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LLE DECOR

젠틀몬스터 출신 비주얼 디렉터가 공간 브랜딩하는 법

진중함과 유쾌함, 맥시멀리스트와 미니멀리스트 사이 어딘가. 크리에이티브 디렉터 유벵은 경계선에 서서 저만의 리듬으로 공간을 짓는다.

프로필 by 윤정훈 2026.01.12

DONA

공기처럼 스며든 트렌디함, ‘도나’ 유벵.


“힙스터와 평범한 사람 모두에게 사랑받는 공간을 만들고 싶어요.” 활기와 차분함, 진중함과 유쾌함, 맥시멀리스트와 미니멀리스트 사이 어딘가. 크리에이티브 디렉터 유벵은 경계선에 서서 저만의 리듬으로 공간을 짓는다. 그에게 ‘힙’과 ‘편안함’은 한 끗 차이다. 19세에 프랑스로 유학을 떠나 미술을, 이어 벨기에에서 그래픽을 공부한 그는 문화 속에서 복합적인 취향을 길렀다. 그렇게 만들어진 감각을 바탕으로 젠틀몬스터와 누데이크의 아트 비주얼 디렉터, ‘뉴 모던 서비스’ 공동대표를 거쳐 현재는 브랜딩 스튜디오 ‘도나(DONA)’를 이끌고 있다.

크래프트를 좋아하는 맥시멀리스트 클라이언트의 스케치북을 상상하며 만든 레스토랑 ‘빠말’. 가구와 오브제를 조화롭게 배치해 독특한 인상을 풍기면서도 집같이 편안한 분위기를 만들었다. 현재는 ‘뤼도 발루즈’라는 이름으로 새롭게 운영 중이다.

크래프트를 좋아하는 맥시멀리스트 클라이언트의 스케치북을 상상하며 만든 레스토랑 ‘빠말’. 가구와 오브제를 조화롭게 배치해 독특한 인상을 풍기면서도 집같이 편안한 분위기를 만들었다. 현재는 ‘뤼도 발루즈’라는 이름으로 새롭게 운영 중이다.


카멜커피 로고가 새겨진 패브릭으로 아이코닉하게 장식한 벽.

카멜커피 로고가 새겨진 패브릭으로 아이코닉하게 장식한 벽.


에스프레소 바 문화를 주제로 리뉴얼한 카멜커피 도산점.

에스프레소 바 문화를 주제로 리뉴얼한 카멜커피 도산점.


팝업 스토어를 포함해 이번 달에 오픈하는 공간만 여섯 개라고 들었다

얼마 전 롯데월드몰에 ‘시스템’ 2025 F/W 파리 컬렉션을 위한 팝업 공간을 오픈했다. 무려 6시간 만에 공사를 마친, 스스로 생각해도 믿을 수 없는 프로젝트였다. 브랜딩부터 기획, 영상 제작, 음악 제작까지 맡은 ‘투쿨포스쿨’ 성수 팝업 스토어가 오픈했고, 미국 뉴욕 기반의 스트리트 브랜드 ‘노아’가 운영하는 도산 ‘노아 시티 하우스’ 리뉴얼도 진행 중이다. 아직 배울 게 많아 바삐 지낸다. 직원 없이 혼자 일하는 이유도 게을러지고 싶지 않아서다. 함께하는 가구 제작, 시공, 식물 팀이 있다. 다양한 전문가와 협업 관계로 일하는 게 훨씬 잘 맞고 재미있다.


공간 기획 듀오 ‘뉴 모던 디자인 서비스’를 운영하다 마무리하고, 2023년 2월에 브랜딩 스튜디오 ‘도나’를 새롭게 열었다

뉴 모던 디자인 서비스는 감사하게도 시작한 지 얼마되지 않아 많은 주목을 받았다. 젠틀몬스터 출신 비주얼 디렉터와 미드 센추리 빈티지 가구 딜러가 공간 브랜딩을 한다니까 신기하게 봐주신 것 같다. 그런데 어느샌가 F&B 프로젝트의 비중이 지나치게 높아졌다. 보다 다양한 카테고리를 다루고 싶었고, 스스로도 재정비가 필요한 시점이라 잠시 멈추고 홀로서기를 결심했다. ‘DONA’는 ‘Distributor of Next Air’의 약자다. 계속해서 새로운 것을 보여주고 다음을 이어가겠다는 의미를 담았다.


