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ULTURE

전 세계 31명의 여성 아티스트가 엘르 80주년을 위해 모였더니

여성에 의한, 여성을 위한! '진정한 예술의 힘'을 만날 시간.

프로필 by 윤정훈 2025.08.31

창간 80주년을 맞은 <엘르> 를 위해 전 세계 31명 여성 아티스트가 모였다. 오직 <엘르>만을 위해 제작한 작품들은 고유한 언어와 표현으로 여성의 삶을 응원한다. 작품은 8월부터 11월까지 오사카, 방콕, 뉴욕을 거쳐 파리에서 전시된 다음 자선 경매에 오르며, 수익금 전액은 여성 권리를 위한 국제 NGO 활동에 쓰일 예정. 한국에서는 9월 1일~30일까지 온라인 메타버스 전시가 펼쳐진다.


이현정, ‘Contemplation’

“작가로서 예술이 타인과 사회에 따뜻한 울림을 전하는 순간을 가장 소중히 여겨요. 그런 기회가 찾아오면 주저하지 않고 참여해 왔죠. 이번 전시는 단순히 작품을 선보이는 자리가 아니라, 나눔과 연대의 가치를 작품으로 전할 수 있는 특별한 기회예요.” 한지를 물에 풀어 만든 독특한 질감 위에 가는 붓으로 수많은 선을 그려 파도를 완성하는 이현정 작가. 그에게 손수 빚은 한지의 결은 삶의 고난을 품은 은유가 되고, 예술가이자 여성으로서 맞닥뜨린 도전은 언제나 해내고자 하는 ‘열망(Envie)’으로 바뀌어 왔다. <엘르> 80주년을 위해 그는 작업에 ‘빛’을 불러들였다. 오늘날 여성에게 필요한 존재라고 믿기 때문이다. “작품은 어려운 순간에도 새로운 앞날을 기대할 수 있다는 희망을 담고 있어요. 길고 어두운 터널을 걷는 순간일지라도, 그 끝에는 언제나 빛이 기다리고 있다는 걸 잊지 말자는 메시지를 전하고 싶었어요.” 그에게 예술은 치유와 연결, 스스로를 일으켜 세우는 내면의 힘이다.



Shourouk Rhaiem, ‘ELLE…Brille !’

<엘르> 창간 80주년을 기념해 아티스트 슈룩 라이엠(Shourouk Rhaiem)이 재해석한 1970년대 <엘르> 커버. 일상의 아름다움과 다양한 문화적 색채를 작품에 담아 평범한 사물을 예술로 승화시켜 온 슈룩은 수천 개의 스와로브스키 크리스털로 장식한 ‘Brille!’로 <엘르>의 80년 여정을 화려하게 기렸다.



Mari Ito, ‘Origin of Desire’

마리 이토는 일본 전통 회화 양식 ‘니혼가’ 기법으로 자연의 아름다움을 몽환적으로 담아낸다. 도쿄라는 경쟁적인 환경에서 어린 시절을 보낸 그는 예술에서 위로와 자유를 되찾았다. <엘르> 창간 80주년을 위한 이번 작품은 여성의 회복 탄력성과 평화의 메시지를 담고 있다.



Mia Chaplin, ‘Alarm’

풍부한 질감과 유려한 붓질이 돋보이는 미아 채플린의 회화는 나미비아를 하이킹하다가 친구들과 누드로 수영하던 순간에서 출발했다. 이번 작품은 자연 속에서 느낀 자유와 연대에 대한 표현이자, 예술사 속 여성을 재현하는 방식에 대한 도전이기도 하다.



Makiko Furuichi, ‘Rattraper le Pain Perdu’

푸루이치 마키코의 작업은 과거와 현재, 일본과 프랑스를 잇는 다리다. 마키코는 두 개의 얼굴과 한 손, 가면을 통해 정체성과 기억을 탐구했다. ‘잃어버린 시간을 되찾다’는 뜻을 담은 이번 작품 제목은 우리가 매일 쓰는 가면과 진정한 자아 사이의 갈등을 표현하고 있다.



Inès Mélia, ‘Freed from Desire’

수년 간 자신을 돌아본 끝에 뒤늦게 창작에 전념한 이네스 멜리아. 그는 파리 지하철에 몰래 설치한 반짝이는 커튼 작품으로 주목을 받았다. 일상 속에서 숨겨진 의미를 탐구하는 그는 전한다. “커튼 너머를 두려워하지 마세요.”



Irene Cattaneo, ‘Mon Amie la Rose’

“장미를 보고 우리가 감탄하는 이유는, 결국 그것이 곧 시들 것이라는 걸 알기 때문이죠.” 이레네 카타네오는 브론즈 잎사귀로 감싼 섬세한 무라노 유리 장미를 만들었다. 이를 통해 덧없이 사라지는 아름다움, 동시에 영원한 여성성을 표현했다.



