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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보현이 이사왔다, 매력적인 인터뷰와 함께

안보현이 머무는 계절, 진심과 설렘이 함께 내려앉은 어느 늦여름의 서정.

프로필 by 전혜진 2025.08.28

여름의 끝자락입니다. 마침 이 계절을 담게 돼 다행이에요

저는 여름이 되면 겨울이 좋다 하고, 겨울이 되면 여름이 좋다고 해요(웃음). 그래도 촬영하기엔 여름이 더 좋아요. 겨울에는 촬영할 때 입이 어는 것 같거든요. 화보는 모델로 활동할 때부터 찍었지만 늘 반신반의하는데, 워낙 베테랑들이 모여 작업해 주시니 재밌어요. 매달 찍는 게 아니라 조금 설렘도 있고요.


얼마 전 비를 맞으면서 라이딩하는 사진을 공개했죠. 비 올 때 달리면 훨씬 시원한가요

의도한 건 아니고, 타는데 비가 왔어요. 마침 쉬는 날이라 바이크를 타고 하남에 있는 아는 형의 카페에 가는데, 갑자기 쏟아졌죠. 비 오는 날 타면 위험해요. 평상시보다 느린 속도로 나아가고 있는데 너무 시원한 거예요. 그래서 굳이 돌아가지 않았어요. 정작 도착해서는 도저히 카페에 들어가지 못할 정도로 흠뻑 젖어서 밖에 가만히 앉아 커피를 마셨어요. 좋게 말하면 낭만이지만, 사람들은 아마 ‘저 사람 뭘까?’ 싶었을 거예요. 상황이 꽤 웃겨서 사진으로 남겼어요.


화이트 셔츠는 Bottega Veneta. 블랙 슬리브리스 톱은 Recto. 팬츠는 Noise. 더비 슈즈는 Tod’s. 타이는 스타일리스트 소장품.

화이트 셔츠는 Bottega Veneta. 블랙 슬리브리스 톱은 Recto. 팬츠는 Noise. 더비 슈즈는 Tod’s. 타이는 스타일리스트 소장품.

학창 시절 복싱 선수였다는 이력이나 <군검사 도베르만> <재벌X형사> 등에서 제복 입은 캐릭터들 탓인지 대부분 첫인상을 강렬하게 느낀다면서요

원래는 그랬어요. 어릴 때는 사실 웃을 일도 많이 없었고, 웃지도 않았고, 빡빡머리에 매일 운동만 하던 애라 주변에서 제가 이 일을 할 거라고 전혀 생각하지 못했대요. 잘 다가가지도 못했고요. 배우 일을 하면서 인상은 물론이고 성격도 외향적으로 바뀐 것 같아요. 예전에는 그러려고 애써 노력했는데 마음처럼 쉽게 되진 않았거든요.


웃을 때 엄청 귀여운 거 아나요? 웃을 때와 안 웃을 때의 차이도 크고

하하, 웃으면 좋잖아요. 저도 웃는 사람이 좋고, 많이 웃으려고 해요.


길구도 웃음이 나는 남자입니다. 8월 13일 개봉한 <악마가 이사왔다>는 새벽마다 악마로 깨어나는 선지(임윤아)를 감시하는 아르바이트를 하는 청년 백수 길구의 고군분투를 그렸어요. 이상근 감독의 전작 <엑시트>로 비춰보건대 따뜻하고 재밌는 현장이었을 것 같아요

저를 조금 내려놓고 찍은 작품이라 제 모습이 투영되기도 했겠지만, 감독님의 모습이 대부분 투영된 작품이에요. 저도 ‘리틀 이상근’으로서 작품에 임했습니다. 감독님의 감성에 관객이 어떻게 반응할지 궁금해요. 정말 무해한 분이거든요.


터틀넥 톱은 Dior Men. 와이드 팬츠는 Songzio Homme. 안경은 Bottega Veneta by Kering Eyewear.

터틀넥 톱은 Dior Men. 와이드 팬츠는 Songzio Homme. 안경은 Bottega Veneta by Kering Eyewear.

거친 면이 있던 전작 캐릭터들과 다른 결인 ‘순수하고 무해한’ 길구가 어떤 면에서는 도전적이었겠지만, 다른 한편으로는 꽤 잘 어울려서 놀랐어요

길구는 세상 어딘가에 있을 것 같은 느낌이 들어 또 다른 제 모습을 꺼내는 데 도전해 볼 수 있었어요. 점차 연기하며 감독님이나 스태프들이 “굉장히 길구 같다” “길구가 된 것 같다”는 말을 자주 했거든요. 외형적인 인상이나 느낌과 달리 보호심을 불러일으키고, 옆에 있으면 도와주고 챙겨주고 싶은, 소위 ‘너드’한 친구라 그런 부분에 끌렸어요. 제게도 이런 친구가 있었던 것 같아요. 그 친구가 자라면 길구처럼 됐겠다는 상상도 해봤죠.


