FASHION

지금 다시 보테가 베네타, 루이스 트로터가 보여준 하나의 태도

과시 없는 럭셔리와 태도로 증명한 첫 시즌. 루이스 트로터가 보테가 베네타에 다시 신뢰를 더했다.

프로필 by 강민지 2026.02.01

애정에 공평함 따위는 없다. 우리 엄마에게 자식 둘 중에 하나를 고르라고 해봐라. 필시 나를 고를 테니. 2026년 봄 여름 시즌은 유독 많은 크리에이티브 디렉터의 데뷔 무대가 겹쳤다. 마치 리얼리티 서바이벌 쇼를 볼 때 그렇듯 내심 최애가 있었으니 바로 루이스 트로터다.

보테가 베네타의 쇼는 밀란 패션위크 끝자락에 배치돼 있었다. 쇼가 가까워질수록 괜히 마음이 울렁거렸다. 루이스 트로터라면 분명 자신의 실력을 증명해 낼 것이라는 믿음과는 별개로 잘해 주길 바라는 감정이 앞섰다. 루이스 트로터에게 어떤 연대를 느끼는지도 모르겠다. 그는 여전히 소수에 불과한 여성 패션 하우스 수장 중 한 명이다. 이번 시즌, 총 15개 하우스가 크리에이티브 디렉터를 교체했지만 여성은 루이스 트로터와 프로엔자 스쿨러로 자리를 옮긴 레이첼 스콧, 단 두 명뿐이다.


루이스 트로터는 바닥부터 커리어를 쌓아온 인물이다. 갭, 캘빈 클라인, 타미 힐피거, 조셉, 라코스테, 까르벵 같은 브랜드를 거쳤다. 패션계에서 10년 이상 일하다 보면 혜성처럼 등장하는 ‘천재’가 주는 쾌감이 분명 존재한다. 그러나 삽시간에 판도가 바뀌는 세계에서 꾸준히 자신을 증명해 온 사람에겐 더 큰 존경이 모인다.


쇼 당일, 루이스 트로터는 더할 나위 없는 신고식을 치렀다. 마티유 블라지가 구축한 모던한 기조는 유지한 채 아카이브부터 되짚었다. 브랜드의 상징인 가죽을 촘촘히 엮은 인트레치아토 패턴을 집중적으로 탐구했다. 인트레치아토는 작아지고, 커지고, 더 빼곡해지거나 의도적으로 흐트러지며 새로운 표정을 띠었다. 이는 가방은 물론 의상과 슈즈, 머플러에 이르기까지 컬렉션 전반에 스며들었다. 그렇다고 루이스 트로터가 하우스에 압도된 것 같지는 않았다.

‘절제된 럭셔리’라는 보테가 베네타의 정체성을 존중하면서, 자신의 장기를 남김없이 드러냈다. 테일러링은 치밀하면서도 유연했고, 실루엣은 구조적이나 과시적이지 않았다. 테일러드 재킷에 버터색 니트를 더한 룩은 실용성과 세련된 스타일을 동시에 제안하며 트로터의 미학을 요약한다. 시선을 모으는 사람이 아니라, 이미 시선을 지닌 사람이 입을 법한 옷. 여성이 만들고, 여성이 선택하는 디자인이었다.


그렇기에 루이스 트로터는 보테가 베네타의 역사를 만들어온 여성에 대한 헌사 역시 놓치지 않았다. 서사는 1980년대부터 2000년대 초까지 보테가 베네타에서 활동한 첫 여성 크리에이티브 디렉터, 라우라 브라지온의 여정에서 출발했다. 이탈리아 여성이 뉴욕으로 건너가 느꼈을 해방감과 자유, 감각을 상상하며 트로터는 컬렉션의 정서와 서사를 구축했다.


또 하나 중요하게 참조한 인물은 영화 <아메리칸 지골로>에서 보테가 베네타의 클러치백을 들었던 로렌 허튼이었다. 루이스 트로터는 ‘로렌 백’을 재해석하며 경의를 표했고, 이에 화답하듯 허튼은 쇼 현장에 직접 참석해 그 순간을 완성했다. 컬렉션은 입기 쉬운 옷에서 출발해 점차 실험적인 영역으로 확장됐다. 50명의 장인이 4000시간 동안 완성한 케이프, 모델이 걸음을 내디딜 때마다 해파리가 유영하듯 살아 출렁거리던 프린지 톱과 스커트는 기술과 창의성, 판타지가 공존하며 압도적인 순간을 연출했다.


객석에서 쇼를 지켜보던 에디터는 몇 번이고 숨을 멈췄다. 한쪽으로 기울어진 마음으로 루이스 트로터의 보테가 베네타를 응원하고 있음을 인정한다. 취향에서 나온 감정보다 태도에 대한 신뢰에 가깝다. 최근 화제가 된 <흑백요리사>에서 기세 좋은 ‘흑요리사’ 대신 고요한 품위와 내공을 지닌 ‘백요리사’를 우러러보는 일과 닮았다. 오늘도 공평하지 않은 애정과 관심으로 루이스 트로터의 다음 시즌을 기대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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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redit

  • 에디터 강민지
  • 사진 브랜드
  • 아트 정혜림
  • 디지털 디자이너 김민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