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기사도 살짝 보고 가실래요?
파우치도 계절 환승, 여름 화장품 가을까지 쓰는 법
전체 페이지를 읽으시려면
회원가입 및 로그인을 해주세요!
펜디의 최고 크리에이티브 책임자 마리아 그라치아 치우리가 로마로 돌아왔다. 파리에서 활동한 지 약 10년 만이다. 계절과 혁명이 교차하는 도시에서 그는 패션을 유행이 아닌 문화 언어로 바라본다. 첫 펜디 쿠튀르 컬렉션을 앞둔 그는 여성성과 욕망, 사회 구조에 관해 이야기했다. 올해 펜디 오트 쿠튀르는 탄생 10주년이다. 이를 기념해 로마 팔라초 델라 치빌타 이탈리아나에서 특별한 전시가 열렸다.
치우리가 이번 쇼의 무대로 로마국립현대미술관을 선택한 데는 남다른 이유가 있다. 1985년 이곳에서 칼 라거펠트와 펜디 자매들의 20년 협업을 기념하는 전시 <어느 작업의 여정. 펜디 | 칼 라거펠트 Un Percorso di Lavoro. Fendi | Karl Lagerfeld>가 열렸기 때문이다. 당시 패션은 문화가 아닌 산업으로 여겨지던 시대였기에, 패션이 미술관으로 걸어 들어간다는 사실 자체가 거센 논란을 불러일으켰다.
젤린다 자니켈리가 포착한 펜디의 최고 크리에이티브 책임자 마리아 그라치아 치우리. 지난 7월 9일, 그는 로마국립현대미술관에서 펜디를 위한 첫 오트 쿠튀르 컬렉션을 선보였다. 발렌티노와 디올에서 긴 여정을 마친 뒤, 자신이 커리어를 시작했던 하우스로 돌아온 것.
41년이 흐른 지금, 치우리는 그 전시를 <After>라는 이름으로 다시 호명했다. 드로잉과 패턴, 극장적 연출, 비디오와 컴퓨터그래픽으로 구성된 당시 전시는 그 자체로도 굉장히 급진적이었다. 오래전부터 치우리는 작품 소유보다 어떤 감정을 불러일으키는지, 충분히 조명되지 않은 여성 예술가와 창작 공동체를 어떻게 발견할 수 있는지에 관심을 기울였다. 그래서 치우리의 컬렉션은 아름다운 옷에서 끝나지 않는다. 사회와 문화, 사람을 향한 질문이 함께 존재한다.
이번 펜디 쿠튀르도 마찬가지다. 고대 로마가 아닌 오늘의 로마를 배경으로 흑백의 인타르시아가 엄격한 아름다움을 제시하는 사이, 드레이프는 몸을 따라 흐르며 코르셋으로는 표현할 수 없는 오늘의 여성성을 담아냈다. 그에게 옷은 몸을 보호하는 원초적 사물이다. 화려함보다 중요한 것은 몸이 자연스럽게 존재하는 방식이다. 전시장 한편에는 이번 컬렉션을 관통하는 요제프 코수스의 작품과 루트비히 비트겐슈타인의 문장이 놓여 있다. “당신이 선물이라고 생각하는 것은 사실 당신이 해결해야 할 하나의 문제다.”
1985년 오리지널 전시를 담은 아카이브. 41년이 지난 지금, 마리아 그라치아 치우리는 당시의 코트에 최면을 부르는 듯한 흑백 그래픽을 수놓아 과거를 재해석했다.
로마는 당신에게 시작이자 귀환의 도시다. 당신에게 로마의 중심은 어디인가
로마에서 자랐고 누구보다 잘 안다고 생각하지만, 사실 아직도 잘 알지 못하는 도시다. 로마는 복잡하고 다층적이며 수많은 모순이 공존한다. 무엇보다 이곳은 펜디가 태어난 도시다. 첫 쿠튀르 쇼를 로마국립현대미술관에서 열고 싶었던 이유도 그 때문이다. 사람들은 펜디가 로마와 얼마나 깊이 연결돼 있는지, 이 도시에서 어떤 역사를 만들어왔는지 알지 못한다. 그래서 쇼와 함께 1985년 전시도 다시 열기로 했다. 당시 도록도 남아 있지 않았고 인터넷도 물론 없었다. 지금의 젊은 세대는 그런 전시가 있었다는 사실조차 모른다. 하지만 기억해야 한다. 패션이 현대미술관으로 걸어 들어간 최초의 사례였다.
