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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한 얼굴인데도 어딘가 예측하기 어려운 눈빛이에요. 그래선지 악역도 잘 어울릴 것 같아요
그래요? 여기저기서 자주 듣는 말인데, 칭찬이라고 생각해요.
<너 말고 다른 연애>의 다정하고 부드러운 남자친구 ‘남궁호’로 대중을 마주하고 있죠. 촬영이 마무리된 지금, 아직 그의 여운이 남아 있나요
늘 작품 속 인물을 한 발자국 멀리서 바라보고 표현하려는 편이라 촬영이 끝나는 즉시 저로 돌아가요. 그런데 이번에는 번아웃 같은 게 왔나 봐요. 많이 지친 상태예요.
톱과 왼손 약지에 착용한 링은 모두 Enfants Riches Déprimés. 네크리스와 브레이슬릿, 오른손 검지와 약지에 착용한 링은 모두 Chaumet. 팬츠와 벨트, 허리에 걸친 롱 슬리브와 슈즈는 모두 스타일리스트 소장품.
이야기에 너무 깊숙이 들어가 있었나 봐요
서사가 고조될수록 정서 또한 깊어져서 힘든 감정 신이 많았거든요. 남궁과 미도의 마음과 상태를 완전히 이해하고, 거기에서 비롯된 감정을 표현하는 데 스스로를 많이 소모한 것 같아요. 속에 있는 감정을 다 쏟아낸 후에 오는, 일종의 탈진을 겪고 있어요. 그래서 집에서 한 발자국도 나오고 싶지 않고, 당분간 연애를 쉬고 싶습니다. 이제 사랑이라면 지긋지긋해요(웃음).
그럴 법도 한 게 10년간 연애하다 결혼과 이별 앞에 선 관계를 표현했잖아요. 심지어 남궁은 미도만 바라보고 살지만 미도는 다른 남자에게 설렘을 느끼고 흔들리죠. 장기연애에 설렘이 꼭 필요한지 질문을 던지면서요
인간은 늘 갖지 못한 것들을 갈망하죠. 연애도 마찬가지예요. 관계 초반에는 안정감을 원하다가도 안정기에 들어서면 자극을 바라죠. 어느 순간에도 만족을 못하고 갖지 못한 걸 갈망하는 게 우리 모습 아닐까요?
재킷과 셔츠, 팬츠, 타이는 모두 Ernest W. Baker by 10 Corso Como Seoul. 칼라 팁은 Boot Star. 슈즈는 Maison Margiela. 브레이슬릿과 링은 모두 Tom Wood.
이 아슬아슬한 관계에서 남궁은 어떤 감정에 휩싸였을까요
당연히 떠나려는 미도를 붙잡고 싶은 마음에 휩싸였겠죠. 30년 가까운 세월을 그와 함께 했으니까. 미도에게 “너는 너 하고 싶은 대로 하면서 살아. 그게 제일 잘 어울려. 내가 적금 부어 놓은 걸로 하고 싶은 것만 해”라는 대사가 남궁이 삶과 사랑을 대하는 방식을 가장 잘 보여줘요. 그녀와의 관계가 멀어진 시기의 남궁을 잘 봐주세요. 그때 진짜 남궁의 모습이 보이거든요.
진짜 남궁은 어떤 남자예요
너무 번듯하고, 선을 지키며 성실하지만 불안정한 인생을 살아가는 불안한 사람이길 바랐어요. 남궁에게 미도는 살아가는 이유지만, 저는 남궁이 미도와 함께하는 삶을 행복한 삶이자 자신의 전부라고 착각하는 것 같아요. 내면은 사무치게 공허하고, 어디로 가야 할지 모르는 상태인 거죠.
상대만 바라보며 자기 인생을 설계하는 삶에 관해 생각해 본 적 있나요
저는 그러지 않아요. 최소한 자신을 지키며 사랑해야 한다고 생각하거든요. 연인 관계에서 누구 하나가 희생하는 순간, 막중한 책임과 의무가 더해져 그 관계가 더욱 무거워질 거예요.
