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올해 베니스의 팔라초 벰보에서 열린 ‘퍼스널 스트럭처스(Personal Structures)’에 설치한 ‘더 웨이 오브 인터비잉– 더 패스 오브 쿠(The Way of Interbeing – The Path of Ku)’처럼 당신의 설치미술 작품은 장소조차 하나의 재료가 된다. ‘프리즈 하우스 서울’이라는 공간은 어떻게 읽었나? 2층 작품은 눈을 쌓아 만든 동북 지방의 눈집, 가마쿠라를 떠올리며 작업했다고 들었다
프리즈 하우스 서울은 입구가 멋진, 귀여운 갤러리라는 인상을 받았다. 1988년에 지어진 주택을 개조한 곳이라 세월이 깃든 면과 현대적인 면이 잘 섞여 있다. 프리즈 하우스 서울의 디렉터인 앤디가 직접 청소하는 모습, 스태프들이 공간 디테일을 매만지는 모습도 이 공간을 이루는 요소라는 생각이 들었다. 약수동의 정겨운 동네 분위기도 한몫했다. 대나무는 환경이나 빛에 따라 인상이 크게 달라지는 소재다. 직전에 작업한 베니스는 벽돌로 지은 팔라초였고 유리로 둘러싸인 공간이어서 대나무를 촘촘하게 엮었다. 이곳은 규모 면에서도 대비가 크고, 흰 벽을 두른 공간이라 대나무를 얼기설기 엮었다.
대나무의 산지나 종류에 따라 달리 쓰는 것으로 안다. 이번 설치미술 작품에 쓴 것은
토라치쿠, 호랑이 무늬가 있는 대나무다. ‘토라’는 일본어로 ‘호랑이’라는 뜻이다. 고치현 스사키시 아와 지구, 좁은 골짜기에서만 나는데 다른 산에 옮겨 심으면 무늬가 드러나지 않는 특수한 나무다. 그 산에서도 우후죽순 나지 않고 스무 그루 중 하나 정도만 무늬가 있다. 자연에 그저 두기만 해서는 잘 자라지 않으니 솎아주고 손을 대야 한다. 나는 사람과 자연의 융합을 중요하게 생각하는데 토라치쿠로 그 의미를 보여줄 수 있다.
프리즈 하우스 서울에서 전시 <비가시의 숲 Invisible Forest>을 선보인 다나베 치쿤사이 4세. 대나무와 흙으로 이룬 조각 ‘Creation Through Collapse – Five Cosmic Elements’(2025).
희소성도 큰 몫을 했겠지만, 이 나무의 어떤 특성에 매료됐나
어릴 때부터 대나무에 둘러싸여 살았다. 그러면서 대나무의 아름다움이 어떤 이미지로 마음속에 자리를 잡았다. 대나무에 바람이 부딪치는 소리, 대나무와 사계절이 어우러지며 나타나는 풍경, 대나무 숲에서 듣던 물소리 같은 것들 말이다. 토라치쿠 산지에 갔을 때 ‘이것이야말로 진짜 대나무 숲이구나’ 싶었다. 오래 간직해 온 이미지 그대로였다. 그곳 풍경과 공기를 작품에 담으려 했다.
대나무 산지도, 죽재점도 줄어드는 추세다. 재료를 둘러싼 환경은 어떤 변화를 맞고 있나
구로치쿠라는 검은 대나무의 경우, 예전에는 열 곳 정도의 산에서 났지만 지금은 한 군데만 남아 있다. 세 분으로 구성된 가족이 돌보고 있어서 한 분이라도 일을 못하게 되면 생산에 차질이 생긴다. 나는 작품 하나에 몇천, 몇만 개의 대나무를 쓴다. 그래서 구로치쿠 생산자들과 죽림 재생 프로젝트를 함께 진행하고 있다. 작품을 많이 만들어 농가의 연간 운영에 필요한 대나무 사용을 보장해 주고 싶다. 대나무 숲을 만들고 가꿀 사람이 많이 필요하다. 농가가 젊은 사람을 고용할 수 있도록, 지속 가능한 방향으로 함께 움직인다.
