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ULTURE

소설가 강지영이 하고싶은 이야기

<죽지 않고 어른이 되는 법>의 강지영 작가가 말하는 어른의 조건.

프로필 by 정소진 2024.11.02
코트는 Ferragamo. 블라우스는 Fabiana Filippi. <살인자의 쇼핑몰>을 비롯해 <엘자의 하인>, 곧 출간을 앞둔 <인간보다 인간적인>까지 강한 여성의 이야기에 집중하고 싶은 강지영 작가.

코트는 Ferragamo. 블라우스는 Fabiana Filippi. <살인자의 쇼핑몰>을 비롯해 <엘자의 하인>, 곧 출간을 앞둔 <인간보다 인간적인>까지 강한 여성의 이야기에 집중하고 싶은 강지영 작가.

어른이 되기를 꿈꾸지만 여섯 번을 죽고 다시 살아나는 인물 ‘재이’의 삶을 다룬 <죽지 않고 어른이 되는 법>은 타임 루프물이다
기존의 타임루프물들은 대개 사랑하는 사람의 죽음을 막거나 미리 알고 있는 정보로 부와 명예를 축적하는 스토리가 많았다. 내가 생존이라는 키워드를 선택한 건 다분히 현실적인 이유다. 아이의 꿈은 미래에 있고, 어른의 꿈은 과거에 있기 마련이다. 미래로 넘어가는 관문이 얼마나 현실적으로 혹독한지 판타지적 세계관을 통해 알레고리하고 싶었다. 작품 속 재이는 로또번호나 주식그래프에 관심이 없다. 오로지 생존이 목적인 사람. 그야 말로 정글에 내던져진 아이는 추위와 배고픔과 싸울 뿐이다. 재이에게 추위와 배고픔은 어른들의 무관심과 배신이 아닐까.

재이는 상담센터 상담사이자 환생을 거듭하는 ‘소영’과 연대해 종말 같은 경험을 견뎌내고 무사히 어른이 된다
이 작품은 죽지않고 어른이 되는 법과 좋은 어른으로 죽음을 맞이하는 법, 두 가지 이야기이다. 소영은 겨우 죽지 않고 어른이 되었으나 초반 설정상 어른스럽다고 표현하기는 어렵다. 그러나 작품 중후반부로 흘러가며 타인의 삶에 책임감을 느끼고 말이 아닌 행위로 구원한 뒤 평온해진다. 소영의 용기와 희생을 깨달은 뒤에 비로소 재이도 성인이 되고. 이는 기성세대가 젊은 세대에게 마땅히 베풀어야 할 교범이라는 의미로 설정했다. 모성애에 기대지 않고 여성이 연대하기 위해선 서로간의 이해가 필요하다 느낀다. (모든 여자가 어머니가 되는 건 아닌데 왜 우린 어머니의 희생만 숭고하다 떠올리는지 의아하기도 했다.) 혈연이 아닌 재이와 소영을 통해 이를 보여주고 싶었다.

고군분투하며 살아온 소녀들에게 동화돼 어느새 나를 돌아보는 먹먹함이 생겼다. 작품을 쓰면서 어떤 감정을 느꼈나
재이는 여섯 번이나 죽고 환생했다. 작중 죽음 보다 탄생의 고통이 컸다는 묘사가 있다. 매번 환생을 묘사할 때 먹먹했다. 이 험한 세상에 나는 또 재이를 던져 놓았구나. 안쓰러웠다. 아이를 출산하고도 비슷한 감정을 느꼈다. 탄생은 분명 기쁜 일이지만, 그 이면에 산모들은 책임감이나 우울감을 갖는 경우가 흔하다. 우리는 오랫동안 기쁨을 과장시켜 출산과 탄생의 쓸쓸함을 덮어오지 않았나 생각해왔다. 재이는 줄곧 탄생하지만 반대로 소영은 꾸준히 노화하며 같은 시대를 맞이한다. 둘 다 사회적 약자인 만큼 세심한 감정묘사가 중요했다. 내가 겪은 소녀 시절, 그리고 소영처럼 서서히 늙어가는 지금의 강지영이 투영되어 있다보니 독자에게는 흥미로운 장면도 작가인 내게는 고백적일 수밖에 없었다. 감정에 함몰되지 않으려 노력하며 원고를 완성했다.

브라운 스웨이드 재킷은 Nothing Written. 이너 슬리브리스는 Toteme. 블랙 롱 스커트는 Johnny Hate Jazz. 슈즈는 스타일리스트 소장품.