서강준은 어떤 방식으로 사랑하나요
내가 올곧게 서야 제대로 사랑할 수 있다고 믿어요. 내면이 똑바로 서 있지 않은 상태에서 사랑하면 스스로 희생감을 느낄 수밖에 없고 결국 연인은 눈치를 보겠죠. 내 희생이 상대를 지치게 만들고, 상대방 역시 그 희생 앞에서 자신이 초라하다고 느낄 테니까. 그런 감정이 쌓이면 결국 관계는 어긋날 거예요. 누군가를 위한 희생은 사랑의 여러 방식 중 하나지만, 전제조건은 자신의 삶을 온전히 유지하는 거예요. 상대가 내 삶의 이유가 되면 안 돼요.
명확하네요. 각자의 삶을 영위하면서도 오랜 관계를 유지하는 방법이 있을까요
그건 마음가짐에 달려 있죠. 우린 모두 행복하고 싶어 하잖아요. 그런데 행복을 바란다는 것 자체가 현재의 행복을 발견하지 못했다는 뜻일 수도 있어요. 장기 연애도 마찬가지예요. ‘이 사람보다 멋진 사람을 만나면 더 좋을까?’ ‘짜릿했던 순간으로 돌아가고 싶다’ ‘우리 관계를 어떻게 회복시키지?’ 이런 생각이 꼬리에 꼬리를 물면 익숙한 관계가 어느새 문제가 돼버려요. 오랜 관계는 눈빛만 봐도 알 수 있다는 장점이 있는데도요. 바라지 않는 마음, ‘우리 관계가 이렇게 변했구나’ 하고 자연스럽게 받아들이는 마음이 중요하지 않을까요? 관점을 달리한다면 행복은 가까이 있어요.
그 마음가짐을 유지하는 게 제일 어려운데요(웃음)
저도 말한 대로 안 될 때가 있어요(웃음).
작품에 임할 때도 자신만의 기준을 내세우는 당신은 스스로 확신이 강한 사람인 것 같아요. 그런 확신이 좀 더 확고해진다고 느끼나요
하고 싶은 대로 하겠다는 마음은 매번 더 확고해져요. 제 선택을 누구의 탓으로 돌리고 싶지 않기 때문에 제가 원하는 걸 택하고 싶거든요. 물론 타인에게 피해가 가지 않는 선에서요. 요즘 책임에 관해 자주 생각해요. 책임이란 뭘까?
팬츠는 Celine. 링은 Tom Wood. 브레이슬릿은 Swarovski. 이너 웨어로 입은 톱과 셔츠, 벨트와 슈즈는 모두 스타일리스트 소장품.
왜요? 계기가 있나요
그렇지는 않지만, 어느 순간 누군가 “내가 책임질게”라고 말하는데, 그 말이 경솔해 보이더라고요. 어떻게 책임진다는 걸까? 사과 한 마디로 책임질 수 있다는 걸까? 책임이라는 단어가 무겁게 느껴져서 앞으로 타인의 일에 함부로 ‘책임지겠다’는 말을 하지 않기로 했어요.
자기 확신이 빗나간 적도 있나요
작품을 바라보는 시각이 빗나갈 땐 있죠. 내가 바라보는 것만이 정답은 아니라는 걸 연기할 때마다 깨닫죠. 그래서 언제나 다름을 수용해야 해요.
마흔 살을 ‘프라임 타임’이라고도 합니다. 그때까지 배우로 남아 있겠죠
지금 서른넷이니 얼마 안 남았네요. 한국 나이로 6년, 만 나이로 8년.
그때 얼굴을 상상해 본 적 있나요
솔직히 머릿속에 제일 먼저 그려지는 그림은 세 식구예요. 아내와 아이 한 명 그리고 저. 제가 차 앞에서 아이를 안고 서 있고, 아내가 카페에서 커피를 사 오는 찰나의 장면이 떠올라요. 배우로서의 얼굴은 쉽사리 떠오르지 않아요.
코트와 팬츠는 모두 Celine. 이너 웨어 톱은 Saint Laurent. 커프스는 스타일리스트 소장품.
결혼을 꾸준히 언급해 왔어요. 서른다섯 살에 이루고 싶다고
벌써 내년이니 글러먹었죠(웃음).
그럼 만 나이로 계산하면 되죠. 방금 말한 세 식구의 모습처럼 평소에도 인생 계획을 설계하며 사나요? 아니면 막연한 로망을 떠올리나요
저는 계획을 안 해요. 뚜렷한 목표를 설정하기보다 지금 당장 혹은 수개월 안에 할 수 있는 일을 하나씩 만들어가는 데 집중하거든요. 해야 하는 일과 하고 싶은 일로 인생을 채우는 것이 목표라면 목표겠네요.