호랑이 무늬가 있는 대나무인 ‘호라치쿠’로 엮은 ‘Invisible Forest’(2026). 일본 동북 지방의 눈집 ‘가마쿠라’를 연상하며 만든 설치작이다.
전시 1부 ‘시카이(始)’에서는 이전 작품과 구별되는 장면과 만나게 된다. 대나무와 흙을 결합한 것인데, 대학에서 조각을 전공하지 않았나? 오랜만에 손으로 흙을 만졌겠다
학창 시절, 오사카시립공예고등학교 미술과를 거쳐 예술대학에 진학했다. 그 고등학교에 예술이 얼마나 재미있는 것인지 알려준 선생님이 계셨는데, 그분이 조소 교사였다. 열다섯 살 무렵에 조소를 만났고, 대학도 조소과를 택했다. 15~23세까지 흙을 다뤘는데 흙은 내게 무척 소중한 재료다.
대나무는 어릴 때부터 형제처럼 함께 자란 존재인가
대나무는 내 일부다. 흙도 마찬가지. 작가로서 내 정체성을 말할 수 있는 두 가지가 대나무와 흙이다. AI를 비롯한 첨단 기술과 가상공간이 대두되는 시점에도 수작업의 중요성을 생각한다. 특히 아이를 키우면서, 흙을 직접 만지고 오감으로 체험하는 일이 어려운 시대라는 걸 알았다. 꽃을 그리고 싶을 때 실제 꽃을 보는 대신 아이패드에 이미지를 띄워놓고 그린다. 촉감을 느끼는 것, 실제로 체감한다는 것이 얼마나 중요한지 다시금 느낀다. 흙은 곧 땅이고, 대나무는 땅에서 자란다. 시카이에서 흙과 대나무를 통해 자연을 다시 보게 하고 싶었다.
‘시카이’는 시작할 시(始)에 파괴할 괴()를 쓴다. 파괴 속에 새로운 시작이 있다는 뜻이고, 반복을 계속 겪는 것이 전통이라는 이야기로 들린다
파괴와 재생이라 할 수도 있고, 태어나는 것과 사라지는 것, 시작과 끝이라고도 할 수 있다. 낡은 것이 시간이 지나면서 새로워지기도 하고, 새로운 것이 낡아졌다가 다시 새로워지기도 한다. 시카이에 쓴 대나무는 구로치쿠, 흑죽이다. 흑죽은 100년에 한 번 꽃이 피는데, 꽃이 피면 대나무가 죽음을 맞는다. 그러면서 땅속 뿌리가 완전히 새로워진다. 100년에 한 번 완전한 재생을 하는 것이다. 우리 집 앞마당의 구로치쿠도 지난해에 죽었다. 시카이 섹션의 작품에도 구멍이 있다. 대규모 설치미술에서 웜 홀을 만든 것과 같은 의미다. 생성과 파괴를 잇는 것이다.
갤러리나 뮤지엄에 기한을 약속하고 진행하는 대나무 설치미술은 그 자리에 방문한 사람만 볼 수 있는 예술이 된다. 공예 작품이 오래 살아 남으려 하는 것과 달리 수십 미터에 이르는 당신의 설치미술 작품은 해체하면 수트케이스 몇 개 분량의 대나무 살로 돌아가고 그 살은 다시 다음 작품의 재료가 된다
설치미술 작품을 해체할 때는 정말 슬프다. 굉장히 우울해진다(웃음). 집에 증조할아버지가 만든 120년 전 작품이 있다. 지금 봐도 기술력이 높고, 얼마나 혹독한 수행을 거친 결과물인지 알 수 있다. 일본인이 벚꽃을 좋아하지 않나? 벚꽃이 아름답게 피는 시기는 1년 중 사흘 정도에 불과하다. 그 사흘을 보기 위해 사람들은 축제처럼 꽃구경을 하고 술을 즐긴다. 찰나의 아름다움, 그것이 질 때 슬픔에 깃든 미학은 그 자체로 생명력을 가지는 것 같다. 한순간에 불과하다는 사실, 인생이 유한하다는 걸 일깨워주면서 말이다. 내 설치미술 작품도 그런 면에서 의미를 찾고 있다. 그렇게 100년, 200년을 남기는 작품과 한순간에 사라지는 작품을 함께 만들고 있다.
