 녀석들이라 잘 지낼 수 있도록 환기해 주며 ‘나에게도 좋겠지’ 생각하곤 한다. 나의 기미상궁 겸 보디가드 같은 존재들.

불완전함 속 자유 아직 완벽함에 도달한 건 아니다. 여전히 어렵다. 좋은 의미로 생각하면 집과 나는 아직 성장기라 삶에 끊임없는 변화가 찾아오기에 쉬지 않고 변하고 있다. 여전히 집도, 나도 불완전한 존재다. 그래도 다행인 건 해외나 외부에서 시간을 다소 길게 보내면 집이 그리워지는 거다. 편안함도 중요하지만, 집은 그리운 대상으로 완성되는 게 아닌가 싶다. 나만의 작은 고향이랄까. 멋진 가구와 사물을 떠나 비로소 나의 온도와 시간이 쌓인 것이다. 이때부터 보다 자유로워졌다. 집에 타인이 방문했을 때 편안함을 주기 위해 시뮬레이션을 지나치게 많이 했다면, 이제는 타인은커녕 내가 불편하더라도 하고 싶은 대로 해보는 단계가 됐다. 모순 같지만 심적인 편안함과 동적인 편안함은 다르다. 동적으로 불편하더라도 심적으로 편할 수 있다. 이를 받아들이니 이전보다 집이라는 장소의 주인이 된 기분이 들었다.
이렇게 또 한 단계 넘어서니 어려서부터 곧잘 즐겨 하던 사물의 의인화, 즉 사물에 가까이 다가가 살펴보고 ‘쓰담쓰담’ 할 수 있는 여유도 생겼다. 변화를 마음먹으면 곧바로 바꿔보고, 아니다 싶으면 제자리로 돌아갔다. 그렇게 모든 것이 자유로워지기 시작했다. 남에게 폐를 안 끼친다면 무엇이든 마음대로 해볼 수 있는 유일한 곳이 집이다. 여기서는 솔직해도 되고, 솔직해져야 한다. 그 과정을 통해 스스로 어떤 사람인지 알게 되는 데 큰 도움을 주는 유기체 같은 존재다. 동시에 나를 감싸주기도 한다. 나는 여전히 집을 통해 나를 알아가며 진정한 홀로서기를 맞이하고 있다.
송태영
사물 간의 관계를 중심으로 공간을 기획하는 ‘TACT’ 공동운영자. 수집가의 관점에서 집을 실험하고 기록하는 ‘홈 무씨(@home.musee)’를 운영 중이다.
Credit
- 에디터 윤정훈
- 글 송태영
- 아트 디자이너 김강아
- 디지털 디자이너 오주영
엘르 비디오
엘르와 만난 스타들의 더 많은 이야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