브라운 스웨이드 재킷은 Nothing Written. 이너 슬리브리스는 Toteme. 블랙 롱 스커트는 Johnny Hate Jazz. 슈즈는 스타일리스트 소장품.

작품을 통해 스스로 발견하려는 것은
전작 중에 <엘자의 하인>이라는 성장물이 있다. 고향인 파주를 배경으로 나의 유년시절 경험과 가족들의 이야기를 담아냈다. 자전적 성장물은 작가가 일생에 한 번 밖에 쓸 수 없다는 얘기도 있다. 하지만 <죽지 않고 어른이 되는 법>을 쓰며 두 번 혹은 세네 번도 쓸 수 있겠구나, 생각했다. 자전적이라는 것이 꼭 있는 사실을 그대로 옮긴다는 의미는 아니다. 겪었던 사건을 재구성할 수도 있고 여러 장르의 옷을 입혀 새롭게 선보일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내가 체험한 나의 과거 뿐 아니라 타인이 바라본 나의 성장기도 자전적 성장물에 포함된다는 생각을 했다. <죽지 않고 어른이 되는 법>을 통해 성장에 대한 내 기준이 나에 국한되지 않는다는 사실, 그리고 한 인간을 키워내는 데엔 여러 사람의 희생과 배려가 필요하다는 걸 느꼈다. 그게 작가인 내가 작품으로 또는 활동가로 실천해야 할 일들이다.

당신이 생각하는 어른이 되는 방법은
동생과 나이차가 크다. 8살. 그애에게 한글과 알파벳을 가르쳐준 건 나였다. 스마트폰이 없던 시절 먼 여행길에 오르면 늘 책을 한 권 사서 읽기를 강권했다. 이제 와 보니 굳이 그랬어야 했을까. 조금은 후회가 남는다. 동생은 활발한 성격에 운동을 좋아했고 호기심이 많았다. 그런데 언니가 책을 안겨주니 읽은 게 아니라 읽는 척 했다는 사실을 근래에 전해 들었다. 만약 지금이라면 기차에 앉아 잡담을 나누고 풍경을 감상하거나 음식을 사먹었을 텐데. 나는 내가 바라는 인간형을 동생에게 고집했던 것 같다. 한 아이가 어른이 되려면 주변 사람들의 인정과 배려가 필요하다. 어른들이 태만하다면 목소리를 낼 수 있어야 한다. 또 그 어른을 감시하는 또 다른 어른도 필요하다. 사회가 아이를 키운다고 생각한다.

14개 이상의 국가에 수출될 예정인 <심여사는 킬러> 를 쓴 강지영 작가의 신간<죽지 않고 어른이 되는 법>.

14개 이상의 국가에 수출될 예정인 <심여사는 킬러> 를 쓴 강지영 작가의 신간<죽지 않고 어른이 되는 법>.

한강 작가의 노벨문학상 수상을 비롯해 강지영의 <심여사는 킬러>의 유럽, 미국, 일본 등 14개국이 넘는 수출 소식은 문학계에 신선한 에너지를 블어넣었다
한강 작가님은 내가 정말 좋아하는 분이고, 대학에서 강의할 때 학생들에게 작가님의 단편을 매해 읽혔다. 내 눈이 틀리지 않았다는 걸 깨달았다. 한국문학이 항상 내수용으로 활용됐다고 생각했는데, 이제야 한국 작가들이 열심히 담아낸 이야기와 감수성이 해외까지 확장될 수 있는 가능성이 보인다.

또 다루고 싶은 여성의 이야기는
곧 신작 출간을 앞두고 있다. 제목은 <인간보다 인간적인>이고 인간의 모습을 한 또 다른 종족에 대한 이야기이다. 주요캐릭터 모두가 여성이다. 재이와 소영이 유사가족의 한 갈래를 보여주었듯 신작에서도 새로운 형태의 집합, 연대, 투쟁이 그려진다. 특히 액션이 강화돼 호쾌한 재미를 더할 것이다. 내 다음 세대인 재이들을 위해 앞으로도 강인한 여성 캐릭터의 소설은 꾸준히 써나갈 계획이다.

Credit

  • 에디터 정소진
  • 사진가 이예지
  • 스타일리스트 이진혁
  • 헤어&메이크업 아티스트 이형정
  • 아트 디자이너 정혜림
  • 디지털 디자이너 오주영