대나무 작가로서 치쿠운사이 가문은 120년, 4대에 걸쳐 이어지고 있다. 기술과 정신 면에서 무엇을 계승하고 있나
정신적으로는 열 가지 가르침이 있다. 열 가지 행동이라 해도 좋고, 철학이자 교훈일 수도 있다. ‘겸허하라’ ‘정직하라’ ‘교육은 힘이다’ ‘내게 주어진 것을 다음 세대에 물려줘라’ 같은 것이다. 기술적인 면에서는 치쿠운사이 7기, 일곱 가지 기법이 있다. 10년의 수련 기간 동안 열 가지 교훈과 일곱 가지 기법을 배우는 것이다. 10년의 수행은 3년, 5년, 7년, 10년으로 나뉜다. 각 분기마다 시험을 치고 통과해야 다음 단계로 나아간다. 10년을 통과하면 예술가 명을 받고, 그때 제자를 받을 자격이 주어진다. 가훈도 있다. ‘전통은 도전이다’.
‘Rift of Creation’(2026).
초대 치쿠운사이는 중국에서 건너온 명품 대나무 바구니, 이른바 당물(唐物)을 본뜨는 데 명수였고, 아버지인 3대는 화살대로 쓰이던 야다케를 그대로 써서 대나무에 참신한 조형을 끌어들였다. 대나무 끝을 점으로, 곧은 줄기를 선으로 삼아 면을 구성하는 방식이다. 이를 어떻게 이어받아 새롭게 만들 것인가 고민했을 텐데, 1대와 2대의 작품에 당대의 컨템퍼러리 아트로 회자될 만한 특징이 있을까
항상 시대적 배경이 큰 부분을 차지한다. 1대와 2대인 증조할아버지와 할아버지는 중국 미술이나 일본 미술의 테두리 안에서 영향을 받았다. 초대 치쿠운사이도 대나무로 일상 바구니를 만드는 일이 많았지만 대나무로 예술 작품을 만들었다는 점에서 참신했다. 물론 중국 미술의 영향이 강하던 시절이라 장식적 요소가 많았다. 2대에 이르러 ‘스카시아미’라 해서 성기게 대나무를 엮어 구멍과 여백이 많은 기법을 썼다. 굉장히 단순한 기법이었다. 지금 시선으로는 전통 미학으로 느껴질 수 있지만 당시에는 최첨단 기법이었다. 3대인 아버지는 1940년생이다. 그의 유년기에 세계대전이 끝났고, 전후에 서양식 교육이 들어왔다. 아버지는 오사카시립공예고등학교에서 금속공예를, 무사시노미술대학에서 디자인을 공부했다. 서양 미술 교육을 받아야 했던 시대 변화와 맞물려 아버지는 ‘교육이야말로 힘’이라는 정신을 강조했다. 적극적으로 해외에 진출해야 한다는 것,예술 정신을 도입해야 한다는 것도 아버지가 가르친 부분이다.
도쿄예술대학 미술학부에서 조각을 전공했다. 대학 시절 커리어 고민 때문에 학교에 가지 않았다고 들었다. 그때 무엇을 하고 싶었고, 어떤 것을 한계라고 느꼈나
어릴 때부터 미술 교육과 전승 교육을 함께 받았다. 주변의 모두가 예술가였다. 예술의 길을 의심한 적은 한 번도 없었다. 예술고등학교와 예술대학으로 이어지는 과정도 물 흐르듯 흘러갔다. 그런데 내가 입학한 도쿄예대가 들어가기 어려운 대학이다. 그곳을 목표로 전력 질주해서 결국 입학에 성공했는데, 예술이 너무 당연한 환경에서 목표를 달성하고 나니 다음에는 무엇을 해야 할지 혼란스러웠다. 목표를 잃은 것이다. 스무 살 무렵, 이대로 괜찮은 걸까 의심했고, 3~4년 정도 삐걱거림과 좌절을 느끼며 보냈다. 예술을 피하기 시작했다. 봉사 활동도 하고 아르바이트도 하면서 나름 여러 일을 전전했는데, 내 정체성인 대나무에게서 도망치고 있다는 느낌을 지울 수 없었다. 대나무를 지우고 살 수 없다는 것을 그때 깨달았다. 3년 동안의 좌절이 지금 생각하면 굉장히 의미 있는 시간이었다. 지금은 천직이라고 느낀다.
