K팝은 어디까지 갈 수 있을까? 그래미는 중요하지 않아!
68회 그래미 어워즈는 본상 부문에 K팝 아티스트들이 역대 최대로 이름을 올리며 화제가 됐다. 그나저나 K팝은 꼭 성취를 거둬야만 할까? 아니 그보다, 헌트릭스와 캣츠아이를 K팝이라고 해도 될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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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래미는 쉽지 않죠. BTS도 수상하지 못했으니까요." 작년 가을, 프로듀서 데이빗 영인 킴(David YUNGIN Kim)을 작업실에서 만났을 때 그가 스치 듯 했던 말이다. 뮤지션스 인스티튜트 할리우드(Musicians Institute Hollywood) 졸업 후 LA에서 음악 커리어를 시작한 데이빗은 전곡 믹싱 엔지니어로 참여했던 나스(NAS)의 2021년 앨범 <King’s Disease>를 비롯해 켄드릭 라마, 닙시 허슬과의 작업으로 그래미 어워즈를 세 번이나 수상한 바 있다.
그 만남 이후 한 달이나 흘렀을까? 지난 11월 8일, 미국 레코딩 아카데미 협회는 68회 그래미 어워즈 후보를 발표했다. 후보 명단은 이례적이었다. <케이팝 데몬 헌터스(이하 <케데헌>)> 메인 사운드 트랙 ‘Golden’이 ‘올해의 노래(Song of the Year)’를 포함 5개 부문의 후보에 올랐고, 로제(ROSÉ)의 ‘APT.’는 ‘올해의 노래’는 물론 ‘올해의 레코드(Record of the Year)’ 등 3개 부문 후보에, 캣츠아이(KATSEYE) 또한 ‘최우수 신인상(Best New Artist)’을 포함 2개 부문에 이름을 올렸다.
2026년 그래미 어워드 '올해의 노래' '올해의 레코드' 등 3개 부문에 노미네이트 된 로제의 'APT.'.
그래미 어워드를 화려하게 물들인 로제와 브루노 마스의 'APT.' 무대.
‘올해의 앨범(Album of the Year)’과 함께 ‘올해의 노래’ ‘올해의 레코드’ ‘최우수 신인상’은 그래미 어워즈의 수많은 수상 항목 속에서도 본상(General Fields) 4개 부문에 속한다. 2019년 한국 가수 최초로 그래미 어워즈 시상식에 참석하며 그래미와의 인연을 맺은 방탄소년단(BTS)이 2021년 처음 수상 후보에 올랐던 ‘베스트 팝 듀오/그룹 퍼포먼스’는 본상 부문은 아니었다. 2022년에는 본상 부문을 포함해 7개 부문 후보에 지원했지만 최종 후보 등록된 것은 전년과 동일했고, 2023년에는 ‘Yet to Come’과 콜드플레이와 협업한 ‘My Universe’로 각각 ‘베스트 팝 뮤직비디오’와 ‘베스트 팝 듀오/그룹 퍼포먼스’ 후보에 또 한 번 올랐으나 그래미의 높은 장벽을 확인할 따름이었다.
그런데 느닷없이 이렇게 여러 팀이 ‘본상’ 후보로 진출하다니? 세상이 잔뜩 들떴던 것도 당연하다. 국내뿐 아니라 <LA 타임스><뉴스위크> 같은 현지 매체도 “레코딩 아카데미가 K팝을 팝 음악의 중요한 부분으로 받아들였다는 뜻”이라며 그래미의 방향성이 유의미한 전환점이 될 것이라고 내다봤다.
K팝의 ‘쾌거’라거나 ‘역사적’ 같은 표현을 쓰기 전에 궁금해지는 게 있다. ‘Golden’이나 ‘APT.’를 K팝이라고 할 수 있나? 과연 캣츠아이는 K팝 그룹인가? 이런 의문은 이들이 시상식뿐 아니라 빌보드 메인 차트 등 해외 지표에서 거둔 성취가 K팝의 성공으로 분류될 때부터 꾸준히 제기돼 왔다. 전문가들은 공통적으로 말한다. ‘기준점을 어디에 두느냐’에 따라 달라진다고. 하지만 사실 그 기준점을 찾는 것조차 애매한 것이 사실이다. 노래가 어디에서 만들어졌는지가 중요할까? 그렇다면 일단 세 팀 모두 해외 음반사가 깊게 관여했다.
로제의 ‘APT.’와 앨범 <rosie>는 애틀랜틱 레코드와 더블랙레이블이 공동 발매하긴 했지만 앨범 곡 제작에 더블랙레이블 관계자는 거의 참여하지 않았다. ‘On the Ground’ 부터 함께했고, ‘APT.’와 ‘number one girl’ 등에 참여한 에이미 앨런(Amy Allen)은 워너 뮤직 소속 아티스트이자 송 라이터다. 사브리나 카펜터, 해리 스타일스, 저스틴 비버, 셀레나 고메즈, 테이트 맥래, 올리비아 로드리고 등 최고의 팝스타들을 위한 곡을 만든 초 히트 팝 작곡가인 그는 2년 연속 그래미에서 ‘올해의 송라이터(Songwriter of the Year)’ 부문을 수상했다. 송 캠프 문화의 안착 이후 K팝의 크레딧에서 국적을 따지는 게 무의미한 일이 됐다고 해도, 에이미의 주 영역이 ‘K팝’이 아닌 것은 분명하다.