1985년 전시를 다시 바라보며 놀란 점은
개막 당시에 거센 비판이 쏟아졌다. 이번 재전시에 당시 신문 기사를 함께 전시하는 이유도 같은 맥락이다. 패션이 현대미술관에 들어간다는 사실 자체가 신성 모독처럼 받아들여졌던 시대였다. 지금 그 기사를 읽어보면 불과 몇 십 년 사이에 얼마나 많은 것이 달라졌는지 실감하게 된다. 당시 이탈리아에서 패션은 장인 기술이자 산업으로 여겨졌을 뿐 문화의 일부는 아니었다. 전시 방식도 혁신적이었다. 옷이 탄생하는 창작 과정을 전시장에서 보여주려 했다. 지금은 자연스럽지만 당시에는 매우 급진적인 시도였다.
<After>라는 단어를 더해 다시 그 공간에 들어섰을 때 새로운 출발을 실감했나
물론이다. 큰 책임감도 느꼈다. 나는 펜디에서 많은 걸 배웠고 발렌티노와 디올에서도 마찬가지였다. 사람은 혼자 성장하지 않는다. 늘 누군가에게 많은 것을 받으며 앞으로 나아간다. 펜디는 내 커리어가 시작된 곳이다. 지금의 내가 하우스에 돌려줄 수 있는 가장 좋은 것을 보여주고 싶었다. 물론 지금의 펜디는 내가 처음 입사했을 때와는 완전히 다르다. 가족 경영 브랜드였던 시절에는 중요한 결정도 몇 분 만에 내려질 만큼 단순했다. 지금은 훨씬 규모가 크고 복잡한 조직이다. 그럼에도 다시 돌아오니 스물다섯 살의 나를 만난 듯했다. 물론 이제는 그 나이가 아니지만(웃음), 그때의 열정과 약간의 무모함은 남아 있다.
쿠튀르를 만들 때 가장 큰 도전은 무엇인가
쿠튀르는 매우 복합적인 영역이다. 전통과 깊이 연결돼 있고, 이탈리아의 쿠튀르 문화는 프랑스와 다른 방식으로 발전해 왔다. 내게 주어진 과제는 특정한 공예 기술과 노하우, 즉 사보아 페르(Savoir-Faire)를 다음 세대로 이어가는 것이다. 레디 투 웨어에서는 시간과 비용 때문에 지속하기 어려운 실험도 쿠튀르에서는 가능하다. 이번 컬렉션에서도 가죽을 손으로 하나하나 엮어 나뭇잎 같은 망토를 만든 작품이 있는데, 이는 쿠튀르에서만 가능하다. 나는 쿠튀르를 하나의 ‘영역’으로 표현하고 싶다. 각 하우스의 오트 쿠튀르 아틀리에는 창립자의 정신을 간직한 장소다. 여러 하우스를 거치며 배운 것은 서로 다른 아틀리에를 연결하는 일이다. 오트 쿠튀르와 퍼, 레더 공방은 서로 다른 언어를 사용하지만, 기술들이 만나면 이전에 없던 결과가 탄생한다. 쿠튀르의 모든 과정은 협업이며, 장인들과의 신뢰가 중요하다. 끝까지 사람의 손으로 완성되는 점이야말로 쿠튀르의 가장 아름다운 본질이다.
당신은 여성이 실제로 입고 살아갈 수 있는 옷을 만든다. 시간이 지나도 입는 사람을 편안하게 만드는 이유가 무엇일까
패션보다 ‘옷’을 먼저 생각해야 한다. 옷은 사람이 머무는 공간이자, 몸이 살아가는 집이다. 그렇다면 스스로 어떤 집에서 살고 싶은지 물어야 한다. 가령 나는 절대로 집에 강철로 만든 소파를 들여놓고 싶지 않다. 세상을 살아가는 방식도 그렇다. 당신은 어떤 태도로 세상을 걸어가고 싶은가? 강철 소파를 선택하는 것도 자유다. 하지만 내게 중요한 것은 삶의 방식이다. 어떻게 살아가고 싶은지, 세상을 어떻게 받아들이는지가 자연스럽게 옷에도 드러난다.
흑백 텍스처는 하우스의 아카이브를 상징하는 프린트를 다시 불러와 오늘날 펜디 오트 쿠튀르 아틀리에가 지닌 탁월한 장인 정신을 고스란히 보여준다.
패션이 자신의 언어라는 사실은 언제 깨달았나
나는 한 번도 인생을 계획하며 살지 않았다(웃음). 물론 컬렉션 같은 눈앞의 프로젝트는 계획하지만, 인생 자체를 설계해 본 적은 거의 없다. 처음부터 패션을 직업으로 생각했던 것도 아니다. 그림 그리는 걸 좋아했고, 그 과정에서 자연스럽게 패션과 만났다. 당시는 패션이 지금처럼 전문 직업으로 인정받지 못했기 때문에 모든 것이 조금씩 흘러가며 만들어졌다. 어쩌면 우리는 운이 좋은 세대였다. 지금처럼 모든 걸 계획할 필요가 없었다. 미래는 열려 있었고 무엇이든 가능했다. 요즘 세대는 학교를 선택하는 순간부터 이미 인생이 결정된 것처럼 느끼는 것 같아 안타깝다. 우리 때는 일단 시도했고, 살아가다 보니 길이 만들어졌다. 물론 독립하려면 일해야 하니 현실적인 고민은 있었다. 하지만 그 과정은 정해진 미래를 향해 달려가는 게 아니라 ‘나는 어떤 사람인가?’를 찾아가는 시간이었다. 무엇보다 정보가 넘쳐나지 않았기에 더 자유롭게 자신을 상상할 수 있었다.