Anastasia Samoylova, ‘Tourist in South Beach’

아나스타시아는 사진을 찍고, 자르고, 다시 겹치는 과정을 통해 새로운 시각을 창조한다. <엘르> 창간 80주년을 위해 그녀는 도시 풍경을 바탕으로 아름다움의 구성과 소비에 대해 질문하는 작품을 선보였다. 아타스타시아의 메시지는 명확합니다. “계속 변화하고, 질문하며, 표면 너머를 바라보세요.”



Pia-Maria Raeder, ‘Sea Anemone 1’

피아 마리아 래더는 언론인의 길을 떠나 나무와 금속, 유리 등을 다루는 조형 작업에 전념해 왔다. 지속 가능한 재료를 주로 사용해 온 그는 이번에 처음으로 색을 도입했다. 대담한 핑크 색의 작품은 마릴린 먼로의 상징적 드레스를 떠올리게 하며, 동시에 여성의 힘을 기린다.



Angela de la Cruz, ‘Untitled (Fold) Green’

안젤라 드 라 크루즈는 스페인의 작은 마을에서 태어나 60세가 된 지금까지 예술에 대한 끊임없는 호기심과 갈망을 품어왔다. 선명한 초록색 면의 한가운데 주름이 접힌 형상은 미니멀하면서도 도발적이다.



Françoise Pétrovitch, ‘Dans Mes Mains’

프랑수아즈 페트로비치는 어린 시절부터 그림을 손에서 놓지 않았다. 삶과 예술, 사람에 대한 호기심을 토대로 회화와 도예를 아울러온 그녀는 이번 작품을 통해 여성과 동물의 존재를 연약하면서도 강렬하게 담아냈다.



Laurence Jenkell, ‘Jenk’Elle’

어린 시절 사탕을 먹지 못했던 아쉬움을 영감의 재료 삼아 커다란 캔디 모양의 조형물을 만들어온 로랑스 젱켈. 그는 서로 다른 색과 질감을 조합해 여성의 강인함과 부드러움, 자기혁신 능력을 상징하는 작품을 탄생시켰다. “여성의 반짝이는 존재감을 표현하고 싶었어요.”



Marcella Barceló, ‘Roost’

오랜 동화부터 철학까지 다양한 데서 영감을 받는 마르셀라 바르셀로에. 그는 ‘한 아이가 새들에게 키워졌다면 어떨까?’라는 대담한 상상에서 출발한 작품을 선보였다. 이로써 마르셀라는 우리 앞에 한 번도 본 적 없는 세계를 펼쳐 보였다.



Chou Yi, ‘Every Day is A Good Day’

대만 출신 추 이는 일본 애니메이션과 팝 문화에서 영감을 받아 위트와 인사이트가 공존하는 작품을 만드는 아티스트다. 대담한 색채와 섬세한 디테일은 여성의 조용하지만 강인한 힘과 회복력을 표현하고 있다.



Marion Charlet, ‘Bisous, Marguerites, Supercheris’

마리옹에게 세상은 밝고 생기 넘치는 색으로 가득하다. 건축가 집안에서 자란 그는 건축적 풍경을 회화로 구현하는 작가다. 세 아이의 엄마가 된 지금도 그의 예술적 열정은 멈추지 않는다. “저는 <엘르>와 함께 자랐고, 앞으로 40년은 더 그릴 준비가 돼 있어요.”



Ghizlane Sahli, HT032

기즐란 사흘리는 플라스틱 병뚜껑에 실크로 자수를 놓아 아름답도 힘 있는 메시지를 담은 조형물을 만드는 아티스트다. 모로코 마라케시 작업실에서 완성한 이번 작업에는 여성의 몸을 시적으로 존중하고 축복하는 메시지가 담겼다.



Claire Lindner, ‘Feuille N°3’

프랑스 세라믹 아티스트 클레르 린드너는 점토를 통해 식물과 동물, 인간세계의 경계를 흐리는 오브제를 창조한다. 상상력과 친밀감, 변화에 관심이 많은 그는 비밀의 정원을 떠올리게 하는 세라믹 잎사귀로 고전적 상징성과 여성적 세계를 담아냈다.



Joana Vasconcelos, ‘Vega’

타일, 도자기, 직물에 담긴 포르투갈의 장인 정신, 그리고 빛과 색채에서 영감을 얻는 바로크 예술가 조아나 바스콘셀로스. 그는 개구리 조각에 손뜨개 가죽을 입혀 보호와 억압, 전통과 현대 사이의 긴장을 이야기하고자 했다.



Janaina Mello Landini, ‘Ciclotrama 261’

브라질 출신의 자나이나 멜로 랜디니는 어린 시절 자수를 배우며 자랐다. 실과 밧줄을 엮어 만든 ‘수퍼스트라툼’ 시리즈의 연장인 이번 작품은 현실을 이루는 보이지 않는 연결을 드러낸다. “우리는 아이디어와 가능성을 하나로 엮으며 미래를 꿰매고 있어요.”