‘Gnarly’와 ‘Gabriela’가 수록됐고 미국 현지에서만 18만 장 넘게 판매되며 2025년 실물 앨범 판매량 7위를 기록한 캣츠아이의 EP <Beautiful Chaos>의 레이블은 하이브와 유니버설 뮤직의 합작인 하이브 UMG 와 게펜 레코드다. <KPop Demon Hunters (Soundtrack from the Netflix Film)> 앨범은 리퍼블릭 레코드를 통해 발매됐다. 이 때문에 한국에서 발매된 음반들을 대상으로 하는 것이 원칙인 ‘한국대중음악상’의 후보에 <케데헌>은 오르지 못할 가능성이 높다. 테디와 24, 대니정, 팀 IDO, 도민석 등 더블랙레이블의 프로듀서들이 <케데헌>의 음악에 가장 깊게 참여했음에도 불구하고 말이다.
'최우수 신인상'을 포함한 2개 부문에 이름을 올린 캣츠아이.
그렇다면 대중 정서, 소위 ‘느낌적 느낌’은 어떤지? 김밥부터 호작도까지 아우르는 <케데헌>은 작품 자체가 한국 문화 전도사나 다름없기도 하지만, 사운드 트랙 또한 K팝처럼 느껴진다. 이에 대해 소니 픽처스 애니메이션 아그네스 리 PD는 “시나리오를 보며 2NE1과 블랙핑크의 음악이 자연스럽게 떠올랐고, K팝 특유의 에너지와 정체성을 살릴 수 있는 파트너를 찾는 과정에서 더블랙레이블 쪽에 연락하게 됐다”라고 말한 바 있다. ‘Golden’의 후렴구에서 많은 사람들은 아이브(IVE)의 ‘I AM’을 떠올린 것은 우연이 아닌 셈이다.
‘APT.’는 어떤가? 반복되는 ‘아파트 아파트’ 가사는 한국과 뉴질랜드 이중국적인 로제가 잘 알려진 ‘아파트게임’을 모티프로 발전시킨 것이다. ‘APT.’의 글로벌 히트 이후 해외 여행지에서 만난 사람들의 요청에 못 이겨 ‘아파트 게임’을 한 번이라도 해봤다면 블랙핑크의 멤버가 탄생시킨 이 곡이 어떻게 K팝이 아닐 수 있냐고 외칠 수 밖에 없다.
이런 면에서 오히려 정서적으로 거리감이 느껴지는 건 캣츠아이 쪽이다. 많은 사람들이 캣츠아이는 K팝 제작 시스템을 토대로 탄생했으므로 ‘K팝 아티스트’라고 말한다. 캣츠아이 프로젝트를 총괄한 하이브 아메리카의 인정현 수석 크리에이티브 프로듀서 또한 <빌보드>와의 인터뷰에서 ‘캣츠아이는 K팝의 핵심인 장기간 트레이닝 시스템에 대한 현지의 편견을 깨기 위해 오디션 프로그램과 넷플릭스 다큐멘터리를 활용했다’라고 말하며 하이브의 제작 노하우가 반영됐음을 밝혔다. 하지만 데뷔 2년차에 접어든 이 팀이 선보이는 퍼포먼스나 활동 방식은 ‘K팝 신인 걸그룹’이라기 보다는 한국인 멤버가 한 명 포함된 ‘다국적 그룹’에 가까워 보이는 것이 사실이다(앨범에 포토카드가 들어있고 응원봉이 있다는 것 정도를 제외하면 말이다!).
올해 그래미 어워즈는 현지 시간 2월 1일(한국 시간 2월 2일) LA 크립토아레나에서 펼쳐졌다. 후보에 올랐던 부문 결과가 하나하나 발표될 때마다 포털사이트 뉴스 기사창과 SNS 타임라인은 요동쳤다. ‘Golden’이 ‘영상 미디어 부문 최우수 노래(Best Song Written for Visual Media)’를 수상하며 기대감을 모았지만 거기까지, 이변은 벌어지지 않았다. 그래미의 벽은 여전히 높고 공고했다.
68회 그래미 어워즈에서 '올해의 노래'를 포함해 5개 부문의 후보에 오른 <케이팝 데몬 헌터스>의 헌트릭스, 이재, 오드리 누나, 레이 아미.
