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 냄새, 복숭아 향 풍기는 여름 감성 영화 3
지독하게 더웠던 올해 여름을 아름답게 기억하는 방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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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긴 여름에도 끝이 보이고 있습니다. 계절이 서서히 가을을 준비하는 순간에도 여전히 여름 특유의 공기와 감각을 놓치고 싶지 않은 이들이라면 영화로 계절의 기억을 붙잡아 보는 것도 좋을 듯해요. 찌는 듯한 더위 속에서도 스크린을 통해 파도 소리와 청량한 풍경을 느낄 수 있으니까요. 오늘은 그런 여름 감성과 색채를 가득 담은, 보고 있으면 마음까지 청량해지는 영화들을 세 편 소개해 드릴게요.
콜 미 바이 유어 네임 (Call Me by Your Name, 2018)
이탈리아 북부의 달큰한 복숭아 향 감성

<콜 미 바이 유어 네임>은 감성적인 연출과 아름다운 색감으로 많은 사랑을 받은 영화입니다. 포스터에서부터 새파란 여름의 청량감을 너무나 잘 담아냈죠. 루카 구아다니노 감독은 이탈리아 북부의 한여름을 배경으로 시각적 요소들을 활용해 캐릭터의 감정과 서사를 풀어냈어요. 주로 태양 아래 반짝이는 풍경과 캐릭터의 피부 톤을 통해 나타낸 노란색은 따뜻함과 순수한 감정을, 수영장과 하늘의 파란색은 여름밤의 고요함과 깊은 감정을, 초록의 여름 나무들은 자유로운 분위기를 조성합니다. 특히 이 영화의 하이라이트인 과즙이 가득한 복숭아를 먹는 장면과 난로 앞에서의 엔딩 신은 여름 향이 물씬 풍기는 미장센을 통해 사랑과 상실의 감정을 극대화하죠. 이런 특별한 연출 덕분에 퀴어 영화임에도 대중적인 인기를 끌어모을 수 있었고, 매해 여름이 되면 다시 찾게 만드는 대표적인 영화가 됐어요. 이번 주말은 <콜 미 바이 유어 네임>을 보면서 연출 속 상징들의 의미를 찾아보는 것도 좋겠네요.

기쿠지로의 여름 (Summer Of Kikujiro, 2002)
일본의 유년시절 여름방학 감성

간혹 내용보다 OST가 더 유명한 영화들이 있습니다. 바로 2002년 개봉한 <기쿠지로의 여름>의 OST 'Summer'가 그렇죠. 학창 시절 피아노 좀 쳤다 하면 한 번 쯤 시도해봤을 경쾌한 멜로디는 제목을 몰라도 듣기만 하면 여름의 풍경이 머릿속에 그려집니다. 영화는 9살 소년 마사오가 돈 벌러 떠난 엄마의 주소를 발견하고 옆집 아저씨와 함께 엄마를 찾으러 떠나는 내용입니다. 일본 영화답게 잔잔하면서도 감각적인 색감이 돋보이고요. 영화 내내 마사오의 뒤편으로 펼쳐진 시골 풍경과 매미 소리를 듣다 보면 어느샌가 어릴 적 초등학교 방학 시절이 아련히 떠오릅니다. 엉뚱한 옆집 아저씨 다케다와 마사오의 좌충우돌 사랑스러운 캐미도 이 영화의 별미죠. 영화 제목의 ‘기쿠지로’는 감독이자 다케다 역으로 출연한 기타노 다케시의 아버지 이름이라고 하는군요.

문라이즈 킹덤 (Moonrise Kingdom, 2013)
미국의 알록달록한 파스텔톤 감성

색감 천재로 유명한 웨스 앤더슨 감독의 명작, <문라이즈 킹덤> 역시 그의 강박적일 정도로 치밀한 연출에 따라 대칭적 화면 구성, 파스텔 톤의 색채, 감정과 거리를 두는 정적인 배치 등으로 아름답게 묘사됐죠. ‘여름’을 주제로한 영화들은 ‘천진난만한 동심’에 포커스가 맞춰지는 경우가 많은데, 이 영화 역시 그런 상징적인 요소를 잘 활용하고 있어요. 12세의 고아 소년 샘과 변호사 부모의 외로운 딸, 동갑내기 소녀 수지가 서로 편지를 주고받으며 서로에 대한 특별한 감정을 키워가는 내용을 담고 있죠. 그러나 주인공들의 대략적인 서사에서 알 수 있듯 마냥 밝은 내용만은 아닙니다. 이 영화의 주된 전개는 두 아이가 자유로운 세계로 도약하고자 저항하는 내용으로 이루어지거든요. 그럼에도 영화 내내 웨스 앤더슨이 선보이는 그만의 여름 감성에 흠뻑 젖어, 엔딩 크레딧이 다 올라가고 나면 자기도 모르게 이 여름이 그리워질 수도 있겠습니다. 아, 창문을 열어보니 그건 아닐지도요.

Credit
- 에디터 라효진
- 글 김보
- 사진 각 영화
엘르 비디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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