두 번의 리모델링으로 진정한 내 집 만들기
따뜻하고 포근하며 실용적인 미감이 돋보이는 집은 위안이자 루틴, 삶의 리듬을 회복하는 뿌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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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파와 라운지 체어, 벽면을 가득 채운 서가와 바이닐 존까지 네 가지 전경으로 담아낸 거실. 가족이 각자의 즐거움을 누릴 수 있는 공간이다. 액자처럼 낸 창으로 남산과 하늘 전망을 만끽할 수 있다.
“백색 소음을 좋아해요. 적막하게 있기보다 어떤 소리가 흐를 때 편안하죠.” 남산이 노릇하게 물든 오후, 다이닝 테이블에 앉으니 프레임 TV 화면의 여우 한 마리가 숨어 있는 유화가 시야에 들어온다. 이 집은 정재연이 가족과 2019년에 입주한 뒤, 두 번째로 리모델링한 공간이다. “첫 번째 리모델링 때는 넓은 평수의 낯선 공간을 감당하기에 조금 버거웠어요. 단열이나 구조보다 눈에 보이는 장식적인 부분을 바꿨죠. 시트지를 붙이고 벽지를 바꾸고. 일종의 ‘반셀프 리모델링’이었어요.” 두 번째로 손을 본 리모델링은 훨씬 스케일이 컸다. 거주하며 익힌 집의 장단점을 바탕으로 장식이 아니라 기능을 먼저 살피고, 불편함과 장점을 하나하나 보강하는 대수술이었다. 곡선으로 흐르던 벽들을 일자로 각을 내고, 새시를 교체하고, 단열을 보강하고, 안방은 벽을 세워 세탁실과 드레스 룸을 확보했다. 오랫동안 낡은 구조를 정비하고, 단열을 보강해 방의 역할을 재배치한 것이다. “이번엔 조금 더 ‘사는 사람’의 입장에서 고쳤어요.” 집의 중심은 거실이 아니라 다이닝 룸이다. 거실에 있던 대형 TV는 안방으로 옮기고 다이닝에는 작은 프레임 TV를 걸었다. 더불어 빌트인 소파와 원탁을 놓으니 식사와 놀이, 일상이 자연스럽게 다이닝 공간으로 모인다. 그녀가 중요하게 생각한 건 장식보다 기능. 곡선의 벽을 직선으로 만들면서 단열을 강화하고, 생활 동선을 고려해 벽을 세워 공간을 나눴다. “이 집을 나보다 잘 아는 사람은 없을 거라고 생각해 자재도 직접 고르고, 컬러를 정하고, 세세한 기능을 조율했어요.”
키친 디자인 스튜디오 MMK에 의뢰해 제작한 주방. 진한 패턴의 천연 대리석으로 마감했다. 컴팩트하게 구성한 상부장에는 그간 모아온 크고 작은 물건을 올려 장식했다.
파란 커버의 빌트인 소파와 이사무 노구치 디자인의 라운드 테이블, 알바 알토의 화병, 루이스폴센의 램프가 어우러진 다이닝 공간.
지난 10월 바르셀로나 20세기 아파트에서 진행된 전시에 설치된 ‘행잉 스플릿’.
집을 고치는 일은 그녀에겐 ‘자신’을 알아가는 과정이기도 했다. “제가 무채색을 좋아한다고 생각했어요. 그런데 집을 고치며 내가 얼마나 색을 좋아하는지 알게 됐죠.” 진한 초콜릿 컬러와 엷은 블루 컬러의 몸체에 패턴이 진한 천연 대리석을 올려 만든 부엌 가구부터 노란색으로 통일한 USM 수납장, 헬라 융게리우스 디자인의 블루 계열 비트라 소파 ‘폴더(Polder)’까지. 풍성하고 다채로운 색과 형태가 오래전부터 이곳에 호흡을 맞춘 듯 자연스럽게 어우러진다. “벽면은 녹색 물감이 한 방울 떨어진 듯한 엷은 셀러리 톤이에요. 다른 색들을 잘 품어줘 집 전체가 하나의 큰 배경처럼 느껴져요.” 공간에 대한 그의 감각은 단순한 미적 취향이 아니라 살아온 시간의 결과다. “어릴 때부터 제 방은 늘 실험 공간이었어요. 아버지가 지은 집이었는데, 이사 가던 순간을 잊을 수 없어요. 아버지는 제 방 벽지부터 제가 직접 고르게 하셨어요. 우리 집은 항상 깨끗하고 단정했고, 종종 가구를 옮기고, 커튼을 바꾸면서 다채롭게 변했어요.” 직접 벽지를 골랐던 방, 끊임없이 바뀌던 본가의 풍경은 ‘공간의 주인’이 되는 연습이기도 했다. 그런 습관은 독립 이후에도 이어져 오피스텔 페인트 칠부터 처음 장만한 화이트 톤의 가구 조합까지 스스로 해냈다. “그때부터 집은 에너지의 원천이었어요. 공간이 정돈돼야 마음도 정리됐거든요.”
두 번째 리모델링 작업에서 가장 큰 변화 중 하나였던 드레스 룸. 아이의 방.
부부의 침실. 안쪽으로는 업무를 위한 작은 작업실을 만들었다.
세탁실 한 켠에 있는 명상 공간.
부엌에 선 정재연.
북유럽 디자인에 매료된 것도 같은 맥락이다. 핀란드와 북유럽을 수차례 방문하며 북유럽 디자인 특유의 실용성에 영향을 받았다. “헬싱키에 갔을 때 알바 알토나 마리메꼬, 이딸라를 보고 ‘집이 이렇게 따뜻할 수도 있구나’ 하는 걸 느꼈어요. 화려하지 않지만 가족적이고 실용적인 분위기, 그게 저와 잘 맞았어요.” 따뜻하고 포근하며 실용적인 미감이 돋보이는 집은 정재연에게 위안이자 루틴, 삶의 리듬을 회복하는 뿌리다. 두 번째 리모델링을 통해 매만진 중문 하나, 세탁 동선 하나가 가져온 작은 성취감은 거대한 위로로 돌아왔다. 퇴근 후 씻고, 옷을 갈아입고, 아이와 밥을 먹고, 목욕을 시키고, 빨래를 개는 행동들이 그녀가 의도한 동선 안에서 매일 반복된다. 루틴이 정돈되면 아이의 습관도, 부부의 생활도 단단해진다. 힘든 시기, 불안한 마음을 다독여준 것도 결국 집이었다. “조금 힘든 해를 보내면서 공간이 어수선하니 마음도 불안했어요. 그래서 고치기로 결심했죠. 결과적으로 이 집은 큰 위로가 됐어요.” 단지 여덟 가구가 모여 있는 이곳 빌라 건물에선 엘리베이터 소음이나 대단지 아파트의 규율에서 자유롭고, 현관문을 나서면 금세 남산에 다다라 사계절의 변화를 온몸으로 누릴 수 있다. 삶이 매일 조금씩 자라나는 장소이자 가족의 온기로 채워진 공간. 이곳에서 그녀는 오늘도 자신을 새롭게 알아간다.
Credit
- 에디터 이경진
- 사진가 신선혜
- 아트 디자이너 이유미
- 디지털 디자이너 김려은
엘르 비디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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