길구가 안보현의 친구라면 얼마만큼 친해졌을 것 같나요

엄청요. 조용하고 내향적인 친구들을 좋아해요(웃음).


임윤아 배우와의 호흡은 어땠나요? 낮과 밤의 얼굴이 다른 악마라기엔 두 모습 다 아름답더군요

너무 좋았죠. 대본 읽으면서 윤아가 어떻게 표현할지 호기심도 생겼는데, 현장에 갈 때마다 변주하는 모습이 신기했어요. 연기에 임하는 태도도 남달랐고요. 현장 분위기가 좋다보니 저도 점점 길구처럼 돼가는 것 같아 들떠 있었고요. 요즘 그때 찍어둔 사진을 보며 새삼 추억을 되새기기도 해요.


화이트 셔츠는 Coor. 스트라이프 점프수트와 타이는 모두 Juun. J. 슈즈는 Dior Men.

화이트 셔츠는 Coor. 스트라이프 점프수트와 타이는 모두 Juun. J. 슈즈는 Dior Men.

실제로 옆집에 선지 같은 악마가 이사 오면 어떨 것 같아요? 길구처럼 적극 도와줄 건가요

재밌을 것 같아요. 뭐, 피하지는 않을 것 같고요. 해야 되는 일이 있다면, 도움을 요청한다면. 저는 챙김을 받는 쪽보다 챙겨주는 쪽이 더 좋아요. 살면서 챙김을 받은 적은 별로 없는 것 같은데(웃음).


사실 요즘은 우직하거나 순수한 면이랄지 그런 강점이 약점으로 보이는 세상이기도 해요. 연기하며 그런 무해함이 여전히 세상에 필요하다고 느끼나요

길구라는 캐릭터 자체가 큰 욕심도, 꿈도 없는 친구처럼 보이지만, 상처를 많이 받은 친구라 자신조차 책임지지 못하니 세상에 도움이 된다고 생각하지 못했을 거예요. 그러다 점점 힘이 되고 필요한 존재가 되니까 자신감이 생기고, 미래도 그릴 수 있게 된 거죠. 존재감이란 게 무엇인지 보여주는 친구인 것 같아요.


안보현도 의도치 않게 배우 생활을 시작했어요. 배우로서 꿈을 찾아가는 과정에 있나요

어릴 때는 꿈이 여러 번 바뀌잖아요. 축구 보면 축구 선수 하고 싶고, TV에 가수가 나오면 가수하고 싶고. 저도 어릴 때 어쩌다 운동을 시작하게 됐고, 그땐 그래도 목표가 있었지만 배우라는 직업에 뚜렷한 목표는 없어요. 주어진 것에 감사하며 사는 편이라 그저 길구 같은 사람이든, 제게 도움을 준 사람이든, 언제든 편하게 소주 한잔에 삼겹살을 청할 수 있는 사람이면 좋겠어요. 물론 주인공을 하면서부터 함께하는 인원이 많은 현장에서 내가 잘하지 않으면 안된다는 부담감과 목표의식은 점점 자라나고 있지만요.


아가일 패턴의 니트 톱과 레더 팬츠는 모두 Ferragamo.

아가일 패턴의 니트 톱과 레더 팬츠는 모두 Ferragamo.

생각보다 악역은 많이 하지 않았어요. 안보현이라는 존재를 대중에게 크게 알린 <이태원 클라쓰>의 장근원 역이 워낙 강렬해서 그럴까요

악역은 장근원밖에 없는데, 당시 지인들이 “해도 너무했다”며 기분 좋은 욕을 먹었던 기억이 나요(웃음). 그래서 되레 강력한 악역으로 정점을 찍어보고 싶은 욕심이 생겼어요. 물론 더 나이 들기 전에 진한 멜로도 한번 해보고 싶고요.


