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ULTURE

앤디 워홀, 데이비드 호크니 예술작품 속 동물들의 역대급 사연

작고 특별한 존재와 함께 쌓은 삶, 우정을 딛고 피어난 예술.

프로필 by 길보경 2025.11.22
 프리다 칼로의 품에 안긴 반려견 세뇨르 소로틀.

프리다 칼로의 품에 안긴 반려견 세뇨르 소로틀.

Frida Kahlo, ‘Itzcuintli Dog with Me’(1938).

Frida Kahlo, ‘Itzcuintli Dog with Me’(1938).


신성한 수호령

고통으로 점철된 생을 예술로 승화시킨 멕시코 화가 프리다 칼로. 자신의 감정을 표출한 캔버스에는 그가 겪은 불행이 생생하게 드러난다. 10대 때 겪은 전차 사고, 외도를 일삼은 남편 디에고 리베라와의 격정적인 결혼생활 등 그의 인생을 송두리째 뒤흔든 사건 말이다. 교통사고 후유증으로 아이를 가질 수 없게 된 이후, 칼로는 상실의 자리를 동물로 채워나갔다. 개와 원숭이, 새, 사슴까지. 멕시코 코요아칸의 푸른 집 ‘카사 아줄(Casa Azul)’은 생명력 가득한 동물원 같았다. 칼로가 남긴 143점의 회화 작품 중 55점이 자화상이며, 그중 상당수의 작품에 동물이 등장한다. 대표작 ‘가시나무 목걸이와 벌새가 그려진 자화상’에서도 검은 머리와 진한 눈썹의 칼로는 원숭이와 고양이, 새에 둘러싸여 있다. 칼로에게 동물은 세상과 자신을 이어주는 매개체였다.


그중에서도 그가 깊은 애정을 쏟았던 반려동물은 멕시코 토종견 ‘이츠쿠인틀리(Itzcuintli)’다. 고대 아즈텍 문명에서는 죽은 이의 영혼을 저승으로 인도하는 신성한 개로 여겼다. 칼로는 그중 한 마리에게 ‘세뇨르 소로틀(Señor Xólotl)’이라는 이름을 붙이고, 수호령처럼 평생 곁에 두었다. 마당을 자유롭게 뛰노는 반려견을 바라보며 자신의 고통을 조금씩 달랬을 것. 자화상 ‘이츠쿠인틀리 개와 나’(1938)에서도 검은 드레스 차림으로 담배를 든 채 느긋하게 앉아 있는 자신과 평온한 눈빛의 소로틀을 함께 그렸다. 소로틀은 칼로의 상처와 고독을 보듬어준 존재이며, 생의 끝까지 함께 걸어간 수호신이었다.



워홀은 단골 식당이던 발라토스 레스토랑(Ballato’s Restaurant)에 아치를 자주 데려갔다.

워홀은 단골 식당이던 발라토스 레스토랑(Ballato’s Restaurant)에 아치를 자주 데려갔다.


앤디 워홀의 알테르 에고

짧은 다리와 길게 뻗은 몸, 맑고 큰 눈망울. 일명 ‘소시지 개’로 불리는 닥스훈트는 위대한 예술가의 반려견을 논할 때 자주 소환된다. 파블로 피카소와 앤디 워홀, 데이비드 호크니까지 닥스훈트에 대한 사랑은 흡사 예술사 계보처럼 이어졌다. 1973년 당시 연인이었던 제드 존슨(Jed Johnson)의 권유로 처음 닥스훈트를 입양하면서 워홀의 일상은 완전히 달라졌다. 스튜디오 작업은 물론, 전시 오프닝과 파티, 레스토랑, 심지어 해외여행까지 아치(Archie)가 그림자처럼 함께했다. 그 시절 반려견과 해외로 나서면 무려 6개월간의 검역을 거쳐야 했다. 워홀은 영국행을 포기할 정도로 자신의 개를 끔찍이 아꼈다. 기자회견 장소에도 아치를 데려가곤 했는데, 불편한 질문이 나오면 “아치, 네 생각은 어때?”라며 능청스럽게 화제를 돌렸다.


아치가 세 살에 가까워졌을 때 또 한 마리의 닥스훈트, 아모스(Amos)가 워홀의 가족으로 합류했다. 맨해튼 이스트 66번가 타운 하우스에서 두 마리의 닥스훈트는 티파니 목걸이와 에르메스 목줄을 차고 지냈다. 워홀은 그들에게 스테이크와 캐비아를 먹이고 향수까지 발라주며 살아 있는 예술 작품처럼 돌봤다. 그의 작품 속에서 아치와 아모스가 중요한 상징으로 남은 것은 어찌 보면 당연한 결과다. 워홀은 두 반려견의 초상화를 실크스크린으로 제작하기도 했다. 세월이 흘러 워홀은 아치와 아모스를 집에 두고 외출하는 일이 늘었지만, 일기에는 그들에 대한 애정이 여전히 남아 있었다. 1987년 그가 세상을 떠난 후에도 아치와 아모스는 워홀의 연인 제드 존슨과 살았고, 무려 21년이라는 긴 생을 누렸다.