프로젝트의 범위는? 공간과 브랜딩, 어느 쪽에 더 무게를 두는지

공간 디자인만 따로 하는 경우는 거의 없고, 대부분 브랜딩을 통째로 맡는다. 브랜딩 안에 공간이 포함돼 있다. ‘예쁜 공간’을 만드는 건 내게 중요하지 않다. 브랜드와 제품이 돋보이는 공간을 지향하고, 공간 자체가 주인공이 되는 건 선호하지 않는다. 사람들이 ‘좋은 공간’이라고 느끼는 건 단순히 인테리어가 훌륭해서가 아니다. 다양한 공감각적 요소들을 한꺼번에 떠올리며 하나의 큰 그림을 완성하는 일이 즐겁다.




더일마 스타필드 수원점.

더일마 스타필드 수원점.


짙은 우드 벽면에 잉고 마우러의 우치와(Uchiwa) 램프를 더해 이색적인 무드를 완성한 프라이빗 카페 벽면.

짙은 우드 벽면에 잉고 마우러의 우치와(Uchiwa) 램프를 더해 이색적인 무드를 완성한 프라이빗 카페 벽면.


1960~1970년대 호텔 라운지나 재즈 바를 연상시키는 레트로 무드의 공간. 굵직한 구조선과 따뜻한 조명, 블루 패브릭 벤치의 대비가 인상적이다.

1960~1970년대 호텔 라운지나 재즈 바를 연상시키는 레트로 무드의 공간. 굵직한 구조선과 따뜻한 조명, 블루 패브릭 벤치의 대비가 인상적이다.


스튜디오를 열고 처음 맡은 프로젝트는

‘레노마’ 리브랜딩. 한국시장에서 브랜드 인지도를 새롭게 쌓기 위해 ‘레노마 아카이브 클럽(Renoma Archive Club)’이라는 레이블을 만들고 크리에이티브 디렉터로 참여했다. 1960년대 파리에서 시작된 레노마의 철학과 아카이브에서 영감을 받아 과거의 유산을 현대적으로 재해석하는 프로젝트였다. 조사 과정에서 창립자 모리스 레노마가 피카소, 앤디 워홀 등과 교류하며 브랜드를 만들었다는 사실을 알게 됐고, 그 역사적 매력을 다시 소개하는 데 집중했다. 캠페인에 가까운 룩 북과 PR 쇼, 컬래버레이션 등을 세 시즌에 걸쳐 기획하고 진행했으며 레노마 파리의 아틀리에를 오마주한 공간에 아카이브 제품을 전시했다.


카멜커피와의 협업도 여러 번 진행했다

도나를 운영하며 프로젝트 선정 기준이 카테고리가 아니라 ‘명확한 방향성’이 됐다. 음식이든 제품이든 클라이언트의 철학이 뚜렷하다면 주저 없이 함께한다. 카멜커피와의 첫 협업은 도산점 리뉴얼. 커피 브랜드로서 진정성을 드러내고 싶은 클라이언트 의견에 따라 ‘바’ 형태 공간으로 정해졌다. 새로운 고객부터 기존 고객까지 ‘다시 오고 싶은 마음’이 들길 바라며 ‘홈 스위트 홈(Home Sweet Home)’이라는 주제 아래 환대하는 분위기를 조성했다. 목재 합판으로 브랜드 철학과 친근함을 전달하고, 지나치게 정교해 긴장감을 주는 구조 대신 의도적으로 엉성한 마감을 택했다. 바 테이블 위쪽 마름모꼴 구조물은 챗GPT를 통해 각국 어린이들이 그린 집의 형태를 찾아본 끝에 네덜란드 식에서 착안했다. 한쪽 벽에는 1970~1980년대 유럽 에스프레소 바 문화를 담은 영상을 상영해 ‘바 문화’의 감각을 전하고, 의자는 파예 투굿의 작업에서 영감을 받아 카멜 로고 패브릭으로 감싸 포인트를 줬다.