그러나 그렇다고 해서 지난 1년 동안 우리가 목도한 아티스트들의 활약이 사라지는 것은 아니다. ‘베스트 듀오’ 자리는 ‘Defying Gravity’의 신시아 에리보와 아리아나 그란데에게 넘겨줬을 지언정, 시상식 무대에서 보여준 로제와 브루노 마스의 호흡은 그 자체로 최고였다. ‘올해의 노래’가 되지 못했다고 해서 K팝 아이돌이라는 소재와 배경, 한국의 역사와 문화를 모두 담고 있는 <케데헌>이 가진 작품의 의미가 축소될리는 없다.
최근 K팝이 주요한 국가 정책으로 거론되며 ‘누구나 알만한’ 네임밸류를 가진 해외에서의 성취나 인정이 과도하게 강조되는 면이 있다. 범정부기구로 야심차게 출범한 대중문화교류위원회의 특별 위원은 라이브네이션이나 리퍼블릭 레코즈, 소니뮤직 엔터테인먼트 재팬, 펜스케 미디어 같은 업계의 초대형 회장단으로 꾸려졌고, APEC 같은 국제 행사에 K팝 아티스트들이 이미지적으로 동원되기도 한다.
올해 ‘그래미 어워즈 본상 수상’이 이뤄졌다면 이런 흐름은 한층 강화됐을 수도 있다. 창작자와 아티스트들이 만들어낸 결과물 자체를 좀 더 가볍게 즐길 수 있으면 좋겠다는 생각이 드는 부분이다. K팝에서 ‘K’를 애써 없앨 필요도 없지만, 그게 최우선이 돼 개별적인 결과물들이 가진 각기각색의 매력이나 ‘충분히’ 성공하지 못한 것들의 가치를 축소판단할 일도 아니라는 것.
‘무엇이 K팝스러운가’를 논의하기에 K팝이 전세계적으로 사랑 받게 된 가장 큰 이유는 특유의 복합성과 비주류성에서 기인한 다양성 때문이다. 이미 작년 2월 제 22회 한국대중음악상에서 ‘최우수 케이팝-노래 부문’을 수상한 ‘APT.’를 두고 권석정 선정위원은 “어쩌면 ‘무국적’이라는 표현이 이 노래를 정의 내리는 데 가장 적절할지도 모르겠다”라고 말한 바 있다.
그래미 어워드에서 'Gnarly'로 에너제틱한 퍼포먼스를 선보인 캣츠아이.
때때로 설 익은 시도가 문화 전유 현상으로 비판 받기도 하고 팬덤을 고려해야 하는 특성상 경직된 태도를 보일 때도 있지만 그럼에도 K팝을 기반으로 뻗어나간 문화가 얼마나 다채롭게 확장될 수 있는지는, 그래미 레드 카펫에 섰던 이들의 모습이 증명한다. 이재, 레이 아미와 시상식을 찾은 오드리 누나는 우리가 종종 잊곤 하는 미국 교포 커뮤니티와 한국인으로서 정체성에 대해 언급했다. “오늘밤 톰브라운 꾸뛰르 의상을 입은 건 제게 정말 뜻깊어요. 저는 자랑스러운 이민자의 딸이고, 우리 가족의 생존기는 의류 제조 산업과 닿아있는데 톰 브라운은 저희 할아버지가 처음으로 주문을 맡아 생산했던 브랜드 중 하나거든요.”라면서 말이다.
한국과 필리핀 뿐 아니라 가나 출신인 스위스 국적 멤버, 인도계와 히스패닉계 미국인 멤버 등으로 구성된 캣츠아이는 당연히 전형적인 K팝 걸그룹처럼 보일 수 없다. 하지만 다채로운 각자의 피부색에 맞는 청바지를 입고 갭(GAP) 캠페인 광고를 하고 LGBTQ 컬쳐에 열린 행보를 보이는 K팝 트레이닝을 받은 다국적 소녀들을 보며 우리는 오히려 다양성의 아름다움을 상기할 수도 있다. 전체가 스페인어로 쓰여진 앨범으로 그래미 최초 ‘올해의 앨범’ 상을 거머쥔 배드 버니가 전세계에 고국 푸에트로 리코를 알려온 방식처럼 말이다.
아, 그래미 위너인 데이빗은 현재 미국에서 서울로 터전을 옮겨 K팝 아이돌은 물론 힙합, R&B 씬과도 긴밀하게 작업 중이다. 2024년 발매된 그의 첫 스튜디오 앨범에는 박재범, 저스디스, 바비 뿐 아니라 폴 블랑코, 던밀스, 카모, 소코도모, 릴체리 등 수많은 아티스트가 함께했다. 사실 오스카나 아카데미, 그래미, 빌보드 같은 지표만 반복적으로 언급하기에 우리가 보고 들어야 할 것도, 존중할만한 시도와 성취도 이미 너무나 많다. 1등만 기억하는 것이야말로 너무 ‘K’스럽기도 하고!
Credit
- 글 이마루
- 사진 GettyImage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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