이번 전시를 두고 여러 번 ‘용기’를 언급했다. 지금 우리는 그때보다 더 용감한 시대를 살고 있나
1985년에는 패션 전시가 사회적 스캔들로 다뤄질 정도였으니 돌이켜보면 정말 용기 있는 전시였다. 하지만 지금이 더 용감하다고 단정할 순 없다. 세상은 달라졌지만, 두려움의 형태도 함께 바뀌었다. 예전에는 제도나 권위가 사람을 제약했다면, 지금은 보이지 않는 방식으로 서로를 감시한다. 모두 24시간 내내 누군가의 평가를 의식하며 살아간다. 소셜 미디어는 엄청난 가능성을 열었지만, 끊임없이 타인의 시선을 내면화하게 만들었다. 오늘날의 용기는 거창한 게 아니다. 다른 사람처럼 보이려 하지 않는 것, 자신의 취향과 생각을 끝까지 지켜내는 것이 가장 어려운 일이다.
오랫동안 여성 예술가들과 협업하며 잊힌 여성들의 목소리를 조명해 왔다. 당신에게 여성성은 어떤 의미인가
어릴 때부터 여성들이 만들어온 세계에서 성장했다. 집에서도, 학교에서도, 직장에서도 늘 뛰어난 여성을 만났다. 그런데 이상하게도 역사 속으로 들어가면 그들의 이름은 쉽게 사라진다. 그래서 가능하면 많은 여성 작가와 연구자, 예술가들을 소개하고 싶었다. 패션은 강력한 플랫폼이다. 매년 컬렉션을 보기 위해 수많은 사람이 모인다. 그 기회를 통해 아름다운 옷뿐 아니라 새로운 관점도 함께 소개하고 싶었다. 나는 여성성을 고정된 이미지로 생각하지 않는다. 세상에는 수많은 여성이 있고, 모두 다른 삶을 살아간다. 누군가는 강인하고, 누군가는 섬세하다. 어떤 사람은 두 가지를 모두 가지고 있다. 그래서 나는 특정한 여성상을 제안하는 데 관심이 없다. 오히려 다양한 여성들이 자기 자신을 발견할 수 있는 가능성을 만들고 싶다. 패션은 누군가를 바꾸기 위한 것이 아닌, 이미 존재하는 사람을 더욱 선명하게 드러내는 일이다.
그래서인지 당신의 컬렉션에서는 늘 ‘입는 사람’이 먼저 보인다
나는 옷보다 사람에게 관심이 많다. 아름다운 드레스는 얼마든지 만들 수 있다. 하지만 누군가 그 옷을 입었을 때 전혀 자신의 것이 되지 않는다면, 내게는 성공한 디자인이 아니다. 옷이 사람보다 앞서서는 안 된다. 이번 컬렉션도 마찬가지다. 특별한 실루엣을 만들겠다는 생각보다 ‘이 옷을 입은 사람이 어떤 기분을 느낄까?’를 먼저 떠올렸다. 결국 옷은 살아 있는 몸 위에서 완성된다. 런웨이 위에서만 존재하는 것이 아니라 누군가의 삶 속으로 들어간다. 이것이 내가 중요하게 생각하는 출발점이다.
당신은 늘 패션이 문화라고 이야기한다
패션은 옷만 만드는 산업이 아니라 사회를 반영한다. 우리가 무엇을 아름답다고 생각하고 무엇을 두려워하는지가 모두 옷에 담긴다. 그래서 패션은 예술과 문학, 영화, 철학과 끊임없이 대화해야 한다. 그 관계가 끊어지는 순간 패션은 금세 피상적인 소비재가 될 것이다. 나는 여전히 호기심이 많다. 새로운 사람을 만나고, 새로운 책을 읽고, 새로운 장소를 발견하는 일을 좋아한다. 호기심이 사라지는 순간 창작도 끝난다. 가능하면 항상 열린 상태를 유지하려 한다. 모든 것을 안다고 믿는 순간, 더 이상 아무것도 배울 수 없다.
내용을 입력해주세요.
삭제하시겠습니까?
등록이 완료되었습니다.
올가을 활용하기 좋은 패션·뷰티 힌트는 엘르에서.
로그인 후 이용 가능한 서비스 입니다.
댓글쓰기
댓글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