Fuh-Mi, ‘Journey’

후미는 손바닥의 선을 읽듯 붓질로 삶의 선을 따라가며 과거와 미래, 고난과 성취를 이야기한다. 일곱 살 때부터 할머니에게 서예를 배운 그는 일본에서 대만으로 이주하며 틀을 깨고 자신의 길을 걷기로 결심했다. 하나의 검은 먹선에는 그의 오랜 자아 탐색 여정이 담겨 있다.



Elisabeth Garouste, ‘Yolanda & Jules’

제2차 세계대전에서 살아남은 유대인 가문의 후손 엘리자베스 가로스테. 그는 트라우마를 예술로 승화시켜 바로크와 초현실주의가 만나는 독창적인 조형 언어를 펼쳐왔다. 그가 손수 만든 가면은 완벽하지 않음을 끌어안고 있으며 나아가 무수한 이야기와 상상을 품고 있다.



Ramona Nordal, ‘Dream Machine’

라모나 노르달에게 예술은 어린 시절부터 피난처였다. 그는 여성의 신체를 중심에 두고, 아크릴 물감· 볼펜· 닥종이를 결합해 시대와 질감을 넘나들어 왔다. 강렬한 여성 형상과 새를 담은 이번 작품은 궁극적으로 자유를 노래하고 있다.



Valérie Favre, ‘Pour Elle, for Her, Für Sie’

발레리 파브르의 창작 세계는 조용하면서도 강렬하다. 그는 여성 작가 루 안드레아스 살로메에게 영감을 받아 관습을 넘어서는 자유를 추구한다. 발레리는 홍차로 물든 티슈 위에 지구본을 그려 잡지와 지구를 향한 섬세한 헌사를 남겼다.



Katrin Fridriks, ‘Water's Divine Memory’

아이슬란드 출신 카트린 프리드릭스는 예술과 연금술의 경계를 흐린다. 물체의 움직임과 색, 의식의 흐름을 탐구하는 그는 <엘르>를 위해 생명과 우주를 잇는 깊은 연결을 포착했다. “예술은 우리를 통과하는 에너지를 느끼고, 우주와 연결되는 방법이에요.”



Sacha Floch-Poliakoff, ‘1946-1976-1996’

사샤 플로치-폴리아코프는 종이와 나무를 활용한 콜라주와 대상의 윤곽을 강조하는 실루엣 작업으로 초현실적이고 몽환적인 세계를 만든다. <엘르> 창간 80주년을 맞아 그는 1946년, 1976년 1996년 세 가지 전설적인 커버를 자신만의 미학으로 재해석했다.



Hadieh Shafie, ‘Draw/Cut/Rotate 15’

이란 출신 하디에 샤피에는 중동의 전통과 서구의 표현 기법을 결합한 독창적 종이 조각을 만든다. 색색의 종이에 페르시아어 문구를 적어 돌돌 말아 쌓아 올린 그의 작업은 손의 노동과 색의 울림을 통해 여성의 목소리와 강인함을 드러낸다.



Olga Yaméogo, ‘Filiation I’

부르키나파소에서 나고 자란 올라 야메오고는 강렬한 색과 역동적 제스처로 정체성과 기억을 탐색한다. 일상과 아프리카 문화에서 영향을 받은 그녀는 이번에 두 딸에게 받은 영감을 토대로 현대적 여성성과 자유를 조명했다.



Ileana Magoda, ‘Ofrendas Ancestrales & Eterna Dádiva’

멕시코 아티스트 이레아나 마고다는 정원에서 식물이 자라는 모습을 지켜보며 영감을 얻는다. 그녀에게 회화는 신비로운 경험이자, 여성적 창조성을 표현하는 수단. 겹겹이 쌓인 꽃을 표현한 작품은 여성성과 회복 탄력성을 기념하고 있다.



Aravani Art Project, ‘In Full Bloom’

“우리에게 예술은 생존이자 정체성, 존재에 대한 선언입니다.” 거리 벽화로 강렬한 메시지를 전하는 인도의 아라바니 아트 프로젝트는 트랜스젠더와 시스젠더 아티스트로 이뤄진 그룹이다. 작품 속의 정교한 패턴과 꽃무늬는 우정과 돌봄, 회복력을 상징한다.



Cachetejack, ‘Wavy Mood’

대학 시절 만난 카체테잭 듀오는 반항적인 선언문을 시작으로 일러스트레이션과 대형 벽화로 협업의 결과를 확장해 왔다. 여성들이 기쁨을 되찾는 순간을 선보인 작품을 통해 그들은 “우리의 욕망을 실현하는 것이 가장 중요한 과업”이라고 말한다.

Credit

  • 글 CECILE DELARUE
  • 사진 COURTESY OF THE ARTIS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