Pierre Bonnard, ‘Woman with a Cat’(1912).

Pierre Bonnard, ‘Woman with a Cat’(1912).


신비롭고 친근한 벗

19세기 말 프랑스에서 활동한 피에르 보나르는 반인상주의 예술가 그룹 ‘나비파’의 일원이었다. 히브리어로 ‘선지자’를 뜻하는 이 아방가르드 집단은 사물의 형태가 빛이 아닌 화가의 해석에 따라 결정된다고 믿었다. 평면과 장식 요소를 중시하며, 재현보다 추상에 가까운 자기표현을 추구했다. 이에 영향을 받은 보나르 역시 강렬한 색상과 자유로운 구도를 사용해 ‘색채의 마술사’로 불렸다. “오직 나에게 익숙한 걸 그려왔다”던 보나르의 화폭 속에는 그와 친밀한 관계를 맺은 존재나 일상적 장면이 펼쳐진다. 아내 마르트와 집 안팎의 풍경, 식탁 주위를 유유히 배회하는 개나 고양이처럼 말이다.


‘흰 고양이’(1894)에서 보나르는 등을 둥글게 세운 고양이를 왜곡된 형태로 묘사하며 익살스럽고 우아한 이미지를 만들어냈다. 곡선의 강조와 비대칭적 구도는 장식적 화풍을 추구한 나비파의 전통과 맞닿아 있다. ‘여인과 고양이’(1912)에서도 아내 마르트와 고양이가 함께 등장한다. 테이블 위로 올라가려는 고양이의 움직임, 이를 감싸는 따뜻한 색조와 부드러운 빛은 보나르 특유의 친밀하고 정적인 정서를 완벽히 구현하고 있다. ‘정원에서의 휴식’(1914)에는 따듯한 햇빛 아래 마르트가 휴식을 취하는 장면이 파노라마로 담겨 있다. 그림 오른쪽 끝엔 황백색의 고양이가 나른한 표정으로 앉아 있어 평화롭고 따스한 감성을 증폭시킨다. 보나르에게 고양이는 현실세계의 일부였다. 특정한 고양이를 뮤즈로 삼지는 않았지만, 다양한 종류의 고양이들이 그의 삶 속에서 함께했고, 보다 넓은 의미의 반려 존재로 자리했다.



Georgia O’Keeffe, ‘Untitled (Dog)’(1952). Ⓒ Georgia O’Keeffe Museum

Georgia O’Keeffe, ‘Untitled (Dog)’(1952). Ⓒ Georgia O’Keeffe Museum

 Maria Chabot, ‘Georgia O’Keeffe with Cat’(1944). Ⓒ Georgia O’Keeffe Museum

Maria Chabot, ‘Georgia O’Keeffe with Cat’(1944). Ⓒ Georgia O’Keeffe Museum


새로운 삶의 완벽한 동반자

20세기 미국 모더니즘의 상징, 조지아 오키프. 그의 삶은 뉴욕과 뉴멕시코로 나뉜다. 화가로 데뷔한 뉴욕에서 도시의 수직적 구조와 꽃의 내밀한 형태를 탐구했다면, 여름마다 머물던 뉴멕시코에서는 사막의 풍경과 동물, 뼈 같은 상징적 오브제를 통해 보다 존재론적이고 초현실적인 회화의 세계로 나아갔다. 남편 앨프리드 스티글리츠가 세상을 떠난 1949년 이후 오키프는 마침내 뉴멕시코에 완전히 정착했으며, 애비키우(Abiquiu) 지역의 고요한 자연 속에서 새로운 삶의 리듬을 만들어나갔다. 처음에는 반려묘를 키웠고, 이웃으로부터 크리스마스 선물로 받은 차우차우 두 마리도 함께 그녀와 살았다. 두 반려견의 이름은 보(Bo)와 치아(Chia). 오키프는 그들을 ‘작은 사람들’이라 부르며 가족처럼 아꼈다.


낯선 이를 경계하면서도 주인에게는 절대적 충성을 바치는 차우차우의 성향은 사생활을 중시하며 자신의 세계를 지켜온 오키프의 삶과 닮아 있었다. 결국 그는 평생 여섯 마리의 차우차우와 함께하며, 평화로운 일상을 영위했다. 황량한 사막에서 오키프의 곁을 오래도록 지켜준 반려견들은 그의 드로잉 스케치에도 남아 있다. 오키프는 말년에 보를 잃은 뒤 일기장에 이렇게 적었다. “그는 아마도 하얀 언덕 위를 홀로 달리고 있을 것이다.” 사막의 빛과 바람을 가로지르던 작은 생명은 그녀의 고독을 위로하며 예술과 삶을 완성시킨 진정한 동반자였다.



로스앤젤레스 말리부 자택엔 늘 반려견 스탠리와 부지가 함께했다.

로스앤젤레스 말리부 자택엔 늘 반려견 스탠리와 부지가 함께했다.

David Hockney, ‘Dog Painting 19’(1995).