지난해에는 글로벌 팬 미팅으로 팬들을 가까운 거리에서 대면했어요. 팬 미팅을 위해 라식 수술도 한다고 했었는데(웃음), 어땠나요

배우가 인기를 체감할 수 있는 건 SNS가 대부분이잖아요. 선물이나 편지로 느끼기도 하지만, 막상 팬 미팅에 대한 부담감이 커서 처음에는 반대했어요. 몇천 석을 채우지 못할 것 같았고, 스스로 과대평가됐다고 생각했거든요. 그런데 국내도 아닌, 해외를 돌면서? 하하. 티켓이 팔려도 누가 제 기를 살려주기 위해 일부러 뿌린 게 아닌가 싶었죠. 근데 자리가 채워지는 걸 보니 신기했어요. 이 사랑에 어떻게 보답해야 될지 지금도 고민할 만큼이요. 해를 거듭할수록 내가 할 수 있는 건 뭐가 됐든 해야겠다는 생각이 들기 시작했어요. 특히 유튜브 콘텐츠는 전 세계에서 볼 수 있으니까, 또 많은 분이 캡처하고 번역까지 하는 걸 보면 기분 좋아요. ‘진작 할걸’ 하는 생각도 들고요.


동료 배우들의 SNS에 댓글도 열심히 달잖아요. 가끔 너무 진지하거나 툭 던지는 농담에 웃음이 나기도 하는데, ‘좋아요’로 마음을 전하는 일은 즐거운가요

다른 사람들이 어떻게 하는지 잘 몰라서…. 보이면 누르고, 피드에 게시글이 뜨면 날짜가 오래돼도 ‘좋아요’로 표현하거나 댓글을 남겨요. 그러라고 만들어진 곳이니 보이면 하는 거죠!


로고 반팔 티셔츠는 Loewe.

로고 반팔 티셔츠는 Loewe.

촬영 중에 막간이 생기면 뭘 하나요

요즘 찍는 작품의 주 촬영장이 포항이라 촬영 없는 날에는 캠핑카로 한적한 해변가에 가서 대본 보며 시간 보내요.


사실 캠핑은 먹으러 가는 거 아닌가요? 어느샌가 안보현이 ‘식단의 아이콘’이 돼 있던데, 캠핑 중에는 뭘 해 먹나요

술을 못 마실 뿐 먹을 수 있는 음식은 굉장히 많아요. 제가 트레이너나 보디빌더 선수처럼 식단을 하는 건 아니고, 몸에 안 좋은 건 안 먹는 편이거든요. 알리오올리오 파스타나 고기류 정도는 괜찮으니까, 밖에서 뭔가 만들어 먹으면 맛있고 좋잖아요. 나름 제로나 저당 재료를 사서 스트레스받지 않을 정도로 잘 해 먹어요.


배우 생활도 굉장히 밀도 있게 달려왔는데, 지칠 때는 없었나요

2014년부터 작은 역할을 이리저리 해내며 여러 마음가짐이 생겼어요. 늘 죽어라 연습을 해도 오디션 가면 긴장해서 오디션을 보지 않고 작품을 할 수 있는 배우가 되고 싶었죠. 월세가 아닌 전세 살면 좋겠다는 바람도 있었고요. 그런 간절함 때문인지 쉬지 않고 달려왔어요. 10년 동안 쉰 날이 50일도 채 되지 않는 것 같은데, 쉬어보니 그게 또 체질에 안 맞아요. 물론 스케줄이 험난하면 힘들다고 그러겠지만(웃음), 아르바이트와 촬영을 병행하던 그때로 돌아가고 싶지 않다는 마음이 당시 컷던 탓인지 어느덧 쉬는 기간이 길어지면 스스로 채찍질하게 돼요. 일하는 게 체질인 것 같기도 하고요.


화이트 셔츠는 Bottega Veneta. 팬츠는 Noise. 더비 슈즈는 Tod’s. 타이는 스타일리스트 소장품.

화이트 셔츠는 Bottega Veneta. 팬츠는 Noise. 더비 슈즈는 Tod’s. 타이는 스타일리스트 소장품.

자기 객관화를 위해 늘 노력하는 사람 같아요. 그게 안보현의 매력이죠

스스로에게 엄격한 편이에요. 다른 사람에게는 “쉬어”라며 다정하게 얘기하는데.


너무 엄격하면 힘들잖아요. 오늘만큼은 너그럽게 자신에게 말을 건넨다면

그러잖아도 요즘 자책을 좀 했는데, 타인에게 하는 것만큼 스스로에게 조금 관대해도 될 것 같아요. 열심히 해왔으니까. 성향이 유연하고 좋은 방향으로 바뀌었다는 걸 스스로 느끼는데, 어쩌면 제게 해줄 수 있는 최고의 칭찬인 것 같아요. 다행이죠. 앞으로 <악마가 이사왔다> 외에도 좋은 작품이 많으니 잘 나아가고 있다고 칭찬해 볼게요.

Credit

  • 패션 에디터 박기호 / 피처 에디터 전혜진
  • 사진가 김신애
  • 스타일리스트 김진석
  • 헤어 아티스트 조미연
  • 메이크업 아티스트 김신영
  • 아트 디자이너 김려은
  • 디지털 디자이너 김민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