여러 현장을 동시에 컨트롤하지만 그중 유독 뜻깊은 작업도 있을 것이다

‘빠말’이라는 레스토랑이 기억에 남는다. 카멜커피와 협업하면서 알게 된 세빈이라는 친구가 사장인데, 크래프트적이고 귀여운 걸 좋아하는 맥시멀리스트다. 그 친구만이 가진 매력을 공간으로 풀어보고 싶었다. 공간 자체를 ‘세빈이의 스케치북’처럼 생각하고, 세빈이의 그림이나 좋아하는 오브제를 적절히 배치해 주인의 캐릭터가 드러나도록 했다. 현재는 ‘뤼도 발루즈(Ludo Balouze)’라는 이름으로 바꿔 운영 중이다.


레노마 파리 아틀리에를 오마주한 ‘레노마 아카이브 클럽’ 오피스.

레노마 파리 아틀리에를 오마주한 ‘레노마 아카이브 클럽’ 오피스.


빈티지 가구 위에 놓여 더욱 감각적으로 다가오는 레노마 아카이브 피스들.

빈티지 가구 위에 놓여 더욱 감각적으로 다가오는 레노마 아카이브 피스들.


코즈믹버거 청담점.

코즈믹버거 청담점.


집 같은 편안함, 동시에 ‘칠’한 느낌이 들더라. 과거 젠틀몬스터에서 보여준 비주얼과는 무척 다르다

젠틀몬스터는 브랜드 특성상 차갑고 임팩트 있게 공간을 꾸려야 했다. 안경이나 선글라스처럼 작은 제품이라 강렬한 공간으로 존재감을 각인시키는 전략이었다. 그런데 원래 내 취향은 빈티지다. 20대 때부터 와인이든 차든 옷이든 시간이 지나며 가치가 생기는 것에 더 끌렸다. 따뜻하고 오래 머물고 싶은 공간에 끌린다. ‘또 오고 싶은 장소’를 만드는 게 내 디자인에서 중요한 포인트 중 하나다.


유벵에게 ‘또 오고 싶은 공간’은

우선 시각적 면에서 목재처럼 사람을 편안하게 만드는 소재를 자주 쓴다. 합판은 내게 청바지에 흰 티셔츠처럼 익숙하고 멋진 소재다. 금속 중엔 아연 합판이 가장 따뜻하게 느껴지고, 자연스럽게 에이징돼 즐겨 찾는다. 이 외에 중요한 기준은 ‘나다움’이라고 생각한다. 오래가는 브랜드들, 위기에도 흔들리지 않는 브랜드들의 공통점이 결국 그것 아닌가. 공간 역시 브랜드의 취향과 성격이 녹아 있어야 한다. 시각적 완성도보다 공간이 품은 진정성에서 온다고 생각한다.


언젠가 꼭 해보고 싶은 프로젝트가 있다면

김밥천국과 다이소 리브랜딩을 꼭 해보고 싶다. 장난 아니라 진심이다. 김밥천국은 정말 좋아하는 곳인데, 나이를 먹으니 언제부턴가 들어가기 전 한 번씩 뒤를 살피게 되더라(웃음). 지금의 친근함을 다른 방식으로 풀어보고 싶다. 다이소도 정말 자주 찾는 곳인데, 브랜딩이 조금만 가미되면 무인양품처럼 될 수 있지 않을까 생각한다. 익숙한 브랜드를 새롭게 빛나게 만드는 일을 언젠가는 꼭 해보고 싶다.

Credit

  • 에디터 윤정훈
  • 아트 디자이너 이유미
  • 디지털 디자이너 김려은
  • INANDOUT STUDIO
  • COURTESY OF DONA