‘Creation Through Collapse – Earthy Wind’(2025).
갤러리나 미술관 전시의 중심에 설 수 있는 공예 미술을 고민한 것이 지금의 대형 설치미술 작품으로 이어졌다. 런던에서 아니시 카푸어의 작품을 본 것이 큰 사건이었다고
공예라 하면 일본과 한국에서는 이미 문화로 자리 잡은 영역이다. 그런데 유럽이나 미국에서는 그렇지 않았다. 서양에서 미술이라는 조류를 살피면 조각과 현대 예술, 유럽의 경우에는 기독교 미술 같은 게 있다. 그래서 미술관의 메인 전시장에서 공예 전시를 하는 게 어려웠고, 한계도 느꼈다. 전시를 거듭할수록 그런 한계가 고통스러웠다. 그러다 2009년 개인전을 위해 런던에 갔다가 우연히 로열 아카데미에서 아니시 카푸어의 전시를 봤다. 대포로 붉은 밀랍을 쏘는 작품이었는데, 체감하는 예술의 중요성을 그때 깨달은 것 같다. 대나무 공예는 부감으로 내려다보며 감상하는 작업이다. 이걸 어떻게 오감으로 느낄 수 있을까를 고민했다. 그러면서 지금의 설치미술 작업을 시작했다. 처음에는 스케일을 다루는 일 자체가 과제여서, 혼자 만들다 보면 부서지기 일쑤였고 작은 설치미술 작품 한 점을 만드는 데 한 달이 걸리기도 했다.
대학 졸업 후 죽공예 훈련지원센터에서 2년간 기초 기술을 익히고 돌아와 아버지에게 사사했다. 천을 씌우면 보이지 않게 될 테두리에 공을 들이던 아버지 이야기를 어느 인터뷰에서 한 적 있다. 지금 당신의 작업에도 아무도 보지 못할, 그럼에도 공을 들이는 디테일이 있나
아버지는 엄격한 스승이었다. 철저히 도제식이었고, 연중 휴가는 설 당일 하루와 여름의 하루뿐이었다. 조금만 이상해도 엄청 잔소리를 듣기 때문에 그게 싫어서 잘할 수밖에 없었다(웃음). 아버지의 바구니 테두리 작업은 상징적인 이야기다. 마감이 급해서 빨리 끝내야 했는데 계속 테두리 작업에 공을 들이더라. 결국 천으로 가릴 부분이었는데도 말이다. 당시 스무 살인 나는 왜 그렇게까지 하는지 이해하기 어려웠다. 그런데 아버지가 “50년 후에는 천이 해져서 바꿔야 할 수 있다”는 것이다. 긴 세월이 지나 이 천을 풀었을 때 감춰져 있던 아름다운 테두리가 보이는 것, 그것이야말로 미학이라고. 그런 미학을 실천하는 분이었다.
세대를 거쳐 대나무와 함께 살아온 가문의 일원으로서 발견한 대나무의 아름다움이란
나에게는 연결이라는 의미가 중요하다. 과거를 미래로 연결하는 일 말이다. 이를 위해 예술가로서가능성을 넓히고 싶다. 과거를 이어가는 일은 세로 축, 예술가로서의 확장은 가로 축이다. 대나무를 엮듯 세로 축과 가로 축을 엮어가는 일이 내 예술의 소명이다. 불교에 공(空)이라는 개념이 있다. 존재는 혼자서 이뤄지지 않고, 타자가 있음으로 해서 생긴다는 이야기다. 나는 공을 엮는다는 철학을 갖고 작업한다. 사람과 사람의 존재를 대나무로 엮으며 표현하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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