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LLE DECOR

그림 하나, 집이 달라졌다

자연을 벽에 담다. 테스 뉴올이 그려낸 일상의 마법.

프로필 by 권아름 2025.08.14
1730년대에 지어진 영국 글로스터셔의 휴양 주택, 프램프턴 코트(Frampton Court)의 로프트 침대에 직접 그림을 그려 영국 특유의 빈티지 감성으로 완성했다.

1730년대에 지어진 영국 글로스터셔의 휴양 주택, 프램프턴 코트(Frampton Court)의 로프트 침대에 직접 그림을 그려 영국 특유의 빈티지 감성으로 완성했다.

유려한 곡선이 춤추고, 꽃과 나뭇잎이 서로 속삭이는 듯하다. 벽과 가구에 그린 그림에서 영국 시골의 목가적 정서와 전통 가정의 소박함과 따뜻함이 느껴진다. 이런 감성은 타고난 것일까

나는 스코틀랜드 시골에서 자랐다. 화가인 엄마와 건축 보존가인 아버지 덕분에 어릴 때부터 손으로 무언가를 만들고 공간을 꾸미는 일이 자연스러웠다. 방을 끊임없이 새롭게 꾸미거나 인형의 집을 위해 작은 가구를 직접 만들기도 했다. 열 살 무렵에는 엄마와 함께 내 방 벽을 스펀지로 칠했는데, 해 질 녘의 하늘 같았던 그 벽은 지금도 기억이 선명하다. 그때 처음 알았다. 패턴이 사람에게 기쁨과 창의력을 불어넣을 수 있다는 것. 그리고 공간이 감정에 미치는 영향이 생각보다 크다는 것도. 지금은 영국 서식스 시골에서 매일 아침 산책을 한다. 계절의 변화를 관찰하며 자연에서 영감을 얻는다. 이를테면 이른 봄에 숲 바닥을 뒤덮은 야생 마늘이 어느 순간 푸른 블루벨 카펫으로 바뀌는 풍경을 놓치지 않고 벽화나 벽지에 담아낸다.



인테리어 디자인 스튜디오 아만다 오스틴(Amanda Austin)의 의뢰로 장식한 침실. 천장을 보태니컬 패턴으로 채워 은은하고 서정적이다.

인테리어 디자인 스튜디오 아만다 오스틴(Amanda Austin)의 의뢰로 장식한 침실. 천장을 보태니컬 패턴으로 채워 은은하고 서정적이다.

창작의 가장 큰 영감은 자연 속의 형태나 패턴, 색조에서 오나

자연은 내 작업에서 큰 비중을 차지하지만, 역사적 건물이나 박물관에서 발견한 오래된 직물과 벽, 가구의 장식적 요소도 중요한 영감이 된다. 특히 런던의 빅토리아 앨버트 박물관은 갈 때마다 새로운 자극을 주는 곳이다. 과거의 예술가에게서도 많은 영향을 받는데, 그중에서도 20세기 세트 디자이너이자 장식 예술가였던 올리버 메슬(Oliver Messel)은 특히 좋아하는 인물이다. 그가 서식스의 파람 하우스 롱 갤러리 천장에 그린 초록빛 나뭇잎이 가득한 벽화는 큰 감동이었고, 나 역시 최근 비슷한 작업을 했다.



테스 뉴올이 제작한 캔들스틱.

테스 뉴올이 제작한 캔들스틱.

옥스퍼드 대학에서 인류학을 공부했다는 점이 의외다. 이후 영화계에서 세트 디자이너로 일하다 장식 예술로 방향을 바꾸게 된 계기가 궁금하다

영화 작업의 극적 요소가 정말 좋았다. 하나의 장면을 만들어내고, 관객을 완전히 다른 세계로 이끄는 과정이 무척 흥미로웠다. 그러던 중 가구 제작자인 남편 앨프리드 뉴올(Alfred Newall)의 가구에 그림을 그리기 시작했다. 그 일을 계기로 점점 다양한 장식 작업을 의뢰받았고, 자연스럽게 지금의 길로 들어섰다. 지금은 내가 만든 작품이 누군가의 일상을 함께하며 추억이 되어간다는 점이 무엇보다 기쁘고 의미 있게 느껴진다.



영국 런던을 기반으로 한 최고급 인테리어 · 부동산 개발 매니지먼트 회사 캔디 런던(Candy London)이 요청한 민속학적 감성이 담긴 사이드보드.

