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흔히 ‘배움’은 가르치고 습득하는 과정을 의미한다. 그렇다면 가르치는 사람과 배우는 사람, 인간과 사물, 몸과 환경의 경계를 나누지 않을 때 배움은 어떻게 확장될까? 샤넬 컬처 펀드가 후원하는 리움미술관의 퍼블릭 프로그램 ‘아이디어 뮤지엄’의 세 번째 프로그램 <In the Middle Voice: 다섯 개의 움직임>은 이런 질문에서 출발했다. 배움을 탐구하는 방식은 ‘만들기’ ‘춤추기’ ‘연주하기’ ‘합창하기’ ‘듣기’라는 다섯 가지 움직임으로 진행됐다.
'합창하기’ 세션.
지난해 11월부터 약 8개월간 관람자는 예술에 참여하고 서로의 감각과 경험을 나누며 배움의 새로운 가능성을 모색한 것. 샤넬 컬처 펀드와 리움미술관이 같은 질문을 함께 던지기 시작한 것은 2023년부터다. 두 기관은 포용성(Inclusivity), 다양성(Diversity), 평등(Equality), 접근성(Access)이라는 리움미술관의 핵심 가치를 바탕으로 매년 우리 사회가 마주한 범인류적 의제를 미술관으로 가져왔다. 이를 예술적 상상력으로 풀어내기 위해 강연과 대담, 워크숍과 퍼포먼스에 이르기까지 형식에 경계를 두지 않았다.
‘듣기’ 세션에서는 타인과의 관계 맺음에 주목한다.
첫 번째 프로그램에서는 ‘기후 위기와 지속 가능성’을, 두 번째 프로그램에서는 ‘젠더와 다양성’을 다뤘다면, 다음으로 꺼내든 화두가 ‘배움과 관계’. 그 중심에는 조금 낯선 단어인 ‘중동태(Middle Voice)’가 있다. 능동과 수동으로 명확히 구분되지 않는 중동태는 행위의 주체와 대상, 인간과 비인간을 분리하기보다 서로 영향을 주고받으며 함께 변화하는 상태를 가리킨다.
아이디어 뮤지엄의 세 번째 프로그램은 세계적 인류학자 팀 잉골드(Tim Ingold)의 기조 강연과 몸과 재료, 환경의 관계를 살피는 ‘만들기’ 워크숍으로 문을 열었다. 이후 춤추기, 연주하기, 합창하기, 듣기로 이어지며 몸과 소리, 목소리와 주변 환경을 통해 타인과 관계 맺고 함께 배우는 방식을 살펴봤다. 안은미와 함께한 춤추기 세션 ‘둥실덩실’에는 24명의 시니어 여성이 참여했다. 참여자들은 약 두 달 동안 각자의 몸에 축적된 시간과 기억을 움직임으로 풀어내고 이를 공유한 뒤, 퍼포먼스로 선보였다. 정해진 동작을 수행하기보다 자신의 몸이 지닌 고유한 감각을 발견하고 다른 이의 움직임에 호응하며 관계를 형성하는 데 초점을 맞췄다.
첼리스트이자 작곡가 이옥경과 함께한 ‘연주하기’는 ‘소리 나누기’와 ‘즉흥음악 워크숍’으로 진행됐다. 정해진 악보나 역할 없이 상대의 소리에 귀 기울이고 즉흥적으로 응답하면서 음악을 만들어가는 방식이다. 참여자들은 하나의 소리가 또 다른 소리를 불러내는 경험을 통해 연주를 완성된 결과물이 아닌, 타인과 소통하며 함께 만들어가는 행위로 바라봤다.
‘춤추기’ 세션 현장.
다음은 목소리. 영국의 즉흥음악가이자 보컬리스트 필 민턴(Phil Minton)이 이끈 ‘합창하기’ 세션의 ‘야생합창단(Feral Choir)’은 음악적 경험과 관계없이 누구나 자신의 목소리로 참여할 수 있도록 구성했다. 3일 동안 호흡과 발성, 다양한 소리를 자유롭게 주고 받으며 각기 다른 목소리에 귀 기울이고 반응하며 공동 감각을 형성하는 데 의미를 뒀다.
마지막 ‘듣기’ 세션은 홍콩의 비영리 아티스트 컬렉티브 사운드포켓(soundpocket)과 함께한 리스닝 아카데미 ‘비는 하나의 축제’와 연계 포럼 ‘듣기의 실천들’로 진행됐다. 비와 물, 몸과 장소가 연결되는 방식에 주목해 걷기와 드로잉, 사운드 퍼포먼스 등 다양한 활동을 펼쳤다. 듣기를 단순히 소리를 인지하는 행위에서 주변 환경과 타인을 감각하는 실천으로 확장했다. 다섯 가지 움직임은 한 사람의 몸이 다른 이의 움직임에 호응하고, 하나의 소리는 또 다른 소리를 불러냈으며, 귀 기울이는 행위는 미처 인식하지 못했던 주변의 존재를 발견하게 했다.
소리로 소통하는 세션, ‘연주하기’.
<In the Middle Voice: 다섯 개의 움직임>은 서로 영향을 주고받으며 변화하는 경험을 통해 배움을 관계 속에서 함께 만들어지는 과정으로 바라봤다. 미술관 역시 작품을 감상하는 장소를 넘어 예술을 매개로 새로운 감각과 지식, 관계가 형성되는 공공 플랫폼으로 영역을 넓힌 계기가 됐다. 샤넬 컬처 펀드와 리움미술관이 이어온 ‘아이디어 뮤지엄’ 여정은 9월 <아이디어 뮤지엄, 내일 이후 (Idea Museum, After Tomorrow)>로 이어진다. 기후 위기와 지속 가능성, 젠더와 다양성, 배움과 관계에 이르기까지 그동안 축적한 기록과 대화 과정을 되짚을 예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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