작은 목표를 향해 정진하는 사람들은 소소한 행복을 잘 느낄 것 같은데
잘 느끼다가도 존재하지 않는 행복을 갈망할 때도 많아요.
그렇게 찾아낸 행복 뒤에 종종 공허가 자리하지 않나요
공허야말로 진짜 나와 마주하게 해주는 소중한 계기라고 생각해요. 긴 삶을 가치 있게 만들어주는 요소 중에는 긍정적인 감정뿐 아니라 고독과 공허, 외로움도 존재하니까요. 이 감정들을 피하지 않고 품어내며 끊임없이 사유해야 한다고 생각해요. 헤르만 헤세의 <싯다르타> 읽어보셨어요?
톱은 Celine. 슈즈는 Maison Margiela. 팬츠와 링은 모두 스타일리스트 소장품.
톱은 Celine. 슈즈는 Maison Margiela. 팬츠와 링은 모두 스타일리스트 소장품.
소설에서 싯다르타는 수련을 거듭해도 사라지지 않는 불안과 공허를 없애고 자신을 찾기 위해 고행자의 길을 떠나죠. 어떤 지점에서 공감했나요
내면의 참된 자아인 ‘아트만’을 찾으러 떠나죠. 삶의 진정한 가치는 바깥세상의 지혜가 아니라 내 안에 있다는 그의 여정은 제가 지닌 생각과 그대로 닿아 있었어요. 싯다르타처럼 초월한 존재로 거듭나기는 힘들겠지만, 자아 성찰의 중요성을 깊게 느끼는 저에게 <싯다르타>는 제 내면의 결을 그대로 대변해 준 작품이었어요.
내 안에 침잠하다 보면 미처 몰랐던 자신의 어리석음이나 어진 면을 발견하게 되잖아요. 그런 발견을 배우라는 직업과 연결했을 때, 연기하고 싶은 인간의 범주를 떠올려본다면요
추악한 면을 연기해 보고 싶어요. 인간의 본성에는 그런 면이 어느 정도 존재한다고 보거든요. 우리가 선하게 살아가는 건 사회가 만든 윤리와 도덕이라는 규범 안에서 끊임없이 노력하기 때문이죠. 그렇기에 타인에게 좋은 사람으로 보이기 위해 숨겨둔 비겁함과 욕망, 충동이 찰나에 터져 나오는 순간에 관심이 가요. 그런 인간의 적나라하고 솔직한 모습을 보여주는 이야기에 들어가보고 싶어요.
꽤 솔직한 대답이네요. 왜 그런 연기를 하고 싶어요
가끔 제 안의 수많은 가면이 괴이하고 어색하거든요. 누구나 그럴 거예요. 회사 대표님 앞에서 보이는 얼굴과 혼자 집에 있을 때의 얼굴이 다르듯 말이죠.
인간의 이면을 탐구하길 좋아하는 당신은 앞으로 연기에 무엇을 더 가져가고 싶나요
욕심. 표현의 한계를 한 꺼풀 더 벗겨내고 싶어요. 이번 작품을 하면서 제가 고민한 만큼 표현이 따라오지 않는 순간이 많았고, 그 한계를 크게 느꼈거든요. 계속 고민하다 보면 언젠가는 벗겨지겠지만, 더 빨리 다음 단계로 가보고 싶어요. 동시에 표현을 덜어내는 용기도 갖고 싶죠. 꼭 드러내지 않아도 전달될 수 있도록 감정을 좀 더 안으로 가져오고, 피상적이지 않은 표현을 해보고 싶어요.
잘하고 싶은 욕심, 곧게 서고 싶은 마음. 결국 이 모든 갈망은 사랑에서 비롯된 것 같아요. 이제 어떤 사랑을 하고 싶나요
흔히 사랑이라면 타인과의 관계를 떠올리지만, 사랑은 꼭 상호적인 것만은 아니거든요. 저를 좀 더 찾아가보고 싶어요. 내면을 꾸준히 두드리고, 찾고, 고민하다 보면 삶이 더욱 윤택해지고, 그만큼 가치 있어질 거라 믿기 때문이에요. 그게 나를 사랑하는 방식이며, 가장 이상적인 사랑의 형태이자, 제가 생각하는 최고의 사랑 중 하나이니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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