영국 런던을 기반으로 한 최고급 인테리어 · 부동산 개발 매니지먼트 회사 캔디 런던(Candy London)이 요청한 민속학적 감성이 담긴 사이드보드.

대형 세트 디자인부터 소품, 가구, 벽까지 다양한 작업을 해왔다. 테스 뉴올이 정의하는 장식 예술은

내게 장식 예술이란 벽이든 사물이든 그 표면을 아름답게 꾸미는 모든 걸 의미한다. 20세기 초 영국에서 결성한 예술가 단체 ‘블룸즈버리 그룹’이 그 가능성을 가장 잘 보여줬다고 생각한다. 그들은 사람들이 아름답고 견고하며 오래 지속되는 물건 속에서 살아야 한다고 믿었다. 나 역시 예술이 일상과 실용적 공간에 자연스럽게 스며들어야 한다고 생각한다. 그런 예술이야말로 공간을 풍요롭게 만들고, 매일의 삶에 기쁨을 더하는 힘이 있다고 믿는다.


구체적으로 블룸즈버리 그룹의 어떤 점이 장식 예술에 대한 관점이나 작업방식에 영향을 주었나

버지니아 울프의 글을 통해 블룸즈버리 그룹을 처음 알았고, 이후 그녀의 언니 바네사 벨이 머물렀던 찰스턴 농장을 직접 찾았다. 그곳에서의 경험은 장식 예술에 대한 내 작업에 큰 전환점이 됐다. 바네사 벨과 던컨 그랜트는 벽화와 책 표지, 직물, 가구까지 공간 전체를 그림으로 채웠다. 나는 그들의 색감과 패턴도 좋아하지만, 무엇보다 장식에 대한 태도에 감탄했다. 그들에게 장식이란 무엇이든 그림을 그릴 수 있는 대상이 되었고, 단순한 꾸밈이 아니라 공간에 머무는 사람들의 개성을 담아내는 일이었다. 골동품 가구에 패턴이 있는 패브릭을 조합하거나 독특한 벽 장식을 더하는 식으로. 찰스턴 농장의 가든 룸 벽 상단을 따라 이어진 루프 형태의 테두리 장식에는 빠르게 그린 붓질의 흔적이 남아 있는데, 나는 작업할 때마다 그 장면을 떠올린다. 완벽함은 때로 불완전함 속에서 피어난다는 것을.



작업 중인 테스 뉴올.

작업 중인 테스 뉴올.

그동안 진행한 프로젝트 중 가장 도전적이었던 작업을 꼽는다면

최근 캘리포니아 몬테시토의 한 침실 천장에 야생화 화환을 그리는 작업을 했다. 천장에 그림을 그리는 건 꽤 어려운 일이지만, 완성된 모습은 정말 아름다웠다.



키트 켐프 디자인(Kit Kemp Design) 스튜디오와 함께 작업한 블룸즈버리 퍼블리싱의 리셉션 공간과 작가의 방.

키트 켐프 디자인(Kit Kemp Design) 스튜디오와 함께 작업한 블룸즈버리 퍼블리싱의 리셉션 공간과 작가의 방.

테스 뉴올의 손길이 닿은 공간을 경험하는 이들이 당신의 작업을 어떻게 받아들이길 바라나

기쁨을 느끼고 창의적 영감을 얻길 바란다. 벽은 공간 분위기를 좌우하는 중요한 요소다. 그래서 나는 벽화를 그린 장소를 종종 다시 찾는다. 그 공간에서 사람들이 일상을 보내며 벽화가 그들의 삶에 자연스럽게 스며든 모습과 마주할 때 더없이 뿌듯하다.


당신의 집은 어떤 모습인가

직접 디자인한 벽지와 전등갓으로 집 곳곳을 꾸몄다. 아들 방에는 줄무늬 패턴을 천장까지 이어 붙여 마치 서커스 텐트 속에 있는 듯한 분위기를 연출했고, 딸들 방은 만발한 야생화를 모티프로 비밀 정원에 들어온 느낌을 더했다. 우리 부부의 침실은 차분하고 우아한 분위기의 톤으로 마무리했다.

Credit

  • 에디터 권아름
  • 사진 ©SIMON BROWN
  • 아트 디자이너 이유미
  • 디지털 디자이너 오주영
  • COURTESY OF TESS NEWALL