David Hockney, ‘Dog Painting 19’(1995).


디어 마이 스몰 프렌즈

데이비드 호크니의 사적인 삶에서 닥스훈트는 평생 동안 사랑을 쏟아부은 존재였다. 특히 호크니는 닥스훈트의 매혹적인 실루엣과 유려한 움직임을 보고 첫눈에 반했다. 새끼 닥스훈트였던 스탠리(Stanley)를 먼저 입양하고, 그로부터 2년 후엔 같은 종의 부지(Boodgie)까지 가족으로 받아들였다. 호크니가 두 강아지를 본격적으로 화폭에 담기 시작한 계기는 가까운 이들의 죽음이었다. 1990년대에 수많은 친구가 에이즈로 세상을 떠나 충격에 빠진 상황에서 절친이자 미술평론가였던 헨리 겔드잘러(Henry Geldzahler)마저 지병으로 사망하자 그는 깊은 상실감에 빠졌다. 결국 캘리포니아 말리부로 거처를 옮긴 호크니는 고요한 바닷가에서 두 마리의 반려견과 함께 일상을 회복하기 시작했다. 매일 아침 서로 다른 높이의 이젤을 세워두고 스탠리와 부지를 바라보며 그림을 그렸다.


“사랑을 너무 많이 잃어서 어떻게든 아픔을 달래고 싶었다. 그러다 문득 내 가장 친한 친구 스탠리와 부지를 그리고 있다는 걸 깨달았다. 그들은 내게 작은 사람들과 같다.” 식사 시간과 낮잠, 서로의 등을 베고 기대는 모습처럼 그는 평범한 일상의 순간을 사랑의 형상으로 바꿔냈다. 1995년 브래드퍼드의 솔츠 밀에서 열린 전시 <Dog Days>는 이 애정의 기록을 한데 모은 결정판이었다. 수백 점의 드로잉과 회화를 모아 동명의 도서 <David Hockney’s Dog Days>(1998)를 출간하기도 했다. 순수한 애정으로 그려낸 순간 속에서 반려와의 유대가 어떻게 예술로 승화했는지를 여실히 알 수 있다. 스탠리와 부지는 그에게 예술적 영감이자 존재를 바라보는 가장 다정한 렌즈가 돼주었다.



뉴욕 맨해튼 첼시 지역 23번가 지하철역을 장식한 윌리엄 웨그먼의 ‘Stationary Figures’.

뉴욕 맨해튼 첼시 지역 23번가 지하철역을 장식한 윌리엄 웨그먼의 ‘Stationary Figures’.

첫 번째 반려견인 만 레이는 웨그먼의 예술세계를 구축하는 데 일조했다.

첫 번째 반려견인 만 레이는 웨그먼의 예술세계를 구축하는 데 일조했다.


예술의 탁월한 협업자

“우리는 그렇게 타고났다고 생각해요. 자신을 다른 존재 속에서 보는 방식으로요.” 반려견을 의인화한 사진과 비디오 작업으로 명성을 얻은 개념미술의 선구자 윌리엄 웨그먼. 그의 말은 곧 자신이 걸어온 예술 여정에 대한 고백이기도 하다. 반려견과 함께 걷고, 멈춰 바라보고, 기록한 시간 속에서 웨그먼은 결국 또 다른 ‘나’를 발견했으니까. 1970년대 초반, 현대미술의 실험적 담론을 모색하던 그는 한 마리의 바이마라너를 만나며 창작의 전환점을 맞는다. 웨그먼은 회색빛의 늠름한 자태를 뽐내는 바이마라너를 자신이 존경하던 예술가의 이름을 따 ‘만 레이(Man Ray)’라 불렀다. 카메라 앞에 선 만 레이는 마치 인간처럼 카메라를 인식했고, 스스로 포즈를 취하는 등 모델로서 놀라운 재능을 보여주었다. 그 순간 웨그먼은 직감했다. 만 레이가 피사체를 넘어 예술의 공동 창작자가 될 것이라고.


이후 둘은 수백 장의 사진을 함께 남겼다. 트렌치코트를 입고 시크하게 포즈를 취한 모습, 술에 취한 듯 소파에 널브러진 자세, 다리를 꼬고 앉은 초상까지. 반려견의 ‘인간스러운’ 이미지는 웃음을 자아내는 동시에 묘한 기시감이 든다. 패셔너블한 복장과 세밀하게 조절한 조명, 절제된 구도 속에서 인간의 욕망과 감정이 예리하게 드러난다. 1982년 만 레이가 세상을 떠난 뒤에도 웨그먼의 렌즈는 멈추지 않았다. 새로운 동반자가 된 바이마라너 ‘페이 레이(Fay Ray)’와 그 후손에 이르기까지 반세기가 넘도록 협업을 지속했다. 그 오랜 예술적 여정이 사진집 <Being Human>(2017)에 집약돼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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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redit

  • 에디터 길보경
  • 사진 GETTY IMAGES · COURTESY OF GEORGIA O’KEEFFE MUSEUM
  • 아트 디자이너 정혜림
  • 디지털 디자이너 오주영